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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님은 모임을 시작하면서 얼마전에 함께 보았던 Do You Belive? 영화에서
인상 깊이 남았던 장면이나 기억나는 장면이 없는가? 라고 질문 하시며 모임을 시작하셨다.
영화를 처음 보면서 내게 확 들어 왔던 장면이 무엇이냐면?
첫 장면에 흑인 목사님이 큰 십자가에 바퀴를 달아 거리를 누비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던 장면을
하나님이 보여 주셨다. 여러분은 젊었고 나는 갈날이 멀지 않아서인지 그 장면이 인상 깊었다.
그 흑인 목사님은 완전 바보다 바보 ~ . 십자가 하나 메고서 그리고 간다. 정처없이 가는 거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이 흑인 목사님에게 “당신 깜깜한 길거리에서 뭐하는 거냐?” 고 질문을 하면 말을 하겠지.
이 흑인 목사님은 어떤 분이시냐면? 예수 치매가 걸린 사람이다.
나는 그걸을 보면서 눈이 번쩍 뜨여서는 어떻게 생각을 했냐면?
흑인 목사님이 정장을 하고서 정처없이 갈바를 알지 못하고 밤 거리를 걸어 다닌다. 이 목사님은 어디를 가요?
자기 집으로 가고 있다.
십자가를 메고 자기 집으로 가고 있다. 여러분이 마지막 때에 꼴깍꼴깍 할 때에 무엇을 메고 갈 것인가?
세상 짐을 다 지고 벤츠차를 지고 갈 것인가?
십자가 지고 가셔야 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하나님이 왜 나한테 보여 주실까?” .......
‘나 보고 저것 하라구!’ 그러시는 구나라는 것이 들어오더라구요.
왜 감독은 영화 첫 장면에 흑인 목사님을 등장시켜 십자가를 지고 가게 했을까?”
그런 생각을 안 해 보셨는가?
영화 만든 제작자들이 그것을 첫 장면으로 보여주었다. 누구 보라구요?
목사님들 보라구. 목사님들께서 여기 강단에 서서 넥타이를 메고 설교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손가락질 하지만 그 길을 가야 한다.
제가요 나이가 제일 많으니 여기서 제일 먼저 치매에 걸릴 확률이 있을텐데,
내가 그때에 우리 마당에 있는 나무를 뚝딱거려 십자가를 만들어 지고 우리 집으로 간다면, 내버려 두시라.
막으면 안 된다.
앞으로 가야 할 여러분의 집이고 내가 내집으로 가는거다.
여러분이 막으면 안 되고 내버려 두어야한다. 내가 만약 다른 곳으로 가면 막으시고,
내가 십자가를 지고 갈 때에, 그 분이 끌고 가면 가는거다.
이사야 집사님께 성령님이 임하시고 간증을 쓰는 것이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성령님이 오신다.
그 분이 오면 해야 하듯이.....
전에 내가 회사에 있는데, 하나님이 나를 찾아 오셨을때에
내가 하나님께 내 회사로 찾아 와 달라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그냥 이야기를 했다.
누가 환상을 보여 달라고 했나? 환상을 보여주면서 너는 내 아들이라 그러셨다.
내가 언제 아들 해 달라고 그랬나?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나를 보고 아들이래!
그러시나보다 하며 그러구 가는거다.
우리 아버지가 와서 “애야, 십자가를 지고 가자!” 하시면 나는 무엇을 보고 가냐면?
앞에 무엇이 있어요? 주님이 나를 끌고 가시는거다.
나는 눈을 뜨고서 그것을 보고 가는거다.
예수님이 나보고 이것을 메고 오라하면, 그러면서 간다니깐요.
세상 사람들은 나를 보며 미쳤다고 그러겠지요.
근데 그게 아니야 그 세계가 있다.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그 세계를 보면서 간다니깐요.
내게 찾아 온 사람들에게 여태까지 내게 임하신 성령님에 대해 이야기 하니깐, 그래요 맞아요 하면서 여러분들이 여기에 오신거다.
내게 그딴 소리하지 말라며 미쳤다고 괴변을 이야기한다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은 못 온다.
근데 그세계가 있다. 눈으로 보고 애기하면서 그러구 간다니깐요.
이사야 집사님이 미쳤지. 세상 사람들이 이사야 집사님이 쓰는 간증을 보면 미쳤다 하겠지요.
그러나 그 세계가 있다니깐.
세상이 감당 못 한다.
우리집이 그 나라에 있데. 그걸 보고 간다.
제가 혹시 유언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거다.
제가 혼자 중얼중얼하고 말하고 가면 와서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무엇이 보여요?”라고 물어 보시라.
나도 모른다 언제 하나님이 오실지 언제 예수님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러구 갈지 나도 모른다.
죽을때까지 그러구 가면 좋겠지.
내가 배가 고플것 같으면 밥이나 물이나 떠다 주면서 같이 가자니깐요.
내가 여러분 보다 우리 집에 먼저 간다니깐요.
그 과정에서 예수님과 무슨 이야기를 하면 그러면 빨리 받아 적으시라
그 나라가 있다. 여러분이 눈을 뜨고 계신 채 그 분이 보인다.
여러분은 안 보이시는가? 다메섹 도상에 있던 사도 바울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이 또렷이 들렸다.
그 이야기를 여러분은 듣고 싶어하고 세상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에 핍박을 받으면 예수님이 기뻐하라 그러신다.
예수님과 이야기하고 가는데, 세상 사람들이 자꾸 뭐라고 그러고, 핍박을 받는다. 그래도 우리는 간다.
저는 조금만 더 가면 내 집에 도착한다.
만약에 내가 최소한 십자가 지고 가야지! 캐딜락을 타고 막 돌아 다니면 안 되지.
한심하다. 여러분들은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
“만약 내가 늙어 치매가 걸려 혹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을까봐 겁난다” 하셨다.
어떤 분은 예수님이 계시는 그 세계가 보여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다. 나도 그러길 바란다.
“그런데 우리집 가는 길이 왜 그리 좁은 길인가?”라고 형제님이 질문을 하셨다.
내가 없어 져야 하니까 좁은 길이라고 모자매님이 대답을 하셨다.
(형제자매님들이 천국가는 길이 좁은 길이라고 말한 것에 동의를 하는 듯 했다.)
여러분들, 내가 말하는 것에 또 속아 넘어 가셨다. 그 길이 좁은 길이예요?
아니다, 들어 가면 넓은 황금 대로 이다.
모자매님이 성경에 천국가는 길은 좁은길이라고 적혀 있다며 대답을 하셨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율법주의자가 말하는 것이다.
좁은 길 처럼 보이는데, 맛을 보니깐 황금대로라 황금 대로하고 말씀을 드린다.
일단 그것에만 들어왔버리면 황금 대로이다.
사람들은 미쳤다 하는데 나는 너무 좋아서 이 길을 가는 거다. 그것이 보인다.
주님이 앞에 나타나면 세상은 간곳 없고, 그 전지 전능하신 분이 끌고 가시는데 아무 걱정이 없다니깐요.
그것을 맛을 보아야 한다. 그 세계가 있다. 그 나라가 있다.
거기 왕이 우리 아버지이다. 그런데 여러분 왜 힘들다고 질질 짜고 그러는가?
옛날에 내가 ‘썅!’ 할 때에는 “너 죽고 나 죽자!” 였는데, 지금의 ‘썅!’은 “썅!, 예수님을 확실히 믿어버려리자!”
이다.
‘썅!’ 하면서 활실히 믿지 않으면 안 된다. 중간이 없다.
천국 아니면 지옥이고
선 아니면 악이고
하나님 아니면 사단이다.
연옥 같은 것은 믿지 마시라. 만약 믿었다가 아니면 죽었는데, 어떻게 해!
형제님은 선교 소식지 카타콤을 가지고 오셔선 읽어 주셨다.
북한이 기독교와 전쟁을 선포했다.
북한에 들어간 선교사님이 고문을 이기지 못 하고 중국에 있는 아지트와 북한 기독교 리더들을 고백했다.
지금 김정은이 제일 경계하는 단체가 크리스챤이다. 기독교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런 상황에 선교사님이 글을 쓰신 것을 읽어 주신다 하셨다.
제목”평양에 가서 돌아오지 말고 죽어 묻혀라
어릴적 어머니는 부뚜막에 걸린 솥을 마주하고 앉아서 성경을 펴 놓으시고 기도하며 우시고는 하셨습니다. 설거지를 마친 어머니는 신문과 방석을 손에 들고 예배당에 가서 울며 기도하셨습니다. 4페이지 밖에 안 되는 신문의 내용을 모두 읽어 가며 기도하고 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어린 저는 어머니의 기도가 끝날 때까지
같이 울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나라를 위해 울고 민족을 위해 울고 사회와 이웃을 위해 울고 타락한 세상을 보며 회개하며 우시던 어머니를 보며 자랐습니다. 그 어머니는 어린 제에게“너는 귀한 사람이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
“하나님이 너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 알아! 너를 살리기 위해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셔야 했어.....
너를 위해서 엄마를 위해서 이 나라를 위해서 말이아....” 말씀하시고 한 번도 공부하라고 채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어머니께서는 제가 중학생이 되자 어른들이 다니는 영어회화학원에 다니게 하셨습니다. 북한에 선교하러 가야하는데, 직접 갈 수 없으니 미국가야 한다며 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어머니는 제가 미국에 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지만 , 저는 1970년 미국시민권을 받아들고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북한으로 ....”라며 미국에 지원한 저는 근무지를 한국으로 신청해 판문점으로 찾아갔습니다. 판문점에서 미국 장교의 브리핑을 듣고 있을 때였습니다. 건너편에 퇴근하는 북한 노동자가 버스에 올라타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는 그 노동자를 보면서 손가락으로 십자가 모양을 만들어 보여 주었습니다. 그때 한 노동자가 모자를 벗어 손가락을 모아 십자가를 만들어 보여 주었습니다. 버스는 지나갔고 설명하던 미군장교는 울고 있는 제 모습을 보고는 무슨 일인가 해서 뒤를 돌아 보았지만 버스는 사라지고 나 뒤였습니다.
브리핑을 끝낸 장교는 제게 다가와 “어디서 왔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손가락으로 맞으편 개성 쪽을 가리키며 “저기가 제 출생지입니다”라고 말하고는 울어버렸습니다.
장교는 그런 절 끌어 안고 곧장 남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북한 쪽 군인들이 쌍안경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7년이 지난 1997년 여름이었습니다. 저는 판문점의 반대편인 북한 지역판문각 안의 넓은 방에 있었습니다. 그 방에 11명의 북쪽 군인들과 마주 앉았습니다. 그전1989년 여름 판문각을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1990년 하나님으로 부터 “너는 네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다니는구나!
원수를 사랑하는 게 내가 네게 원하는 일인데.......”라고 야단을 맞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7년을 회개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길을 열어 주셔서 북한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번에는 북한 쪽 판문각의 큰 방에 앉아 북한 장교로부터 브리핑을 들어야 했습니다. 저는 30분간 이어진 그의 브리핑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 다음 제게도 30분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저는 브리핑을 하며 고려연방제를 말했던 북한 장교에게 일어나서 건너편에 누가 있는지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남조선 헌병 놈이 하나 써 있지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그 놈을 고려 연방제 하면 사랑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 다음 30분 동안 십자가 이야기를 그들에게 전했습니다. 저를 보는 11명의 군인들의 사늘하고 공격적이던 눈이 어린양의 눈으로 바뀌는 것을 보며 말을 끝냈습니다. 브리핑을 하던 소좌(북한군 소령)는 제게 다가와 화장실을 다녀오라고 했고 , 화장실을 다녀왔을때 일행은 모두 버스에 타고 있었습니다. 그 소좌는 제게 다가와 “나는 그리스도인이요!”라고 말하고는 악수를 청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얼굴을 기억합니다.
이 새벽에 저는 엎드려 웁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증인의 자리에 있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의약품과 식량을 보내 주었지만 그들에게 증인으로 다가가고 있지 못합니다.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민족을 기억하고 네 아내와 자녀들을 귀하게 여겨라!
그리고 너는 편양에 가서 돌아오지 말고 그 곳에서 죽어 묻혀라!”던 그 말씀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시기까지 하셨건만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니 엎드려 웁니다.
무익한 종 이삭
이 분은 북한에 선교 물품을 보내시면서 선교 사역을 하시는데, 안타까와서 이 글을 쓰신거다.
형제님은 다음 토픽으로 넘어가서 질문을 하셨다.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여러분이 가장 좋아 하는 일은?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드보라 K권사님이 답을 주셨다.
이게 삶에서 나와야 한다.
말할 것도 없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이지 이렇게 나와야 한다.
사역을 하는 것 중에 가장 아름 다운 사역이 이사야 61장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오면 귀신 ?아 주고 힐링 해주고 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가장 좋아 하는 장소는? 기도 하는 장소이다.
교회라고 말하면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교회와 기도하는 장소와는 완전히 다른 장소이다.
골프장 보다는 교회를 좋아 해야지. 근데 교회라고 말하면 이 사람은 겉 멋든 사람이다.
포인트를 말해야 한다. 내 예수님과 만나는 그 자리 빼앗길 수 없는 그 자리가 있다.
기도하는 자리.
드보라 K권사님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 무엇이라고 하셨는가? 성경책
대답이 단순하쟎아요.
백화점에 가면 여러분이 좋아하는 물건이 얼마나 많아요. 그렇게 많은 것들이 옛날에는 다 갖고 싶었는데
그게 아니다.
아직도 성경책이라는 말이 입에서 턱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가장 좋아 하는 사람이 우리 아내 남편 자식이라고 말하면 틀렸다. 예수님이라고 툭하고 나와야 한다.
“가정 사역에서는 아내 남편 자식이라고 배웠는데요....” 라고 말할 줄 모르겠지만, 그러면 거기를 따라 가시라.
그렇게 따라 가다간 골로 간다. 예수님을 따라 가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이어야지. 기도자리, 성경, 예수님이 하신 사역인 이사야 61장!
그 외에 무엇 할 것이 있는가?
삶이 굉장히 단순해진다.
여러분이 천국 가기 전에 먹고 살아야 하니 얼쩔수 없지.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먹고 살아야하니 기본적으로
열심히 일을 하는 거다.
똑치면 나머지 고백이 나와야 한다. 권사님이 그렇게 되었다고 고백하셨다.
여러분을 대신해서 고백을 했다.
“집사님, 드보라 권사님 만큼도 못 갔어요?” 그러면 큰일 난다.
권사님은 이렇게 고백을 하면서도 “아직 갈길이 멀었는데 ...”그러시고 있는데.
여러분은 권사님 근처에도 못 가시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직도 예쁜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고 병아리 같은 내 자식을 사랑하고 있으면 어떻게요?
예수님 다음으로 두번째 좋아하는 사람은 ? 그럴때 자식이라고 하면 괜챦지만.
이게 여러분의 삶이 되셔야 한다.
여러분 주일날 아침 어딜를 가요? S교회를 간다고 말하는데, 교회에 공짜 밥 먹으러 가는 것이 아닌지 살펴 보셔야 한다.
예수님을 만나러 가지. 예수님과 만나 이야기 하러 가야지라고 자동적으로 안 나오면 삶으로 되지 않고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것이다.
엊그제 지난주 목요일날 걷는데, 돌아온 탕자가 묵상이 되는 거다. 돌아온 탕자가 돌아 오니깐
아버지가 돌아온 탕자를 보고 버선발로 뛰어 나갔다. 둘짜 아들을 보면 왜 뛰어 나갔다고 했는가?
‘그전에는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뛰어 나갔겠지......’ 했는데
아버지가 돌아 온 탕자를 보면서 “제가 이제 아버지 사랑을 아네?” 하며 뛰어 나갔다고 업그레이드 해서 주신 인사이트를 쉐어했다.
그것을 묵상하다보니 하나를 더 업그래이드를 하셨다.
성경에 있는 것은 아니다.
저에게 주신 것이다. 저하고 주님과 이야기 하는거다.
아버지가 “제가 아버지의 사랑을 아네 하면서.....” 막 뛰어 나가는 장면이 보이는데,
그러면서 하나님이 저에게 물어 보시는거다.
“네가 돌아 올때에, 네 하나님 아버지는 어떠 하셨지?”라고 물어 보시는거다.
네가 돌아 올때에 네 아버지는 어떠했냐?
여러분의 아버지는 어떠하셨을까요?
버선발로 뛰어 나오셨다. 라고 모 자매님이 대답하셨다.
지금 대답을 안하는 사람은 아버지가 없으신 거다.
말을 못 하쟎아. 마음에 아버지가 계시는데, 어찌 말을 못 하는가?
여러분이 간증을 쓸때에 게을러서 못 쓰는 것이 아니라 무릎까지 밖에 안 찼기 때문이다.
머리까지 넘치게 차면 거기에서 수영을 해야 한다.
거기까지 차야하는데, 안 차니깐 간증이 안 나온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고 성령님이 넘치지 않아서 이다. 그러니 간증이 안 나온다.
제가 성령이 임한 다음에 특별 새벽기도 40일을 할 때에 찬양팀으로 하루도 안 빠지고 새벽 3시에 교회에 가서 섬겼다.
하나도 뭐가 어찌되었는지 몰라 정신이 없어. 그분이 여기 들어와서 계시니 헤엄 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겠는 걸.
그러니 그 일을 감당한다구.
“나는 무릎 만큼 밖에 안 찼어요?” 하면 여려분은 물에 빠져 죽는다.
“하나님 나도 헤엄치게 해 주세요~” 해야지 간증이 나온다. 댓글이 나온다. 넘쳐야한다.
내가 질문을 하는데 대답도 못 한다.
왜? 차지가 않아서이다.
왜? 아직 예수님이 없어.
여러분 안에 아버지가 안 계시니 대답을 못 한다.
내가 질문 하기 전에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넘쳐 튀어 나와야 한다.
저 질문을 내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면서 튀어 나와야 한다.
그러니 예습을 해야 한다. 허겁지겁 밥하다가 왔으니 예습을 전혀 안 했다
어쩜 여러분은 범생인 맏아들이어서 아버지가 뛰어 나올 필요가 없었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집안에 있던 맏아들이 어떻게 했다고 그랬어요?
예수님을 못 박았다고 그랬다.
그 경험이 없어서 말을 않고 가만히 있었다면 ok.
나는 돌아 오니깐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했냐면?
벌써 답을 가르쳐주었었다.
까물어쳐 이뻐서 졸도 하셨다니깐요.
“아니 어떻게 제가 돌아와!” 하시며 졸도해서 쓰러 지셨다니깐요.
벌써 말해 주었는데, 묵상들을 안 해봐? 그게 무엇인지.
그러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냐면?
“버선발로 뛰어가는 아버지는 누구의 아버지인 줄 아냐?”
“목사님, 전도사님의 아버지야.”
왜? 그렇게만 가르쳤거든.
그분들의 아버지는 그렇게 밖에 안 가르쳤거든.
“네 아버지는 어떠셨니?” “ 까무러치셨죠?”
“ 그게 바로 네 아버지야!”
“어떻게 네가 돌아오냐?”하시며, 네 아버지는 까무러치셨어.
“여러분의 아버지는 어떠셨어요?” 까무러 치셨다.
내가 여러분의 아버지라 해도 까무러쳐서 아직도 못 일어 났을 거다.
왜 가만히 딱 보니깐 나보다 더 힘들었을 거거든.
그 아버지가 나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버선 발로 뛰어 나간 그 아버지는 교회에서 배웠던 그 분들의 아버지이다.
내 아버지는 내가 돌아와 그렇게 기쁨을 이기지 못 하시고,’ 혹시 심장 마비에 걸린 것은 아닌가?.....’
라는 그런 마음이 들더라구요.
토요일날 잠깐 얘기하는데 우리 이사야 집사님 한분만 맞추었다.
나오미가 모압 땅으로 갔다. 아들 둘하고 남편하고 장정만 셋을 데리고 갔다.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 하였는데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거기서 며느리 둘을 붙여서 살았다. 그러다 그만 남정네 셋이 다 죽어버렸다.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5 말룐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그래서 나오미가 예루살렘 땅에 흉년이 그치고 또 먹을 것이 있다고 하니까 또 거기로 간다.
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열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7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나오미가 며느리 둘을 불러놓고 뭐라고 그러냐면
“야아, 너희들은 아직도 쌩쌩하고 딸린 애들도 없으니까
여기서 시집을 다시가라. 나 따라와 봤자 나는 늙어서 애를 못 낳는다...
또 만약 내가 애를 나아도 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여기서 다시 결혼해라..”
그래서 큰 며느리는 “아이구, 할렐루야~” 하고 시집을 갔다.
둘째 룻은 “아이고, 나는 엄마 따라가겠다고..” 했다.
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10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11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12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13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이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룻 1:1-18)
그 스토리를 잘 안다. 그래서 내가 나오미의 신앙이 어땠냐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이사야 집사님이 딱 대답을 했다. 그게 뭐였어요? 인본주의..
나오미가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본주의다.
그것을 앞뒤로 자세히 읽어보시라. 그 모압 땅은 우상신이 있는 곳이다.
거기는 풍요롭다. 너희는 여기에 있어, 나는 돌아갈 거야.
그리고 내 이름을 나오미라 하지 말고 뭐라고 그래? 마라, 마라의 쓴물이다.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룻 1:20)
이게 어찌 하나님 믿는 사람이 말할 말인가? 가뭄이 오니까 모압으로 떠났다.
왜? 모압에는 먹을 것이 많거든! 풍요롭다. 거기는 우상 숭배하는 곳인데 풍요롭다.
거기서 다 잃어버리니까 고향 땅에 먹을 것이 있다고 하니까 그곳으로 간다.
보아스는 모압 땅으로 이사갔어요? 안 갔어요? 안가고 그냥 예루살렘에 있었다.
나오미는 인본주의적인 사람이다. 물질을 보고 따라다니다.
여러분, 잘 보셔야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 이름을 나오미라 짓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세상에 속했다, 물질이 있는 곳을 ?아간다는 사람이다.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이 뭐냐면 우리가 우리의 입술로 이 얘기를 많이 한다.
꼭 나오미가 며느리들한테 한 얘기들을 잘 보시라. 얼마나 멋있나!
“너희들은 여기에 있어...” 얼마나 착한 시어머니인가?!
앞뒤를 다 이해하면서 말하는 나오미에게 마음이 갔다?
좋아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완전히 영의 세계에서 보면
“나오미? 너는 아니다!” 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따라 가야지!
그런데 그 나오미의 둘째 며느리 룻은 똑바로 본다. 뭐라고 그래요?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이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될거에요... 당신의 민족이 내 민족이 될 것이라고 하며 따라간다.
도대체 시어머니의 믿음하고 며느리의 믿음이, 완전히 이방인하고 유대인하고 바뀌었다.
완전히 바뀌었다. 가만히 보시라.
엊그제 로렌스가 와서 “집사님, 다른 병원으로 갈까요? 말까요?”
“얼마나 좋은데?” “월급이 두배나 준대요..”
“그럼, 가라. 월급을 두배나 준다는데 나 같아도 가겠다.”
그 뒤에 생명의 면류관이 나한테 왔다.
“집사님, 안가면 안돼요?” 왜? “여기 호다가 있어서요..”
“응,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지!”
로렌스가 저한테 말할 때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아니고
“두배를 준다면 나 같아도 가지!” 라고 제가 이 얘기를 했는데, 이게 어디에서 나온 것이에요?
이게 인본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가 많은 경우에 이것을 한다.
우리는 이번에 호다 식구들끼리 여행을 간다.
우리 와이프는 이번에 몇십년 만에 모이는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 있어서 한국을 간다.
그래서 내가 가라고 했다. 이게 내가 인본주의적으로 얘기하는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미안하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 호다 식구들하고 간다.
“아이구, 집사님. 뭐 그런 것까지도 그래요?”
여러분이 거기까지도 올라오셔야 한다. 아까 그랬다.
믿을 것이면, 썅! 믿자니깐요. 세상 것 다 때려치우고!
여러분, 가만히 보시라.
결정을 할 때 어떤 것은 헷갈릴 때가 있다.
이 정도는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하시지 않겠나?...
하나님은 어떠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셨나요? 질투하시는 하나님!
여러분, 하나님께서 질투하시는 것 보면..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다..” 를 체험해 보신 분은 손을 들어 보시라?
체험하신 분들은 안다. 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너무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야아, 이렇게 질투하시는구나!...” 그걸 안다. 그게 영분별력이다.
그래서 “아아, 이런 것까지도 그렇게 하시는구나...” 그러면서 간다.
“내 며느리들아, 너희들은 여기 있으라. 너희들은 시집 잘 가거라.
나는 내 땅으로 갈게... 나는 다 잃어버리고 가니까 너희들은 여기 있으라..”
이게 인본주의라는 것이다. 근데 이것이 우리의 혼적인 부분을 만족시킨다.
이것이 맞는 것 같다. 100% 맞는 것 같다.
그게 맞으면 여러분은 여기 있을 필요가 없다. 그쪽으로 따라가면 된다.
그런데 여러분이 여기에 와 있는 것은 이런 것들을 날카롭게 보면서 이것은 아니구나...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나오미가 확실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야아, 너희들 여기 있으면 나중에 얼마든지 죽어, 한동안은 잘 먹고 잘 살지는 모르지만 아니야!
내 하나님 민족으로 가자!” 무서운 하나님을 보고 있었고 가자!..하고 끌고 나왔어야 한다.
남겠다고 했을 때 “무슨 건방진 소리 하지 말고 너 여기 있으면 완전 나중에 지옥간다.
귀신한테 끌려간다. 야아, 가자!” 억지로라도 잡고 그쪽으로 끌고 갔어야지!
이게 하나님의 사람이 해야될 일이다.
그런데 많은 목사님들이 나오미가 말을 이렇게 했다고.
그래서 그쪽을 통해서 예수님이 오셨다고 하는데,
자 , 예수님이 나오미 라인을 통해서 오셨어요? 아니다!
나오미를 통해서 온 것이 아니라 누구를 통해서? 보아스와 룻을 통해서 왔다.
그러니까 나오미, 너는 아웃이다. 그게 영성이다. 여러분은 똑똑히 보시라.
예를 들어서 우리 로렌스와 생명의 면류관이 있기로 결정했으면..
오늘도 제가 물어보았다. 여기 있기로 했어? 올라갈거야?..했더니 아직 결정을 안했다고 했다.
그런 것을 지금 제가 얘기하는 것이다.
아까 잊어버린 것이 있는데 하나 더 말씀해 드리겠다.
하나님 내 아버지는 나를 보고서 까무라쳤다고 그랬다.
왜 졸도하셨나면? 저 녀석이 어떻게 나한테 돌아오냐!...
그래서 나를 본 우리 아버지는 지난 주에 얘기한 것처럼 어떻게 하셨어요?
보기가 무안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볼 때 무안할 정도로!
“아니, 쟤가 어떻게 여길 다 오냐?!” “ 아악~ 말도 안 돼!!”
그런 얘기를 제가 들었는데 아까 얘기할 때 잊어버렸다.
하나님이 여러분한테 무안하실 정도로 우리는 십자가에 예수님이 달리신 것,
그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걸 보면 우리가 눈을 가린다.
볼 수가 없다. 이 죄인이 어떻게 그걸 보나?! 나 대신에 달리신 그 일이 아름다운 일이다.
이제는 우리가 다 그걸 받았다. 여기까지 왔다.
과거를 이렇게 돌아보면서 아버지가 우리때문에
“이야~ 내가 외아들 예수를 죽였지만, 너까지 살아 돌아올 줄을 몰랐다!”
생각도 못했던 아들, 딸들이 돌아왔거든! 그걸 저한테 말씀하신 것이다.
지난 주에 파워풀한 말씀을 받았는데 아까 그 이삭 목사님이 얘기했던 것이 있다.
그 어머님이 기도할 때 항상 “너는 참 귀한 자다. 너와 나, 우리 민족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셨다..”고 자꾸 얘기해 주셨다.
자기가 그런 사람이 됐다.
우리 호다에서는 얘기하는 것이 있다.
여러분이 누구에요? 하늘나라 공주님.. 또? 예수님의 신부.. 또? 이 몸이 성전이고..
여러 개가 있다. 또 하나 첨가시킨다. 우리 목요일날 제가 얘기했는데 사역오신 분들은 들었다.
뭐라고 하시냐면 여러분이 오해하시지 말고 들으시라.
이단으로 몰리기 쉬우니까 이해하시고 들으시라.
여러분이 말씀이 육신이 된 자라고 말씀하셨다.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어떻게요? 너희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그건 예수님한테 하시는 것이지요? 말씀이 육신이 된 것?
요한복음에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이 나온다.
독생자 예수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하신다.
예수님에 대해서 쓴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예수님의 신부이다.
둘도 없는 신부이다. 예수님하고 여러분하고 촌수가 없다.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는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에요?
예수님인데 여러분도 하나님의 아들, 딸이다. 같은 레벨이다.
말씀이 육신이 된 예수님이 여러분이 지금 호다 사역 감당하시는 것을 가만히 보면
이사야 61장을 여러분이 하고 계신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가?
이사야 61장을 말씀하신다. 여러분이 이것을 하고 계신다.
여러분이 이제는 예수님 밖에 없다고 고백을 한다.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다는 것을 이미 체험을 해서 여러분이 고백을 하고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직 예수님처럼 다 이루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끼리의 얘기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된 여러분이다.
여러분 가운데 ‘나는 아직 멀었다는 그런 분도 물론 있다.’ 다는 아니다.
어느 분은 계속 말씀이 육신이 된 쪽으로 가고 있다.
“어어? 말씀이 육신이 되었네? 그 말씀이 이제는 하트에서 나왔네?!..
그때는 그 말씀을 지키기가 힘들었는데, 그때 열심히 교회 다니면서
이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어디있나?.했는데 그게 되네?!
예전에는 “아니, 어떻게 원수를 사랑해? “ “그게 말도 안되는 얘기지!”
“성경이니까 그렇게 쓴 것이지, 예수님이니까 그렇게 한 것이지.......”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했는데,
“그런데 어어? 이제는 내가 그걸 하고 있네?!”
“그 말씀이 이제 내 삶이 되어버렸네?!”” “ 말씀이 내 삶이 됐다!” “ 내 육신이 되어버렸다.”
전에는 말씀이 지식으로 들어왔버렸다. 스승한테 많이 배웠다고 했다.
스승한테 배우는 것은 무엇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나? 지식을 배우는 것이다.
그때는 지식을 배운 것이라서 삶하고는 거리가 멀었는데......
제가 과거에 어머니한테 밤낮 얘기했던 것이 그것이다.
제가 어머니한테 밤낮 “십계명을 다 지키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그저 예수 믿으면 천국간다니깐요? 나는 개털 모자 쓰고 천국갈 거야..”
“그러니까 어머니나 열심히 믿으세요!”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뭐라고 그랬어요?
“하나님, 십계명이 이것 밖에 없어요?”
왜? 십계명이 복받는 계명이거든!
“아니, 이것 밖에 더 없어요?..” 이리 나오는데, 많은 사람이 이제는 그 문제는 끝났어요하며
말씀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들어왔다.
아직 물론 안 되는 사람도 있다. 제가 자꾸 업그래이드를 말해준다. 여러분들은 그 문제는 끝났다.
내가 돌아 왔을때에 내 아버지는 어땠을까?
나 보고 기절하고 나 보기가 민망해서 무안해서 지금도 졸도하고 계시겠지요.
두번 돌아왔다가는 심장마비 걸릴까봐서 눈감고 누워 계신다니까요. 이제는 그렇게 되었다.
전에는 “나는 입으로 시인했으니까 천국가지요..”
“도대체 성경을 어떻게 다 믿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밤낮 이리했는데
이제는 “이것 밖에 없어요?
“하나님, 이것 밖에 지킬 것이, 복 받을 것이 요것 밖에 안되요?”.. 이렇게 나온다.
그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셨던 예수님이 우리의 신랑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귀한 신부이다. 그렇게 되어야지. 그렇게 되어야하는 것을 미리 선포하는 것이다.
어느날 예수님의 신부가 됐을 때는 이미 말씀이 육신이 되어있다.
태초에 말씀이 육신이 된 그 말씀이 아니고..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셨던 그 말씀이 아니고 우리에게 말씀하셨던 이 말씀들이
이제는 우리 삶 가운데 들어와서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그렇게 어려웠던 율법들이 쉽게 된다.
사랑이 들어왔버리니까 쉽게 이루어진다. 역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구나!
사랑만 들어오면 그것은 쉽게 된다. 그러면 율법이 있는지도 우리는 모른다.
여러분이 미국 Good Citizen을 갖고 있으니까 이렇게 많은 헌법을 몰라도 된다.
헌법을 몰라도 여러분이 지키고 있다. 좋은 시민이 되면 다 지키니까 그 법이 있으나마나하다.
법은 범법자에게만 표하는 것이지 잘 지키는 사람한테는 아무 소용이 없다.
헌법전서가 이렇게 두꺼운 것이 다 소용이 없다. 사랑이 완성이거든!
지난 주에 그 말씀을 하시면서 선포해 주라고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 딸.. 예수님의 귀한 신부, 이 몸은 성전이고
앞으로 여러분은 휴거된 자이고, 구원 완전히 받은 자이고 생명으로 옮기운 자이고
말씀이 육신으로 임한 자들이다..고 그 말씀을 하셨다.
성경말씀들이 이제는 우리의 삶 가운데 들어와서 말씀이 육신이 되는 삶이다.
어떤 임금 얘기를 할 것이다.
어느 목사님이 말씀하시는데 재미있어서 한다.
아주 효자가 있었다고 한다. 아주 효자인데 엄마가 너무 아파서 오늘, 내일 하고 있다.
근데 그 마을을 아주 마음씨 착하고 좋은, 칭찬받는 임금님이 계셨는데
이 엄마가 죽기 전에 아들보고 “얘야, 나 그 임금님 한번 보고싶은데 죽기 전에 만나보고 싶다”..고
그랬다. 그래서 그러라고. 어느 날 임금님이 그 마을을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고서
하루 전날 엄마를 들쳐업고서 가서 임금이 지나가는 길목에 서있었다.
제일 앞에 자리를 잡았다. 정말 임금이 지나갔다.
지나가면서 보니까 다 죽어가는 사람을 누가 업고 있었다.
임금이 보니까 딴사람하고는 달라서 물어보았다.
“너 왜 여기있나?” 했더니 “우리 어머니가 임금님을 한번 보고 죽고 싶다고 했다..”
거기에 나와있던 동네 사람들이 “효자라고.. 어머니 가시기 전에 임금님 한번 보게 하실려고
어젯밤부터 밤새워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임금이 “어휴, 정말 효자났다”고 그러면서 상을 베풀었다고 그랬다.
그 소식을 들은 한 불효막심한 아들이 “아니, 임금한테 그런 것을 받았다고? 그럼 나도 받아야지!”
그래서 가기 싫다는 엄마를 들쳐업고 그 다음 행차하는 곳에 가서 서 있었다.
엄마는 싫다고 하는데 한번 업히시라고. 생전 내가 처음 효도해 볼 테니까 업히시라고.
근데 동네에서 워낙 유명한 악당이었다. 엄마를 괴롭혔던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선물 받은 그 얘기를 듣고서 싫다는 엄마를 업고서 갔다.
엄마는 바늘 방석에 업힌 것만 같았다. 가서 있으니까 임금이 지나갔다.
임금이 또 사연을 물어봤다. “임금이 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자기가 보고 싶어서 왔지 엄마가 보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이 “쟤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불효막심한 녀석이라”...고
옆 동네에서 엄마 업고 갔더니 상 받았다고 얘기듣고 자기도 온 것이다.
억지로 엄마를 업고 왔다. 엄마가 힘들어 죽겠는데..
임금이 뭐라고 그랬어요? 상을 줬을까요? 안 줬을까요?
임금이 상을 줬다. 껄껄껄 웃으면서 상을 줬다.
Key가 이것이다. 뭐냐면 사랑하는데는 조건이 없다.
그 불효막심해도 그래도 엄마를 업혀보라고.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조건이 없다. 그래서 그 임금이 껄껄 웃으면서..
“아니, 그 불효막심한 아들을 상을 줘요?” “너희들은 엄마를 안 업고 왔잖아?
쟤는 그래도 엄마를 업고 왔다..” 사랑에는 조건이 없다. 조건을 달지 말라는 것이다.
그 얘기를 목사님이 하시더라. 우리가 사랑 얘기를 많이 하기때문에 여러분이 한번 들으시라고.
조건이 없다. 왜? 여러분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다.
저사람은 사랑을 하고 있어? 그 사람의 과거가 어떤 것이던 상관이 없다. 사랑이다.
그 사람이 어떤 것을 해 가지고 할런지 모르지만 힘든 엄마를 업고서 밤새 지켰으니까
쉬운 일이 아니다. 해 보시라. 다른 사람들은 못한다. 선물을 준다고 하는데도 못 온다.
그런데 그 악한 불효막심한 아들은 일생 처음 해 보는 것을 한다.
그것을 하니까 선물을 주신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 사랑하니까 그런 얘기도 있는 것을
여러분이 들으시고 사랑은 조건이 없다. 아무 조건이 없고 한번 사랑해 보면 된다.
내가 지금 이 얘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그 정도 얘기할 것을 내가 다 안다.
그 차원이 아니고 무조건적인 그게 사랑이다. 지금 그 얘기하는 것이다.
무슨 얘기인지 알지요? 임금님이 보실 때 그것도 사랑이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불효자의 속을 보면 아니라고 그러는데, 아니다! 그것도 사랑이다!
그렇게도 여러분이 하라는 것이다. 지금 얘기하는 것이 그 얘기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싫어도 이를 악물고 그것을 한번 해 보시라. 그 얘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흉내라도 내라는 것이다. 흉내라도 내라고...
여러분은 사랑이 없어서 흉내도 못 낸다. 흉내도 못 낸다.
그래서 가짜 사랑이라도 한번 해 보시라. 흉내라도 내 보시라.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해 볼까? 한번 해 보시라.
이번에는 인격에 대해서 잠깐 얘기하려고 한다.
어제 주일날에 생명의 면류관이 나한테 와서 “집사님, 집사님이 말할 때 내가 슬펐어요..”
그 말을 하더라. 그래서 내가 막 뭐라고 그랬다. 그 인격이지?
그 인격이 나한테 받았던 인격이 아니라 옛날 아버지한테서 받았던 인격이었다.
그러면서 제가 얘기한 것이 있다. 여러분, 잘 들으시라.
그 인격을 얘기하면 내가 누구를 얘기하냐면 흰 옷입은 자매 얘기하게 된다.
내가 서울에서 갈렙집사님과 울진갈려고 차 대기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자매가 왔길래.
내가 “남편을 용서 했냐고?” 물었더니, 안 했다고 했다.
아니, 무슨 놈의 용서를 하라는데 용서를 못했냐고?
예수 믿는 것 아니라고! 용서해야지! “라고 했더니 그 다음에 막 울더라.
내가 길거리에서 사람들 다니는데서 “아직도 용서 못했냐고! “ 그랬다.
그랬더니 자매가 막 울어대는데
“내 말 듣기 싫어요? 내가 용서하라는데 용서 안해요?
그럼 사모님은 지금 내 머리 꼭대기에 있어. 딴데 가시라고, 딴데 스승 찾아가시라고 그랬다.
나한테 오지 마시라!..” 욕짓거리를 했다.
막 우는 것을 세워놓고서 갈렙 집사님께 “빨리 갑시다!”
그렇게 하고 울진으로 갓버렸다.
그런데 그 다음날 테디하고 같이 흰옷 입은자 자매님이 울진으로 왔다.
나는 테디가 온 것이 기억도 없는데 테디하고 같이 왔었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기억이 없다. 나는 기억이 없는데 그때 왔다한다.
아침 식사도 같이 했대. 전혀 기억이 없다.
자, 내가 그때 용서를 못한 흰옷 입은자 자매를 막 뭐라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이게 인격이었다.
아직도 누구를 용서를 못하고 있었다.
내가 막 욕을 해 주었다. 왜? 지금 이것을 여러분이 잘 들으셔야 한다.
여러분이 지금 저한테 와서 찡찡거리고 어쩌고저쩌고,
여러분 남편한테, 와이프한테 자꾸 힘들게 하고 옛날 것 사건 가지고서 자꾸하는 그것이 인격인데
내가 그때 용서를 못하고 있는 흰옷 입은자 자매에게 욕을 했다.
“아직도 용서 못해? 아직도!! 가짜 사모지!!
뭐 예수 믿는다고, 딴데 가시라고! 내가 얘기했으면 용서를 해야지, 들어야지!”
딴데 스승 찾아가시라고 나한테 올 생각 하지도 말라고!” 무섭게 야단을 쳤다.
잘 들으시라. 내가 왜 이 얘기를 하냐면, 나중에 있었던 일들을 나도 정리를 해 보는 것이다.
어제 길에서 그렇게 혼이 나고서도 울진으로 왔고 그리고 많은 인격을 내 보냈다.
버스타고 울면서 온 것이다.
내가 터미널 길에 서서 혼을 낸 것이 뭐냐면?
“아니, 당신 사모 인격이잖아? 지금 호다에서 일,이년 같이 왔는데 아직도 그 믿음이
믿음이 그것 밖에 안돼?” 아직도 용서 못하는 그 믿음을 내가 혼낸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전에 상처받은 인격이 나온 것인데 내가 그 인격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이것을 동격으로 보고 얘기한 것이다. 그래서 “아지도 용서를 못해? 아직도?”
그리고 그 다음 날 왔다. 그리고서 인격들이 나오는데 굵직굵직한 인격들이 빠져 나갔다.
나도 생각지 못했던 인격들이 나왔다. 아니 저 사람이 나한테 그렇게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욕을 먹고서도 울진을 왔네.. 나같으면 절대 못한다. 여러분한테 내가 그렇게 소리질렀으면
아무도 여기 올 사람 없다. 아마 한나 정도나 올까?
아니야, 내가 그 정도로 했으면 아무도 여기 올 사람 없다.
내가 그래서 여러분 한테는 그 정도로 쎄게 안한다. 그 정도로 내가 했다.
자, 울진으로 왜 왔을까? 누가 왔을까? 어떤 인격이 왔을까?
현재 인격이 온 것이다. 나한테 힘들고 간 다음에 현재 인격이 나와서 '나 그래도 거기 가야 살아!..'
그래서 현재 인격이, 그 믿음의 인격이 울진으로 온 것이다. 그래서 힘들었더 과거의 인격이 나갔다.
내가 막 얘기할 때 과거의 인격이 나가니까, 올려 보내주니까..
또는 과거 어린 인격을 현재의 언니 인격으로 올려 준 것이다.
가서 보니까 정신이 돌아왔다. '아니, 내가 거기 가야지!'
우리는 자존심을 다 팽개치고 온다고 그런다. 그런데 그 현재의 인격이 온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막 야단칠 때 뭐냐면, 지금 과거의 어린 인격이 나왔다. 울면서.
현재의 인격은 아니다.
현재의 인격은 다 용서하고 그런다. 그러나 과거의 상처받은 인격은 그런다.
그 얘기는 뭐냐면 현재 인격이 가지고 있는 그 믿음이 약하다.
그래서 과거의 상처받은 그 인격이 워낙 그 인격이 쎄가지고 나와선
“흥! 언니의 그 인격을 가지고는 나를 컨트롤 못 해!..”하면서 이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왔다.
현재 인격의 믿음이 세면 “야, 임마. 너 왜 나왔어?”.. 그래야 되는데
현재 믿음이, 우리는 다르게 말하면 믿음이 약해서 “아직도 그 믿음이 그것 밖에 안되요?
아직도 그것 가지고 찡찡거려요?” 우리가 보통은 그렇게 얘기한다.
그래서 보면 과거의 상처받은 인격이 “언니, 그 인격가지고는 나 컨트롤 못해! 그 정도 가지고는 안돼!
언니 믿음 좀 더 쎄게 받고 들어와! 그래야지 나를 Take care하지..” 하는 그 인격이다.
근데 그러고 있다가 이 언니 인격이, 현재 인격이 생각하다 보니까
“아아, 그렇지!” 이렇게 된 것이다.
“아, 그렇지! 나 울진 가야지!” 그렇게 된 것이다. “야아, 너도 가자!”
그렇게 해서 울진으로 과거 인격을 끌고 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 테디가 그 옆에 다 있으면서 밤에 차타고 오면서 그 인격을 다 내 보내줬다.
여러분이 제가 “아직도 그 모양이야? 예수 믿는 것 아니라고, 당신 가짜야”..라고 할 때는
옛날에 어릴 때 그 인격이 나와서 지금 나하고 얘기하기 때문에 내가 그 얘기를 해 준다.
현재 인격은 안 그렇다. 물론 현재 인격이 너무 약해서 그렇다.
여러분의 현재 인격이 너무 약하고 믿음이 약하면 과거 인격이 올라온다.
그래서 그 인격이 여러분들을 힘들게 한다.
그래서 아직도 성경의 말씀들을 가지고 낑낑대고
힘들어 하면 '아, 내가 아직 처리 못한 상처받은 그 인격들이 있구나..'
보통 여러분 아니고 밖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아직 하나님 믿는 믿음이 이것 밖에 안돼”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그것을 딱 끄집어내어서 꼭 집어 “인격이구나!..”라고 이렇게 볼 수 있다.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지요?
그래서 내가 생명의 면류관이 왔을 때 내가
“자매님, 현재 인격이 그것 밖에 안돼! 내가 뭐라한다고 찡찡찡 거리면 어떻게 해?
아직 하나님 만난 것 아니다. 하나님 만난 사람이 어떻게 그래?
예수님을 실제로 인격적으로 만나면 내가 아무리 뭐라해도 웃는다.
나를 감싸 안는다.
왜? 내가 얘기할 때 자기를 살리기 위해서 얘기한다는 것을 그 영은 안다.
그 인격은 안다. 예수님 만난 인격은 내가 뭐라고 얘기하던지 이게 나를 살리기 위해서,
사랑해서 얘기하는 것인 줄을 안다.
그렇지 않으면 어른 인격이 또 “저 여호수아 형제도 옛날에
아빠가 나를 힘들게 하던 것처럼 나를 힘들게 하네...” 그러면서 또 뒤집어진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런 인격들을 얘기할 때 여러분이 분별하시라고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지금 힘들지 않으려면 현재 인격이 어린 아이 인격들을 다 키워야 한다.
그 인격이 아직도 찡찡거리고 용서 못하는 인격이 있으면 여러분이 어떻게 하냐면 명령을 하시라.
“얘, 어린 인격아.. 아직도 그대 상처받아서 용서 못하고 있지?
너 용서해야 된다. 언니는 다 용서했거든! 너도 용서해야 돼..
그래야 너도 편하지!” 그리고 명령을 하시라. “야아, 용서햇버려!!”
자기가 자신한테 말하는 것이다.
“힘든 인격아, 용서햇버려! 난 이제 다 끝났어! 언니랑 같이 천국가서 살자”
그렇게 명령을 하시라. 그러면 그 인격이 알아 듣는다.
이제 우리 언니가, 우리 형님 인격이 “아아, 이제 그것까지 됐구나! 내가 나와서 찡찡거려도
소용이 없구나!”
그렇지 않고 여러분이 강하게 성령을 받게 되면 그 인격들이 다 자라버린다.
저처럼 되어버린다. 저는 그 인격들이 다 없어져 버렸다.
찡찡거리는 것들이 하나도 없다. 다 이쁘다.
제가 그랬잖아요? 산에서 내려오니 다 이뻤다. 다 이뻐!
다 나가버렸다. 하나같이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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