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열린 한인타운 주민의회 의장선거가 영어시비로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3명의 후보가 나서 경합을 벌인 선거는 주요 이슈는 뒷전이고 당선 유력 후보의 영어 구사 능력이 도마 위에 올라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부끄러운 장면으로까지 발전됐었다.
결과는 영어를 못한다며 반대편의 ‘다소 지나치다 싶을 정도’(관람자들의 말에 의하면)의 구박(?)을 받았던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의장에 당선되면서 일단락 됐다. 영어는 주민의회 의장직 수행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 투표에 참여한 주민의회 많은 대의원들, 특히 5명의 타인종 대의원의 중론으로 받아들여진다.
선거당시 영어를 문제삼았던 반대측 지지자들중 일부는 영어 구사에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간단한 인사말과 의사표시 정도야 가능하겠지만 영어로 진행되는 회의에 참석해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토론할 수 있는 1세 대의원들이 몇 명이나 될까.
영어를 잘한다며 통역 없이 재판정에 섰다가 속기사로부터 이해가 안 된다는 지적을 받아 통역을 대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목격했었다. 커뮤니티 이슈를 묻는 미국 기자의 질문에 그럴싸하게 대답은 했는데 기자가 엉뚱한 의미로 알아듣고 커뮤니티에 해를 끼치는 기사를 낸 예도 많다. 이것이 이민 1세들이 가진 영어의 한계요 현주소이다.
1세들의 영어를 1.5세들이 들으면 조악하다며 웃는다. 또 1.5세들의 영어를 2세들은 코웃음 친다.
아들아이를 영어로 야단치다가도 가끔 엉뚱한 대답에 혼자 멋쩍게 웃을 때가 많다. 한참 열을 내고 훈계를 하는데 영어 발음을 교정해 주는 것이다. 화보다는 웃음이 먼저 나온다. 차라리 우리말로 야단을 치면 더 좋았을 것을 미국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영어로 야단을 치려니 제대로 의미가 전달될 리도 없을 것이다. “아 뭔가 야단을 치고 훈계를 하나 보구나”정도로 생각해 “예스, 예스”로 건성 대답하는 아들을 나무랄 수는 없다.
미국은 기회의 나라요 평등의 원칙이 선 곳이다. 관공서마다 이중언어 구사자를 모집해 대민 서비스에 나선다. 영어 미숙자가 많으면 통역도 부른다. 911 긴급전화를 걸어 ‘코리안’이라고 한마디만 하면 전화 회사 한국어 교환으로 즉각 연결된다. 한인타운서 열리는 정부 공청회에는 늘상 통역기가 대동돼 영어 불편자들의 편의를 봐준다.
주민의회는 시의원들의 독점적 권한을 주민들에게 분산시키겠다는 목적으로 시 전체를 114개로 쪼개 조직한 주민의회는 체류 신분이나 주거자격에 구별 없이 비즈니스, 종업원 등 해당 지역에 연고만 있으면 누구나 투표할 수 있고 대의원에 출마해 친구들의 이익을 대변해 줄 수 있다. 말하자면 동네 사람들이 뽑은 대표자들의 모임이 주민의회다. 영어 잘해야만 대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인타운 주민의회는 당연히 한인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유동인구만 50만 명이 넘는다니 32명의 대의원중 28명이 모두 한인들로 채워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원래는 35명이었으나 출마자가 없어 3명은 공석이다). “우리집 옆집 강아지가 하루종일 짖는데 경찰을 불러도 오지 않는다.” “비가 와서 집앞 도로가 패였는데도 고쳐주질 않는다.”등등 시시콜콜한 동네 대소사를 모아 시정부에 항의도 하고 민원을 전달하는 한국식 반상회 대표들의 역할이다.
한 젊은 영어세대 대의원이 영어 문제가 제기되자 회의를 한국어로 진행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오히려 영어 통역사를 부른다면 영어 회의를 한국어로 통역하느라 애쓰는 것 보다 훨씬 쉬울 것이라는 참신한 아이디어다.
미국에 와 살면서 영어 구사는 당연한 일이다. 대외적으로도 또 생존을 위해서도 영어는 필수요 이를 위해 공부도 해야 한다. 하지만 커뮤니티 봉사활동에 영어가 걸림돌이 되어서슨 안될 것이다. 영어를 문제삼아 주민의회가 양분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