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 83차 난민구호, 사랑의 쌀을 준비하며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공중에 나는 새, 심지도 거두지도 않는 하찮은 참새와 까마귀, 골방도 창고도 없는 새들을 친히 기르신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난민 신세가 되어 심지도 거두지도 못하며 골방도 창고도 없이 위기에 직면한 난민들을 친히 먹이신다. 저들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깊은 애정과 따스한 손길로 난민들을 위해 기적을 베푸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드린다.
1월은 나에게 너무 힘든 시간이었다.
지도자들의 거짓된 행보와 편향된 언론들 그리고 양극화된 교회의 행태가 주는 심적 부담과 상처와 고뇌가 너무 컸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4년째 계속되는 미얀마 난민구호를 위한 모금, 여러 사역들을 정리하고 한두 가지에 집중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과 그렇게 할 경우 보수화되고 있는 세계와 국가들의 흐름과 상황 속에서 무엇을 선택하며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국민의 일원으로서 특별히 크리스천으로서 가지는 영적 갈등과 중압감과 난민 후원금 모금에 대한 긴장과 절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설날 연휴 이전부터 해결이 될 때까지 특별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가지기로 하였다. 그리고 무시로 기도하며 묵상하며 간구하는 시간을 어제까지 가졌다. 나는 중보와 회개 기도를 침묵으로 겸손히 수행하며 아뢰다가도 광인처럼 울부짖으며 탄식하다가 징징거리며 생떼를 부렸다.
매일 무시로 나라와 민족, 교회와 선교, 나 자신의 현재와 미래 선교, 후원 동역자들의 평안과 건강, 사업과 축복 , 선교현장인 남인도와 미얀마와 동북인도, 네팔의 교회, 동북아시아의 평화, 비전아시아 선교 활성화와 청년 세대들의 참여, 세계 평화와 환경 오염, 기타 단체들과 신학교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을 기다렸다. 음성으로든, 환상으로든, 꿈으로든, 말씀으로든 확실하게 직접 계시해주시길 간청하였다. 주님의 계시를 기다리는 열망과 간절한 기대와는 달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때때로 벅찬 감동으로 눈물 흘릴 때 내면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내가 너와 함께 한다.”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쓴다.”는 말뿐이었다. 너무 실망한 나머지 하나님께 불평을 터뜨렸다.
“주님께서 저를 사랑하고 함께 하며 써주시는 것은 이미 알고 있어요. 다른 것, 더 구체적인 것을 보여주세요. 비울 사도가 드로아에서 마케도니아 환상을 본 것처럼 가까운 미래에 대한 계시와 국가와 교회에 대한 계시 그리고 지금 당장에 해야 할 현실적인 일들을 보여주세요! 그리고 필요한 자원들을 공급해주세요! 후원 동역자들의 사업의 문을 열어주세요!” 라고.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셨고 나는 기대했던 소득을 전혀 얻지 못한 기분으로 특별기도회를 마치며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나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미얀마 난민 구호금이었다.
탄핵정국과 설날 무드 때문에 모금하는 것이 사람들을 너무 불편하게 만드는 느낌이 있어 후원 안내 도움 요청을 잠시 중단하였다. 4년째 계속되는 미얀마 난민 구호금과 동북인도 마니푸르의 난민 후원금 모금을 멈추고 편안한 마음으로 특별기도회에 집중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기도회가 끝나고 계수해 보니 15일의 특별기도회 기간에 들어 온 후원금들은 여섯 건을 제하고 다 일반 선교 후원금들뿐이었다. 여섯 건 중 두 건은 매월 정기적으로 해주시는 분들의 난민구호헌금이었고 두 건은 일반적인 구호비였다. 나머지 두 건만 금번 기간에 받은 구호후원금에 해당되었다.
두 건 중 한 후원금은 본인의 사업이 어렵지만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를 날마다 기도하는 양심으로서 난민들의 굶주림을 외면하지 못하기에 매달 사랑의 쌀로 보내주시는 귀한 헌금이었다. 그래서 그의 헌금은 자주 오병이어가 되었다. 나머지 후원금은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종류의 헌금이었다.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고 남은 돈의 일부를 사랑의 쌀로 바치어 준 것이다. 한동안 가슴이 먹먹하여 묵상할 때 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는 하나님의 감동감화하심이 없이는 도저히 바칠 수 없는 헌금이기에 평생에 한두 번 받을 수 있는 궈한 것이었다. 할렐루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회를 정리하는 내 마음이 불편하였다. 당장에 보내야 하는 83차 사랑의 쌀 구호비의 부족분을 채우는 것과 84차 구호비 마련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작년에 긴급할 때 사용하였던 개인, 개 교회 또는 개 기업에 1회 분 사랑의 쌀 전체를 요청하는 것을 생각하여 보았다. 그런데 작년처럼 칼을 든 강도로 나설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새해 초부터 사용하기에는 그 방법이 너무 거칠고 벅차고 부담스러워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가장 좋은 것은 내전이 끝나서 난민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미얀마 파트너에게 난민들의 귀가 여부를 물었다. 인터넷 언론이 시민방위군들의 연승을 보도하였고 우리 파트너 또한 시민방위군의 승리의 소식을 가끔 전해주었기 때문에 내가 잠든 사이에 내전이 종료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보내준 네 장의 지도로 난민의 귀가가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어쨌든 이번 주 말까지 부족분이 채워지지 않으면 올해 내내 곤란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믿자! 믿자! 우리 난민들은 공중의 새보다 더 귀하다. 지금까지 먹여주신 하나님께서 새보다 더 귀한 우리 난민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나는 모르지만 지금 어디선가 아버지께서 당신의 방법으로 당신의 시간에 공급하실 준비를 하고 계실 것이다. “까마귀를 생각하라.”는 누가복음의 말씀이 가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인도독립교단의 추르찬드푸르 난민들에게 송금을 부탁하는 카톡을 받았다. 그가 도우려는 난민들이 우리 또한 돕는 난민들이어서 뜻밖의 소식에 고무되었다. 그의 송금은 내가 해야 하는 모금 부담을 덜어줄 뿐 만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보아라! 내가 하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다른 일꾼들을 통해서 일하신다.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자! 나 자신을 스스로 격려하며 지인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송금을 할 수 있도록 처리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미얀마 난민들에게도 긴급구호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였다. 그랬더니 그가 이백만 원 지원이 가능하다며 바로 송금해주었다. 할렐루야! 83차 사랑의 쌀 구호비가 순식간에 다 채워졌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그로 하여금 난민들의 굶주림의 고통을 느끼게 하신 것이다.
할렐루야! 기적이었다. 기적! 공중의 새 같은 난민들에게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기적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기적으로 모든 영적 부담감이 가벼워졌다.
십여 일 동안 방해를 받지 않으려고 꺼둔 전화기를 오늘 비로소 켰다.
어느 신실한 권사님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지난 가을에 힌두들에게 학살당한 11명의 동북인도 독립교단 교우들을 언급하며 그 때 나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하였다. 그는 그 때부터 크리스천이라는 이유 때문에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을 생각하며 유족들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였다. 최근에 그는 어떤 일을 위하여 돈을 마련하였는데 그 유족들의 고통과 슬픔이 자꾸 떠올라 그 돈을 희생자들의 가정에 조의금으로 보내기로 결심하며 나에게 조의금 전달을 부탁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떨렸고 눈물이 솟구쳤다. 지난 12월에 그들의 합동 장례식을 동영상으로 보며 엉엉 울었건만 나는 그 장례식 이후로 그들을 잊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필요한 후원금 기백만 원을 공급해주며 순교자들을 상기하게 만들어 주셨다. 한번도 생각해 본적도 경험해본 적도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하나님께서 순교로 하나님 전에 영원한 향기가 되어, 기도의 예물로 바쳐진 그들의 유족과 지금도 고난 중에 있는 동북인도 크리스천 교우들을 위하여 더 힘쓰고 애써서 기도하며 더욱 분발해서 도우라는 메시지를 보내주신 것이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일하심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일본 오사까에 있는 나니와교회(김종현목사)에서 몇 개월 분의 후원금을 동시에 보내주시어 84차 사랑의 쌀 마중물이 준비되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울부짖는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며 고난 중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내가 영적인 허영과 습관으로 요한계시록의 계시 같은 계시를 달라고 떼를 쓰고 있을 때 하나님은 주변의 크고 작은 천사들을 통하여 새처럼 허약한 난민들을 자신의 식탁으로 초대하고 그들에게 “너와 함께 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지킨다.”는 속삭임으로 직면한 고난과 불행을 견딜 수 있도록, 절망과 상처로 무너지지 않도록 어루만지고 계셨던 것이다.
할렐루야!
2025년 2월 6일 자시 목요일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