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대학교 밥스트 도서관 - 고전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편안한 공간[ New York University Bobst Libra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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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2.25. 10:38조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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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대학교 밥스트 도서관
고전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편안한 공간
[ New York University Bobst Library ]
뉴욕 대학교 밥스트 도서관 전경. <출처: (cc) Beyond My Ken at en.wikipedia.org>
도서관, 유학생들이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곳
1980~90년대 유학생, 특히 한국 유학생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욕망을 유보하면서 강의실, 도서관, 기숙사로 이어지는 삼각형 단순 궤적의 삶을 인내하며 살아내야 했다. 호흡이 긴 공부를 진득하게 해야만 각자 목표하는 연구의 성취를 이루어낼 수 있기에 더욱이 그런 삶이 요구되었다. 강의실, 도서관, 기숙사라는 세 공간 가운데 깨어 있을 때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곳인 만큼, 도서관은 유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연구 주제에 발동이 걸려 책 속에 파묻히게 되면 형용할 수 없는 심오한 즐거움도 맛보게 되니 책 읽는 장소가 어디든 상관없어진다. 하지만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들을 인내하며 보내야 하는 곳이기에, 도서관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긴말이 필요하지 않을 듯하다.
도서관은 세미나 수업을 힘들게 마치자마자 잠시 한숨 돌린 후에 찾는 곳이었고, 바로 다음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주어진 과제와 씨름하며 심층적으로 사고해야 하는 곳이었지만, 공부 스트레스에서 잠시 벗어나서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최근 지어진 현대화된 도서관들의 내부에는 카페 못지않은 공간이 있어 집에서처럼 편안한 자세로 독서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유학생들이 죽기 살기로 공부했던 80~90년대 도서관들은 선진국 미국이라 해도 그렇지 않았다.
도서관이 갖추어야 할 거의 모든 것을 갖춘 공간
도서관의 입구. 대도시 뉴욕 맨해튼의 한가운데서 조용하게 책에 파묻혀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곳이다. <출처: (cc) Beyond My Ken at en.wikipedia.org>
하지만 뉴욕 대학교(New York University)의 밥스트 도서관(Bobst Library)은 고전의 심오함에 빠져들어갈 수 있게끔, 도서관이 갖추어야 할 거의 모든 것을 갖춘, 사용자에게 참 편리한 곳이었다. 대도시 뉴욕 맨해튼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워싱턴 스퀘어 공원(Washington Square Park) 남동쪽에 위치한 밥스트 도서관은 뉴욕이 제공하는 최고의 문화를 즐기면서도, 역설적으로 온종일 책과 씨름할 수 있도록 편안한 공간을 제공한다.
유학 시절 필자는 활기찬 뉴욕 생활에 푹 빠져들다가도, 24년째 대학원생으로 등록한 학생도 있다는 풍문을 전해 들으면, 잘못하면 ‘유학 낭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밥스트 도서관은 유학 초의 그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박사과정 공부를 뉴욕대 대학원에서 하기로 결정하고부터 입학 전까지 내내 도서관이 어떤 곳일지 무척 신경이 쓰였다. 그동안 ‘남쪽의 친절(southern hospitality)’을 그대로 드러내는 미국 남부 조지아(Georgia) 주에 위치한 에모리 대학교(Emory University) 우드러프 도서관1)(Woodruff Library)에서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공부하면서 나름 즐겨왔기 때문이다. 그런 필자에게 뉴욕은 무척이나 낯설고 두려운 곳이었다. J. F. 케네디 공항에서 버스와 지하철 등의 대중교통을 이용해 뉴욕 맨해튼에 어리둥절한 상태로 발을 내디뎠는데, 곧바로 워싱턴 스퀘어 공원을 처음 찾아간 순간, 여러 번에 걸쳐 요란한 총소리가 울리더니 어디선가 신속하게 나타난 경찰들이 필자를 포함한 모든 통행인들의 신분증 검사를 했다. 이처럼 처음부터 무척이나 두렵고 상심할 수밖에 없었던 뉴욕 생활이었다. 과연 이런 곳에서 호흡이 긴 공부를 어떻게 해낼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워싱턴 스퀘어 공원 남동쪽 길가에 위치한 밥스트 도서관을 접하자마자 그런 걱정과 두려움은 말끔히 사라졌다. 여태껏 필자가 경험한 다른 도서관들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의 안온함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아트리움 공간 사방에 펼쳐진 역동적인 소통의 공간
1831년 복음주의 장로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뉴욕시립대학으로 설립한 이후, 1896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뀐 뉴욕대학교는 보스턴(Boston)과 뉴헤이븐(New Haven)에 소재한 미국 동부의 일류 대학들과 견주어도 손색없을 만한 대학으로 성장했다. 대학이 설립된 때는 19세기였지만 현재의 도서관이 생긴 것은 1973년이니, 수백 년 된 유럽의 도서관에 비해서는 역사가 매우 짧다. 하지만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연구를 통해 그동안 34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을 만큼, 미국 지성사를 대표하는 곳이 되었다. 의대, 예술대, 경영대 도서관 등 여러 단과대학 도서관이 있기는 하지만, 뉴욕대 밥스트 도서관은 엄청난 양의 전공 도서들을 한곳에 모아 자료를 찾고 리서치할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의 도서관이다.
밥스트 도서관의 내부. 정방형의 안뜰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네 곳에 서가를 배치해 역동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출처: (cc) Marilyn Cole at en.wikipedia.org>
500만여 권의 장서를 소장한 밥스트 도서관은 건축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차지하는 프리츠커 상(Pritzker Archite
cture Prize) 수상자 필립 존슨(Philip Jonson)과 리처드 포스터(Richard T. Foster)가 1970년 설계했다. 설계는 그 시작부터 학생들뿐만 아니라 도서관을 원하던 뉴욕 시민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영국 유력 일간지 <가디언(Guardian)>이 “매우 잘 설계된 공간(a well-designed space)”이라고 극찬했듯이, 밥스트 도서관은 설계자의 건축 의도를 잘 살리고 있다. 주홍빛의 격조 있는 12층 건물인 밥스트 도서관은 뉴욕대 학생뿐만 아니라 뉴요커들이 워싱턴 스퀘어 공원에서 각종 문화 활동을 즐기다가도 책에 대한 갈증이나 사색의 공간이 필요할 때면 흔쾌히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이 도서관의 내부는 정방형의 내부 안뜰인 아트리움(atrium) 공간을 두고 건물의 동서남북 네 테두리에 서가를 배치한 형태로 지어졌다. 1층 아트리움에서 건물 위를 바라보면 네 테두리의 공간에서 각자의 연구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그대로 보인다. 숨 막힐 듯한 어두운 벽으로 탁 막힌 전통적인 유럽풍의 도서관들과 달리 도서관 내 구성원들 모두가 역동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지어진 것이다. 이처럼 아트리움 공간 사방에 펼쳐진 역동적인 소통의 공간인 밥스트 도서관은 뉴욕의 지성이 모여서 배우고 연구할 수 있는 곳으로 발전해갔다.
사색과 명상 속에서 느낀 새로운 인문적 상상력의 활기
밥스트 도서관의 내부. <출처: NYU Elmer Holmes Bobst Library>
도서관은 여러 가지 용도로 이용되겠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는 찾고자 하는 도서 및 논문을 곧바로 찾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리라. 필자가 유학생으로 공부하던 긴 기간 동안 이곳에서 원했던 서적이나 논문을 찾지 못했던 경우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더불어 주변 뉴욕 맨해튼에 소재한 수많은 도서관들—특히 뉴욕 공립도서관(Public Library)—과 연계되어서 밥스트 도서관이 소장하지 않은 도서라도 그날이나 그 다음날에는 찾아서 읽을 수 있었다. 대출한 책들은 나의 공간인 캐럴(carrel)이나 아니면 나만의 안온한 장소인 8층 구석에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이렇게 편리하고도 안온한 공간이 주어지자, 태곳적부터 문학의 주제가 되어온 깨달음이나 사랑, 죽음과 같은 실존의 문제들을, 통찰력을 가진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감상하면서 그 속에 내포된 역사적ㆍ사회적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감상하고 찾아내는 것의 즐거움은 마치 개미가 자기 집을 짓기 위해 아주 조금씩 필요한 재료들을 옮겨내어 쌓는 작업과 같은 것이다. 돌이켜보면 밥스트 도서관의 장서와 충분한 공간 덕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하루 종일 책과 씨름하면서 그 일을 해낼 수 있었다. 당시 이곳은 한국에서 경험한 대부분의 폐가식(閉架式) 도서관과 달리 완전 개가식(開架式)이어서, 필자가 원하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들, 원하는 비평 서적들이 바로 앞에 전개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그 엄청난 양의 텍스트들 속에서도 필자는 나름의 인문학적 프레임을 찾아내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멀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고, 워싱턴 스퀘어 공원의 녹지가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뉴욕 한복판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로운 순간이다.
책 속에서 의식의 풍요로움 속에 파묻혀 있다가도, 창밖을 쳐다보면 맨해튼 34번가에 위치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의 화려한 불빛과 워싱턴 스퀘어 공원의 녹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한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온갖 피로와 공부 스트레스가 씻은 듯이 가시면서 사색을 통한 명상 속에서 새로운 인문적 상상력의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철제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까닭
플랙시 철제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이후의 내부 모습.
밥스트 도서관은 이러한 칭찬을 받기에 충분한 품격을 갖춘 도서관이지만, 2003년 두 명의 학생이 연달아 자살한 곳이기도 하다.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지 못한 두 학생의 자살은 앞서가는 다른 친구들에게 삶의 다른 면을 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하다.
두 학생 모두 미국 중부의 소도시 출신이라는 것은 대도시 뉴욕이 얼마나 냉혹하며 삶을 영위하기에 외로운 곳인지를 증명하는 듯했다. 이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난 이후, 알루미늄으로 특수 제작한 플랙시 철제 바리케이드가 아트리움이 보이는 계단 쪽에 설치되었다. 새장을 연상시킨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조처였다.
미국 문학 전공 서적이 가득한 8층의 동서남쪽
도서관 내부 아트리움을 둘러싸고 12층 동서남북 사방에 5백만여 권의 장서가 빽빽하게 차 있지만, 필자가 자주 찾은 공간은 미국 문학 전공 서적이 가득한 8층의 동서남쪽이었다. 8층에 들어갈 때마다 마치 내 집을 찾아온 듯했다. 미국 문학 전공 서적들이 3방에 위치하고 있었고, 필자는 이곳들을 넘나들면서 책들을 찾았다. 한쪽에 앉아 읽어볼 수 있는 여유 공간들은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고전이란 당대의 문화와 문명을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텍스트다. 밥스트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현대서적뿐만 아니라 고전 텍스트들은 역사를 통해 계속해서 필자에게 사유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미국 문학 전공자로서 필자가 만나본 원본 텍스트들은, 시대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통찰력 있는 작가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고서들의 맛을 흠뻑 느낄 수 있는 페일즈 도서관
페일즈 도서관의 소장 자료들.
밥스트 도서관 내에 한 층을 차지하고 있는 페일즈 도서관(Fales Library)이 필자에게 준 또 다른 즐거움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957년 부친인 핼리버튼 페일즈(Haliburton Fales)의 유지를 받든 자제들이 기증한 도서로 구성된 이곳은 18세기부터 현재까지의 영미 문학을 망라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고서(古書)들의 맛을 흠뻑 느끼고, 옛 선인들의 통찰력에 교감할 수 있다.
페일즈 도서관에 소장된 원본 그대로의 책과 문서 및 미디어 아카이브 도서 25만 권은 모두 희귀본들이다. 특히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43~1916)가 직접 쓴 원고를 본 순간, 필자는 위대한 작가의 아우라를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대표작 [워싱턴 스퀘어](The Washington Square, 1880)를 열람하면서 작가와 함께 호흡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이처럼 뉴욕대학교 밥스트 도서관은 뉴욕대 학생 그리고 뉴요커 모두를 옛 고전 속으로 흠뻑 빠질 수 있도록, 수많은 도서와 자료들을 멋진 소통의 공간 속에 펼쳐놓아, 자주 찾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영혼과 지식의 보물창고, 세계의 도서관'은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문명사업단의 기획으로,
한길사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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