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8 아라광장
7시20분 노포터미널을 출발 -포항터미널에서 900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구룡포에서 내린다
아라광장이라는 이름이 생소하다
'아라'는 '바다'를 또다른 우리말로 '아라'라고 한다기도 하던데 그 의미인가?
참고로, '경인아라뱃길'의 '아라'는 아리랑의 구절 중 '아라리요'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지난 13코스 말미에 시간이 없어 돌아보지 못한 일본인 가옥거리부터 답사하기로 한다
500m 남짓 되는 거리에 30여채의 일본식 가옥이 남아 있는 곳이다
오래전 방영되었던 인기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촬영지로 유명하였고
최근에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촬영으로 더욱 상승세를 탓고
여주인공 동백의 가게인 '까멜리아'는 건물 자체만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작은 마당과 지붕 딸린 우물까지 갖춘 2층 목조주택은 관광객들의 포토존으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까멜리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여주인공 동백의 가게인 '까멜리아'는
작은 마당과 지붕 딸린 우물까지 갖춘 2층 목조주택으로 관광객들의 포토존으로 인기가 있다는 곳이다
구룡포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계단 양쪽에는 모두 120개의 돌기둥이 세워져 있다
일제강점기인 1944년, 구룡포항을 조성하는데 기여한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지만
해방 이후 구룡포 주민들이 시멘트로 발라 덮어버리고 거꾸로 돌려 세워둔 것을
1960년 충혼각을 세우는 과정에 도움을 준 후원자들의 이름을 새겨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구룡포공원의 아홉마리 용 조형물
구룡포에는 신라 진흥왕 때 용 열 마리가 승천하다가 그 중 한 마리는 바다 속으로 떨어지고
나머지 아홉 마리만 승천하였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송덕비
해방 이후 구룡포 주민들이 시멘트로 덧칠하여 비문의 내용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오욕의 역사도 유지를 할만한 가치는 있을 것이지만
해방 당시의 한국인들의 격한 심정에서는 이럴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 이해는 백분 간다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의 위패를 봉안한 충혼각
구룡포 과메기 문화관
구룡포공원에서 조망되는 시가지와 항구
공원을 내려와 다시 계단 오른쪽의 일본인 가옥거리로 들어선다
구룡포 근대역사관
100여 년 전 모습들이 잘 남아 있는 일본식 2층 목조가옥을 수리하여 근대역사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본인 가옥거리를 빠져나와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하는데
언덕 위 도로변에 하얀색의 작은 등대가 돋보인다
지금은 매립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언덕 아래까지 바다였을 것이다
10:39 구룡포해수욕장
구룡포해수욕장에는 오래된 추억이 있다
총각 시절 직장의 직원 전체가 지점장의 고향인 여기로 야유회를 왔었는데
신혼때이던 모 상사 한 분이 끼고있던 다이아몬드 결혼반지를 잃어버렸고
전 직원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온 백사장을 헤집고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어젯밤 꿈자리가 좋았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 찾아볼 시도를 했을건데~**~
구룡포 삼정리 주상절리(柱狀節理)
주상(柱狀)은 기둥을 말하고, 절리(節理)는 돌에 생긴 금을 뜻한다
삼정리 주상절리는 화산이 폭발하는 모양을 연상할 수 있는 특이한 형상을 갖추고 있다
11:00 삼정해수욕장
삼정항(三政港)
옛날에 3정승(政丞)이 살았던 곳이라 하여, 혹은 삼정승을 지낸 분이 살았다 하여,
또 다른 일설에는 마을의 지세가 좋아 3정승이 날 것 같다고 하여 불리던 이름이라고 한다
삼정3리항
석병1리(두일포)항
석병(石屛)이란 마을 앞 바닷가에 병풍같은 바위가 있다고 해서인데
그 바위가 있는 곳이 한반도 동쪽 끝이었다
두일포(斗日浦)는 우암 송시열이 장기현에 유배되어 있을 때 마을 뒷산의 모양이 마치 말(斗)을 엎어 놓은 것 같고
마을 앞의 나루터가 일(日)자 형을 이루고 있어 두일포라 부르게 했다고 한다
11:35 석병1리 한반도 최동단 동쪽 땅끝
두일포 항을 지나자 드디어 우리나라 최동쪽 땅끝이 나온다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석병리 산 135번지, 경도 129도 35분에 위도 36도 02분 지점이다
저 끝에 보이는, 땅끝을 알리는 조형물이 있는 바위가 육지와 연결되어 있는 곳이었는지
아니면, 바위섬인데 가두리 양식장의 구조물 때문에 육지와 연결된 것처럼 보이는 것인지는 알수가 없다
만약에 바위섬이라면 실질적인 땅끝이 아닐 것이다.....
땅끝을 알리는 조형물은 사면이 사다리꼴인 육면체 위에 지구본 모양의 동그란 공이 얹힌 석조물이다
그러나, 중간에 사유지인 가두리 양식장이 있고 양쪽 통로 입구에는 철조망으로 막고 있어 건너갈 수가 없다
사람들이 몰리면 양식중인 물고기에 피해가 갈까봐 일부러 막아두고 있는 것이다
가두리 양식장 옆에는 정자와 함께 조그만 공원이 있는데
대한민국 동쪽 땅끝임을 알리는 안내판도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수만 있을뿐...
섬도 아닌 땅끝이라는데도 내 발로 걸어가서 발로 밟아볼 수가 없는 실정이다
조금만 예산을 들인다면 저 구조물 옆 바닷가 쪽으로 데크길을 설치하고 중간에 담을 만들어
양식장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면서 통행이 가능할 수도 있을 듯 한데
지자체의 관심과 성의가 부족해 보여 많이 아쉽기만 하다
11:51 석병2리항
석병2리 마을 가게에서 라면으로 점심&반주
당초 함께 하기로 한 친구 동생이 해외여행 끝에 독감을 앓고 있어 같이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네
석병2리를 벗어나 강사리로 간다
강사리 다무포 해안은 해국(海菊) 군락지로 유명하다
해국이 절정을 이루는 10월경에 오면 해안가 바위 위에 무더기로 핀 자주색 해국의 화려함을 즐길수 있다
<참고사진> 다무포 해안의 해국
해변에서 무언가를 잡고 있는 아낙들이 있어 다가가 보니 군소를 잡고 있었다
잡은 군소는 이렇게 손으로 비비면서 씻어야 표면의 점액질이 빠진단다
군소(군수)는 위협을 받으면 독이 있는 보라색 먹물을 내뿜는데
서양에서는 이 군소의 보라색 색소를 염색 염료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군소를 자극했을 때 내뿜는 색소가 군청색이나 보라색이어야 식용이 가능하지만
묽은 흰 색소를 내뿜는 군소는 먹지 못한다
그리고, 점의 색깔이 황금색에 가까울수록 더 맛있다고 한다
군소를 잡는데 쓰는 갈고리 낚시 / 긴 장대 끝에 사방으로 낚시 바늘을 묶었다
어릴 적에 이런 갈고리 낚시로 갯가 바위틈 속에 숨어사는 바다장어(붕장어/아나고)를 잡았던 기억이 있다
13:11 강사리 다무포 고래마을
흰 벽과 푸른 지붕의 건물들이 인상적이다
바닷물빛이 강처럼 맑고 강모래처럼 곱기 때문에 강사리(江沙里)라는 이름이 붙었으나
다무포는 숲만 무성하고 없는게 많아서 다무포(多無浦)였다
그러나 다무포는 맑은 바다물과 적당한 수온이 고래가 새끼를 낳고 회유하기 좋은 조건을 가져
한때는 마을 앞바다까지 수십 마리씩 고래가 찾아오던 곳이었다고 한다
다무포 고래마을 특판장
2008년에는 고래생태마을로 지정되기도 하였으나 사업이 유명무실하게 되면서
구룡포와 호미곶 등 전국적으로 이름이 난 관광명소와 불과 5분여 거리지만
큰 존재감없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마을이 되어 버렸다
이런 다무포 마을이 2019년 하얀 담벼락과 파란 지붕으로 색을 입혀
'포항의 산토리니'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언덕 위의 라메르 펜션
강사2리항
14:22 대보1리 전경 / 대천(大川)과 보천(甫川)을 합하여 대보리(大甫里)가 되었다
대보1리에 오니 이제 저기 땅끝으로 호미곶이 보인다
대보1리항
14:39 드디어 한반도 호랑이 꼬리 끄트머리인 호미곶(虎尾串)에 발을 디딘다
16세기 조선 명종 때 풍수지리의 대가인 격암 남사고는
한반도를 앞발을 치켜든 호랑이에 비유하면서 백두산은 코, 호미곶은 꼬리라 했고
고산자 김정호 또한 대동여지도를 완성하면서 호미곶을 7번이나 찾았다
그도 호미곶이 우리나라의 동쪽 끝임을 확인하고 호랑이의 꼬리라 했다
육당 최남선은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삼키는 형상이라고 묘사하면서
이곳의 일출을 조선 십경의 하나로 꼽았다
호미곶의 상징 '상생의 손'
바다의 오른손과 광장의 왼손은
전쟁과 갈등과 배타적인 지난 천년의 '한 손의 시대'를 청산하고
평화와 희망과 번영으로 온 인류가 화해하고 서로 돕고 함께 사는 새 천년의 '두 손의 정신'을 형상화 했다
호미곶 등대
1908년에 건립하여 12월 20일 점등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로
등탑의 높이는 26.4m 이고 둘레는 밑부분 24m, 윗부분 17m 이며 내부는 6층으로 되어 있다
또한, 2022년에 IALA(국제항로표식협회) 세계등대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해맞이광장
한반도의 모든 기운이 꼬리에 몰렸다는 호미곶은 정동진과 함께 일출 명소로 유명하다
새 천년의 빛
왼쪽은 독도와 남태평양 피지 섬의 일출의 불씨, 오른쪽은 변산반도 일몰 불씨이고
가운데는 영일만 호미곶의 일출 불씨로 2000년 1월 1일 새 천년을 기념하기 위해 채화하였다
연오랑 세오녀(延烏郞 細烏女) 상
삼국유사에 채록된 설화의 주인공들로 동해안 바닷가에 살던 부부였다
157년, 동해안에 살던 연오랑은 바닷가에서 해조를 따다가 갑자기 바위가 움직이는 바람에 일본에 건너갔다
이를 본 왜인들은 연오랑을 비상한 사람으로 여겨 왕으로 삼았고
세오녀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그를 찾아 나섰는데 남편의 신이 바위 위에 있었다
바위에 올라갔더니 바위가 움직여 세오녀도 일본에 가게 되었으며, 부부는 다시 만나고 세오녀는 귀비가 되었다
이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는데, 일관은 해와 달의 정기가 일본으로 가버려서 생긴 괴변이라 했다
왕이 일본에 사자를 보냈더니 연오랑은 세오녀가 짠 비단을 주며 이것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라고 했다
신라에서 그 말대로 했더니 해와 달이 빛을 찾았다
(다음 백과에서 펌)
국립등대박물관
청동 돌문어상 / 돌문어는 호미곶의 대표 특산물이라고 한다
14:53 해맞이광장 새천년기념관
내부 수리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고
동기 이효준의 저서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걷다'에 소개된
'우리나라 지도 모양의 호랑이 상'은 철거되어 없었고, 일몰 명소라는 독수리바위는 다음 코스에 있다
(뿐만아니라, 석병1리에 있다는 '성혈(性穴)바위'도 지나오면서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런 바위를 보지 못했다~)
따뜻한 라떼 한 잔으로 피로를 씻는다
중간에 하루를 쉬었지만 4일 회동수원지둘레길 18km를 걷고
오늘 또 이렇게 16km를 걸었더니 평소보다 다리가 조금 아프다^^
9000번 버스(배차간격 36분)를 타고 포항으로 바로 갈 수도 있었으나
그러면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시외버스터미널까지 택시로 이동을 해야 하므로
일단 9000번 버스로 구룡포까지 가서 900번 버스로 환승을 하기로 한다
구룡포에 내리니 900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저녁 퇴근시간이 아니면 포항시외버스터미널까지 약40분 정도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