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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승리로 바꾸라. / 피영민 목사
(서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은 위기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정적인 위기, 인간관계의 위기, 사회적인 위기, 건강상의 위기, 신앙생활의 위기 등 참으로 많은 위기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숱한 위기들이 해변에 몰려오는 거센 파도처럼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기 앞에 쉽게 무너지고 실망과 절망의 나락 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요즈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는 소위 ‘자살신드롬’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도 며칠 전에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13층에서 투신자살을 하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교인들 중에 어떤 한 분이 저에게 기도를 받기 위해서 어느 날 찾아 오셨습니다. 왜냐하면 이웃에 살고 있는 사람이 투신자살을 하는 것을 보고 그만 이분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이제는 그분의 영혼까지도 떨리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성도님의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을 없애 달라고 하는 중보기도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모든 사건들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인생의 위기를 당하고 있는지를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성도는 위기가 ‘위험’이라는 뜻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기회’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위기가 있어야만 기회도 있고 승리의 기쁨도 맛볼 수가 있습니다. 위험에 쓰러지는 사람은 대단히 불행한 사람이 되지만, 반대로 위기를 기회로 생각하고 잘 극복하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큰 기쁨과 즐거움과 영광을 맛볼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오늘 이 시간 저는 여러분에게 인생에 다가온 큰 위기의 순간을 믿음으로써 담대히 극복하고 오히려 인생의 큰 기회로 삼은 위대한 사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는 바로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 입니다.
여호수아를 통해서 여러분 모두가 앞으로 다가오는 모든 인생의 위기들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변화시킬 수 있는 신앙의 원리들을 배우는 귀한 은혜가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1. 여호수아의 위기
지금 여호수아가 처한 상황은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수아가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제 2 대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모세는 실로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선지자요, 심지어는 하나님을 직접 대면한 역사상 전무후무한 영권을 소유한 지도자가 바로 모세입니다.
장정만 200만에 해당하는 엄청난 사람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탈출을 성공적으로 이끈 사람이 모세입니다. 이처럼 위대한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가 받은 심적인 부담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모세가 지난날에 행한 업적도 위대했지만 앞으로 여호수아가 수행해야 할 사명도 참으로 엄청났습니다. 거기에 따른 스트레스는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향하여 “너는 이제 내 백성을 이끌고 네가 전에 지나가보지 못했던 길을 지나가라!”명령하십니다. 여기에 대해서 오늘 본문 4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이 말씀처럼 지금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200만이 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과거에 지나가보지 못하였던 곳을 지나가라고 하는 큰 사명을 주셨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회자에게도 동일한 부담감이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후배 목사님은 조그마한 교회를 담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의 성도들이 주는 스트레스가 너무나 심하여서 크게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모든 업무들 다 중단하고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어디론가 떠나서 잠적을 하였습니다.
오죽 그 마음이 괴롭고 힘들었으면 하나님의 소명과 부르심을 받은 목사님께서 그러한 행동을 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여호수아는 무려 200만이 넘은 엄청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만 하는데 이 일이 얼마나 힘들과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심적이 부담감이 여호수아에게 틀림없이 다가왔을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여호수아에게 처한 현실도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본문 15절을 보시면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고 그때의 상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맥은 보리 ‘모’자와 보리 ‘맥’자가 합쳐진 말입니다. 즉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보리입니다.
전통적으로 보리를 거두는 시기에는 요단강이 항상 범람하였습니다. 요단강을 쭉 따라서 올라가 보면 그곳에는 갈릴리 호수가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를 따라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거기에는 헬몬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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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몬산은 겨울이 되면 많은 눈이 쌓이는 곳입니다. 그리고 보리를 거두는 시기가 되면 이 눈이 녹아서 엄청난 물로 변하여 갈릴리 호수로 내려오게 되고, 갈릴리 호수가 차고 넘치게 되면 그 물이 요단강까지 흘러 내려서 범람하게 됩니다. 오늘날의 요단강은 조그만한 하천에 불과하지만 여호수아가 살았던 시대에는 수심의 깊이가 무려 4m가 매우 깊은 강이었습니다.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강폭만 하더라도 30m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향하여 이 깊고도 넓고 물이 범람하는 요단강을 멘 발로 밟고 지나가라고 하는 실로 어려운 명령을 하셨습니다.
또한 요단강을 무사히 건넌다고 할지라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평안과 안식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전쟁과 싸움에 능한 가나안 7족속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하여 본문 10절은 “또 말하되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의 7족속은 늘 자기들끼리 전쟁을 함으로써 싸움에 잘 연단되어진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더군다나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점령해야 할 성은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더 높은 산이 여호수아를 기다리고 있는 인생의 큰 위기의 순간이 지금 다가왔습니다.
2. 여호수아의 준비
인생의 큰 위기를 맞이했지만 여호수아는 자신도 준비를 하고, 백성들도 철저히 준비시킴으로 말미암아 이 위기를 잘 극복하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이 위기를 승리로 바꿈에 있어서 스스로를 먼저 준비합니다. 여호수아는 자기 자신을 준비함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율법책이었습니다.
여호수아 1장 5-6절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내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고 의지하였습니다.
자신을 능하게 하시며 늘 동행하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이 약속을 아무런 수고와 노력의 대가도 없이 거저 얻은 것이 아닙니다. 이 약속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의 조건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1장 8절을 보시면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고 증거합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가 제일 먼저 할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한 군사로 키우기 위한 훈련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스스로를 준비하기 위하여 최우선적으로 한 일은 바로 하나님의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다 지켜 행하는 삶이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늘 동행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행하여지는 모든 일 가운데에 항상 승리를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도 매우 많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8장 20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조건도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조건과 동일합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말씀)을 너희도 지키고 복음을 증거하여 전도한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지키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늘 가까이 하고,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준수하는 삶을 살아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어떠한 위기라도 넉넉히 이실 수 있는 힘과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실 줄로 확신합니다.
어떤 분은 이런 말씀을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거기에서 밥이 나옵니까? 돈이 나옵니까? 옷이 나옵니까?”라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네, 맞습니다. 아무리 성경책을 손에 들고 흔들어도 그 속에서는 밥알 한 톨, 동전 한닢, 천 조각 하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늘 가까이 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동행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에 동행하시기만 하면 그 사람에게는 하늘의 신령한 축복이 쏟아지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만 하면 그 사람에게는 밥도 생기고, 물질도 생기고, 좋고 귀한 옷도 생겨나게 됩니다.
심지어 장수와 부귀영화와 권세와 권력도 얼마든지 얻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혹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중에서 인생의 위기를 맞이한 분들은 세상의 다른 것들을 붙
잡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을 사모하는 심령으로 부지런히 읽으시고 묵상하시고 실천하시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인생의 모든 문제를 넉넉히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힘과 능력을 허락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지금도 미국의 사람들은 국가적인 위기를 있을 때마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은 바로 고속도로의 표지판에다가 “Back To The Bible”이라는 문구를 붙이는 일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자!”라는 뜻입니다.
즉 미국 사람들은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큰 위기가 닥쳐오면 제일 먼저 성경에서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찌 그 나라를 축복하시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교회의 성도님들도 인생의 모든 문제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문제의 해결을 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이스라엘 백성들의 준비
인생의 큰 위기를 맞이한 여호수아는 최우선적으로 자신을 준비를 시킵니다. 그리
고 그 다음으로는 백성들을 두 가지 측면에서 준비를 시킵니다.
▶첫 번째 준비는, ‘신중한 자세로 언약궤을 따르라’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오늘 본문 3절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고 증거합니다.
그리고 4절에서는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
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언약궤 안에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의 두 돌판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가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의 세월 동안 먹었던 만나가 들어가 있습니다. 지난 광야의 여행길 동안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낮에는 구름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구름기둥도 사라지고 불기둥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남은 것이라고는 오직 언약궤만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뿐이었습니다.
이 언약궤를 따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하여 명령을 하십니다.
다시 한번 4절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와의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기를 원하셨습니다.
언약궤에 너무 가까이 하지도 말고 너무 멀리 떨어지지도 말고 이천 규빗이라는 일정한 거리를 둘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천 규빗은 오늘날의 수치로 환산하면 900m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천 규빗(900m)이라는 일정한 거리를 두기를 원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궤를 다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언약궤에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앞에 있는 사람들은 볼 수가 있지만
저 뒤에서 걸어오는 수많은 사람들은 볼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이천 규빗(900m)이라는 거리를 두어서 앞에 있는 사람이나 뒤에 오는 사람이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잘 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뱀에 물렸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령을 하셨습니다.
민수기 21장 8-9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 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 위에다 높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서 장대 위에다가 높이 달아야만 했습니까?
그 이유도 역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모세와 믿음이 신실한 몇 명의 사람들만이 보는 것이 아니라 전 이스라엘 백성들도 보라고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놋뱀을 바라보아야만 목숨을 구할 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레위 사람들로 하여금 언약궤를 어깨에 메고 걸아가면 그 뒤 이
천 규빗(900m)의 거리를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걸어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것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아닙니다. 그들을 인도하는 것은 이제 언약궤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를 따라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잘 보아야만 합니다. 단 한명이라도 언약궤를 보는 시선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1-2절을 보시면 여호수아는 요단에 이르렀어도 곧 바로 그 강을 건너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2절은 “삼 일 후에 유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요단강에 도착하자 무려 3일 동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습니다.
우리도 여호수아처럼 어떠한 경우에도 언약궤를 앞서 가서는 안 됩니다. 또한 우리는 언약궤에 너무 경박하게 가까이 가서도 안 됩니다. 단지 우리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동했던 것처럼 언약궤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가운데에 그 길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언약궤로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그럼 어떠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음의 성도들을 의의 길로 인도하실까요? 현재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인도를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의 위기를 당할 때에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단 삼일 이라도 기도하는 가운데에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달라고 성령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간절한 기도의 삶을 살아가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인생의 위기가 승리의 기쁨과 영광으로 바뀌는 역사가 틀림없이 일어나게 될 줄로 확신합니다.
▶두 번째 준비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결로 준비하게 만들었습니다. 성결로 준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큰 기적과 기사를 나타내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인생의 큰 위기를 만났을 때에 대처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은 바로 나의 과거의 삶을 되돌아보는 일입니다. 자기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가운데에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지 못한 삶을 먼저 회개해야만 합니다. 성결이란, 최우선적으로 우상과 관련된 모든 것을 제거하여 버리는 일을 의미합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물건을 아간이라는 한 사람이 숨김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전체가 전쟁에서 패하는 큰 아픔과 슬픔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우리 믿음의 성도는 우상과 관련된 그 어떠한 것이라도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집안에다가 보관해서도 안 됩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에 불교와 관련된 물건, 유교와 관련된 물건, 기타 세상의 잡신과 우상과 관계된 물건을 취미로라도 집 안에다가 보관하는 분이 계시다면 오늘 당장 집에 돌아가셔서 그 모든 잡다한 것들을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교회에도 얼마 전에 스님이 회개하여 신실한 믿음의 성도가 되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도 과거에 자신이 입던 모든 승복을 다 모아가지고 양수리 수양관에 올라가셔서 말끔히 불로 태우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모든 일에 있어서 성결한 삶을 살아가야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구약성경에 나오는 야곱의 인생을 보더라도 세겜에서 가족몰살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야곱은 엘 벧엘로 올라가면서 자신의 가정에서 모든 우상을 제거하는 일을 담대히 행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숨겨온 우상인 드라빔을 야곱은 처음에는 묵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엘 벧엘로 올라가는 길에서 야곱은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소중하게 들고 온 우상을 단호히 제거해 버렸습니다. 그 결과 야곱의 가정이 온전히 성결케 되고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의 물건들을 제거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를 성결케 하는 일입니다. 우상과 관계된 물건은 우리에게 고통과 질병과 패배와 위기만을 가져 다 줄 뿐입니다. 오늘 이후로 여러분 인생에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신실되게 섬기시기바랍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그 어떤 우상의 물건이라도 과감히 제거하고 멀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권면합니다.
또한 성결이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있어서 장애가 되는 것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우리 성도의 삶에서 예배는 중심이 됩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을 보시면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고 증거합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지금 우리는 공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공예배만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성도 각자가 집에서 개인적으로 드리는 예배도 하나님께서 기쁘게 흠향하시는 향기로운 제사가 됩니다. 그러나 예배를 소홀히 여기는 사람은 인생이 형통하지 못합니다.
오늘은 여러분이 이 자리에 나와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만약에 앞으로 계속해서 예배를 빠지게 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인생의 심각한 위기가 틀림없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인생의 위기를 믿음으로써 지혜롭게 극복하지 못하고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귀중하게 여기는 믿음의 성도에게는 만사가 형통케 되는 축복이 반드시 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그 사람을 향하여 비추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5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음식물도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변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음식물조차도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변화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어떻게 말씀과 기도없이 거룩한 존재로 변화될 수가 있겠습니까!
자기의 직업 때문에 예배를 소홀히 여기는 사람,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때문에 예배를 등한시 하는 사람, 세상의 돈과 물질을 얻기 위해서 주일성수를 어기는 사람은 결코 인생의 형통함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어떤 남자 집사님이 계십니다.
이 분이 다니고 있는 회사의 회장님이 불교 신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갖고서 직장내 기독신우회를 창립하게 되었습니다. 정기적으로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찬양과 기도의 모임을 지속적으로 가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회장님이 골프장에 골프를 치러갔는데 그만 날아오는 골프공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회장님의 마음속에 자신의 회사에 있는 기독교 신자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기독교 신자들 때문에 자신에게 이런 화가 임하게 되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회사로 돌아온 회장님은 기독신우회를 만든 그 집사님을 호출을 하였습니다.
화가 머리 잔뜩 난 회장님이 큰 소리를 치면서 그 집사님을 호되게 몰아부칩니다. “내가 당신 때문에 하마터면 골프장에서 날아오는 골프공에 이마를 맞아서 죽을 뻔 했어!”라고 심하게 꾸중을 하였습니다.
그때에 집사님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회장님? 만약에 우리가 직장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았더라면 회장님을 골프공에 맞아서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그나마 우리가 이렇게라도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골프공이 다행스럽게도 이마만 스치고 지나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유익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예배를 등한시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핍박과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잠시 잠깐은 고생이요 어려움이 온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일관된 자세를 갖고서 신실된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하늘의 신령한 축복이 반드시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빌리 그래함 목사님께서 어느 날 예배를 자주 빠지는 한 농부의
가정을 심방하게 되었습니다.
농부의 집에 들어가신 목사님께서 이렇게 질문을 하십니다.
“아니, 당신은 어떻게 해서 주일날 교회에 와서 예배를 잘 드리지 않고 자꾸만 빠지는 거요?”.
그러자 농부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목사님도 잘 아시다시피 제가 소 한 마리를 키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소가 하필이면 주일만 되면 자꾸만 구덩이에 빠지는 겁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제가 그 소를 살리기 위해 수고하다 보니까 계속해서 주일날 교회를 나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빌리 그래함 목사님께서 그 농부를 향하여 단호하게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아무리 세상의 먹고 사는 일도 중요하지만 주일날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드리는 일을 방행하는 그 소는 아무 소용도 없으니 당장 잡아먹으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을 향하여 제가 목사이기 때문에 교회에 많이 나와서 예배를 드리라고 강조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배를 중요시하면 먼저는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고 그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인생의 형통함이라는 축복을 반드시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중요시하는 것이 바로 성결의 중요한 비결이라는 진리를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지 않고 어떻게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게 만들 수가 있겠습니까! 인류의 지난 역사상 놀다가 은혜 받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집에서 가만히 누워 있다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도 전혀 없습니다.
오직 예배를 드리는 자에게 성결케 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에 성결케 하는 자에게 인생의 형통함의 축복이 틀림없이 온다는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으로 여러분 삶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오늘의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인 여호수아가 본문을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세 가지 진리를 항상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살아가십시오.
모든 위기의 순간마다 나 자신의 힘과 능력과 경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그 해답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성령님의 인도를 신중하게 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안에 항상 거하시는 성령님의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십시요. 그리고 그러한 성령님의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위하여 늘 기도에 힘을 쓰시기 바랍니다.
셋째, 성결한 삶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성결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우상을 과감히 제거하여 버리시고 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에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하는 참으로 귀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인생길 가운데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와 성결한 삶이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면 어떠한 인생의 큰 위기가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께서 오히려 더 좋은 인생의 기회의 순간으로 변화시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여호수아가 이 세 가지를 중요시하는 믿음의 자세를 갖고서 요단강을 밟았을 때에 성경은 그 강의 물이 그치게 되었다고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본문 16절을 보시면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요단강을 따라서 올라가다 보면 아담이라는 동네가 나옵니다. 그런데 거기에 산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이 산사태로 말미암아 요단강까지 흙이 내려와서 그만 강물을 막아 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요단강의 물줄기가 바뀌어서 다른 곳으로 물이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물이 범람하던 요단강의 물줄기가 바뀌자 바닥에 있던 흙이 드러나게 되었고 그 마른 땅위로 여호수아와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다 안전하게 건너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중심, 성령님 중심, 성결한 삶을 중심으로 사는 믿음의 성도에게도 동일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서 모든 인생의 큰 문제가 해결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그런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분들에게 모든 인생의 높은 산들이 낮아지고 눈물의 골짜기가 메워지는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