오늘도 하염없이 비는 추적거리고, 잠시의 멈춤도 없이 뿌려대니 온 사방이 축축합니다. 한라산도 모습을 감춘 지 오래된 듯 합니다. 제주도 대기는 안개와 먹구름에 휩싸여 온통 엹은 먹빛이 벌써 나흘째입니다. 그런데도 개일 것이란 소식은 통 들려오질 않으니 이 싯점에서 햇빛이 그립습니다.
제주도에서 9개월 보냈습니다. 그 세월동안 거의 하루도 쉬지않고 제주도를 탐방했는데 주로 자연 속으로 들어가 제주도를 즐긴 반면, 요즘에는 실내에서 즐기는 다양한 활동들도 꽤 재미있습니다. 오늘은 작정하고 두 탕이나 뛰었는데, 그 두 개의 신선한 흥미진진함이 아직까지 길게 여운이 남습니다.
우공지산님의 추천 (저의 아이바가든 관람후기에 달아준 댓글을 통해)으로 오늘 당장 '빛의 벙커'로 달려갔습니다. 제주도 숙소와 아주 가까운 곳이라 거기있다는 것은 잘 알고있었음에도 제가 외면했던 것은 작년에 가보았던 '고흐의 정원'에 대한 실망때문이었던 듯 합니다. 비슷한 아류로 취급한 듯 합니다.
비가 오는데도 적지않은 사람들이 오는 것으로 보아 저만 모르고 있었나?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빛의 벙커'를 관람하면서 멍하니 한참을 빠져들었습니다. 오늘 본 것은 프랑스 프로방스 세잔느과 제주도 이왈종 화가들의 디지털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비유하기에는 무리가 있긴 하지만 영국 런던 대영미술관과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멍때리던 그 때의 감정이 되살아 나기도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두뇌를 울리는 그림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체코 프라하박물관에서 보았던 엄청난 수의 그림들이 지루했던 것은 대부분 사진 역할을 하는 듯 사실적 묘사나 인물그림 일색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잔느의 그림들은 실물은 아닌 디지털작업을 거쳐 사방 높고 넓은 벽으로 실사되는 방식이라 말그대로 몰입도 면에서는 태균이도 흠뻑 빠져들만큼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세잔느 작품의 유화 터치감들의 확대된 연속장면들은 가슴을 뭉클뭉클하게 하곤해서 이런게 거장이구나 하는 어쩔 수 없는 감탄!
명화에의 값어치란 이렇게 작가의 섬세하고 과감한 붓놀림 속의 가슴 한가득 뭉클함 그 결을 담아내는,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임을 느끼고 또 느끼며, 그렇게 한참을 지켜보았습니다. 이건 예술적 경지를 넘어서 신이 선사한 재주라고 보여집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머리를 더 쥐어대는 준이녀석까지 감탄의 제스츄어로 감상하는 것이 더 안타까워 보입니다. 태균이가 그랬던 것처럼 성장통의 고통이란 어떻게 대신해 줄 수가 없는 그저 과정일 때가 있어서 잘 이겨내기를 바라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건으로 MRI도 찍고 병원도 가긴 하겠지만 거쳐야 할 과정의 모습들이 우리 아이들에겐 너무 혹독해 보입니다.
제주도에서 20년 작업했다는 이왈종 화가의 디지털 그림들도 좋았습니다. 특히 그의 작품 곳곳에 나오는 문구, '그럴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황희정승 수준에서나 가능한 만사초탈, 산전수전 마친 한수 위 노장들이 읊조릴 듯 한 문구입니다.
아쉬움은 다음번 다른 주제의 디지털전에 대한 기대로 바꾸고 다음 쇼장으로 이동. 지난 번에 놓진 디지털전들이 문득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진이를 위한 포토타임! 집에 가서 색칠해보라고 명화포토 작업책을 5권 사주었더니 태균이 꼭 끼고있네요.
다음 코스는 어저께 보려다 실패한 스카이워터쇼! 입장료가 꽤 비쌉니다. 장애할인도 없어서 도민가격으로 했는데도 네 명이서 74,000원이나 지불. 일반 관광객들이 오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입장료(1인 2만원 이상)인데도 사람들은 바글바글합니다. 단체관광객들이 많아서 그렇기도 합니다. 어딘가 할인권도 있을테니 한번 찾아보아야 되겠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어찌나 재미와 스릴이 넘쳤는지 태균이랑 손바닥이 닿도록 박수쳐가며 즐겼습니다. 준이와 진이를 위해 맨 앞줄에 앉히고 사진찍어주려고 태균이와 저는 두번째 바로 뒤에 앉았는데 사진촬영은 완전 금지! 공연 시작하기 전과 끝나고 기념촬영만 가능하네요.
이래저래 풍성한 볼거리의 하루였습니다. 제주도의 장점은 실내테마관들이라도 주변에 이것저것 걸어보거나 감상해 볼 수 있는 자연쉼터들이 함께 있다는 것인데, 비가 이리도 주룩주룩이니 그저 실내만 보고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아쉬움. 빛의 벙커 공원 안에도 올레길도 있고 산책로도 있지만 다음을 기약해야 하고, 스카이워터쇼장 주변에도 분재공원과 성불오름이 있지만 비때문에 모두 패스해야 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잠깐 장보는 사이 태균이가 아이스크림 3개를 골라서 옵니다. 3개가 제각각 다른 맛입니다. 나름 동생들 취향 고려해가며 골라가지고 왔는데 진이가 초코좋아하는 것까지 파악해서 초코를 진이에게 건네줍니다. 초코취향 파악에는 성공했으나 바나나맛은 싫었는지 진이는 슈퍼콘 얼그레이 선택! ㅎㅎ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성읍민속마을에서 진이를 위한 포토타임. 날이 좋아지면 아이들과 함께 다 순례해볼 계획입니다. 우리도 아직 여기는 탐방 전입니다.
머리쥐어싸는 준이가 집에 있겠다고 하곤하지만 결국에는 따라나서기는 합니다. 집에 있어봐야 할 수 있는 게 너무 한정적이라 자꾸 끌어내곤 하는데, 많은 아이들이 이런 과정 속에서 삶 자체를 무의미하게 보내곤해서 이걸 막기위한 노력은 또다시 해야 합니다. 우선 빨리 홍역같은 두통부터 낫게 해주어야 할텐데요...
첫댓글 진이에게 좋은거 보여주고 멋진체험도 많이 해주고싶었는데 넘 못해줬어요ㅜ
한동안 못해본걸 하루하루 채워주셔서 넘감사합니다
첫날표정보다 훨씬 밝아보이고 눈이
반짝거리네요ㅋ
항상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대표님의
에너지 리스펙합니다^^
아. 대표님 영상보니 빛의 벙커 또 가고싶네요. 전 세잔느전도 좋았지만 2019년에 본 클림트전이 엄청 감동이였답니다. 관능적인 황금빛 물결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대표님 계신 곳에서 거리가 있긴 하지만,
제주항 근처 이호테우 해변에 가면 5분마다 한번씩 낮게
뜨는 비행기로 시지각훈련하기 좋습니다.
봄이 오고 여름이 되는 시점에 한번 가보세요~
귀한 정보 감사합니다. 눈호강 엄청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