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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좁다란 골목, 그곳에.
차가운 바람이 닿아왔다. 길게 늘여 뜨려진 내 머리카락은 1월의 겨울바람에 의해 차르르 힘없이 휘날리고 있었다. 나는 정신 사납게 휘날려대는 긴 머리칼을 굳이 매만지지 않은 채 아찔한 모양새로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디딜 곳이 마땅치 않은 난간 아래론 현기증이 일게 할 정도로 먼 바닥과 늘상 봐왔던 세상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도로의 시끄러운 사치품들이 소리를 질러대고 까만 점으로 남은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며 성경의 바벨탑 같은 날카로운 빌딩들이 하늘을 찌르는.
세상은 항상 그렇듯 진부했다. 아마 이전의 나였다면 이 진부함을 벗어나려 여행을 떠났을 테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의 나는 그런 세상 속에서 지금껏 찾아왔던 행복이란 걸 느꼈다. 지긋지긋한 일상의 반복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던 이 세상이 이제는 다르게 보였다. 불과 2주의 시간일 뿐인데 세상에 대한 감정이 이렇게 바뀌어버리다니. 행복의 존재를 뒤늦게 알아차린 탓일까.
아득히 높은 옥상의 난간에 발을 올려놓은 채로 난 지나간 나날들을 회상해봤다. 오래전 여행 중, 어느 젊은 집시가 알려주었던 노랫말을 읇조리며.
기억 하나
기억은 2주 전 공항의 푸른 하늘부터 꺼내놓았다. 이번엔 남아메리카로부터의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본래는 두 달간의 긴 일정을 잡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실제로는 일수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돌아와 버렸다.
물론, 이번에도 별 다른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매번 그래왔던 것처럼 또 묘한 향수병이 불어 닥쳤을 뿐이었다. 이런 일은 어디론가 여행을 떠날 때마다 매번 반복돼왔던 일이었다. 어째서일까. 그렇게 여행에서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던 내가 왜인지 막상 그 자유로움에 가닿기만 하면 묘한 향수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었다.
“운남동이요.”
하얀 입김을 불어가며 난 택시를 잡았다. 벌써 1월임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엔 아직 눈송이 하나 내리지 않은 것 같았다. 도로는 그저 입김이 나오게 하는 추위에 딱딱하게 얼었을 뿐, 어디에도 눈이 내린 것 같은 흔적은 없었다.
나는 빠르게 지나가는 창문 밖의 풍경에 잠시 시선을 머물러 두었다. 거리의 나무들이 듬성듬성 눈에 띄고 있었다. 앙상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 겨울 거리의 나무들은 마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걸어 놓은 듯 했기에 난 눈을 뗄 수 없었다.
“손님. 다 왔습니다.”
그리고 앙상한 나뭇가지에 시선이 사로잡힌 사이, 어느새 노란 택시는 나를 빨간 기와로 덮인 어느 집으로 데려다 놓았다. 택시에서 내림과 동시에 눈에 들어온 낯익은 풍경들이 내가 몇 주간의 짧은 여행에서 돌아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매번 그래왔던 일이지만, 그제야 나는 공항에선 느끼지 못했던 귀국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딩동
벨소리는 십수 년 째 여전히 그대로였다. 반면에 ‘누구세요?’ 하고 물어오는 문 건너편의 여자는 세월의 흔적에 따라 목소리가 탁해져가고 있었다. 마당을 쓸고 있던 엄마에게 나는 손을 흔들며 가볍게 인사했다.
“엄마. 나 다녀왔어.”
“민지니? 이번에도 예정보다 훨씬 빨리 왔네?”
들고 있던 빗자루를 한쪽에 세우며 엄마는 반갑게 문을 열어주었다. 매번 있어왔던 일이기 때문인지, 나의 빠른 귀국에도 그녀는 놀란 기색이 없어보였다.
엄마는 한창 대청소를 하고 있었다. 집안의 물건들이 이리저리 어지럽게 옮겨져 있었다. 나는 근처의 탁자를 제법 힘 있게 들어보이곤 엄마가 어디에 두라고 말하기도 전에 알아서 가져다 놓았다. 이런 대청소는 평소에도 자주 하는 것이었기에 어느 것이 어디에 놓여야 한다는 것쯤은 외워버린 것이다.
“우리 엄마 결벽증이 그새 도졌나. 그 나이에 힘이 남아돌아? 무슨 대청소야?”
탁자를 옮기며 나는 반쯤 투정 섞인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엄마는 나의 이런 투덜거림에 언제나처럼 답했다.
“인간 생활의 기본원칙은 첫째도 청결, 둘째도 청결이야.”
조금은 얄미운 눈웃음을 지으며 엄마는 말했다. 평소 같았다면 ‘결벽증 말기증세로군.’ 하며 중얼거렸을 테지만 여행의 노독 탓인지 난 그럴 힘도 남아있질 않았다. 결국 난 두 손을 들어 보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엄마와 말장난이나 늘어놓는 건 그리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대신 난 슬슬 허기가 져오는 배를 쓰다듬으며 엄마에게 말했다.
“간만에 돌아온 딸을 굶어 죽일 셈이야? 청소는 나중에 마저 하고 밥이나 먹자. 오랜만에 김치찌개하고 따끈한 밥이 먹고 싶어.”
기억 둘
갓 차려진 식탁 위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코끝을 찌르는 정겨운 김치찌개 냄새는 지난 날 여행에서 배긴 이국의 냄새를 지워주는 것 같았다.
보글보글 거품을 내며 끓어오르는 김치찌개를 한 수저 뜬 채 나는 오래간만에 탄성을 내질렀다.
“이거야, 이거. 이게 바로 한국인의 맛이지.”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는 뜨끈한 국물이 반가워서 내가 말했다. 어느 고추장 광고에서처럼 아무래도 나는 머나먼 이국 여행 덕에 매운 맛이란 것에 사무쳐있었나 보다.
“끼니는 잘 챙겨먹고 다닌거야?”
조금은 게걸스러워진 나의 모습을 보며 엄마는 걱정스레 말했다. 나는 밥 한 수저를 입에 넣곤 우물거리며 답했다.
“타지가 내 집만 하겠어? 처음엔 그 느끼한 음식들도 먹을 만했는데 며칠 지나니까 도저히 입에 못 대겠더라고. 그래서 간신히 허기나 채우고 다녔지.”
“그러게 뭐하러 여행을 떠나니. 떠돌아다니는 거 지치지도 않아?”
나는 잠시 우물거리던 입을 멈췄다. 슬쩍 바라본 엄마의 얼굴은 그늘져 있었다. 예전 같았다면 화라도 냈겠지만 그녀는 이미 나의 이런 생활에 체념한 듯 아무 말도 없었다. 더 이상 그녀의 힘으론 나를 말릴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벌써 이 여행도 4년째니까.
“여행은 어땠어?”
천천히 식어가는 김치찌개를 떠먹으며 엄마는 물었다. 잠시의 침묵동안 입안에 머물던 밥알들을 그제야 씹어 넘기며 나는 말했다.
“뭐, 항상 그렇지. 남아메리카 쪽은 소문대로 좋았어. 볼거리도 많았고. 사람들도 모두 친절했어.”
“그래?”
“응. 그런데... 다른 곳과 별반 다르지 않아. 역시.... 허망해.”
여행이 끝나고 난 뒤의 감상은 어느 여행에서라도 항상 같았다. 허망함. 그것만이 내가 엄마에게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식탁의 분위기는 처음과는 달리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엄마도 더 이상 아무 말도 않은 채 밥알을 뜨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엔 마치 예전의 아버지를 대하는 듯한 표정이 그려져 있었다. 집도, 일터도 버린 채 무언가를 찾아 끊임없이 여행을 하던 아버지. 아마 나도 그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인지, 상처를 지워가는 방법으로 여행을 택했다. 엄마에겐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피곤하네. 먼저 올라갈게.”
결국 난 밥 한 그릇을 대강 비우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무거워진 걸음으로 계단으로 발을 옮겼다.
기억 셋
2층에 위치한 내 방은 커다란 창문 덕에 화사한 햇살이 들이비치고 있었다. 엄마가 항상 깨끗이 치워놓은 탓인지 잘 정돈된 침대시트 위엔 먼지 하나 없었다. 무거운 몸을 기울이며 나는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그때였다. 벽에 걸린 노란택시 사진이 눈에 들어온 것은. 마치 미리 예정이라도 되어있던 것처럼 낡은 액자는 나의 눈동자에 들어왔다.
거의 십수 년쯤 된 그 빛바랜 사진은 노란 택시와 함께 젊은 부부, 그리고 그들 사이의 어린아이를 담고 있었다. 사진 속의 그들은 환히 웃고 있었다. 매우 단란한, 일상적인 가족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멈춰있는 사진 속 시간에서일 뿐.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멈춰있던 액자 속의 그림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을 회상해감에 따라 액자는 빛이 투영된 스크린처럼 생동감을 내고 있었다. 얼마 안되어 그 액자엔 줄곧 생각해왔던 기억의 파편들이 씌워졌다. 그리고 그곳엔 울고 있는 한 여자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무미건조한 표정의 남자가 있었다.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여자의 모습은 비참했지만 남자는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없이 집안을 걸어 나가고 있었다. 아마릴리스란 원인 모를 정신병에 걸린 남자는 여자가 말하던 예전의 [착한 남자]가 아니었다. 일상의 무력감 속에서 삶의 의욕을 잃게 되는 병. 그런 병에 걸린 그는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다. 잔혹하게도, 그는 한마디 말도 없이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지나쳐갔다. 그리곤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자신 스스로 행복감을 느끼는 것만이 병의 유일한 치료법이란 의사의 말에 그는 행복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돌아온 건 해답을 찾아낸 남자가 아닌, 싸늘한 시체의 모습을 한 남자였다. 돌아온 남자는 곧 집안을 울음소리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
낡은 기억을 상기시킨 탓일까. 머릿속이 복잡해져있었다. 이렇게 머리가 복잡할 때면 항상 담배가 고팠다. 매쾌한 냄새와 함께 시퍼런 연기를 내뿜는 그것은 항상 이런 때 나를 찾곤 했다.
그리고 매쾌한 연기가 방 안을 파랗게 메웠을 때쯤, 아래층에서 시끄러운 소음이 들려왔다. 엄마가 잠시 멈췄던 청소를 다시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보통 때라면 그놈의 결벽증이라 중얼대며 지겨워했겠지만 옛 기억을 회상한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 결벽증이 아버지 때문이란 걸 나는 알았으니까.
원인 모를 정신병에 걸려 방랑을 시작한 아버지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엄마를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유난을 떨어가며 집안을 청소하는 이유도 아버지를 집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청소만이, 아늑한 집만이 그녀가 아버지에게 해줄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벽증 아닌 결벽증은 아버지가 죽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와, 그녀가 가진 상처의 깊이를 여전히 증명해주고 있었다.
“........”
가느다란 담배를 태우며 나는 물었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거지.....하고. 그리곤 말없이 눈을 감았다. 망각하고 있던 피로감이 그제야 물밀 듯 밀려오고 있었다. 정신의 끈을 놓게 만드는 그 피로감 속에서 난 꿈을 꾸었다. 꿈에서 본 아버지는 나와 같은 뒷모습을 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행복을 찾아 끊임없이 방황하는, 슬픈 방랑자의 모습을.
기억 넷
다음날 아침, 난 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은 서로의 사정으로 만나기 힘들지만 대학시절엔 꼭 붙어 다녔던 친구였다. 그녀 역시 엄마와 마찬가지로 나의 발 빠른 귀국에 놀람이 없었다. 물론, 수화기 건너편에서 만났기에 그녀의 얼굴을 보진 못했지만. 그리고 난 그녀와의 약속을 위해 겨울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1월의 겨울바람은 뼛속까지 파고든다는 말에 절실히 동의할 정도로 바람은 찼다. 거리의 사람들은 저마다 한층 두꺼워진 옷가지들로 살이 에일 듯 한 추위를 견뎌내고 있었다. 손에 호호 입김을 불어가며 나는 카페 ‘산티아고’의 문을 열었다.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고 있는 겨울의 카페는 밖의 황량함과는 달리 아늑함이 느껴졌다.
카페에 들어선 나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창가에 앉아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이었다. 유난히 화려한 의상의 여성을 바라보며 난 빙그레 미소 지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는 변한 게 하나도 없어보였다.
“진경아.”
나의 부름에 그녀는 창밖으로 고정돼 있던 시선을 돌렸다. 뽀얀 피부를 가진 그녀의 입가에 곧이어 매번 봐왔던 정겨운 곡선이 그려졌다.
“오랜만이네. 방랑자씨.”
언제나처럼 그녀는 장난스레 인사를 건넸다. 나도 살며시 미소를 머금곤 그녀 앞의 의자에 앉았다.
“잘 지냈어?”
“후우. 잘 지내긴. 묻지도 마. 요샌 일거리가 너무 많아져서 눈코 뗄 세 없이 바쁘다고. 어젯밤엔 정말 잠 한숨도 못 잤어.”
그녀의 눈언저리 밑엔 평소엔 보이지 않던 다크써클이 생겨나있었다. 한의원을 하는 진경은 이맘때만 되면 일이 많아지는 탓에 항상 비슷한 투덜거림을 나에게 토하곤 했었다. 맹물을 한 모금 마시며 그녀가 물었다.
“그나저나 넌 어때? 어쩐지 지난번 보다 더 헬쑥해진거 같은데? 아니, 가만 보니 네가 나보다 더 중증 같다. 침 좀 맞아야겠어.”
“침은 무슨. 영양부족이야. 이국의 음식이 입에 잘 안 맞아서 말이지.”
“하여튼 까다롭구나. 난 배낭여행 갔을 때 너무 잘 먹어서 오히려 살이 쪄가지고 왔는데.”
“쿡쿡. 대체 네가 못 먹는게 어딨어?”
한참 화기애애하게 이어지던 대화는 다가온 종업원 탓에 잠시 중단되었다. 가만히 듣고 있기 미안해질 정도로 친절한 목소리를 가진 종업원이었다. 뭘 드시겠냐는 종업원의 물음에 나는 커피 두 잔을 간단히 주문하곤 말을 이었다.
“그런데 부탁할 거란게 뭐야?”
그랬다. 평소와는 다르게 오늘 그녀를 만나는 것엔 다른 일도 끼워져 있었다. 어쩐 일인지 그녀가 나에게 무언가를 부탁해온 것이었다. 물론 그 부탁이란게 무엇인진 알 수 없었지만 수화기 건너편에서 만난 친구의 목소리는 사뭇 진지했기에 꽤나 무거운 것임에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게 저... 사실 부탁이라기 보단 제안이야.”
“제안? 말이 이상해지는데? 대체 무슨 소리야?”
“우리 남편이 영화사에서 일하는 거 알지? 그런데 이번 일 중에 시나리오 작가가 하나 필요하게 됐어. 그래서.... 내가 널 추천했어.”
“날 추천했다고?”
놀랄 만치 정색한 얼굴로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의 그런 눈빛에 답하듯 다급히 말을 이었다.
“너라면 충분해. 학기 중에 큰 상도 여러 번 탔었고 책도 쓴 너라면 자격이.....”
“날 걱정해주는 건 고맙다. 하지만 안돼.”
길게 이어지려는 그녀의 말을 끊으며 난 단호하게 말했다. 방금 전까지의 미소는 온데간데 없는 얼굴로 말이다.
진경은 이미 이런 나의 대답을 예상했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날 설득하는 것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왜 안 되는데?”
“알잖아. 나 이제 글 같은거 안 써.”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에 그녀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녀가 내쏘듯이 차갑게 물었다.
“아직도 송현 오빠 때문이야?”
“.....!”
그 순간 내 얼굴도 굳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한동안 듣지 못했던 그녀와 나만의 금기어였다. 그만해주길 바랬지만 그녀는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소리쳤다.
“벌써 사년 전 일이야. 이젠 좀 잊어버릴 때도 되지 않았어?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 셈이야? 송현 오빠도 너 이런 모습 보면 좋아하지 않을 거야! 니 글을 누구보다 좋아하던 사람이잖아! 그런데 그가 너의 이런 모습을 바랄 것 같아!?”
그녀의 혀는 듣기 힘든, 가시 같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그만하라고 소리치는 대신 갓 나온 커피의 하얀 김에 얼굴을 묻었다. 밀크커피의 부드러운 향이 코끝에 닿아왔고, 나는 말했다.
“어쩔 수 없어. 난 예나 지금이나 이기적인 여자니까. 그 사람 바램따위.... 알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난.... 그 제안 받아들일 수 없어.”
기억 다섯
너무 가까이 있었기에 알지 못했다.
갈라진 벽 틈새 하나까지
따스히 비추던 그것을.
어두운 골목에,
그것은 너무 초라한 모습이었기에
나는 알지 못했다.
참기 힘든 악취만이 풍겨졌었기에
나는 그것의 존재를
미처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의 필라멘트가 끊어진 지금,
나는
사방이 막힌 어둠 속에서
뒤늦게 외치는데.
너무 뒤늦은 외침인가.
악취나는 가로등 하나가
있어줬더라면
좋았을텐데
하고.
낡은 노래를 부르며 산길을 올랐다. 아주 오래 전의 유행가였다는 그 노래는 어느 여행 날 만난 젊은 집시가 가르쳐 준 것이었다. 노래를 부르거나 듣는 일에 소질이 있지도, 또 그것을 좋아하지도 않던 나였지만 이상하게도 그 노래만큼은 정겹게 느껴졌다. 인도 노래 특유의 독특한 음색 때문인지, 아님 뜻 모를 가사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그 작자미상의 노래는 내 유일한 애창곡이었다.
노래를 부르며 산길을 오르기란 제법 힘들었다. 목적지에 다다랐을 땐 나의 노랫소리는 이미 끊어져 있었다. 처음과는 달리 조금 거칠어진 숨소리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오후의 햇살로 붉게 물든 잔디를 바라보았다. 몇 달, 아니 몇 년 만인가. 여간해선 오지 않으려 했던 곳이지만 결국 나는 이곳을 찾고 말았다. 풀밭 중앙에 동그랗게 솟아오른 무덤에선 예전의 따스한 미소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오랜만이지...?”
무덤 앞에서 나는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노송현]이라는 정겨운 이름이 새겨진 비석엔 먼지가 살짝 얹어져 있었다. 먼지를 살며시 쓸며 나는 그 앞에 앉았다. 그리곤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대꾸해주는 목소리도 없이.
“오빠라면 내가 여기 오지 않길 바랐을 테지. 나도 안 오려고 했는데.... 몸이 생각대로 따라주질 않아서 말이야.
잘 지냈어? 여기 춥진 않아? 오빠 추운거 싫어하잖아. 그동안 나 여행을 좀 다녀왔어. 여기저기 다니면서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은걸 느꼈어. 언젠가 오빠가 내게 여행을 떠나보라고 했었잖아. 기억은 해? 너무 무심한 사람이니까 그런 거 기억 못해도 이해해 줄게.
오빤 북아메리카 쪽은 안 가봤다고 그랬지? 미국의 플로리다는 오빠가 정말 좋아할만한 여름기후야. 하얀 모래사장에 해변도 아름다워. 하지만 오빤 미국 음식이 입에 안 맞는다니 안되겠네. 그럼 영국의 브라이튼은 어때? 거긴 꽤 춥긴 하지만 제법 괜찮은 곳이야. 이맘때면 축제도 하고 말이야.....”
쓸데없는 이야기만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목이 메어지는 게 두려웠던 걸까. 난 두 팔을 뻗곤 풀밭에 드러누웠다. 낮이 짧아진 탓에 어느새 하늘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떤 때는 비극의 핏빛을 띄기도 하고 어떤 때는 찬란의 금빛을 띄기도 하는 늦은 오후의 하늘. 붉게 타들어가는 그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말했다. 담담한 듯하지만 살짝 물기어린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새어나왔다.
“오빠 있잖아. 나 여행을 떠날 때마다 묘한 병에 걸려. 잼을 먹으면 김치찌개가 생각나고 외국인들을 보면 오랫동안 못 봤던 주위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이상한 병이야. 그 병 때문에 영어로 된 신문을 보면 우리 언어로 된 가게의 간판이 떠오르고 낯선 호텔에 들어서면 주홍 지붕의 우리집이, 그리고 그 안에 홀로 있을 엄마 생각이 간절해져. 그래서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돌아와 버리는데..... 막상 돌아오면 아무 것도 하질 못해. 오빠 생각이 나서, 그 행복이 다시 떠올라서 발을 붙일 수가 없어. 그 행복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거란 생각이 드니까 계속 여행을 반복하는 거야. 그런데..... 아직 아무 것도 찾질 못했어.
오빠. 행복은 어디에 있는거야? 그런 건 플로리다에도, 브라이튼에도, 파리에도 없어. 오빠하고 함께했던 그 나날들을 되찾고 싶어서, 그 행복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 세상 여기저기를 헤매는데.... 그런건 아무 곳에도 없어.”
눈물을 머금을 것 같았지만 목소리만 살짝 메어져있었다. 나는 담담한 모습이었다. 이젠 눈물조차 말라 흐르지 않는 걸까? 그렇게 드러누운 채로 난 눈을 감아버렸다. 점점 복잡해지는 감정이 눈물샘을 건들지 않기를 바랬다. 늦은 오후의 하늘 아래, 나는 아직도 방황 중이었다.
기억 여섯
오랜만에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잡았다. 그리곤 여행에서 돌아오면 매번 하는 일들 중 하나로 일기 비슷한 것을 쓰기 시작했다. 글 쓰는걸 접었다곤 했지만 그 열정을 아직 다 내리누르진 못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여행에서의 기행을 일기로 적어나가는 일이었다. 그것이라면 그 사람을 조금이라도 덜 추억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꽤나 오랜 시간을 글쓰기에 집중했다. 그 결과 모니터엔 A4용지 4장 분량의 새까만 글자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애써 흡족함을 부정하며 난 글의 앞뒤를 훑어보았다. 분명 고개를 끄덕일 만큼 잘 써진 글이었다. 그래서 난 과감히 삭제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기행문을 쓰기 시작한 뒤로 내 자신이 만들어낸 불문율 같은 것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난 결코 내가 쓴 글을 컴퓨터에 저장하는 법이 없었다. 뭐랄까. 그대로 둬버리면 내 문장 곳곳에 숨겨진 그의 흔적들이 모니터 밖으로 확 튀어나올 것 같아서일까.
후. 어느덧 내 입술은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아직도 그의 향기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가 싫은 건지. 아님 있을 지도 없을 지도 모를 행복을 찾아다니는 내가 싫은 건지. 한숨은 자꾸만 커져갔다. 문득 난 하얀 그것이 고파졌다. 그 푸르딩딩한 연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담배케이스와 라이터를 손에 든 내 걸음은 어느새 마당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리고 사방에 아무런 제한이 없는 그곳에서 푸른 빛깔의 연기는 피어올랐다.
"후우"
입술에 가져간 하얀 것의 끝엔 검은 재가 묻어있었다. 빨간 불씨를 머금은 그것은 상념들의 무덤이었다. 담배를 다 태우고 난 뒤 머릿속이 조금은 깨끗해지는 이유는 그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짙은 한숨이 깃든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나의 시선은 잠시 무언가에 머물렀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분홍빛의 화분이 그리고 그 안에 뿌리내린 싱그러운 꽃잎이 내 눈동자에 들어와있었다.
"아플라이나."
한발치 다가서며 난 그 꽃의 이름을 불렀다. 본디 겨울에 피는 꽃인 만큼 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아플라이나의 꽃잎은 더욱 싱그러웠다. 촉촉함과 초록으로 가득 찬 잎사귀는 내게서 오래 전의 기억을 불러오게끔 충동질하고 있었다. 그리고 분홍색 화분 위로 무언가 익숙한 풍경이 겹쳐졌다. 화분을 붙잡고 있던 내 두 손은 기억을 회상해감에 따라 점점 고와졌다. 여행을 시작한 뒤로 거칠고 투박해진 손이 아닌, 여행 전의 하얀 살결을 가진 손이었다. 그리고 화분을 붙잡고 있는 그 손앞으로 또 다른 손이 보였다. 조금 큰, 갈색 피부의, 따스한 손이었다.
[받아.]
[이게 뭐야, 오빠?]
[보면 몰라? 꽃이잖아.]
[그게 아니라.... 갑자기 무슨 꽃이야.]
[꽃집 앞을 지나다 맘에 들어서 샀어. 아플라이나...라고. 일상의 반복은 기적 또는 행복이다라고, 이 꽃의 꽃말에 적혀있어서. 뜬 구름 같은 말이지만 맘에 들어.]
따스한 미소. 목소리. 엉뚱한 모습.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그 기억 속의 말들을 나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내 눈앞에 놓여있는 이 꽃의 의미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는 왜 내게 이런 꽃을 선물한 걸까. 꽃 선물이라곤 그 전까지 단 한번도 하지 않았으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빨간 불씨를 머금던 상념의 재가 떨어지고 피어오르던 서슬 퍼런 연기가 멎었다. 담배를 한대 더 태우고 싶은 마음에 담배케이스를 뒤적였지만 손에 잡히는게 없었다. 체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던 그 순간 대문이 철컥하며 소리를 냈다. 그리고 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무슨 냄새야?"
약봉지를 손에 든 그 여자는 간만에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엄마였다. 어디를 다녀왔는지 그녀의 몸에선 병원 특유의 내키지 않은 냄새가 났다.
"그건 무슨 약봉지야? 생리해?"
난 엄마의 질문에 굳이 대답하지 않은 채 약봉지를 가리키며 물었다. 하지만 엄마 역시 내 물음에 답하지 않곤 내게 성큼 다가섰다. 그리곤 킁킁거리며 내 몸에 베인 매캐한 냄새를 맡아냈다.
"너어...!"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래. 한두 번도 아니고 뭘."
한 발짝 물러서며 능숙하게 답했다. 이젠 당황하는 기색조차 없는 내 모습에 엄마는 후우하곤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보이곤 현관문으로 걸음을 돌렸다.
"근데 진짜 생리야?"
아무렇게나 내던진 담배꽁초를 다시 주우며 내가 물었다.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곤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의 돌아선 모습에선 왜인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나를 향한 것일까? 오랜만에 본 엄마의 등은 많이 가냘 퍼진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기억 일곱
“향수병은 보통의 병이 아니랍니다.”
목소리의 주인은 우주의 어둠을 담은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칠흑빛의 머리카락은 그녀의 구릿빛 피부와 조화되어 젊은 집시를 더욱 신비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향수병이란 무언가 소중한 것을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깨달았을 때 나타나는 마음의 [주술]이에요.”
따스하게 미소 지으며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온화한 눈동자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내민 그녀의 손바닥 위엔 지금껏 단 한순간도 보지 못했던 하얀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받아요. 당신에게 꼭 필요할거에요.”
그녀가 말했다. 난 두 손을 모아 그녀가 내미는 새하얀 빛을 받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새하얀 빛이 폭발하듯 퍼져나갔다. 새하얀 빛은 어느새 주위 모든 것을 삼키고 그 젊은 집시마저 삼킨 뒤였다. 사방이 빛으로 막힌 그 곳에서 나는 익숙한 노랫소리를 들었다.
악취나는 가로등 하나가
있어줬더라면
좋았을텐데
하고.
“........”
괴상한 꿈이었다. 너무 생생해서 살결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벌써 네 번째 꾼 꿈인지라 놀라움 같은 건 없었다. 그것은 2년 전쯤 어느 젊은 집시를 만나고 나서부터 꾸기 시작한 꿈이었다. 그녀가 내게 이상한 말들을 해주고 노래를 가르쳐준 뒤로 그 꿈은 아주 가끔씩 나를 찾아오곤 했다. 그리고 이 꿈을 꾸고 나면 항상 내 몸엔 이상한 변화가 있었다. 그것은 생리주기가 멋대로 변하는 일이었다. 이번에도 전의 세 차례처럼 생리를 했을 거란 생각에 레이스 잠옷을 벗으니 예상대로 붉은 반점모양이 속옷에 그려져 있었다.
망할. 아마 다른 때였다면 이 말을 중얼거렸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여자로 태어난 걸 저주했겠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 기억의 일부가 수면 위로 떠오르듯 상기되었다. 난데없이 떠오른 그것은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었다. 내가 인도여행을 막 다녀오고 집에 잠시 머물렀을 때의 기억이니까.
그날은 여느 때와 그리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아침부터 샤워를 하고, 기분이 좋아져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엄마의 놀림을 받고, 볼이 부어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엄마랑 시내로 영화를 보러 나가고, 시내 여기저기를 걸으며 쇼핑을 즐기고, 기진맥진해서 집으로 돌아오고.
상기된 기억은 매우 일상적인 것이었다. 어째서 지금 이런 기억이 떠오른 것인지 이해가 안됐다. 왜일까. 그 젊은 집시가 말한 대로 아직 내 머리는 내 몸이 느낀 무언가를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표들 속에서 나를 깨운 것은 엄마였다.
“민지야. 일어나렴. 내려와서 아침 먹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흘러드는 구수한 냄새는 엄마가 아침준비를 벌써 다 마쳤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불을 발로 차고 화장실로 향하다 문득 창밖의 푸른 하늘이 보였다. 시린 겨울의 파란 하늘은 마치 지중해의 청록빛 바다와 같아보였다.
벌써 떠날 때인가. 세면실로 걸음을 옮기며 난 오늘 즈음에나 비행 편을 예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억 여덟
그리고 기억은 그로부터 3일 뒤의 일들을 꺼내놓았다. 나는 다시 공항의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보고 있었다. 아침도 거른 채 ‘다녀올게’라는 간단한 쪽지만을 남기고 나오는 길이었다. 엄마와 얼굴을 맞대고는 차마 떠날 수가 없을 것 같기에 그런 방법을 쓴 것이다.
‘이젠 엄마도 많이 익숙해져 있을 테지.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니까.’라고 자신을 합리화시키던 못된 나는 아무 미련 없이 공항에 올랐다.
공항버스의 스피커에선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 한 익숙한 팝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의자에 몸을 의지한 채 잠시 눈을 감았다. 나른한 음악 탓에 새벽이라는 시간 속의 피곤함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그대로 잠들어버려도 좋을 것 같아서 나는 그렇게 했다. 잠시 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이미 난 비행기의 네모난 아가리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비행기의 계단을 오른 것이다.
능숙하게 좌석을 찾고 안내방송의 내용대로 안전벨트를 둘렀다. 잠시 뒤 비행기는 약간의 진동과 함께 활주를 시작했다. 공기를 가르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비행기는 금새 하얀 구름에까지 닿아갔다. 충분히 놀랄만한 광경이었지만 아무도 놀라움을 표하진 않았다.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 21세기의 사람들에게 이제 이런 풍경은 너무도 일상적인 것일테니까. 물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지만. 하얀 구름이 멀어질수록 비행기의 흔들림은 점차 안정되어갔다. 그것을 알리듯 통로에선 승무원이 카트를 밀고 음료수를 나눠주고 있었다. 나는 마침 목이 마르던 참이어서 지나가는 승무원을 불렀다.
“당근주스 좀 주세요.”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은 탓에 목소리는 살짝 메어있었다. 승무원은 친절히 미소 짓곤 컵에 주홍빛의 음료를 따르려했다. 그러나 갑작스레 흔들린 비행기가 그녀를 넘어뜨렸다. 주홍빛의 액체는 어느새 흘러넘쳐 그녀의 하얀 제복을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손수건을 건네주려 급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그때, 기분 나쁜 물컹함이 느껴졌다. 주머니 속에서 내 손이 건져 올린 것은 엉뚱하게도 손수건이 아니었다. 검은 잉크가 덕지덕지 뭍은 손엔 오랫동안 지니고 다니지 않았던 만년필이 쥐어져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작가가 되던 날, 엄마가 내게 선물해주었던 만년필. 그것은 내가 글쓰기를 그만둔 뒤로 한동안 잊고 살아왔던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입고 있는 재킷도 만년필과 같이 한동안은 입고 다니지 않던 것이었다. 아마 만년필을 재킷 주머니에 넣어둔 뒤로 재킷의 존재를 잊어버린 탓이겠지.
만년필에선 유난히도 짙은 새까만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 손을 점점 덮어가는 검은 잉크를 보며 난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동물들이 직감적으로 위험을 감지하는 것처럼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불안감이었다. 그 불안감 때문에 난 손을 덮어가는 검은 잉크를 닦아낼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게 불안한 예감은 곧바로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따르르르릉
느닷없이 벨소리가 울렸다. 다른 쪽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진동까지 하며 요동을 쳐대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라기 보단 가슴을 서늘케 하는 불안감 때문에 나는 허둥지둥 핸드폰을 들었다. 황급히 핸드폰의 통화버튼을 눌렀을땐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여보세요? 거기 이민지양 휴대폰이 맞습니까?”
“네. 그런데요. 무슨 일이시죠?”
“여기 신가병원입니다. 어머니께서 쓰러지셔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머니의 상태가 많이 위독한 편이어서 여기로 오셔야할 것 같습니다만. 지금 어디신지요?”
순간 날카로운 무언가가 가슴을 꿰뚫는,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목소리에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하얘지며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만 몸이 두려움을 느끼고 가늘게 떨 뿐.
검은 잉크는 어느새 내 손을 전부 덮고 있었다. 아니, 덮다 못해 바닥에 까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흘러넘치는 그 검은 잉크를 바라보며 난 자꾸 나쁜 상상이 들었다. 애써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부정해 봐도 그 나쁜 상상은 결국 검은 잉크를 검붉은 피로 보이게 했다.
기억 아홉
“어머니가 저희 병원에 전화를 거셨어요. 목소리의 상태가 위급해 보여 집으로 가보니 바닥에 쓰러져 계시더군요.”
의사의 상징인 하얀 가운을 입은 중년인이 차분히 내게 말했다. 나는 역시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쓰러진 그날 아침, 난 집을 떠나버린 것이다. 내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않자 의사는 질책하는 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혹시 어머니와 따로 사시나요?”
“.......아뇨.”
“그럼 대체 환자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뭘 하고 있던 겁니까. 환자분이 벙어리는 아니시던데 환자분은 신음소리도 내지 않던가요?”
의사의 노기 띤 목소리를 듣자 눈물이 하얀 볼에 한 방울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한줄기를 시작으로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눈앞을 뿌옇게 만들었다. 그제야 나는 엄마의 병세가 얼마나 심각한 지 실감할 수 있었다.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나는 물었다.
“심각한 거 아니죠? 수술하면 나을 수 있죠?”
“심각합니다... 지금 환자분은 어떤 수술로도 살릴 수가 없어요. 이미 손을 쓰기엔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차갑게 의사는 말했다. 목이 점점 메어지고 있었다. 나는 다그치듯 소리를 질렀다.
“아니에요! 살릴 수 있을 거잖아요! 그렇죠? 그렇다고 말해요!!”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에 중년인은 나의 어깨를 토닥이곤 돌아섰다. 다리에 힘이 풀려오며 제대로 땅 위에 서있을 수가 없었다. 무거운 죄책감과 앞으로 또 한번 내 가슴속에 자리 잡을 커다란 상실감이 나를 내리누르고 있었다.
기억 열
“엄마....”
잘 떨어지지 않는 입술로 그녀를 불렀다. 햇살이 화사하게 비치는 백색의 병실 안에서 그녀는 눈감고 있었다.
“민지 왔니?”
긴 속눈썹이 드러나며 감겨있던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못된 딸년을 맞이하는 엄마의 모습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뭐라고 한마디 욕이라도 퍼부어주고 날 탓했더라면 한결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이 눈물이 또 눈앞을 가렸다. 차마 소리 내어 울 순 없어 입을 틀어막았지만 울음소리는 손가락 사이사이로 흘러나왔다.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 거야? 엄마가 죽는게? 난 하나도 괜찮지 않아!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난 대체 뭘 하고 있던 걸까. 해답을 찾는다는 이유로 나는 엄마의 생명을 하루하루 꺼뜨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너희 아버진 성실한 택시기사였지만 훌륭한 철학가이기도 했지. 난 사실 그이의 그런 모습에 반했단다. 그리고 너희 아버진 가끔 내게 이런 말을 하곤 했어. 시작이 있는 모든 것엔 끝도 있는 법이라고.”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그녀는 말했다. 난 더 이상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아 그녀의 품에 안겼다. 엄마의 품은 죽어가는 사람의 품치곤 매우 아늑하고 따뜻했다. 그녀는 아직 어린 나의 등을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다 그런 거야. 엄마는..... 네가 행복해졌음 좋겠구나......”
기억 열 하나
엄마의 장례식은 회색빛의 우울한 하늘 아래서 진행되었다. 가족이라곤 나밖에 없었고 친척도 네댓 명 뿐이라 장례식은 한산하다 못해 썰렁한 편이었다. 상복을 입은 채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은 생각한 것보다 어색하고 생소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한번 입어본 상복이건만 기분은 전혀 익숙치가 않았다. 또 한사람이 내 곁을 떠나간다는 게 익숙하지 않은 걸까.
엄마의 장례식을 진행하는 동안 난 그 동안 잠깐 잊고 살았던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소식이 뜸했던 이모는 기억 속의 모습보다 조금 더 주름살이 늘어난 모습이었다.
“많이 힘들어 보이는 구나.”
손으로 빗을 만들며 그녀는 헝클어진 나의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안쓰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매는 엄마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들어가서 쉬렴. 여긴 내가 지킬테니.”
난 굳이 그녀의 제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많이 지친 탓이었다. 하루하고도 반을 울었던 탓에 눈은 퉁퉁 부어있었고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것보단 마음 한켠이 허전한, 커다란 상실감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지금은 그냥 자고 싶었다. 눈감고 그대로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곧장 이모가 잡아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넓은 도로를 따라 택시를 타고 겨우 삼십분 정도. 엄마의 장례식장과 집은 그만큼 가까웠다.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어느 철학자가 말했었지만 그 거리는 삶과 죽음간의 거리라고 하기엔 잔혹하리만치 짧았다. 난 이젠 허전함이 드는 가슴으로 주홍지붕의 집에 들어섰다. 집안은 겨우 며칠 사이에 많이 난잡해져 있었다. 곱게 걸어져있던 엄마의 청소도구들도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 어지러운 광경 속에서도 난 치워야겠다는 등의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초점이 희미해진 눈동자로 잠시 텅 빈 신발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엄마의 신발들은 장례식장에 가져다 놓은 탓에 널따란 신발장엔 내 신발 하나뿐이 썰렁하게 놓여있었다.
애써 익숙해지려 했다. 하지만 결국 난 익숙해지지 못했다. 온 집안에서 가슴이 텅텅 빈, 그런 허전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현관에 걸린 엄마와 나의 가족사진에서, 엄마가 자주 쓰던 꽃무늬 앞치마에서 그녀의 부재가 느껴졌다. 문득 난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난 신발을 대강 벗어두곤 마당으로 걸어갔다. 거실만큼이나 널따란 주택의 앞마당은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기엔 아주 적합한 장소였다.
“........?”
피어오르는 파란 연기를 바라보다 어느 순간 무언가가 내 눈에 들어왔다. 분홍색 화분에 정성스레 심어져있던 그것은 예전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물을 주지 않아서인지 싱그럽던 아플라이나의 잎사귀는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그리고 난 무언가가 깨져나간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조금 전까지 느꼈던 부재감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여행을 하며 찾아다니던 그 해답을 한발 늦게 발견한 느낌이었다.
외국에만 나가면 걸리는 향수병, 가끔 꾸게 되는 이상한 꿈, 그리고 그 뒤에 상기된 일상적인 일들의 기억,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글에 대한 열정 같은 것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급한 마음에 태우던 담배를 던졌다. 난 다급한 걸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다 무언가가 내 발에 밟혔다. 은빛으로 빛나는 오디오리모콘이 내 발에 짓눌려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오디오는 그에 따라 담고 있던 테이프의 필름을 돌렸다. 익숙한 가락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익숙한 목소리들의 합창도 들려오고 있었다. 엄마와 내가 함께 부른 오래된 유행가는 그날의 흥겨움을 여전히 담고 있었다. 오래전 녹음해 놓은 노래에 눈물이 툭 떨어졌다.
엄마는 항상 이걸 듣고 있었던 걸까. 눈망울에 가득히 고이기 시작한 물은 결국 눈꺼풀이란 제방을 넘어 볼을 타고 흘렀다.
그리고.... 회상의 끝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난 알았다. 행복은 바로 내 앞에서 언제나 날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반복뿐인 생활이 일상의 기적이라는 말을 이제는 이해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걸 깨달았을 땐 너무 늦은 상태였다. 내게 남은건 막심한 후회감과 절실한 부재감이었다. 더 이상 내겐 돌아갈 곳도 없었다. 엄마는 날 위해 숨겨온 모양이지만, 그동안 내 막대한 여행비를 대느라고 빚을 져온 모양이었다. 그로 인해 엄마와의 추억이 담겨있던 그 주홍지붕의 집도 이미 남의 손에 넘어가 있었다.
살아갈 의욕 따윈 이미 잃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행복의 해답이 눈앞에 있었다는 차가운 사실이 뺨을 때리고 있었다. 나는 별 미련 없이 아득히 먼 바닥으로 발을 뻗어갔다. 난간의 끝으로 다가갈수록 바람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다가오지 말라는 외침 같은 것이 귓가를 스치고 갔지만 나는 그 쌩쌩 불어대는 바람을 무시했다. 천천히 허공을 향해 걸음질하는 내 위론 높고도 파란 하늘이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 나 하나쯤 죽어도 저 하늘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테지. 엄마. 조금만 기다려.
대답 없는 대화 속에서 내 발은 결국허공을 딛고 말았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몸이 기울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땅을 등진 채 떨어지는 내 몸은 하늘과 빠르게 멀어져가고 있었다. 기다란 머리칼이 나풀거렸고 귓가를 스치는 바람의 육중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숨이 턱 막혀옴과 동시에 바닥에 닿았다고 생각되는 순간, 눈앞이 환해졌다.
하얀 벚꽃 잎들이 춤추고 있었다. 매달린 줄기도 없이 허공을 날아다니는 그 벚꽃 잎들은 마치 하얀 나비 떼 같았다. 햇살은 길가에 핀 개나리꽃들처럼 노랗게 내리쫴주고 있었고, 벚꽃은 제철을 맞이한 듯 화사하게 만개해 있었다. 마치 5월의 어느 날을 그대로 가져다놓은 것 같은 풍경에 나는 포근함과 낯설음을 동시에 느꼈다.
“여긴 어디지.....?”
기억엔 없는 낯선 곳이었다. 도리질하며 주위를 둘러보던 그 순간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청초한 인상을 주는 그 얼굴은 곧 내 눈앞을 뿌옇게 만들었다.
“엄마......”
목 메인 목소리가 먼저 흘러 나왔다. 엄마는 변함없는 미소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다가와 부드러운 손길로 내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눈물이 툭하고 한 방울 흘러내렸다.
“행복은..... 좁다란 골목 가로등 같은 거야.”
그 잠시 동안 그녀가 내게 말한 건 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엄마는 내 이마에 입술을 가져갔다. 그리곤 느리게 입술을 떼며 다정다감한 눈길로 날 내려다보았다.
“행복하렴.”
정겨운 미소와 함께 그녀는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아무 말이라도 해야 했지만 미처 그 인사에 답할 새도 없이 그녀는 사라져가고 있었다. 떨어지는 하얀 벚꽃 잎들 사이로. 손을 뻗었지만 그녀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모든게 사라져가고 있었다. 나무도, 꽃잎도 아지랑이처럼 사라져갔고 5월 어느 날의 풍경을 끝으로 난 눈을 떴다.
“...........”
하얀 천장이 보였다. 햇살이 머리맡에 닿아있었다. 살짝 열린 창틈으론 어느새 봄을 알리는 포근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환자복이 입혀진 나의 모습과 많이 봐온 침대의 모양을 보고 이곳이 병원이란 걸 알았다. 그리고 아파트 옥상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난 죽으려 했었지. 그럼 지금 난 죽지 않은 건가....? 하지만 어떻게? 문득 아까의 꿈이 떠올랐다. 나는 손을 들어 이마를 어루만져 보았다. 촉촉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땀이 아니었다. 그곳엔 엄마의 향기가 배어있었다. 이마를 적셔주는 차가운 그것. 엄마가 내게 준 마지막 선물이라, 난 그렇게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