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존에서.. 봤는데.. 첨엔.. 암 생각없었는데..읽으면서..
우리들 이야기 더군여... 그 어느 누구도 아닌.. 우리얘기..
많이 생각하게 되더이다..
옛날 생각도 나고.. 보구싶기도 하고.. 이런저런...
좀 길지만.. 끝까지 읽어보세여.. 후회는 없을꺼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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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2000년 8월 29일 공항에 운집한 수천명의 서태지 팬들의 절규에 찬 함성이 허
위허위 공항에 도착한 나의 뇌리를 사로잡아버리고 말았다. 서태지를 찍어야
된다는 막연한 강박관념에 2번 출구 바로 앞 포토라인의 가장 좋은 자리에 간
신히 자리를 잡은 후에도, 나의 관심은 카메라들 저쪽 너머 보이지 않는 팬들
의 목소리에 가 있었다.
‘서태지를 포기하고 팬들을 찍어야 되는 거 아닐까?’
8월 한 여름 ,팔하나 움직이기도 힘든 포토라인 안에서 등과 배를 맞붙인 채 한
시간이 넘게 사우나를 하면서 나는 내내 갈등을 하고 있었다. 결국
서태지가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포트라인은 '시말서'(시말서까지...)
를 쓰지 않으려는 기자들의 취재 경쟁으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고
나 는 초보답게 목표를 놓치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에게는 놓쳐버
린 목표보다 시대유감을 부르던 팬들의 목소리가 머리 속에서 계속 메아리쳤
다.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길 바라네!
절규와도 같은 그 강력함!! 그 모습을 찍지도 그 소리를 제대로 담지도 못했지
만, 그 느낌 하나가 나의 일년을 결정해버렸다. 그러나 올림픽 공원에 서태지
팬들이 일주일 전부터 야영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그들을 기록해
야겠다는 생각을 굳히지는 못했다. 컴백 공연 당일 9월 9일 올림픽 공원에서 처
음으로 인터뷰를 시도했다. 서태지를 왜 좋아해요 라는 말로 시작한 나의 인터
뷰는 방송국 카메라가 아니 라는 것을 누차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성곡적
이지 못했다. 이미 일주일 동 안 숱한 기자들의 질문 세례가 퍼부어진 후였다.
게다가 아주 많은 친구들이 공 연장 오기 전부터 뻔하게 예상되는 기자들의 왜
좋아해요 식의 우문의 걸맞는 현답들을 준비해놓고 있었고 공중파에 나가도 되
는말발 센 친구들을 내세워 집요한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요령껏 처리하고 있
었다. 심지어 토론으로 기자 의 취재 방향을 바꾼 친구들도 있었다.
물론 말발 센 친구들의 논리적인 자기 표현은 대부분 방송되지 않았다.
10년! 그들은10년간 언론의 호들갑과 폭력적인 과장들을 몸소 겪어왔던 사람
들이다. 그날의 나는 그런 언론들 중 하나에 불과 했다.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들에게 던지는 나의 질문도 그들이 보기 싫어하는 그런 언론들 중 하
나였다. 서태지가 두번째 사전 녹화가 있었던 10월 9일에 메사 공연장엔 정보
를 사전 에 입수한 팬들이 일주일 전부터 진을 치고 있었다. 공연 하루 전날 나
는 다시 한번 인터뷰에 도전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밤을 새고 새우잠을 잘텐데 그
런 장면들을 찍게 해줄까? 이미 언론은 그런 팬들을 노숙자로 몰아붙인 터였
다. 의외로 그들은 나를 친절하게 받아주었다. 대부분이 대학생층인 그들과 하
룻밤을 꼬박 새면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나는 모르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고
공항에서 들여왔던 시대유감의 함성은 우연히 만들어진 일회성 연출이 아니라
는 것을 뚜렷이 느꼈다. 분명 그 함성은 언론에서 바라보는 식의 스타 한명에
열광하는 철없는 오빠부대들의 집단적 도취와는 다른 것이었다. 그 속에는 4
년 7개월로 표현될만한 기난긴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들이 꿈틀거
리고 있었고 문화 불모 지대 한국에서 이제 막 펼쳐질 미지의 문화에 대한 엄
청난 갈망들이 솟구치고 있었고 2000년 황폐한 한국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분 노 절망 희망의 감정들이 서태지에 대한 애정과 뒤섞여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 었다.
내가 처음으로 서태지 팬들과 가까워 졌던 그리고 그들을 본격적으로 찍기로
마음 먹었던 메사 공연의 현장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공연문화를 보여주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2백여 명의 슬래머들의 별도 입장은 자체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며 일주일 밤을 샌 팬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슬래
머로 등록한 하히힐 정장 차림의 세치가족까지 들어가는 모습을 본 팬들은 울
음을 참지 못했다. 입장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는 계단과 복도는 순식간에 울
음 바다로 변했다. 팬들의 입에서는 태지가 우리 마음을 아는지 모르겠다 며 심
지 어 공연을 거부해야 되는 거 아냐 라는 말도 들었다. 태지팬 수호대가 가까
스 로 분위기를 잡았다. 주최측은 하이힐의 정장들을 솎아내기도 했다. 공연장
입 장은 그렇게 어수선하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공연을 보고 나온 팬들의 얼굴
은 말 그대로 뽕맞고 나온 표정들이었다.
불과 한시간 반만에 정신이 반쯤 나간 듯 헤헤거리며 머리는 산발이 된 채로
모든 기력을 다 쏟아 부은 듯 비틀거리며 걸어나오는 팬들을 보며 공연장을 들
어 가지 않았던 나는 무척 의아해했다. 도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
래 ...
나는 순위프로에 나온 서태지의 메사 공연 실황 방송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 이
유를 알 수 있어다.
오빠가 우리한테 공연문화가 이런거다 보여줄라고 슬래머 입장시키는 건 안다구.
그 마음 안다구. 우리도 배울 생각 있다구요. 그것까진 좋은데 그러면 제대로 된 슬래머들을
입장시켜야될 거 아냐! 그런데 핸드백에 하이힐에 저 사람들은 뭐냔 말이예요! 일주일 밤샌
우리는 뭐냔 말이예요!(2000년 10월)
참 슬래머들 말 많았지 그런데 만약에 그때 슬래머들 안들어왔으면 우리 이렇게까지 놀 줄
몰랐을거야 걔네 보고 배운거지 그런거 보면 태지 이놈을 미워할 수 없다니까’(2001년3월)
대부분 록 공연 문화가 처음이었을 그들은 그렇게 공연 문화를 접했다. 그 이
전 의 어색한 MBC 사내에서의 사전녹화를 제외한다면 메사 공연은 서태지가
자 신의 기획하에 자비로 외부공연장을 골라 만든 사실상의 첫 사전 녹화였다.
이 공연에서 서태지 팬들은 제대로 된 록 공연 문화를 접했거 그제서야 서태
지의 계산된 의도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공연장을 나올 떄 주테하지 못하던
챈들의 그 미소는 이제는 록 공연문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메사에서 88체육관 워커힐 야외수영장 트라이포트홀로 이어지는 사전녹화를
거치는 동안 팬들은 노란 손수건 대신 머리를 흔들어대기 시작했고 공연장에
서 의 오빠 의 모습을 보는 사람보다 놀기에 바쁜 사람들이 점차 많아졌다. 그
렇 게 만들어진 서태지의 사전 녹화는 그야말고 장관이었다. 로커로서 자신의
음 악적 색깔을 충분히 드러낸 서태지와 그런 그의 음악을 기꺼이 수용할 준비
가 되어있는 2쳔여명의 초보 록 매니아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은. 방송을 보던
언 더 매니아가 저 공연을 추려진 사람들로 꾸려진 공연이다.라고 오해를 했을
정 도로 이전에는 보기 힘든 공연을 연출했다.
그들의 변화는 옆에서 지켜보지 않 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변화는 나에게 아주 자연스러워 보였다.
왜냐하면 역시 그들과 함께 음악을 몸으로 즐기는
사람으로 변해갔기때문이다.
예전에는 이런 음악을 어떻게 듣나 했거든. 근데 이렇게 머리 흔들고 몸 흔들고 들으니까
재밌는거야.난 언더매니아들이 왜 이런 음악을 듣는지 예전엔 이해못했는데….
처음 컴백 공연때 그떄는 우리 오빠 볼려고 다 앞으로 몰렸잖아. 그런데 지금은
오빠 얼굴 봐야지 하다가도 음악만 나오면 그 다음부터 아무 생각이 안나.
11월 12일. 나우누리 태지 바보에서 만든 음악 감상회는 비록 규모는 작았지
만 의미있는 날이다. 이미 서태지 사전 녹화에서도 오프닝 식으로 몇몇 언더
밴드들이 출연했는데 이날은 처음으로 태지팬 자신들이 기획한 행사에 언더밴
드 를 초청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언더 밴드들의 음악을 감상하고 노는 문화
는 점차 확산되어 일반적인 관례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12월 2일 SBS한밤의
TV연예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황반련의 메사 야외홀 공연에서는 댄스팀
힙합 밴드 하드코어밴드등이 1천여명의 태지팬들과 야외공연을 했고 2월 21일
태지 생일은 기념한 팬들의 자축 파티에서도 약 6백여명의 팬들이 언더밴드들
과 함께 장관을 연출했었다. 다음 카폐 서태영은 정모에서 밴드를 초대해서 같
이 놀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은 서울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부산에서는 서 태지 부산 콘서트 이후 70여명의 팬들이 부산의 육이오라는 클
럽에서 부산지역 의 밴드들과 밤새 놀았다. 또한 광주와 대구에서도 그 지역의
클럽에 놀러가는 태지팬들이 점점많아지고 있다.
결국 이런 움직임은 음악을 즐기고 노는 것으로 끝날 수는 없는 일이다. 서태
지 팬들은 이미 서태지가 은퇴하고 난 이후 일부 언더 매니아로 간 사람들을
제 외하고 대부분 들을 음악이 없어서 대중음악판과 거리가 멀어졌던 사람들
이다.
그런 그들이 서태지의 컴백을 계기로 이제 우리가 즐길만한 문화를 만들자
고 외치고 있다. 그들은 음악을 듣고 즐기는 문화를 맛조았고 이제 그 문화 없
이는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기 대문이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 던 나로서는 도무지 무슨 일일 일어날것 같
은 은근한 기대감을 떨칠 수가 없었 다. 그리고 그 기대감은 결국 현실로 드러
났다.
왜 서태지가 하닜까 되냔 말이지. 지네가 언제 슬램하고 언제 헤드뱅잉했다고 요즘도
종종 클럽에서는 기존의 클럽매니아와 새로 등장한 서태지팬들 사이에 영토싸움이
일어난다. 또한 다른 밴드들의 공영장에서 서태지를 외치는 일부 서태지ㅊ팬들대문에
게시판이 뒤집어지는 사건이 종종일어나곤 한다. 아직까지도 기존 언더 매니아와
클럽공연장을 가는 서태지팬들이 잘 융합되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1월 16일 태지존 WWW.TAIJIZONE.COM의 와와와라는 토론게시판에서 대바
위가 만들어졌다. 대중음악판바꾸기위원회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는 이
모 임은 태지존에서 대중음악판에 대한 고민을 해오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비뚤
어 진 우리나라 대중음악을 바꿔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단체이다. 태지팬이
아 닌 사람들까지도 참가하고 있는 이 단체는 '순위프로그램폐지를 위한 보고
서 를 작성하기도 했고 지난 4월 29일엔 공연 문화 활성화를 위한 공연을 개최
하 기도 했다. 꼬한 5월 18일 에는 부산의 서태지 팬클럽 시대유감과 함께 부
산 콘 서트를 개최했다. 게시판에는 이미 대구 공연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는 상
황이 다. 이런 움직임은 단지 대바위 만이 아니다. 2000년 12월 광고주 압박이
라는 새로운 방법은 통해 SBS한밤의 TV연예를 하루로 축소시키는데 중요한
역할 을 한 태지 매니아WWW.TAIJIMANIA.ORG의 매체 비편 클럽은 3월 11일
정모 에서 대중음악 개혁을 위한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공식적으로
결정하였다.
시민운동이라는게 지식인들이 주도하는 거라는 거 아는데 그렇다고 우리가 그 사람들
못믿는다고 그냥 비판하고 바라만 보고 있는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면 결국 우리도
말만하는 그런 지식인들하고 똑 같은 거예요
( 2001년 3월 11일 태지 매니아 매페비평 정모이야기)
대바위가 음악매니아로서의 성격이 강한 모임이라면 팬덤의 성격이 강한 매체
비편방의 대개련 참가는 아직까지 한국에서 하등인간 취급을 받고 있는 팬덤
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이런 태지팬들의 움직임이 또
다는 방향에서 대중음악개혁운동을 진행하고 있던 문화연대 등의 시민단테와
결합됨으로써 드디어 시민단체와 팬덤이 만난 대개련(대중음악개혁을 위한
연 대모임)이 만들어졌다. 지금 대개련은 여러 시민단체들과 서태지 팬 MM
(MADE IN MANIA자생적인 록 매니아 모임),이승환 팬,조용필 팬,등이 참가한
엄청난 세력이 되었다. 모든 젊은 이들의 모임이 그렇듯 그들은 참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또한 그들의 사고는 대중음악을 개혁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건전하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언론은 아직도 그들을
어 린애들로 바라본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이미 20대를 넘긴
대학생들이다. 나와 말을 놓는 내 또래의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
하 고 그들을 어린애들 취급하는 언론의 오해는 어디서 비롯된것일까?
지금 우리나라의 중견급 기자들은 대부분 문화의 불지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공연을 기다리는 동안의 그 기대감을 대형 스피커 앞에 섰을 떄의 그 설레임을
그리고 이내 이어지는 베이스의 징징거리는 소리에 심장이 울렁거리는 느낌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들이 공연을 보기 위해 밤을 새는 사람들의 심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그들은 문화적으로 이 시대의 문화적 잠재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적으로 소외된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내가 그들을 옆에서 기록하면서 느낀 것은, 그들에 대하나 세상의 시선이 결국
은 언론들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언론의 삐뚤어진 시선
은 세상이 그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고 그런 세상의 편견은 결국엔 그들
을 소외시켜서 그들의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스런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낸다. 그런 측면에서 한밤의 TV연예를 비롯한 여러 황색
언론들에 대한 그들의 대응은 아주 온순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황색 언론
들은 바로 자신들을 사회로부터 왜곡 시키고 분리시키려는 적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서태지팬들이 서태지만 위해서 싸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가 보기에 황색 언론과의 싸움은 바로
그들 자신을 위한 싸움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숨가쁘게 진행되어왔던 시간들이었다. 이 짧은 지면으로는
극히 일부분만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사건들이 있다. 수호대 이야기
들 SBS뷰티풀라이프촬영이야기 서사회 서자회등 수많은 자생적인 단체들 어
디선가 공연을 기획하는 어떤사람들 윈엠프 방송으로 공중파에서는 도저히 들
을 수 없는 좋은 노래들을 확산시키려는 수많은 아마추어 방송인들. 수만 명이
접속하는 거대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이름 모를 운영자들까지 이 지면에는 등장
시킬 수 없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내가 그들을 촬영하면서 가장
당황했던 것은(그리고 편집을 하면서 가장 고민스러운 것은)나는 늘 새로운 그
들을 만나야만 했다는 사실이다.
서태지란 상징적 아이콘을 제외한다면 그들 사이에 중심인물이란 존재하지 않
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득 사이에서 그렇게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끊임없
이 새로운 일들이 기획된다.
영웅은 없어 이날에 영웅은 바로 너야라고 자신의 팬들을 부추겼던 서태지는
이런 팬들의 모습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한국 사회에서 지난 1년간 행복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내
가 서태지 팬들은 찍는 지난 10개월간은 한국경제가 끝내는 다시 IMF 상태로
돌아가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런 새 천년의 한해를 서태지 팬들은 참으로 행
복하게 보냈던 것 같다. 문화란 즐거운 것이다. 활력소가 되는 것이다. 2001
년 한국 사회에서 어떤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 수 잇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
까? 그런 의미에서 서태지팬들의 문화는 존재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
내 가 혹시 이렇게 이야기 한다면 당신은 경제가 이 모양인데 왜 너네들만 행복
하냐고 질투어린 시샘을 보낼 것인가?
끝~
전명산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재학중이다. 다양한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이였지만. 골수 서태지 팬은 아니였음을 밝힌다. 그가 처음 서태지 팬들의 다큐멘터리를
찍겠다고 했을 때 쉽게 그의 진의를 이해하고 동의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지난 10개월간
그는 자비를 들여 계획한 것들을 일부 완성했다. 영화제출품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