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지 표시 기준 논란
종균 접종·배양 끝난 배지 수입
국내에서 생산·수확 사례 늘어
‘재배기간 긴 국가’ 규정 탓 혼란
현실성 떨어지고 단속도 어려워
게티이미지뱅크
중국산 배양배지에서 수확한 표고버섯의 원산지 표시 기준을 두고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배지 재배의 핵심인 종균 접종·배양이 거의 대부분 중국에서 이뤄지고 배지에 들어가는 톱밥·종균·영양제도 모두 중국산으로 채워지는데, 배지가 국내로 들어온 이후에는 재배기간에 따라 표고버섯 원산지가 ‘중국산’에서 ‘국산’으로 바뀌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모호한 표시 규정이 원산지 관리에 혼란만 불러일으킨다며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발단은 2021년 1월부터 새롭게 적용된 ‘표고버섯 원산지 표시 요령’에서 비롯됐다. 정부는 중국 현지에서 배양까지 모두 끝난 배지를 국내에 들여와 버섯을 생산하는 사례가 늘면서 원산지 표시 문제가 논란이 되자 2017년 7월부터 원산지에 ‘종균 접종·배양국’을 병행 표기하도록 했으나 이마저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새로운 기준을 마련했다.
정부는 표고버섯에 한정해 기존 ‘종균 접종·배양국 병행 표시’ 기준을 없애는 대신 식물체의 이식·이동 등으로 인한 원산지 전환 개념을 적용해 ‘표고버섯 종균 접종·배양 배지를 수입해 국내에서 버섯을 생산·수확하면 종균 접종부터 수확까지의 기간을 기준으로 재배기간이 가장 긴 국가를 원산지로 본다’는 규정을 새로 만들어 2021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갈수록 혼란만 가중됐다. ‘가장 오래 재배한 국가’라는 모호한 기준 탓에 수입 배지에서 생산된 표고버섯의 원산지가 재배기간에 따라 ‘중국산’ 또는 ‘국산’으로 표시되는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충남 청양에서 표고버섯농사를 짓는 김창희씨(58)는 “한 배지에서 여러번 수확하는 표고버섯 특성상 현행 원산지 표시 규정은 그 자체로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예컨대 90일짜리 접종·배양 배지를 수입했을 때, 국내에서 추가로 배양하는 기간 30일까지 고려하면 원산지가 1·2주기는 ‘중국산’으로, 3주기는 ‘국산’으로 표기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덧붙였다. 결국 같은 배지에서 생산된 버섯이라도 재배시기에 따라 원산지가 뒤바뀌는 ‘이상한’ 기준이 적용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원산지 관리에도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민경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긴 기간’이라고 명시한 규정 때문에 오히려 원산지 단속이 어려워졌다”며 “정확한 판단 근거가 사라져 사실상 단속을 할 수 없는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영농 현장에서도 불합리한 규정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박상표 기능성버섯협회장은 “현행 법은 소비자들에게 중국산과 국산 차이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게 현실인데 과연 올바른 원산지 규정인지 의문”이라며 “일본은 원산지 표시 규정을 명확하게 정리해 생산자와 소비자의 혼동을 줄인 것처럼 우리나라도 정확한 기준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유사한 문제로 원산지 표시를 둘러싸고 혼란이 가중되자 2022년 10월 표고버섯 원산지 표시 기준을 종균 접종국으로 바꿨다. 이에 따라 일본의 중국산 버섯배지 수입은 2021년 3만7131t에서 2022년 2만99t으로 뚝 떨어졌다.
이와 관련해 정의용 한국표고버섯생산유통협회장은 “정부가 2021년부터 새롭게 적용한 규정은 중국산 톱밥배지의 거센 공세에 밀려난 국내 표고버섯 배지농가를 돕기 위한 뜻도 있었으나 실상은 보호 조치 기능도 못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종균 접종국 기준으로 원산지 표시 기준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임산물 주무부처인 산림청 관계자는 “원산지 규정이 소비자 알 권리 측면에서 모호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지난해 생산자들과 원산지 규정에 대해 논의한 바 있는데 관련 사안에 대해 관계기관과 계속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도 “현행 표기 규정이 소비자 알 권리와 상충하는 문제가 있다면 내부적으로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산 봉형배지 사용 농가가 적지 않은 만큼 보다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의 한 전문가는 “수입 배지 생산자 측에선 ‘화훼류는 수입 묘목을 들여와 재배한 후 국내산으로 표기하는데 표고버섯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불만도 있다”며 “수입 배지 사용 농가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