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길에서 삶을 묻다.
유옹 송창재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그들에게 걸기적 거리기가 싫어서 이고, 어떤 때는 그들이 내게 거추장 스럽기 때문이다.
나는 시골여행을 하면 시골 장 옆에 잠자리를 정한다.
여럿이 여행갈 때 그들의 관점과 나는 다르다. 그래서 홀로의 여행을 즐긴다
나는 자연과 사람이 주 목적이다. 시장을 가고, 시장에서 자고, 시장에서 막걸리를 마신다. 그러면 사람들의 성정을 짐작할 수가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수학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그래서 단체여행에 대한 추억도 없을 뿐더러, 묻지마 관광에서 생기는 로맨스도 알지를 못한다.
초등학교 때에는 돈이 없어 수학여행을 갈수 없었지만 몸 때문에 갈수 없다고 핑계를 대었고, 중,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이, 친구를 조금은 이해할 나이인지라 저희들이 보살핀다고 가자지만 그것이 싫어서 가질 않았다.
다녀와서 자기들끼리 찍은 여행지에서의 사진들을 돌려보면 재미있기도 했지만 유치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늦게 들어 간 대학의 졸업여행은, 교수들의 가치가 마음에 들지를 않아 여행비를 미리타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혼자서 한려수도를 돌았다.
여수에 계시는 형님 댁에서 하루 자고 섬진강을 돌아오려고 했는데, 아침에 라디오에서는 장송곡만 들려나왔다. 10. 26. 박정희 대통령이 죽은 날이었다.
나라가 어수선 하겠구나 생각하며 곧 바로 여행을 취소하고 군산으로 돌아왔다.
내게 자동차가 생긴 이후에는, 시간여유만 있으면 그 동안의 보상이라도 받을 심사로 자동차 여행을 즐겼다.
젊은 시절에는 도보여행과 자전거 하이킹이 그리 부러웠지만 언감생심이고...
그러면서 여행지에서의 사람들과 시장과 막걸리의 참 맛을 알게 되고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세 가지를 함께 갖춘 곳이 시장인이라, 그것도 시골 5일장이면 금상첨화였다.
각 지방에 여행을 다니며 마시는 막걸리는 그 지역의 인심과 닮아있다.
막걸리의 맛은 물의 맛인지라 그 곳 물의 탁도에 따라 막걸리 맛도 깔끔도가 달랐다.
그 중에는 누룩냄새가 많이 나는 진짜 막걸리를 나는 좋아하고 많이 마셨다.
막걸리 맛에 대한 추억은 언제 따로 쓸 것이다.
시골 5일장이 지금은 많이 쇠하였지만
그곳에 가면 특산물뿐이 아닌 사람들의 냄새가 너무 좋았다.
흥정에 흥정을 하고 덤에 또 덤을 얹어주며, 욕지거리 섞어 댓거리하는 사람들의 삶이 그곳에는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시장거리에서 잠을 잔다.
어느 날
그날도 역시 혼자서 남원에 갔다.
군산에서 남원이야 별로 먼 거리가 아니어서 한 바퀴 돌고 돌아올 심산이었는데 내친김에 일정을 변경하여 추어탕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구례로 넘어갔다.
역시 시장근처의 모텔에 잠자리를 정하고 시장구경을 나섰는데..
그날은 장날이 아니었다.
장거리에는 장이 서야 활기가 있지 장이 없는 날은 다른 때보다도 더 을씨년스러운 법이다.
남원에 왔다가 그냥 들른 것이라 장날이 아니었던 것이다.
허전한 김에 가게에서 막걸리 몇 병과 마른 오징어 몇 마리를 안주 겸 저녁 군것질거리로 사서 들고 오는 길이었다.
폐장되어있는 우시장거리를 돌아드는데 (우시장은 특색이 있어 보기만 하면 바로 알 수가 있다.) 어디서 희미한 장구소리가 들렸다.
잘 치는 장단장구는 아니었지만 농악가락 이었다.
그 곳을 따라 가 보았다.
대부분 장구소리가 있는 곳에는 주막을 찾을 수 있는 것이 경험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쓰러져가는 아주 허름한 주막이었다.
여기까지 왔고, 바로 이런 곳이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냥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대문도 아닌 삐걱거리는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서 주인을 찾았다. “계셔요?”
내 엄마보다도 더 늙은 할머니가 어린 아이를 업고 나왔다.
“여기 막걸리 좀 먹을 수 있을까요?”
“술은 있는디 안주가 없어서..”
“그냥 대충 먹으면 됩니다.”
“그려도 미안혀서
이것 밖에 없는디”.. 하면서 밀어놓는다.
부엌 탁자에 양재기를 덮어놓은 대접에 담긴 김치를 넣고 지진 물고기였다.
“모리가 장날잉께 오는 손님도 없고..
그랴서 안주를 안 만들었는디... 이거이라도 자실라요?
술값은 싸게 해 드릴께라.” 할머니는 미리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신다.
“그럼요. 괜찮지요. 그리고 막걸리 값 안 깎아 주셔도 되요.”ㅎㅎㅎ
할머니가 상을 차리신다.
주안상이라야 붕어 지진 대접을 내 앞에 밀어주고 막걸리 사발만 가져오면 되는 것이다.
“웨서 오셨소? 여기 분이 아니신 거 같은디?”
“예, 군산에서 왔어요.”
“군산이 어디여? 예서 머요?”
“예, 구례에서 쭉 올라가면 전북 서해 바다 쪽에 있어요.”
“예, 여기는 장날이면 사람이 많이 오는디, 워디라고 혀도 난 몰러서 건성으로 대답혀요.”ㅎㅎㅎ
“그러시지요.”ㅎㅎㅎ
“술은 장모가 따러도 여자가 딸면 더 맛있다는디 내가 한잔 쳐드릴까라?”ㅎㅎ
“그러세요.”
나는 건성으로 한잔을 마시며, 아까부터 할머니의 등에 업혀서 칭얼거리는 아이에게 자꾸 시선이 간다.
그런데 칭얼거리는 소리는 소리가 아니고 말이었다.
“엄마, 엄마.”
할머니에게 자꾸 엄마라 부른다.
“저, 할머니 애기가 몇 살이에요?”
“인제 세 살 되요.”
“왜 할머니에게 자꾸 엄마라고 하네요?” 그랬더니 할머니는 긴 한숨을 쉬신다.
그런데 그 한숨에 아까부터 섞여서 들리는 장구소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할머니, 장구는 누가 치셔요?”
“예, 우리 동무가 놀러 와서 치고 있지라.”
“할머니도 장구 치셔요?”
“찌끔 소시적에 풍물귀경 따라 댕길 때 조금 쳤지라.”
“할머니 친구 분도 술 하시면 함께 하시게 나오시라고 하시면 안 될까요?”
“그라면 좋아 할 끼라요.”
주막 주인 할머니보다 허리가 더 굽은 할머니가 나오셨다.
우리 셋은 옛날 장거리의 황금시대에 지리산에서 나오는 맛있고 싱싱한 나물이야기를 안주삼아 막걸리를 나누어 마셨다.
그런데 할머니 등에 업혀 잠들었던 아기가 “엄마, 엄마”하고 칭얼댄다.
내가 오징어를 한 마리 주었더니 할머니가 다리를 떼어 주었고, 그 아기는 그것을 빨아 먹느라고 조용했다.
“할머니, 힘드시는데 아기를 계속 업고 계시네요? 어디다 잠깐 눕혀 놓으시지.”
“야는 내 등짝에서 떨궈지면 죽는 줄 아는 애라서. 잠잘 때만 옆에 끼고 자지라.”
”왜? 엄마 아빠는요?“
할머니는 아무 말이 없고 친구 할머니가 대신 말한다.
“애미는 도망갔고, 애비는 어떤 년 끼고 어디서 사는지 코빼기도 볼 수가 없다요.”
“아~~~ 왜요?”
“애비란 놈이 노가다를 댕기다가, 워디서 한나 끼고 온 년이 애비가 벌이가 안 좋다고 새끼 까질러 놓고는 어떤 놈과 배가 맞었는지 없어져 버렸소.
그라서 요것도 지 애미 얼굴도 익히지 못허고 지 할미를 엄마 엄마하고 안 하요”.......
“나도 인제 나이 많아 곧 뒈질텐디, 이것 워찌헐까 모르것소.”
막걸리 두어잔에 붉으레하게 젖은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신다.
그랬구나. 그냥 혼자 짐작이나 하고 말걸~~
“할머니, 그런 얘기 그만하고 장구나 한번 쳐 보시오.”
친구 할머니가 쳐 주는 장구가락 속에서 우리 셋의 아니 아이까지 우리 넷의 눈물이 베어 나온다.
취기와 안쓰러움에 더 이상 마시기가 버거워 일어나니
“모리가 장날인디 나물이 겁나 나올틴디. 나물 자시고 가면 안돼요?” 하신다.
“아. 애들 수업이 있어서 내일 아침에 올라가야 해요.”
“이곳 나물들 겁나 맛있는디. 나도 나물 잘 무친다고 근동에서는 알어주고....” ^^
“어떻게 해요. 다음에는 장날에 맞추어서 또 올께요.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계시고 있으세요.”
그리고 헤어졌다.
할머니 등에 업혀있던 계집애는 이제 다 큰 처녀가 되어있을 텐데.... 잘 자랐을까?
이제 할머니의 나물 맛은 영원히 못 볼 것이고..
나도 무던한 놈이다. 한 번 더 다녀오지....
요즘도 길을 가다 그 만한 아이를 보면, 엄마 얼굴도 모르는 그 애가 생각이 난다.
엄마는 그 애의 얼굴을 기억할까?
2019. 11. 10.
첫댓글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휴일 시원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더위 건강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