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소풍/靑石 전성훈
아내가 손주를 위하여 준비한 소박한 사랑의 징표가 가을 소풍이다. 추석 연휴 기간에 어디라도 바람을 쐬고 싶어 하는 사랑하는 손주의 얼굴을 보며, 집에서 멀지 않은 가평으로 가을 나들이를 나선다. 말 그대로 가을 하늘은 맑고 푸르고 높다.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하늘에는 구름 가족이 느긋하게 소풍을 간다. 뭉게구름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그 옆에는 새털구름이 덩실덩실 춤추듯이 흘러간다. 저 구름 흘러가는 곳에 내 마음도 흘러간다는 그 옛날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가평으로 가는 길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붐빈다. 자동차가 달리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경춘국도를 달린다. 내비게이션으로 55.5km인데 집에서 숙소인 ‘오리온 풀빌라’까지 2시간 40분가량 걸린다. 청평을 지나서 경춘가도에서 벗어나 숙소로 들어가는 길은 2차선 지방도로로, 커다란 개울을 끼고 굽이굽이 굽은 길을 자동차는 신나게 달린다. 계절이 가을의 초입이라서 단풍이 물 들은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아마도 보름 정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단풍이 들 것 같다. 숙소 방문을 열고 나오면 바로 앞에 야외풀장이 있다. 한낮의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어서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다. 야외풀장에는 아이들 여럿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손녀는 소리를 지르며 후다닥 수영장으로 간다. 간단히 준비 체조를 하고 풍덩 풀에 뛰어 들어가 신나게 물놀이를 한다. 수영장 옆에 있는 등받이 의자에 앉아서 물장난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소리 없이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긴 팔에 바지를 입었는데도 등허리가 서늘하다. 고개를 들어보니 고추잠자리 몇 마리가 날렵한 몸매를 자랑하며 유연하게 하늘을 가르며 날아간다. 풀장 안내문에는 영문과 한글로 주의 사항이 쓰여 있다. 무심코 바라보는 순간 여기가 어떤 외국 마을인가 하는 묘한 느낌이 든다. 숙소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야외풀장은 어느 정도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려고 바닥에 열선을 깔아놓았고 보일러를 가동 중이라고 한다. 물놀이를 하다가 바깥으로 나오면 약간의 추위를 느끼지만, 물속에서는 그런대로 견딜만하다고 한다. 숙소 주변에는 대부분 펜션을 운영하는 곳이며 간혹 개인 별장으로 지어진 곳도 보인다. 주변에 해발 50~60m 정도로 보이는 야트막한 산이 있지만, 관리인도 그 이름을 모른다고 한다. 이곳의 원주민이 아니면 야산 정도의 낮은 산 이름을 알 수는 없을 것 같다. 잠시 숙소 주변을 서성거리며 보니, 국화, 맨드라미, 코스모스, 채송화가 피어 있다. 검정과 노란색을 띤 이름 모르는 나비 여러 마리가 활짝 핀 꽃으로 날아가더니 암술과 수술에 앉아서 열심히 날개를 펼쳤다가 오므린다. 핸드폰을 꺼내어 나비 모습을 찍고 나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햇볕을 즐기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 난, 여기서 졸고 있어요’라고 하는 듯하다. 지방도로를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도 드문드문 들릴 뿐 아주 한적한 곳이다. 숙소 주차장에 자동차 10여 대가 빽빽이 주차된 것을 보니 펜션의 영업은 그런대로 잘 되는 듯하다. 숙소 2층 침대 모서리에 기대어 창문을 열어놓고 건너편 산을 바라보니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평화로운 한순간이라는 느낌이 든다. 원수처럼 서로 으르렁대는 징글징글한 요즘 세상을 벗어나 욕심도 버리고 원한과 원망을 잊은 채, 푸른 하늘과 산 그리고 하늘에 유유히 떠도는 구름을 보면서 자연과 인간의 삶을 그려본다. 숙소 목욕탕에 스파 욕조가 있어 뜨거운 물을 1/4 정도 받아놓고 들어가 누우니까 세상에 어찌나 뜨거운지, 찬물을 섞어서 다시 몸을 담그자 조금 있으니까 온몸에서 땀방울이 솟는다. 발바닥을 주무르고 발가락을 주무르며 늘 신세를 져서 고맙다고 인사말을 건넨다. 20여 분을 탕 속에 있다가 더는 견딜 수 없어서 탕을 나와 거울을 보니 술 한잔 마신 것처럼 얼굴이 불그스름하다. 모처럼 독탕 사우나를 마음껏 즐긴 느낌이다. 산골 마을이라 일찍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숙소 관리인에게 숯불을 부탁하여 삼겹살을 굽는다. 상추에 고기 한 점과 마늘 그리고 청양고추를 얹어서 입에 넣고 좋아하는 한라산 소주 한 잔을 털어 넣는다. 이 순간의 기분은 그야말로 극락의 세계이다. 1년에 두세 번 정도 가족나들이를 한다. 가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지내는 것이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손주들처럼 지치지 않고 움직이지는 못해도 마음을 열고 한순간이나마 늙은이의 모습을 잊어버리고 젊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다. 가을이 익어가는 정취를 느끼며 한때를 즐길 수 있는 것 또한 육신이 건강해야 가능한 일이다. 소중하고 귀중한 육신을 잘 달래면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다. (2023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