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명- 갈림길에서 듣는 시골 수업(한번쯤 귀촌을 꿈꾼 당신에게)
저- 박승오, 김도윤
출-풀빛
독: 2018년 11월 10일
· 일과 놀이의 경계가 사라진 그곳에서 자기 인새을 함께하고 싶은 농사짓는 대장장이란 꿈이 오롯이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시골 삶은 후회가 좀 적은 것 같다. 재밌잖아. 도시에서는 늘 바브고 자주 소외도는데 도시에서의 과거는 썩 재밌지 않다. 애얘기할 것도 벌로 없고. 시골에선 내 삶의 방식이 옳든 그르든, 스케일이 크든, 즉픈, 자기가 주인공으로 tyk는 거다. 다큰 어른이 동네 아이들하고 팬티 바람으로 멱을 감았던 것도, 산불진화대도 만들어 놀고. 도시는 화려하지만 그 안의 직장인들은 남이 만들어 놓은 무대 위의 조연처럼 사는 경우가 많은데, 시골에서는 크든 작든 ‘내 세상’의 주인공으로 사는 것이다. 도시 아이들 이야기를 나눠보면 삶의 내용이 빈약하다. 자기 인생 이야기인데 알맹이가 없고 붕 떠 있다. enrr 사이에 텅 빈 공간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 서로 어색하다. 농촌 삶은 솔직한 내 이야기인데 도시 친구는 자기 이야기를 안 하는 게 일상화되어 있다.
·장기 둘 때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묘수가, 훈수를 둘 때는 잘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한 걸음 떨어져야 객관적으로 전체 상황을 파악할 수 잇다. 2년간의 훈수는 내가 나에게 두는 훈수 같았다. 시골은 도시보다 생활지가 적어 자연을 벗 삼아 삶의 슆펴하나 찍을 수 있어 자연 속에서 속도 늦추고 지금까지 달려온 인생을 조망해보는 안식년이다. 지금껏 나를 바쁘게 했던 일에서 벗어나 놀멍쉬멍 느릿느릿 시골길을 여햏하듯 거닐어 보고 싶어졌다.
· 도시에서 이 실력으로 장사했으면 망했지만 시골에서는 이런 평범한 능력도 보석이 된다. 경쟁도 적고 여러 지원이나 혜택도 많다. 도시에서 요만큼의 실력이 여기 와서는 이만큼의 실력으로 뻥튀기 된다. 시골은 일단 자기 힘으로 농사 지어서 먹거살기 때문에 도시에 비해 권위나 계급에 대한 의식이 없ㄱ다. 도시에서 잘나갔다는 걸 과시하는 사람을 보면 “옛날에 뭐? 그래서?” 하며 무시한다.
시골에서의 비지니스는 무게 중심이 거래가 아닌 관계로 이동한다. 도시의 조직이 지닌 많은 문제는 대부분 규모가 너무 커지는 데에서 시작한다. 구성원이 늘수록 서로의 욕망은 얽히고, 익명성이 늘어 갈수록 삶은 무미건조해진다. 그러니 시골로 내려가 적정 규모의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서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정감 있는 관계를 회복해 가는 것은 농사 짓는 것만큼이나 즐겁고 가치 있다. 생각은 크게, 시작은 작게-출발점은 단순한 예산 계획을 적은 작은 메모 한 장이었다. 오늘 저녁, 나만의 귀촌 계획을 간단하게나마 적어 보자.
·후가는 스웨덴어로 ‘도끼로 나무를 찍어 내다’ 뜻이다.
· 산타 인형 처음 깎아 본 날 이후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 우연히 아내가 산타 인형을 잡지(미국 낸시 토마스 작가)에서 산타 인형을 보고 그걸 하나 깎아 달라고 해서 재미 붙였고 그게 답답한 현실 분출구가 되었다. 우연이 운명을 이끌었다. 남편 회사 간 뒤 아내는 색칠해놓고 주변 사람이이 감탄해서 공모전에 참가하고 인형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나무를 깎는 그 느낌 자체를 좋아한다. 목각이라는 작업이 큰 나무토막에서 점점 깎아서 들어가는 건데. 어떤 작업이든 머릿속에 있는 형태를 잡아 가는 도중에 망칠 수 있으니 굉장히 불안하다. 작업하면서도 부담되고 70~`````80퍼센트 정도 진행 되어 얼굴 모양, 몸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희열감이 샘솟아 ‘아 드디어 보이기 시작하는구나.“하게 된다. 깊이 몰입하면서 나를 잊어버리는 상태를 뽕맛이라 한다. 스웨덴에서 만난 교수남과 할머니, 할아버지들처럼 나무를 깎으면서 함께 늙어가고 싶었다. 캠벨이 말하는 희열감이란 이 부부가 나무를 깎으면서 순간순간 맞이하는 몸에 뭔가 씌었다고 느껴질 만큼 신비로운 느낌이나 잊지 못할 만큼 마음에 새겨지는 순간들일 거다. 온전하게 현재에 살아있다는 느낌, 몰입하는 과정에서 대상과 혼연일체가 되면서 나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무아의 경지.
시골에 오면 내 노력이 50이고 하늘이 주는 게 50이다. 제때 밭 갈고 씨앗 뿌리고 거름하면 나머지는 하늘에서 해주니까 남을 안 부러워한다. 하고 싶으면 땅 빌려 농사 더 지으면 되고 굳이 배 아파할 이유 없다. 그래서 마음 편하다. 남들과 비교에서 벗어나 마음이 편안해진 것 말고 또 어떤 즐거움이 있을까. 시골에 좀 살아 보면 다들 멕가이버가 된다. 돈 주고 사람 써서 해도 되지만 자기가 하나하나 직접 이뤄 가는 재미가 있다. 오늘 내가 뭔가 만들겠다면 다른 집은 어떻게 했나 구경도 하고 나름대로 이리저리 궁리도 해보고 그게 창작이다. 문 하나 짜더라도 산에 나무 하나 잘라 와서 1년, 2년 천천히 만들어 가는 과정을 즐기며 산다. 해보는 과정에서 아 몰랐는데 나한테 이런 재주 있었네 깨닫는다.
따로 정원이 필요 없다. 집 앞에 필요가 뭐 있겠나? 아파트는 주어진 평수 내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하지만 시골집은 잠만 자고 먹는 거 이외 그다지 필요 없다. 모든 게 밖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 메주가 만져보면 진득해야 잘 무른 ㄱ더다. 이래야 장을 담그면 A급 간장이 나온다. 좋은 간장은 조미료가 필요 없다.
· 텃밭에서 뜯어 온 채소와 냉장고 안의 재료로 뚝딱뚝딱 맛깔스러운 밥상을 차려 내는 그녀 손놀림을 보면서 자기다운 삶을 산다는 것, 자신이 지닌 소질을 살린다는 것은 이처럼 솜씨 좋은 살림살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조건은 이미 주어진 것이아. 우리는 내던져진 채 이 세상에 태어났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손에 쥐어진 자원을 활용해 최고의 성과를 내놓는 것, 그것뿐이다 이미 있는 식재료로 최고의 요리를 내놓는 마음가짐과 같은 거다
· 즐기는 자가 가장 오래간다. 너무 돈, 돈 하다 보면 자신도 주위 사람도 쉬이 지친다. 자신이 하는 일을 블로그 등으로 조금씩 알리고 친구를 초대해 이야기도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진자 고객이 하나둘 생겨난다.
· 시골에서 산다는 것은 도시에서 한껏 부풀어 있던 헛욕심의 바람을 빼고 자신이 현재 지닌 것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살피는 일이다. 또ㅓ 농사를 짓듯 사진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 뒤, 나머지는 자연이 채우어 주기를 기다리는 일이다. 그러면 아마도 볕 좋은 날 널어 말린 빨간 고추가 제 속맛을 찾아가듯, 바쁜 도시 생활에서는 보잘것없어 보여 무심코 지나쳤던 자시의 소질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될지도 모른다. 평범한 우리들의 재능은 아마두 그렇게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어 깊은 장맛처럼 서서히 발효되고 익어 가는 그 무엇일 게다.
· 할머니 탐구생활- 귀농 할머니를 만난 이야기인데 덜 여문 새댁이 단단히 여물어 한 알의 씨시앗이 되어 가는 할머니들의 삶을 홀깃거리며 삶의 방향키를 잡는 여정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녀는 외할머니에게 느낀 뭉클함이 그런 동경을 불러일으킨 모양이다. 외할머니 품에서 나던 불 냄새와 손톱 밑에 까맣게 때가 낀 할머니의 손을 그리워했다. 도시에 살면서 하얗고 반질반질한 자신의 손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누군가가 내게 충고했다. 시골은 인생의 종착점이 아니더냐고. 젊은 나이에 세월을 허비하지 말고 도시에서 이것저것 경험하며 살다가, 이다음에 나이 들면 내려와 살라고. 도대체 꼬부랑 할망구들 사이에서 무슨 재미가 있고 배울 게 있겠냐고. 하지만 도시가 온실이라고 하는 부자연스러운 환경이라면 시골은 온실 밖의 세상이다. 온실 안에 사는 사람들은 겉보기엔 삶을 화려하게 꽃피우는 듯해도, 안으로 생명의 기운이 메말라 있다. 반면 시골 사람들, 적어도 시골에서 내가 만난 할머니들은 초라하고 볼품없는 겉모습과 달리 그 내면에는 무한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할머니들을 보면 정말 쉬지 않고 일한다. 그게 삶의 비법이다. 망상에 빠지지 않고 자기 삼을 살아 내는 비법이다. 잡념이 끼어들 새가 없도록 몸을 바지런히 움직인다. 그래서 일상에서 지지고 볶고 하는 것은 도시 사람들과 똑같지만 시골 할머니들은 큰 고민이나 걱정이 없다.
설거지하는 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그릇을 깨끗이 하게 하려는 것, 다른 하나느 설거지를 하료고 설거지를 하는 것. 자네는 설거지를 하려고 설거지를 해야 한데. 스님이 강조한 ㄱ설거지를 할 때에는 다른 생각 없이 설거지에만 마음이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설거지를 하면서 끝났을 때의 깨끗함과 해방감을 생각한다면 마치 성가신 일을 처리하듯 서둘러 그릇을 TLtRP 되면 설거지 하는 동안 ‘지금 여기’에서 알차게 살지 못한다. 그런 식 설거지는 끝난 후에 마시는 커피 한 잔 역시도 제대로 마실 수 없다. 커피 마시면서 다음 번 일을 생각하느라고 자기 손에 커피잔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일하기 위해 먹을 것을 대충 때우고 퇴근하기 위해 밀린 업무를 해치우는 게 일상다반사인 현대인들은 그렇게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서 페매느라 자기 삶의 한 순간도 알차게 살지 못한다. 번거로우면 번거오룬 대로 그 과정까지 즐기며 놓치지 않으려 해야 한다. 도시가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공간이라면 시골은 현재를 위해 느긋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시골은 자연스러운 삶의 리듬에 몸을 ㅁ밭긵 채 ‘설거지를 위한 설거지’에 몰두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내가 여기 서서 밥 짓고 그릇 닦고 있다는 사실이 그대로 삶의 기쁨이 되는 곳, 온전하게 나 자신으로 현재에 존재할 수 있는 곳, 일상이 곧 도량이려 생활이 곧 수행이 되는 곳, 큰 고민 없이 살아감 그 자체를 즐기며 음미하는 공간으로서의 시골, 욕심의 바람을 조금만 뺀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 이해력이 빠른 아이들에게 가장 위험한 게 반복학습이다. 그건 이 아이에게 독과 같다. 앎에 대한 욕구가 급격하게 떨어지게 한다. 그런데 공교육에서는 계속 반복을 한다. 학원에서도 그렇고. 그러면 이런 유형 아이들은 호기심이 확 줄어들면서 힘들어하고 방황한다. 오히려 이런 아이들은 훨씬 더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해야 한다. 열거 가지를 배우게 자극도 해 주고, 성실함은 다른 방식으로 잡아 나가야지, 똑같은 것을 반복하게만 해서 성실함을 훈련하려고 하면 안 된다.
· 구석구석을 한참 돌아보면서 내 안의 갖은 감정들이 포근히 위로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붙임성 없는 성역에도 큰 감동을 받은 나는 카페 주인장에게 말을 붙여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귀촌을 결심하고 성공에 대한 욕심보다 자신이 어릴 적에 그랬던 것처럼 아이도 시골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자라게 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시원한 등나무 그늘과 탁자, 한지 조명, 벽난로, 야외 공연장까지 대부분을 직접 만든다. 야생화들이 원래 자기 자리인 듯 자연스럽게 배치된 정원 투박한 가두들 역시 아이들과 하나씩 만들어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 야생화가 만발한 정원의 배치는 숲을 거닐며 눈에 익은 모습을 그대로 옮겨온 것일 뿐. 어떤 자만이나 허세도 찾아볼 수 없는 담백한 답이다. 그 대답에서 나는 여느 사상가들의 책 못지않게 그의 삶 자체가 큰 가르침이 되겠다는 걸 직감했다. 막연히 마음속으로만 동경하던 삶이 눈앞의 구체적 모습으로 확연히 다가왔다. 부지런히 손님을 맞고 커피를 내리고 찾아온 손님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있다. 조금이라도 짬이 나면 야외의 우리 탁자로 와서 질문에 대답해준다. 초가을 날씨에도 행여 우리가 추울까봐 장작을 올려 모닥불을 피워 주었는데 내게는 모닥불의 온기보다 그 마음이 더 따듯하게 느껴졌다. 대개는 나이 들어 은퇴하거난 도시에서 나는 일이 잘 안 될 때 시골행을 결정하는데, 선생은 제일 건강하고 직업적으로 한창 일 때 시골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을 생각해 정말 신에게 감사랄 정도로 좋아서 내려왔다. 초가집에 살았는데 중하교 다닐 때까지 전기가 안 들어와서 아이들은 에너지가 많기 때문에 마음껏 뛰어 놀아야 한다. 뭐든지 때가 있다. 나무는 어릴 때 모양을 잘 잡아주지 않으면 나중에는 교정이 힘들다.
· 볏짚이 잘 마르도록 일렬로 세우는 일을 했는데 선생이 일을 못하니까 한 아이가 “학교에서는 선생님이라 뭐든 잘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중요한 것도 못하면 어떻게 해.“ 뒤통수를 한 매 맞았다. ‘내가 입으로만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했던 거였구나. 내 말에 힘이 없었구나’ ‘더는 껍데기로 살 수 없겠다. 진짜 알맹이로 살아야겠다’ 결심했다. 도시보다 시골이 훨씬 이야기할 게 많다. 도시에서는 뭘 써지를 고민했는데 시골에서는 일상에서 글감이 넘쳐나 고민이다.
마감날 전날 후다닥 새벽에 일어나 쓴다.‘ 똥줄 효과’라고 닥치면 쓰게 된다.
· 세테르글랜탄에 합격하는 뚯밖의 행운
학교에 원서를 넣었을 때 거절당함. 수업이 스웨덴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스웨덴어를 모르면 입학이 안 된다고 해서 교수를 찾아갔는데 휴가 중이라 만날 수 없었다. 연수 마지막 날 점심 먹으로 학교 식당에 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2층에 올라가 밥 먹는데 웬 아주머니가 와서 합석해도 되겠냐고 물ㅇ러 그러시라 했다. 동양인 두 명이 있으니까 궁금해 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흥미롭게 듣더니 “물론 스웨덴어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게 공부하길 원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다시 한 번 원서를 넣어 보면 어때요?” 해서 나중에 합격되어 봤더니 그분이 학교장인 거예요. 스웨덴에는 담당 교수와 학교장이 오케이하면 입학 되는 제도가 있어 그 교장이 교수에게 이야기 한 것 같았다. 간절하니 길이 저절로 열린다. 살면서 중요한 시점이 되면 반드시 옆에서 방해는 일이 생기는 수도 있다.
· 도시는 문밖을 나서면 사고 싶은 것 투성이고 사람들도 자주 만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소비를 하게 되지만, 시골은 만남도 크게 줄고 배달 음식도 안 되니 자연스레 단출하게 살게 된다. 작업 여건을 고려하고 둘 다 조용한 공간을 좋아해 살다보니 적은 지출로도 살 수 있는 곳이 시골이다. 작업을 위해 일상을 최대한 단순하게 살고 싶다. 시 골 삶은 단순화가 가능하다. 지금으로선 잘 짓지도 못하는 농사로 하루를 어지럽히거나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다. 지금으로선 잘 짓지도 못하는 농사로 사루를 어지럽히거나 시간을 뺐기고 싶지 않다. 좋아하는 작업을 최우선으로 하고, 남는 시간에 산책하며 밤 떨어지면 밥 주워 오고 다래 열리면 다래 따 오고 대가 되어 자연에서 얻어 오는 일은 하겠지만 일부러 땅을 일구지는 않을 생각이다. 도시는 소비를 위한 공간, 시골은 창작을 위한 공간. 자연광으로 보아야 나뭇결이나 색감을 제ㅔ대로 볼 수 있다.
헤르만 세세가 노년에 “내 인생 최대의 실수는 취미를 직업으로 만든 것‘이라 했다 취미가 직업이 되면 결과에 부담도 갖고 여러 제약도 받는다. 그래서 가능하면 소중한 일을 의무감 때문에 망치지 않으려 하고 주문이 와도 만들어 놓은 것만 팔지 고객이 요사항을 나열하는 것은 만들지 않는다. 나무 깍는 일에 온통 마음 빼앗겨 전업으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동 마려울 때 동 누듯이 아이들은 본능으로 배울 때를 알고, 놀이를 통해 스스로 배워 간다. 부모가 보기엔 아이가 책상에서 공부하는 줄 알지만 아이는 책상에서 눈 속이고 무얼 해도 허락받는 상황이 되면 안 된다. 아이들이 몸으로 놀 때 진정한 배움이 일어난다. 놀면서 자기가 무얼 좋아하는지도 알고, 잘하는 것도 알게 된다. 사색도 멍 때리고 앉아있어도 뇌속에서 우주 폭발이 일어난다. 아주 어린 아이들조차 자기 삶을 스스로 고민하는 힘은 굉장히 강하다.
· 공동체를 뜻한 코뮌이란 ‘함께; ;서로“를 듯하는 cum과 선물 munus란 라틴어가 결합된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란 함께 선물을 나누는 것,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고받는 관계를 뜻한다. 마음이야말로 가장 부담ㅇ벗이, 누구나 주고받을 수 있는 선물이다. 마음은 나눈다고 줄어들지 ㅇ낳고 나눌수록 확장된다.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도시에서 외딴 섬으로 ㅈ살았던 우리가 시골에서 함께 마음 나누며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이 도시의 대안으로 시골이 지닌 희망이다. 단절된 낱낱의 개인이 진심 어린 마음으로 함께 연결될 대, 시골은 비로소 ’살기 닥 좋은 마을‘이 될 것이다.
· 시골에 있으면 교육도 못 받고 문화도 못 접할 줄 아는데 보고 싶을 땐 잠시 도시로 나가면 된다. 도시 사람들이 시골을 접하긴 힘들어도 시골 사람이 도시를 접하는 건 의외로 쉽다. 그러니 시골이 더 살기 낫다. 애들은 365일 개울에서 산에서 들에서 사루에 다섯 번씩도 놀았어. 단지 시골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이 교육이나 문화에서 멀어질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예쁨은 외적인 거지만 ‘멋’은 내적인 거야. 그 멋을 알려면 내면이 풍성해야 되고 그런 내면의 풍성함을 깨워주는 것이 문화다. 자라오면서 제일 싫었던 말이 ‘하지 마.’였는데 시골에서는 스스로 찾아서 잘한다. 소도 푹ㄹ 먹이러 다니다가 억지로 끌고 가면 안 글려가려 버티는데 뒤에서 막대기 하나 들고 “너네들이 먹어”하고 내버려 두면 알아서 잘 가는 거다. 자기들이 맛있는 풀을 더 잘 찾지. 나는 소들이 위험한 데 가려하면 툭 한번 쳐.
공동체 놀이 문화 기여로 한글을 가르치고 음악회를 열고 함께하는 여행을 계획함이 좋다.
시골학교는 경쟁이 덜하고 마음껏 뛰놀 수 있다. 자연을 느끼고 지혜를 기르는 공간으로 시골은 아이들을 더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으로 이끈다.
· 다른 사람 집 함께 고쳐 주면 집뿐 아니라 관계도 따뜻해진다. 그러면서 살기 좋은 마을이 된다. 건축 철학은 기술이 아닌 관계에 있다.
· 영화 <짝패> 명 대사 하나 “센 놈이 오래가는 줄 알았더니 오래가는 놈이 센 놈이더라.”
· 자신의 DNA 속에 있는 원시적 건강함을 자꾸 끄집어 내어야 한다. 내가 만들엇다는 성취감을 맛보면 자꾸 하게 되고 자구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늘게 된다.
집 짓기
첫재는 볕 잘 들고 바람길 피애햐 한다. 바람 지나는 길목에 집 있으면 온종일 바람 우는 소리 듣는다. 산과 산이 만나는 골짜기는 피해서 짓는 게 좋다, 창문이 조금만 열려 있어도 바람이 종일 소리를 낸다. 바람 때문에 땅의 수분이 자꾸 말라서 텃밭하기에도 좋지 않다. 그래서 옛어르신들은 바람 드는 곳에는 기운이 빠져나간다고 했다. 그 두 가지가 풍수적 기준이 다. 집 짓기 좋은 장소를 알려면 그 장소에 아침부터 밤까지 있어 보면 아침에는 볕이 어디서 들어오고, 바람은 어디서 얼마나 불고, 생활 소음은 얼마나 되고, 벌레는 얼마나 있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인터넷 항공지도를 보며 산의 위치와 물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볕이나 골짜기를 살펴보면 바람이 얼마나 불지 예측할 수 있다.
· 서양 저택 흉내 SAU 짓는 귀촌은 조형물은 멋있지만 유용하지 않고 위화감을 줄 수도 있다. 한동네에서 같이 살기 어렵다. (동네 사람을 품팔이로 허드렛일을 분탁하지도 않는다)
눈에 보이는 인테리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물과 바람이 새는 틈을 찾고 메꾸는 일이다.
· 경험해야 할 신비
시골집을 고를 때는 우선 전체 구조의 안정성과 지붕의 누수를 살펴보자. 집을 직접 고치는 것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기쁨이다. 처음부터 잘하려 하기보다 좀 못 만들면 어때라는 편안한 마음가짐이 즐거움을 오래 누리는 비결이다. 소중한 것은 보이지 않기에 집 짓기에선 기술보다는 마음이, 돈보다는 관계가 더 중요하다. 건축업자는 신중하게 고르되. 일단 선택 했으면 서로 믿고 소통하면서 함께 만들어 나간다. 우리의 삶이 다른 소중한 생명의 죽음 위에서 영위되고 있음을 잊어버린 지 오래다. 점차 생명의 기반인 자연과의 연결고리를 잃어가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나와 땅, 우리와 자연 사이의 교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귀촌이 삶의 균형을 되찾는 하나의 출발점이 된다. 그대가 누구이든 어느 날 저녁 집 밖으로 그 익숙한 곳을 떠나 한 걸음만 나서면 바로 옆에 광대무변한 공간. 우리 인생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다. 조금씩 두려움의 안개 걷히고 지금 여기에 오롯이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1책명- 갈림길에서 듣는 시골 수업(한번쯤 귀촌을 꿈꾼 당신에게).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