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해전사 해남 울돌목(명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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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2.16. 23:59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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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울돌목(명량)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와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사이의 해협.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이 왜군의 선단과 싸워 승전한 명량해전의 격전지이다. 화원반도(花源半島)와의 사이에 놓인 명량해협의 폭은 가장 좁은 부분이 293m이며, 조류는 사리〔大潮〕때의 유속이 11.5노트이고, 수심은 19m이다. 명량해전은 1597년(선조 30) 9월 16일 어란포(於蘭浦)를 출발한 왜선 133척을 맞아 12척의 병선으로 필사의 전투를 벌여 31척의 왜선을 불사르고 적의 함대를 물러나게 한 전투이다.
그 당시에는 사리 때여서 물살이 빠른 데다 적이 침입할 때 북서류하던 해류가 점차 남동류로 바뀌어 아군에게 유리하였다. 이 해전은 정유재란을 일으킨 왜군이 한강유역으로 침입하는 길목을 차단하였다는 의미를 갖는다. 명량의 지명 유래는 물살이 빠르고 소리가 요란하여 바닷목이 우는 것 같다고 하여 ‘울돌목’이라 한 데서 나왔다. 조선시대에는 북쪽에 녹진(鹿津)이 있어 진도와 우수영(右水營)을 연결하였고, 남쪽의 벽파진(碧波津)은 삼지원(三枝院)을 통하여 해남(海南)과 이어졌다. 당시에는 벽파진에 벽파정(碧波亭)이 있었고, 육지와의 연결은 주로 벽파진 나루를 이용하였다. 현재 명량에는 등대가 있다.
• 출처 : 진도군청 홈페이지
사진
진도 명량대첩 재현행사
임진왜란 당시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의 공을 기념하기 위한 재현행사의 모습이다.
진도 명량대첩 재현행사
임진왜란 당시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의 공을 기념하기 위한 재현행사의 모습이다.
진도 명량대첩 재현행사
임진왜란 당시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의 공을 기념하기 위한 재현행사의 모습이다.
해남 명량대첩비각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門內面) 학동리(鶴洞里)에 있는 조선시대 명량대첩 기념비이다.
해남 명량대첩비 제액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門內面) 학동리(鶴洞里)에 있는 조선시대 명량대첩 기념비이다.
해남 명량대첩비 안내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門內面) 학동리(鶴洞里)에 있는 조선시대 명량대첩 기념비이다.
해남 명량대첩비 근경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門內面) 학동리(鶴洞里)에 있는 조선시대 명량대첩 기념비이다.
해남 명량대첩탑
명량대첩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탑이다.
진도 명량대첩 혼전 재현
1597년(선조 30) 9월 정유재란 때 조선 수군이 명량에서 일본 수군에 승리한 전투인 명량대첩을 재현한 모습이다.
진도 명량대첩 혼전 재현
1597년(선조 30) 9월 정유재란 때 조선 수군이 명량에서 일본 수군에 승리한 전투인 명량대첩을 재현한 모습이다.
진도 명량대첩 혼전 재현
1597년(선조 30) 9월 정유재란 때 조선 수군이 명량에서 일본 수군에 승리한 전투인 명량대첩을 재현한 모습이다.
진도 명량대첩 일본군의 진격 재현
1597년(선조 30) 9월 정유재란 때 조선 수군이 명량에서 일본 수군에 승리한 전투인 명량대첩을 재현한 모습이다.
진도 명량대첩 거북선의 대응 재현
1597년(선조 30) 9월 정유재란 때 조선 수군이 명량에서 일본 수군에 승리한 전투인 명량대첩을 재현한 모습이다.
해남 명량해전 재현 모형
명량해전을 재현한 모형의 모습이다.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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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해남 울돌목(명량) (문화원형백과 한반도 해양문화, 2009.,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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