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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향 고도(古都) 강릉을 가다
여름휴가 하면 무조건 강원도로 떠나던 시절이 있었다. 경포해수욕장에 추억 한 점 남겨두지 않은 청춘이 있을까. 본격적인 휴가철에 앞서 자전거로 다녀온 강릉은 또 다른 모습이었다. 오며가며 소나무를 느낄 수 있는 여유, 강원도를 보는 눈이 달라지는 나이는 과연 언제부터일까. (편집자 주) 수도권의 새벽은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지만 동해안 강릉 지역은 맑을 거라는 예보를 믿고 집을 나섰다. 고양터미널까지 자동차를 몰고 간 다음 그 안에 실은 자전거만 꺼내 들고 강릉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횡성 휴게소에 도착해 잠을 깨보니 비가 그쳐서 안도했다.
버스가 다시 강릉을 향하는 동안 대관령 초입의 횡계가 나오길 기다리며 왼쪽을 주시했다. 군에 간 아들이 복무하는 부대가 근처의 황병산에 있다. 아들이 근처 어딘가를 걸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횡계를 두리번거렸지만 버스는 속절없이 스치듯 달려갈 뿐이었다. 잠시 터널을 지나는가 싶더니 벌써 강릉이다. 새로 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아흔아홉 구비라는 대관령 고개를 힘겹게 넘다 보면 차멀미를 하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그런 통과의례가 없어졌다. 멀미가 좀 괴롭긴 해도 대관령 옛길에서 보는 강릉과 동해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김홍도가 대관령에서 본 강릉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 있을 정도로 탁 트인 시야 속에 나타나는 풍경이 일품이다.
특히 강릉은 소나무 숲이 잘 보존된 도시다. 소나무 숲을 빼놓고는 강릉이 표현되지 않는다. 게다가 수많은 유적과 고택들이 소나무 숲과 함께하는 강릉은 정말 매력적인 도시다. 강원도라는 지명도 강릉과 원주에서 따온 것이다. 도청 소재지는 춘천이지만 일제 강점기 때부터 발전된 곳이어서 강원도의 대표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강원도의 얼굴은 역시 강릉이 아닐까. 강릉미술관 유감
그 유명한 단오제 기간이기에 그에 걸맞은 기획전시가 있을 법하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의아하다. 왜 미술관을 만들었는지 그 이유를 묻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문화에 목말라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건물 속의 미술관이나 공연장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저잣거리에서 보는 가공되지 않은 것을 더 중시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왕 설립한 미술관이라면 제대로 운영하고 관리해서 문화 복지 및 관광 차원에서 무언가 생산을 유발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영동 지방의 중심지로서 손색없는 운영의 묘가 절실했던 것이다. 일본 세토 내해(瀨戶內海)의 볼품없는 섬 나오시마(直島)에 미술관을 설립해 매년 2백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는 사례는 그야말로 먼 나라 이야기인 모양이다.
보물 제165호로서, 본채 없이 별당만 남아 있는 것이 아쉽지만 500년 넘게 보존된 전통가옥 가운데서도 별당 건축의 귀중한 유적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율곡 선생의 본가는 경기도 파주지만 사임당이 출산을 하기 위해 강릉으로 갔던 것이다.
신사임당의 부친 신명화는 사화를 피해 출사를 하지 않았지만 딸의 총명함과 비범한 재능을 발견하고서 학문과 그림 등의 지, 덕, 예 교육을 시켰던 것이 그대로 율곡에게 전해져 대석학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 된 것이다. 강릉이 배출한 또 한 명의 여류 문인 허난설헌(허균의 누이)도 우리 국문학사에서 손꼽는 문재였던 것을 보면 강릉의 사대부들은 타 지역과 달리 딸에게도 글공부를 시키는 진보적인 풍토가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1 관동팔경의 대표인 경포대. 2 경포대에서 바라본 경포호반. 3 복원된 낙산사 원통보전. 4 강릉 솔향의 상징 소나무. 5 초현실적인 환상을 주는 휴휴암. 6 허균과 허난설헌의 생가. 경포호반 경포호반으로 가기 전에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선교장(船橋莊)이다. 오죽헌에서 북쪽으로 500m 정도 가다 경포호 방향으로 우회전해 1km 정도 가면 참으로 근사한 고택 선교장이 나온다. 활래정이라는 정자를 받치고 있는 연못을 지나면 솟을대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집주인의 지체가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효령대군 11대손 이내번이 집터를 잡아 짓기 시작한 선교장은 이후 10대에 걸쳐 계속 증·개축을 해오는 가운데 99칸으로 된 전형적인 사대부 최상층 가옥으로 손꼽힌다. 그림 같은 송림을 배경으로 한 기와집들이야말로 품격과 아취가 넘치는 우리 건축미학의 수준을 확인시켜주는 고택이다.
여기엔 '열화당(悅話堂)'이라는 구한말에 지은 사랑채가 있는데, 바로 열화당 출판사(대표 이기웅)의 모태가 된 곳으로 알려졌다. 구한말에 동진학교를 설립한 선각자답게 학문적인 토론을 나눈 장소도 별도로 마련했던 점이 그 가문의 지성적 면모를 말해주고 있다.
경포호반에 있으면서도 숲에 가려 그 전모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높은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호수와 시원한 바람이 여행자에게 더없는 행복감을 선사해주었다. 이곳에서는 외국인들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도 정자가 있는 곳은 일단 풍광이 아름답다는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30여 년 만에 다시 올라본 경포대다. 주변 환경이 변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딘지 모르게 호수의 모양도 달라져 있었다. 동해안 호수들은 석호로 변형되는 것이 불가피한 자연현상이라지만 변해도 정말 많이 변했다.
맞은편 초당 지역에 조선시대의 문호 허균과 허난설헌을 배출한 생가와 기념관이 있기 때문이다. 경포호반을 따라 달리는 길에 작렬하는 태양과 시원하게 부는 바닷바람, 이 모두가 한여름 자전거 여행의 벗이자 활력소다.
호숫가에는 일러스트 조각들이 놓여 있었는데 해학이 넘치는 작품들이기는 하나 사색을 즐기는 이들에겐 다소 산만하게 보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호수를 벗어나 초당의 끝없이 펼쳐지는 적송 숲에 당도했다. 어떻게 도시에 이런 소나무 숲이 잘 보존될 수 있었는지 그저 신기할 뿐이다.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질서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과 내면의 복잡한 심경을 승화하고 토로하는 시작들이 충격적이다. 안타깝게도 스물일곱 살에 요절해 그의 문학세계가 미처 결실을 보지 못하고, 천재적 재능만을 세상에 알리는 것으로 그친 비운의 인물이다.
다행히 문학의 동지였던 남동생 균이 213수의 유고를 수습해 유성룡의 서문을 받고 이것을 입국한 명나라 문인들에게 보여주어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출간되었으며 이후 조선, 일본에서 연이어 그의 문집이 출간됨으로써 사후에야 국제적으로 필명을 떨친 인사가 되었던 것이다.
해수욕장들마다 개장 준비 중이나 일찍 찾아온 더위를 피하려는 많은 인파들로 붐비고 있었다. 동해안의 풍경들 가운데 으뜸가는 것은 역시 소나무 숲이다. 소나무 숲을 따라 환경 친화적으로 조성된 자전거도로를 달리는 상쾌한 기분을 누가 알까.
이번 여행은 소나무로 시작해서 소나무로 마치는 여행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친근감이 생기는 소나무. 인위적인 직선보다는 자연스러운 곡선이 좋아지면서 소나무가 좋아졌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의 이치를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1989년부터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는 한편 2006년부터 인천-서울, 일산-서울 장거리 '자전거 출근'과 함께 자전거 문화와 미술을 접목한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해오고 있다. 역서 「존 듀이 경험으로서의 예술」(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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