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남부지방 칸치푸람
인도는 우리와 너무도 달라보인다. 인도에서 가장 충격적인 모습 중 하나는 소가 거리 한복판에 떡 버티고 앉아 있는 광경 아닐까. 경적을 울려대는 차 앞에 앉아 있는 소의 태연함과 그 사회적 비효율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또 밥 한 끼는 굶어도 꽃을 사서 힌두교 사원에 바치는 사람들, 길에서 곧 사라질 신의 그림을 열심히 그리는 거리의 화가 등 우리의 가치관으로는 쉽게 이해 못 할 풍경들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와 너무도 흡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 곳도 인도다. 남인도에 있는 타밀나두주의 칸치푸람이란 곳을 여행할 때였다.
칸치푸람은 동남부의 대도시 첸나이(얼마 전까지 마드라스로 불렸다)에서 서남쪽으로 약 77㎞ 떨어진 곳이다. 그곳에는 걸출한 고대 힌두교 사원들이 있어서 천 개의 사원을 지닌 도시로 불렸다.
이곳은 중국에 선불교를 전해준 달마 스님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달마 스님은 배를 타고 고향을 떠나 중국 광저우에 도착해 소림사까지 가서 면벽 수도를 하다가 중국에 선불교의 지혜를 전파하게 된다.
이런 유서 깊은 도시에 있는 사원들을 돌아보다 우연히 타밀족 사내를 사귀었다. 타밀족은 인도 동남부 타밀나두주와 스리랑카의 북부에 살고, 동남아시아에도 살고 있다.
타밀족은 남인도에 퍼져 사는 드라비다족의 일부로서 약 5000년 전에 현재 파키스탄 남부 지역에서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문명을 일으켰으나, 중앙아시아에서 살던 북쪽 유목민인 인도 아리안족이 침입하자 남부로 이주했다. 침입자인 아리안족은 현재까지도 북인도에 살고 있는데, 주로 피부가 희고 기질이 공격적이며 힌디어를 쓰고 있다.
반면 남인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드라비다족은 피부가 검고 코가 낮으며 기질이 온순한 편이다. 이들은 남인도로 쫓겨 내려온 후 흩어져 살았는데 타밀어, 텔루구어, 칸나다어 등 남인도 사람들이 쓰는 언어 대부분이 드라비다어에 속한다.
타밀족 사내와 영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같이 사원을 돌아보았다.
힌두교 사원은 내부로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만 했다. 입구에서 본전까지는 왕모래가 깔려 있는데, 6월 한낮의 불볕에 달구어져서 맨발로 가자니 몹시 뜨거웠다. 조금 걷다 보니 너무도 뜨거워 몇 걸음 걸어가다 가이드북을 내려놓고 그 위에 올라가 발을 식히고 있었는데 앞서가던 사내가 이렇게 외쳤다.
“헤이 코리안, 잉게 와!”
처음에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그는 신전에 가서 조각을 가리키다가 이번에는 “헤이, 코리안, 잉게 봐!”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느낌이 이상해서 지금 무슨 말 했느냐고 물어보니, ‘잉게 와’는 ‘이리 와’라는 뜻이고, ‘잉게 봐’는 ‘이것 봐’라는 뜻이라 하지 않는가.
머리를 한 대 쾅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와’ ‘봐’ 등의 기본적인 동사가 우리말과 같다니…. 그 후 구경도 마다하고 그와 함께 낱말을 맞추어보았다.
그랬더니 엄마는 ‘엄마’, 아빠는 ‘아빠’, 아버지는 ‘아버치’, 쌀은 ‘쏘루’, 나는 ‘난’, 너는 ‘니’, 네가 봐는 ‘니봐’, 강은 ‘강가’, 메 혹은 산은 ‘말레이’, 풀은 ‘풀’, 형은 ‘언네’라 했다.
사내는 힌두교 사원을 설명하다가 예전에 이 사원에서 킹(King)이 호령했다고 영어로 말하다가 갑자기 ‘왕’이라 했다. 왕이 무어냐고 물으니 킹이라 하는 게 아닌가. 힌두어로는 킹을 ‘라자’라고 하지만 타밀어로는 ‘왕’이라는 것이었다. 왕은 한자어에서 온 발음인 줄 알았는데 타밀족도 왕이라는 말을 쓰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언어학자 강길운 박사가 쓴 ‘고대사의 비교언어학적 연구(새문사)’라는 책을 보니 고대 가야에서 지배층이 쓰던 말들은 거의 드라비다어이며,
이 드라비다족 언어가 한국어에 약 1300여자나 남아 있다고 했다. 그 외에도 이빨은 ‘빨’, 날짜를 뜻하는 날도 ‘날’이며, 국가를 뜻하는 나라와 비슷한 ‘나르’라는 단어는 땅이란 뜻이라 했다.
또 ‘가야’는 드라비다어로 물고기란 뜻인데 실제로 인도에는 가야란 지명이 남아 있고, 근교에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야라는 도시도 있다. 물론 한국어의 많은 단어는 북방에서 온 것이 틀림없지만, 일부분은 저 먼 인도의 드라비다 언어에서 왔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인도인은 결코 우리와 먼 사이가 아니다. 명상과 요가와 신비로 알려진 인도지만 이 평범한 삶 속에서 밝혀지는 작은 진실들이 오히려 더 놀랍고 반갑게 다가오는 땅이 인도다.
◇힌두교 사원의 조각(왼쪽), 사원에서 만난 타밀족 아이들.
◇크리슈나신을 그리는 거리의 화가(왼쪽), 힌두교 사원과 순례자들.
◇칸치푸람의 힌두교 사원.
■여행 에피소드
6월 말 첸나이의 기온은 숨도 못 쉴 정도였다.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에어컨도 없는 방으로 들어가니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결국 에어컨이 있는 방으로 바꾸었는데 냉장고가 있었다.
물이 든 병에는 ‘히말라야…’라고 쓰여 있어서 반가웠다. 때마침 들어온 종업원에게 마셔도 괜찮은 생수냐고 묻자 종업원은 ‘노 프로블럼’이라고 자신있게 외쳤다. 그러나 그 말을 믿은 게 잘못이었다.
그 물을 마신 뒤 3일간 죽다 살아났기 때문이다. 배탈이 시작되면서 거의 화장실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기진맥진해서는 ‘예전에 인도에 전도하러 왔다가 물을 잘못 마셔서 죽은 기독교 선교사들처럼 죽는구나’ 하는 두려움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 3일 만에 살아났는데 세상이 노랗게 보였다. 그러나 이런 것은 통과의례였던 것 같다. 그 후에는 조심하기도 했지만 음식이나 물 때문에 고생한 적은 없었으니 말이다.
■여행정보
첸나이에서 칸치푸람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칸치푸람에서는 힌두교 사원이 널리 퍼져 있기에 사이클 릭샤를 대절해 돌면 편하다. 첸나이나 칸치푸람에서는 밀스(meals)라고 불리는 음식들이 있는데, ‘탈리’라고도 한다. 밥, 요구르트, 각종 야채를 손으로 비벼서 먹는 음식으로, 북인도에서는 식기에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남인도에서는 바나나 잎에 나온다. 처음에는 먹기 힘들지만 익숙해지면 매우 맛있는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