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들어서는 계속 바쁘다. 몸이 바쁜 것이 아니라 연속으로 해야 할 일이 있어 마음이 바쁜 것이다. 9월1일, 금불회 매년 행사인 일박이일의 사찰순례가 있었고 5일은 증조부모忌日이였다. 7일은 태진이 쉬는 날이라 삼랑진 祖父母 산소에 벌초를 약속했다가 7일 많은 비로 약속을 다음으로 미루자고해서 사 놓았던 기차표를 다음날로 바꾸었다. 시간이 없다는 태진이를 두고 혼자 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나 태진이한테 전화가 왔다. 오후 잠시 비가 그친사이 대구에서 차로달려와 혼자서 벌초를 했다는 것이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다음 날(8일), 사놓은 차표로 오전10시34분 기차로 여행겸 삼랑진으로 갔다. 경노 우대로 요금도 샀지만 시간도 30분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참 좋은 세상이다. 삼랑진에서 오후를 보내려고 했으나 걷는 것이 몹씨 힘들어진다. 생각으로서는 좁은 삼랑진을 휑하니 돌아보고 싶었으나 몸이 따라주지않는다. 겨우 삼랑진의 조그마한 장터를 돌아보는데 마침 장날?이어서인지 손님은 별로 없어 보였지만 장사하는 사람들로 장터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내가 태어났던 집을 찾아보려고 어림짐작하여 그 주변임직한 곳을 돌아 보았지만 좁았던 골목은 차가 다닐 수 있는 길로 바뀌어 있고 새로지은 반듯한 집들이 더욱 방향감각을 잃게 만든다. 십수년 전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한번 찾아 본적이 있다. 집은 아주 낡았었지만 당시 내가 태어난 집은 약간의 손을 거쳐 그대로 살아 있었다. 지금은 아버지도 계시지 않지만 내 나이도 만만치 않아 걸음을 힘들어하니 그 자리 찾기를 포기한다. 오후를 이 곳에서 이리저리 다녀보려 작정했었지만 힘도 딸렸지만 빤한 그길이 그 길이었다. 역으로 향하는 길에 오래된 중국집 앞에 멈춘다. 아직 열두시가 채 되지 않았다. 언젠가 아버지와 같이 들러봄 직한 집이다. 내가 첫손님이다. 자장면 곱배기를 시킨다. 역시 시골 인심, 양이 푸짐하다. 압도 되었던 양도 거뜬히 비워낸다. 주인은 뒤 따라 들어온 손님과 수다를 떨고 있다. 가게의 나이를 물어본다. 22년이 되었다고 했다. 생각보다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면 젊었을 때 아버지와의 자장면 추억이 있는 집은 아닐 것이다. 역에서 빠른 시간의 기차표를 산다. 날씨는 맑은 흐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