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Title) : 산상설교 해설(Explanation of Sermon on the mountain)
부제(Sub-Title) : 일반적인 사회윤리를 넘어서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Christian's life that must go beyond general social ethics)
성경 본문(Bible Text) : 마태복음(Matthew) 5장 38~42절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1.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 이 말을 들으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이슬람의 샤리아(Sharia)를 생각하게 합니다. 샤리아(SHaria)는 무슬림들의 경전인 꾸란(코란 Quran)에 따라 지켜야 모든 삶의 규범입니다. 그리고 이 샤리아를 언급하면 즉각 떠오르는 것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말입니다. 사실 이 말은 꾸란에서 먼저 언급된 것이 아니고 주전 1,500년 전에 모세를 통해 출애굽기 21장 24절에서 언급된 말씀입니다. 그래서 후에 마호멧이 꾸란을 기록할 때 이 구절을 가져와서 꾸란에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 구절을 어떻게 대하였습니까?
첫째, 구약의 율법을 따르는 사람들이나 이슬람의 율법을 따르는 근본주의적 율법주의자들은 문자 그대로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즉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을 상하게 하면 피해자의 눈과 똑같이 가해자의 눈도 상하게 하고, 또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이를 부러뜨리면 그 사람도 똑같이 부러뜨려서 처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이 말씀에 대해 몇 가지 지침을 교훈을 하셨습니다. 비록 모세의 율법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새로운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 율법은
⓵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⓶ 누구든지 자신의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어라.
⓷ 누구든지 자신을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는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
⓸ 누구든지 자신을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면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
➄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그런데 이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여 실천하기에는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세상의 원리를 따라 자신에게 해를 끼친 자들에게 복수하지 말라는 의미이며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적극적으로 선행을 베풀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될 것입니다.
실제적인 경험 속에서 말하자면 다른 사람이 요구하는 것을 원치 않는 억지스러운 마음으로 베풀게 되면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이 계속 들게 됩니다. 그러나 자원하는 마음과 적극적인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한다면 자신의 어떤 것을 희생하고 내어놓는다 하더라고 속상하거나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게 됩니다.
아마도 주님의 제자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따라 적극적으로 남을 용서하고 적극적으로 선행을 베푸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에서 그와 같이 말씀하셨다고 생각됩니다.
셋째,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정부의 역할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정상적인 모든 국가에서는 법에 따라 개인적인 보복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개인적인 보복을 허용한다면 사회는 말할 수 없는 무질서와 혼란과 수많은 비극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장에서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고 하였고 “정부의 관리들은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법에 따라 악행으로 시민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처벌하여 악을 억제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세계에 존재하는 정부들 가운데는 그러한 역할을 하지 못하여 시민들이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회가 존재하지만, 그래도 보편적이고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의 정부는 사람들의 범죄를 억제하는 기능을 발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실천가능한가?
많은 교인들이 이 말씀, 즉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적극적으로 선행을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실천하기를 포기하거나 재해석하여 이 말씀의 본래의 뜻의 약화시키거나 왜곡시키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비록 보편적이고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실천하기를 다짐하며 그 실천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는다면 예수님의 이 말씀을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께서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풍성히 베풀어 주셔서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허물이 있는 사람을 용서함으로 하나님께 얻은 은혜 -
저는 2,000년에 인도 카르나타카 뱅갈루르에 ㅅㄱㅅ로 부임하여 2,002년에 뱅갈루르 시 외곽에 있는 지역에 동역자 세 명과 교회개척을 시도하였습니다. 동역자 세 명 모두 내가 강의로 섬기는 신학교의 신학생들이었는데 매주 토요일 와서 사역을 하고 주일 저녁에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다가 두 학생은 학교로 돌아가서 더 이상 우리와 사역을 할 수 없었고 남은 한명의 전도사를 데리고 몇 년간 사역을 했습니다.
이 전도사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한 후에 우리들과 동역하게 되었는데 우리들은 이 동역자를 위해 집을 별도로 얻어주고 생활할 수 있도록 각가지 생활에 필요한 것들도 공급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난 후에 생활비를 더욱더 달라고 하고 생활태도는 불량하며 사역에는 불성실한 모습을 보이며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우리들을 모욕하는 일까지 벌이는 것을 보면서 이 동역자와는 더 이상 사역이 힘들겠다고 생각하고 이 친구를 교회 사역자에서 해고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동역자는 교인들을 꼬드겨서 모두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교인들을 빼갔습니다.(이 동역자였던 전도사는 이 교인들을 데리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해 목회를 하여 나중에는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되었고, 목사 안수도 어떤 교단으로 받아 정식 목사가 되어 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곳에서 교회개척사역을 정리하고 떠난 후에 우리의 사역의 방향을 재정립하여 우리 자신들이 직접 현지인들과 같이 교회 개척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대신에 지역교회 목사들을 지원하고 현지 교회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사역의 방향을 전환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개발한 사역은 지역교회의 신학교육을 받지 못한 목회자들을 위한 훈련사역과 그들을 위한 신학훈련과 목회에 도움을 주는 교재의 개발과 지역교회 교회개척자들을 지원하는 사역을 하는 것으로 전환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지역 교회 목회자들을 모아놓고 훈련하는 사역을 오랜 세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제가 강의로 섬겼던 신학교의 이사장님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처음 나와 교회를 함께 개척했던 그 목사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만나게 되어 그를 보게 되었을 때 마음은 한없이 쓰리고 고통스러웠지만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그를 용서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만나 사랑과 용서의 마음과 태도로 친절하게 그를 대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그를 용서해 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주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마음에 결심하고 실제로 그를 적극적으로 용서했더니 몇 년 동안 마음에 품었던 미움의 감정이 한순간에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따뜻하고 친절한 태도를 본 그 목사는 나중에 내게 전화하여 자신의 교회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행사에 나를 설교자로 초대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교회 성도들을 위한 성탄 선물을 준비하여 교회를 방문하여 설교하고 화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매 달하는 지역교회 목회자 훈련 사역에 그를 강사로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훈련사역에 참가한 목회자들의 반응이 부정적이어서 그를 다시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달에 그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목회자 훈련사역을 하려고 그 지역에 갔더니 많은 지역의 목회자들이 이 목사의 꼬드김에 넘어가서 우리가 사역하는 그날에 이 목사의 교회로 가게 되었습니다. 즉 자신이 강의를 하지 못하니 우리의 사역에 훼방을 놓은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내게 상처를 주는 행위를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다시 한 번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그를 용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주일날 그의 교회를 찾아가서 예배에 참석하였고 그가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빔 프로젝터(Beam Projector)가 필요하다고 하여 상당한 비용을 들여 그 프로젝터를 사주었습니다.
이러한 일이 있고난 후에 그는 나에게 자신이 잘못했으며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 이후에 그와 나는 별다른 나쁜 관계가 없이 오히려 좋은 관계 속에서 지내고 있는 중입니다.
이것이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적극적으로 용서하며 적극적으로 선행을 베풀므로 오는 결과를 체험한 것에 대한 나의 간증입니다. 비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용서받은 연약한 죄인이지만 주님을 믿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적극적으로 선을 베푼다면 하나님은 그러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순종을 사용하셔서 세상에 용서와 화해, 그리고 아름다운 관계를 만드시는 역사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4. 글을 맺으면서
많은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5장 38절에서 42절의 말씀은 실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이 본문에 대해 실천하기를 거절하거나 또는 재해석하여 말씀을 왜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야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본문에 주어진 그대로 실천하기를 시도하고 노력해 보아야만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령님의 역사로 이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 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말씀에 순종하기를 시도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