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솔로몬은 계속해서 지혜를 귀부인으로 인격화하여 묘사해 왔습니다. 9장은 그러한 지혜의 인격화된 본문을 총정리하는 것으로서, 창조 이전부터 존재하였고 창조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역하였던 지혜가 세상에 내려와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초대하는 장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지혜는 사람들에게 찾아와 그들을 생명에로 초대합니다. 지혜와 음녀는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에서 서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1. 지혜의 초대
1) 지혜의 초대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창조하였고 사람들에게 생명과 은총을 약속했던 지혜는 소극적으로 사람들이 자기를 찾아오리라고 기다리지만은 않았습니다. 지혜는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으로 사람들의 생활권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거처를 마련합니다. 그녀는 집을 짓고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잔치를 준비한 후에 종들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그녀의 잔치 초대는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 잔치에의 초대와도 흡사합니다. 또한 고기와 술로 준비된 잔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마련된 성찬식과도 같은 맥락을 가집니다. 지혜의 초대는 특히 지혜가 필요한 자들인 어리석은 자와 지혜 없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천국 잔치에의 초대(마22:4)
2) 초대의 목적
9장은 지혜가 사람들을 초대하는 목적 또는 이유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지혜가 준비한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지혜가 주는 유익을 받아 누리라는 의미입니다. 지혜가 주는 실제적인 유익은 생명과 명철입니다. 지혜의 잔치에 참여하여 먹고 마시는 자는 생명을 얻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얻은 자로서 그에 합당한 명철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 때 생명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초대와 유익은 하나님의 초대와 마찬가지로 값없이 주어집니다.
a.생명 얻음(잠19:23)
b.하나님의 초대(사55:1)
2. 거만한 자와 지혜자
1) 거만자와 지혜자
9장은 지혜의 초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두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지혜라는 기준으로 보면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그것은 거만한 자(악인)와 지혜 있는 자입니다. 거만하고 악한 자는 사실 지혜자보다 더욱 지혜가 필요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지혜를 거부합니다. 거만자는 가르치기가 매우 어려운 부류의 사람입니다. 그는 자만심이 강하고 타인을 깔보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거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혜자는 발전과 개선의 여지를 항상 인정하기 때문에 겸손히 책망을 받으며 책망하는 자에게 감사할 줄 압니다. 결국 책망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그가 성숙한지 미성숙한지, 지혜로운지 거만한지를 가름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되지만 없는 자는 그 가진 것까지도 잃게 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비슷합니다. 거만 자는 개나 돼지처럼 좋은 것을 주는 자를 해치고 맙니다.
a.가진 자는 더 갖게 됨(마13:12)
b.개나 돼지와 같음(마7:6)
2) 두 사람의 결말
지혜를 소유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소유한 지혜자는 그의 생명의 날과 해가 많아질 것이며,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과 같이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거만한 자는 지혜를 거부함으로써 지혜가 주는 모든 유익까지도 거부해 버립니다. 지혜자는 더욱 지혜를 구함으로 지혜가 주는 유익을 얻지만, 거만한 자는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기므로 지혜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 거만한 자는 마치 신약에서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여겼던 바리새인들과 매우 흡사한데, 그들은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의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영생을 얻지 못한 것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멸망에 이르는 해를 받게 된 것입니다(참조, 요3:18).
a.하나님을 믿는 것과 영생(요17:3)
b.예수님을 거부한 바리새인(막2:16-17)
3. 미련함의 초대
1) 미련한 계집의 초대
미련한 계집, 즉 음녀 역시 어리석은 자를 상대로 초청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어러석은 여자로서 지나가든 어리석은 자들을 상대로 호객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큰소리를 내는 시끄러운 여자이며 부끄러움을 모르고 사람들을 유혹하는데, 지혜와는 달리 아무런 잔치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준비한 것은 '물' 과 '떡'이라고 지칭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바 '도적질한 물'과 '몰래 먹는 떡'은 모두 육체적이며 불륜적인 음란 행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지혜의 초청과 잔치는 공적이고 공개적인 것임에 반해 음녀의 초청은 은밀한 것임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여자는 사람들의 은밀한 본능에 호소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하는 것입니다.
a.부끄러움을 모름(잠7:13)
b.자기 샘에서 물을 마심(잠5:15)
2) 그 결과
9장은 그러한 음녀의 초대에 응하는 자는 진정으로 어리석은 자임을 지적합니다. 그는 음녀의 초대에 응하므로 스스로를 죽음의 자리로 내던진 것입니다. 성경은 속여서 먹는 식물의 결말이 어떠한지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음녀가 주는 음식은 그것을 먹고 누린 사람에게 죽음을 가져다줍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를 가리켜 생명을 주는 양식이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라고 소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정한 양식인 것은 성경 전체가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참된 양식인 지혜와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음녀를 선택합니다.
a.속여서 먹는 식물의 결국(잠20:17)
b.생명을 주는 음식(요6:35)
결론
9장은 앞에서 나온 음란에 대한 구절들과 함께 성적 부도덕을 저지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행동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순간의 쾌락으로 스스로를 죽음으로 이끄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지혜롭게 판단하고 행동함으로써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어리석은 자리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