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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도초등학교 총동문회 원문보기 글쓴이: 56이세진
봄과 겨울을 넘나들다 – 용두산,석기암,감악산,천삼산
1.천삼산 지난 676.6m봉에서 조망, 멀리 가운데 왼쪽은 삼봉산
산의 웅대한 모습과 정상과의 대결, 여기서 얻은 감정과 기억들 때문에 나는 산을 사랑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높은 곳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자유와 생의 환희를 더욱 사랑했다. 산에서 하루를 사는 것같이 살다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잠시 피했던 일상생활에 염증이 되살아나 견디기 어려웠다. 타고난 성격과 인간사회의 벌칙 사이에서
일어나는 반항과 갈등이 마음을 괴롭히고 슬프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운 정신상태에서 모험에 대한 힘과
동기를 얻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내가 운이 좋았다거나 처지가 유리해서 힘들이지 않고 목적을 달성했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돈도 없고 가난했지만 산에 대한 감격과 억제할 수 없는 본능이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어려서부터 단련
해 온 건강한 육체와 함께 소중한 것이다. 등반기술은 혼자 배울 수밖에 없었지만, 미친 듯한 방법과 실패를 통해
터득해 나갔다.
―― 발터 보나티(Walter Bonatti, 1930~2011), 『내 생애의 산들(Berge Meines Lebens)』 ‘이탈리아 K2 원정
1954년’(김영도 옮김, 조선매거진, 2012)에서
▶ 산행일시 : 2026년 2월 15일(일), 오전에는 연무, 오후에 차차 갬
▶ 산행인원 : 2명(광인, 악수)
▶ 산행코스 : 용담사 입구,용두산,송한재,860m봉,오미재,피재점,석기암,902.4m봉,감악산,848m봉,816m봉,
천삼산,676.6m봉,658m봉,삼봉사,신림역,버스정류장
▶ 산행거리 : 도상 18.0km
▶ 산행시간 : 10시간 22분(07 : 29 ~ 17 : 51)
▶ 갈 때 : 상봉역에서 KTX 열차 타고 제천역에 가서, 택시 타고 용담사 입구로 감(택시요금 : 10,400원)
▶ 올 때 : 신림역 버스정류장에서 22번 시내버스 타고 원주 남부종합시장으로 가서, 택시 타고 원주역으로 가서
(택시요금 : 7,800원), KTX 열차 타고 청량리로 옴
▶ 구간별 시간
05 : 46 – 상봉역
06 : 46 – 제천역, 아침요기
07 : 29 – 용담사(龍潭寺) 입구, 산행시작
08 : 31 – 용두산(龍頭山, △870.1m)
08 : 57 – 송한재(松寒-)
09 : 16 – 859.9m봉, 무인산불감시시스템
09 : 35 – 오미재(五味-)
10 : 11 – 피재점(避-岾, 784m)
11 : 14 – 석기암(石機巖, △902.9m)
11 : 42 – 902.4m봉
13 : 41 – 감악산(紺岳山, 956.4m)
14 : 45 – 848.4m봉
14 : 56 – 816.3m봉, 영월기맥 분기봉
15 : 53 – 천삼산(天三山, △817.5m)
16 : 40 - 676.6m봉
16 : 54 – 658m봉
17 : 27 – 삼봉사(三峰寺)
17 : 51 - 신림역 버스정류장, 산행종료, 버스 출발(18 : 15)
18 : 46 – 원주 남부종합시장
19 : 00 – 원주역, 열차 출발(19 : 13)
20 : 15 - 청량리역
2. 산행지도
▶ 용두산(龍頭山, △870.1m)
우리는 3주전에 제천 가는 열차표를 예매했다. 오늘 청량리역에서 상봉역과 제천 등지를 경유하여 부전 가는 05시
40분 첫 열차는 만원이다. 웬일인가 했더니 설 연휴라서 고향 가는 사람들이다.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고향은 가서
는 안 될 곳, 다만 그리워해야만 하는 곳’이라고. 내 지금은 안타깝게도 그렇게 돼버렸다. 고향을 떠난 햇수를 굳이
헤아려 보니 56년이다. 고향에는 까마득한 내 소년시절만 있다.
밤 열차다. 차창 밖은 가로등만 명멸하다 곧 침묵 속이다. 열차가 팔당을 지나 북한강을 건너는 양수철교를 지날 때
김기림의 시 ‘북행열차’ 한 구절을 생각했다. 그러할까? “移民들을 태운 시커먼 기차가 갑자기 뛰어들었음으로 명상
을 주물르고 있던 강철의 철학자인 철교가 깜짝 놀라서 투덜거립니다.” 조용하다. 미동도 않는다. 제천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탄다. 우리는 꼭두새벽부터 서둘렀기 아침을 거르고 왔다.
제천역 앞에서 장칼국수를 먹으려고 했는데 문을 열지 않았다. 그 옆의 불 밝힌 우동집이 붐빈다. 좁다랗고 몇 개
안 되는 식탁이라 손님들이 줄선다. 예전에 호남행 밤 열차가 대전역에서 잠시 정차할 때 먹곤 하던 우동 맛이다.
제천에서 용두산을 가기로는 처음이다. 예전에 영춘기맥 종주할 때 가창산, 왕박산 넘어 용두산을 지나간 적은 있
다. 오늘은 용두산을 그 들머리인 용담사 입구에서 간다.
택시 탄다. 택시는 의림지 지나 제2의림지(비룡담) 바로 위 주차장에서 멈춘다. 용담사 입구이기는 하지만 아스팔트
포장도로 따라 한참 더 올라갈 수 있는데, 아마 약간의 오르막이라 블랙아이스를 염려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다. 제천의 아침기온은 서울과는 딴판이다. 광인 님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더니 이아침 서울은 영상 7.5도였는데,
여기는 영하 3도라고 한다. 산행복장을 초봄모드로 바꾼 게 너무 이른지 썰렁하다.
용담사 갈림길. 용담사를 경유하는 코스는 왼쪽 용담골로 가고, 오른쪽은 곧바로 산기슭을 오른다. 용담사를 들르고
도 싶지만 그 코스는 용두산까지 1.95km이고, 오른쪽 산기슭 코스는 2.18km이라서 가급적이면 더 먼 코스를 택한
다. 길 좋다. 산허리 길게 돌아 능선에 올라선다. 가창산, 왕박산을 넘어오는 영춘기맥이기도 하다. 용담사(0.5km)
에서 오는 길과 만나고 등로는 한층 탄탄해진다. 681m봉은 직등하지 않고, 그 왼쪽 사면의 긴 데크계단을 오른다.
박노해 시인의 ‘페이스 북’에서 본 짧은 시가 떠오른다. 산행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해 아래 새로운 건 없다지만
인생은 걸음마다 최초의 날들
미지와 신비의 떨림을 품고
믿음과 분투로 나아가는 것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다. 소나무가 재목으로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을 제멋대로 자란 소나무다. 송이가 이런 데를 좋
아하지만 워낙 많은 오가는 사람들의 눈을 타서 남아나지 못할 것. 오늘 이른 아침에 많은 사람들과 마주친다. 우리
는 중무장했지만 그들은 가벼운 차림으로 용두산을 다녀오는 사람들이다. 참 부지런한 제천사람들이다. 수인사
나누다 보니 입안에 침이 다 밭을 지경이다. 봉봉을 직등하지 않고 좌우사면으로 돌아 넘는다. 등로가 그렇게 났다.
고도를 높이자 응달진 데는 눈길이거나 빙판이다. 아이젠을 차고 내려오는 사람도 있다. 애써 마른 땅 골라 딛는다.
긴 데크계단이 나오고 그 끝이 용두산 정상이다. 너른 헬기장이고 광장이다. 북쪽 가장자리에 정상 표지석과 삼각점
이 있다. 삼각점은 ‘제천 305, 77.6 건설부’이다. 남쪽에는 데크전망대가 있다. 연무가 심하여 지척도 캄캄하다.
산꾼이 날씨를 탓하랴마는 이 짙은 연무가 오후 늦게 갤 거라고 하니 아쉽다.
용두산은 제천의 진산(鎭山)으로 산세가 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한다. 제천 시내와 의림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
는 조망 명소이며, 특히 일출과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3. 용두산 정상
4. 송한재 고갯마루
5. 송한재 주변 풍경
7. 무인산불감시시스템이 있는 859.9m봉에서 바라본 용두산
8. 석기암 가는 길
9. 사삼(더덕) 건화
10. 석기암 정상, 사방 짙은 연무로 가렸다.
▶ 석기암(石機巖, △902.9m)
감악산 10km. 송한재 0.8km. 송한재를 향한다. 서진한다. 줄곧 내리막이다. 용두산을 오를 때는 봄날이었는데
내릴 때는 겨울이다. 왼발은 봄을, 오른발은 겨울을 걷는다. 용두산을 넘으니 오가는 사람이 없다. 한갓진 숲길이다.
땅 굽어 마른 데 고르다보니 송한재다. 송한재는 좌우로 임도가 넘는다. 고갯마루는 넓은 터를 조성하여 간이운동시
설과 산자락에 정자가 있다. AI에게 송한재의 지명유래를 물어보았다. 물어볼 때마다 답이 약간씩 다르다. 그중
그럴듯한 답을 골랐다.
“일설에는 본래 이 지역은 철(鐵) 곧 쇠가 났다고 하여 ‘소난이’ 또는 ‘솔안’이라 불렀습니다. ‘쇠’가 나는 곳이라는
뜻이 시간이 흐르면서 한자로 표기되는 과정에서 소나무 ‘송(松)’ 자와 차가울 ‘한(寒)’ 자를 써서 ‘송한(松寒)’이 되
었다고 합니다. 다른 설로는 송학면 송한리 마을 주변에 소나무 숲이 울창하여 큰 가뭄이나 수해가 없다는 의미에서
송한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능선에 부는 바람은 차디차다. 이곳 역시 하늘 가린 숲속 길이다. 어차피 연무 자욱하여
조망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낙엽이 복병이다. 그 밑은 땡땡 언 얼음장이라 함부로 밟다가는 여지없이 넉장거리한
다. 숨 가쁘게 올라 무인산불감시시스템이 있는 860m봉이다. 누군가 이정표 기둥에 ‘수리봉’이라고 크게 새겨놓았
다. 날이 흐릿하여 방금 지나온 건너편 용두산이 먼 산으로 보인다. 석기암 3.8km. 오미재 1.2km. 방향 틀어 남서
진 한다.
이곳도 용두산 위수지역이다. 등로가 잘 났다. 주춤주춤 한 피치 내리면 Y자 갈림길이 나오고 우리는 오른쪽으로
간다. 뚝뚝 떨어지는 내리막이다. 산허리 도는 임도가 보인다. 절개지 오른쪽에 내리는 계단이 있다. 임도에서 약간
더 내리면 ╋자 갈림길 안부인 오미재이다. 오미자가 많이 자생하여 ‘오미재’라고도 하고, 마을의 다섯 골짜기에서
나는 물맛이 저마다 달라 ‘다섯 가지 맛(五味)’이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오른쪽 사면 아래 오미천
따라 내리면 오미리 마을이 나온다.
오르고 내리는 봉봉 굴곡이 심하다. 피재점 1.1km. 가파른 한 피치 오른 670m봉 노송 아래에서 잠시 휴식한다.
역시 탁주는 대작이 맛 난다. 피재점은 두 피치로 오른다. 땀난다. 남방셔츠 팔뚝 걷어붙인다. 피재점. 산행교통의
요충지이다. 왼쪽 산 아래 대로가 지나는 피재는 용두산이나 감악산을 오르내리는 주요 들날머리이다. 피재점(避-
岾)의 ‘점(岾)’은 고개나 재를 뜻한다. 천주교 박해 당시 신자들이 관군을 피해 산속으로 숨어들어 이 고개(산)를 넘
었다고 한다.
이제 비로소 석기암 품에 든다. 762m봉 넘어 못재 지나고 잔봉우리 넘고 넘는다. 오를 때는 길게 내릴 때는 잠깐이
다. 수북한 낙엽 지친다. 755m봉 넘고 이정표는 왼쪽 사면을 길게 돌아서 석기암을 오를 것을 안내한다. 그러나
전에도 직등했다. 직등한다. 암벽과 맞닥뜨린다. 오른쪽 설벽을 내렸다가 올라야 하는데 설벽을 내리는 고정밧줄이
눈 속에 묻혔다. 망설이다가 뒤돌아가는 것도 용기려니 하고 돌아선다. 왼쪽 사면을 돌아 오르는 것도 까다롭다.
얼기설기 매달린 고정자일 붙들고 슬랩 한 차례 올라 야트막한 안부다.
오른쪽 능선 한 피치 오르면 석기암 정상이다. 충청북도 표준인 오석의 단정한 정상 표지석이 있고, 그 옆의 삼각점
은 2등이다. 제천 23, 2004 재설. 아, 아쉽다. 석기암이 빼어난 경점인데 오늘은 여전히 짙은 연무로 가려 무망이다.
언제 여기를 다시 올 날이 있을까? 금수산, 월악산, 도솔봉, 대미산, 완택산, 배거리산 등등이 망연히 아른거린다.
11. 나뭇가지 사이로 멀리 감악산이 보인다
12. 감악산
15. 앞은 방금 지나온 능선, 멀리 가운데는 동산(?)
16. 앞은 감악산 동벽
17. 감악산 정상에서 남쪽 조망
18. 감악산 정상에서 남서쪽 조망, 앞 능선 뒤가 삼봉사 뒷산이다
▶ 감악산(紺岳山, 956.4m), 천삼산(天三山, △817.5m)
석기암 내린 안부에서 이른 점심밥 먹는다. 김밥 한 줄이다. 갈 길이 멀어 점심밥 먹는 이 시간도 아깝다. 북사면
돌 때는 눈길이다. 게으르기도 하지만 오르막이라 아이젠은 차지 않는다. 눈길 지쳐 한 피치 오르면 902.4m봉이다.
키 큰 나무숲으로 사방 가렸다. 서진한다. 내리막이 조심스럽다. 길게 내렸다가 815m봉에서 멈칫하고 다시 길게
내리면 ╋자 갈림길 안부다. 여기가 봄날이면 기화이초의 산상화원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른쪽 요부골을 ‘妖婦谷’으
로 이해했다. 그런데 요부골은 산줄기가 마치 사람의 허리(요부)처럼 잘록하게 생겼다고 하여 ‘腰部골’이라 부른다
한다.
드디어 감악산 품에 든다. 한동안은 완만한 오르막이었으나 이내 바윗길을 오르고 바위 돌아 넘고 슬랩을 기어오르
고, 전에도 이랬던가 싶게 등로가 사나워진다. 허름한 사다리가 있던 직벽구간은 데크계단으로 덮어버려 짜릿한 손
맛 볼 수 없어 서운하다. 데크계단 다 오르면 데크전망대이다. 연무가 걷히려는 조짐으로 방금 지나온 석기암 연릉
이 보인다. 배낭 벗어놓고 휴식한다. 북쪽 설사면을 돌 때는 선답의 언 발자국이 아니라 눈밭 지친다.
861m봉을 넘으면 등로는 부드러워진다. 또한 오른쪽 절벽 가까이 다가가면 이 산을 감악산이라 부르게 한 검푸르
고 장대한 암벽이 바로 눈앞에 보인다. 백련사(0.8km) 갈림길 지나고 0.2km 더 오르면 감악산 정상이다. 감악산
정상을 불과 몇 미터 남겨두고 가파른 슬랩은 얼음으로 살짝 코팅되었다. 고정밧줄이 없다. 한 발 한 발 엉금엉금
긴다. 정상 널찍한 암반은 사방이 훤히 트이는 드문 경점이다. 주변의 첩첩 산이 환영(幻影)처럼 보인다. 이만하기
얼마나 다행인가. 연무를 쓸어내려는 해의 분투 덕분이다.
감악산 정상에서 젊은 부부 등산객을 만난다. 오늘 산행 중 용두산을 지나서 산행을 마칠 때까지 만난 유일한 등산
객이다. 그들은 강아지를 데리고 백련사(1.0km)에서 올랐다고 한다.
아이젠을 찬다. 우선 감악산 북벽을 돌아 넘는 눈길과 빙판(고정자일을 붙들어 돌지만)에 더하여 내리막의 울퉁불퉁
한 돌길 사이 빙판이 까다롭다. 발걸음이 아주 부드럽고 가볍다. 감악산 북쪽 연봉을 곁눈질하며 줄달음한다.
╋자 갈림길 안부 왼쪽은 백련사를 오간다. 우리는 직진 직등한다.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 기분이다. 낙엽 수북
한 등로는 인적이 흐릿하다. 아이젠은 낙엽에도 효과 만점이다. 오른쪽으로 고개 돌리면 감악산 연봉이 감질나게
보인다. 암봉에 올라도 소나무에 가린다. 848m봉은 왼쪽 슬랩으로 낡은 고정밧줄 조심스럽게 붙들고 오른다.
이 다음 816m봉은 영춘기맥 분기봉이다. 북쪽 멀리 매봉산 연릉이 장성처럼 보인다.
우리는 영춘기맥을 벗어나 남서진 한다. 여기서 길을 잠시 헤맨다. 무심코 남진하여 내리는데 갑자기 주위가 소연하
여 새삼스레 지도를 꺼내 살피니 잘못 가고 있는 게 아닌가. 뒤돌아 올라 산 사면을 길게 돌아 남서진 한다. 잔 봉우
리 넘고 넘는다. 오르막은 눈길 겨울이고 내리막은 눈 녹은 봄날이다. 824m봉을 넘고 조금 더 가면 천삼산이다.
삼각점은 ‘제천 303, 2004 복구’이다. 누군가 바닥 흰색 사각 판에 ‘전설의 송락산’이라 써놓았다.
나는 천삼산의 지명유래를 천종산삼이 있어서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사삼이 자주 보인다), AI는 전혀 다른 답
을 내놓는다. 하늘의 세 가지 신령스러운 보물이 있는 즉, 하늘의 기운인 천(天), 땅의 기운인 지(地), 사람의 기운인
인(人)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명당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설과 산의 줄기가 세 갈래로 뚜렷하게
나뉘어 뻗어 내려가는 모습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19. 감악산 정상에서 남서쪽 조망
22. 감악산 정상
23. 멀리는 영춘기맥 매봉산
24. 감악산 북쪽 연봉
26. 맨 오른쪽은 백운산, 멀리 가운데는 삼봉산
이때만 해도 산행이 곧 끝날 것이라 시간이 너무 많이 남을 것을 걱정했다. 서울 가는 열차시간을 앞당길까, 아니면
원주 시내에서 오늘 석기암과 천삼산 오를 때 언 땅에서 어렵게 조각(彫刻)하여 데려온 덕순이를 진하게 풀어 저녁
을 오래 즐길까 하는 행복한 고민을 했다. 그런데 이후 돌아가는 상황이 녹록하지 않았다. 결과를 미리 말하자면 열
차시간에 맞추려고 최대한 서둘러 원주역에 13분을 남기고 도착했으니 쫄쫄 굶어 주린 배를 안고 서울로 가야 했다.
오후 4시 넘어 연무는 얼추 걷혔다. 백운산과 구학산, 멀리 삼봉산도 알아볼 수 있다. 천삼산을 넘어 되똑한 침봉인
천정바위는 오른쪽 사면으로 돌아 넘는다. 직등하는 슬랩에 고정밧줄이 달려있지만 거기에 오른다 한들 별다른
조망이 트일 것 같지 않다는 핑계를 댄다. 676.6m봉 가는 길도 멀다. 더구나 만리발청향(萬里發淸香) 덕순이가
너 죽고 나 죽자 하고 발길을 붙든다. 언 땅에서 덕순이를 조각하려면 나 역시 죽어난다. 676.6m봉은 오른쪽 사면
을 돌았으나 그 정상에서 조망이 궁금하다.
배낭 벗어놓고 슬랩을 기어이 기어오른다. 오후 들어 내가 좋아하는 가장 멋진 조망이다. 뒤돌아 등로에 내려서니
손이 허전하다. 스틱을 정상에 놓고 왔다. 다시 676.6m봉을 오른다. 잠시 멈췄던 자리를 떠날 때는 반드시 둘러보
자 하고 다짐하면서도 그런 다짐을 번번이 잊고 만다. 이 다음 658m봉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
트이다. 대슬랩을 두 차례 고정밧줄 잡고 오른다. 서쪽 절벽 가까이 다가가면 조망이 훤히 트인다. 문제는 658m봉
내리막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는 점이다. 가파른 슬랩과 협곡을 밧줄 잡고도 설설 내린다. 아이젠이 슬랩을 내리는
데는 걸리적거려 벗는다.
이런 험로에서는 시간이 빨리도 간다. 삼봉사 가는 길은 송전탑 지나고 안부에서 오른쪽 사면으로 내린다. 잘 났다.
반갑다. 완만한 마른 풀숲 내리막이다. 쭉쭉 내린다. 대로와 만나고 삼봉사다. 三峰寺일 것. 뒷산이 그러하다. 삼봉
사에 들른다. 대웅전과 요사채만 있다. 대웅전 주련을 얻어온다. 나옹선사(懶翁禪師, 1320~1376)의 게송이라고 한다.
阿彌陀佛在何方 아미타 부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着得心頭切莫忘 이 생각을 가슴에 품고 잊지 말라
念到念窮無念處 생각하다 또 생각하여 생각이 없는 곳에 이르면
六門常放紫金光 육근의 문에서 항상 찬연한 빛이 나오리라
신림역 가는 길. 아스팔트 포장한 대로다. 잰걸음 한다. 삼봉사 뒷산인 식겁한 686m봉을 뒤돌아보니 부디 잘 가시
라 손짓 하는 것 같다. 잘 계시라 머리 숙여 읍한다. 중앙고속도로 아래 굴다리 지나면 신림역이다. 지금은 건물이
폐허로 남은 폐역이다. 철길도 뜯어냈다. 해거름 모색이라 더욱 쓸쓸하다. 농로 지나고 마을 길 지나 신림역 버스정
류장이다. 25분 가까이 기다린 구학리 종점에서 회차한 22번 버스는 우리 둘만을 태우고서 쾌속으로 달린다.
원주 시내에 들어서야 몇 사람이 타고 내린다. 버스 노선으로는 남부종합시장이 택시가 잘 잡히고, 원주역이 가장
가깝다. 숨 가쁘게 택시로 갈아탄다. 원주역에 도착하니 열차 출발시각을 겨우 13분 남겼다. 화장실에 다녀오고 2층
승강장으로 이동하기 바쁘다.
27. 감악산 남쪽 산줄기
28. 맨 오른쪽은 백운산, 그 앞은 벼락바위봉
30. 맨 뒤 가운데는 삼봉산
31. 맨 뒤 왼쪽은 천등산(?)
32. 멀리 가운데는 동산(?)
33. 658m봉에서 남쪽 조망, 아래는 중앙고속도로
34. 중간 오른쪽은 구학산(?), 그 능선 왼쪽 끄트머리는 주론산
35. 658m봉에서 남쪽 조망, 아래는 중앙고속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