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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발리에(chevalier)
그들은 신의 가호를 이어받은 기사인가,
혹은
악마보다도 더 잔인한 저주받은 기사들인가
제5화
가면무도회(假面舞蹈會): 여러 사람이 가면을 쓰고 사교춤을 추며 노는 모임.
말굽소리가 멈추고 마차도 멈췄다. 성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아리아는 아까부터 안토니오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파티에 초대된 사람치고는 무언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버지께서 요즘 따라 왜이러실까?
안색도 좋지 않으시고… 역시 집으로 돌아가는 게…….
곧이어 안토니오가 마차에서 내리고 아리아의 손을 잡아주고는 편히 내려올 수 있게 도와주었다. 여러 음악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무도회가 막 시작된 듯 보였다. 이곳과는 집이 상당히 멀었기 때문에 다른 귀족들이나 초대받은 사람들은 먼저 성으로 들어가 담소를 나누거나 벌써 춤을 신청하고 있는 듯 보였다. 밖으로 퍼져 나오는 아름다운 악기의 선율에 벌써부터 아리아의 가슴이 쿵쾅쿵쾅 세차게 뛰었다. 문 앞에 첫 발을 디디니 수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안토니오와 아리아가 마지막 초대 손님인 것 같았다.
아리아는 안토니오가 내미는 손을 잡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갔다. 처음으로 신어본 구두에 발걸음이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그만저만 적응이 되어갔다. 그냥 무도회가 아닌 가면무도회인지라 홀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은 각각의 취향과 개성을 살린 여러 가면들을 쓰고 있었다. 무도회에서 서로 담소를 나누거나 춤을 추고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는 또각또각 구두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하나둘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에는 정말 탄성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이 서있었다.
그녀의 머릿결은 여느 다른 날보다 윤기가 흘렀고 비록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었다. 가면사이로 비치는 은회색 눈동자는 다른 날 보다 더욱 빛을 발하고 마치 달빛이 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그녀 앞에서는 아름다운 달빛조차도 무용지물(無用之物)이었다. 무도회에 있던 다른 레이디(lady)들은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아름다운 여성이 못마땅하였는지 다들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며 춤을 신청 하던 남자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녀를 향해 구애(求愛)의 눈길을 보내는 것에 그녀들은 코웃음을 치고는 유심히 아리아를 쳐다보았다.
아리아는 우뚝 서서는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에 당황하였고 껄끄러웠다. 석고상 마냥 몸이 굳어버린 그녀의 모습을 본 안토니오는 웃음을 짓고는 아리아의 손을 잡고 리드해 홀 중앙까지 걸었다. 안토니오가 손을 잡자 아리아는 긴장이 조금 풀렸지만 걸어가면서도 자신에게 시선을 떼지 않는 남자들과 또 그와는 반대로 자신을 쏘아보며 몇몇 여자들이 낯 뜨거운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자 아리아가 이에 반응하듯 움찔하였다.
“쳇. 저런 어린년이 뭐가 예쁘다고 저러는 거야?”
“그러니깐 말이야! 호호. 남자랑 자보기는 했을까?”
“남자들이 저런 애 같은 여자한테 매력이나 느끼겠어? 분명 처녀겠지.”
아리아는 여자들의 낯뜨거운 말소리에 눈살을 찌푸리고는 생각했다.
저런 말을 어떻게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술술 내뱉는 거야?
참나… 내가 처, 처녀든 말든 지들이 무슨 상관이래?
아리아는 이 수치스러운 말들이 아버지의 귀에도 들리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곧이어 홀 중앙에 서고는 안토니오가 고개를 숙이고 예를 갖추어 인사하고는 말하였다.
“아돌프 대공님. 오늘 안토니오 드 베네치아 대공님의 초대에 부름 받아 이리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안토니오가 말을 끝내자마자 그들의 등장으로 조용하던 무도회장이 갑자기 술렁이었다. 여자들은 모두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흥분하며 여기저기 입을 열어댔고 남자들은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
“어머머! 부인 방금 들으셨어요? 베네치아家래요! 게다가 안토니오라는 이름은…….”
“정말이요? 전 제가 방금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진정 안토니오 드 베네치아인가요? 후후… 그 대단한 분을 여기서 보게 되는군요.”
그녀들이 놀랐다는 식으로 이리저리 떠들어대고 있을 때 눈치 없이 어떤 한 여자가 끼어들어 말을 걸어왔다.
“저… 부인들 저 사람이 누구기에 이러는 거죠?”
“아니! 부인은 정녕 안토니오 드 베네치아를 모르십니까?”
“아니…! 그 왜 베네치아가문이 예부터 대대로 뛰어난 연구가(硏究家)를 배출해내잖아요. 안토니오 저분이 그 베네치아家의 장남이자 어렸을 적부터 뛰어난 수재(秀才)였어요. 다른 연구가분들께서 저분을 자신의 제자로 두기 위해서 안간힘들을 쓰셨죠. 호호… 그런데 저분이 24살쯤이셨을까요… 갑자기 모습을 감추셔서 혹, 그분이 죽은 게 아니냐며 여러 소문들이 떠돌았죠. 한동안 귀족들에겐 엄청난 화재거리였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다시 볼 수 있게 될 줄이야. 후훗, 앞으로도 말들이 많겠는걸요?”
“아아…….”
아리아는 아버지께서 예를 갖추며 말하자 자신도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고는 인사하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돌프 대공님 아리아 드 베네치아 인사 올립니다.”
아리아는 인사를 올리고는 고개를 올려 앞에 서있는 남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는 안토니오와 같은 나이대의 남자였고 금발의 진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아리아는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에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악의(惡意)가 담긴 것 같진 않아보였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쁘고 꺼림칙했다. 그런 아리아의 마음을 알았던지 아돌프는 약간의 농담과 함께 사과하였다.
“하하하… 이거 숙녀 분께 실례를 끼쳤군. 미안하오. 아리아 그대가 너무나도 아름다워 그런 것이니 너무 노여워마시오. 후후…….”
“아닙니다. 대공님.”
곧이어 아돌프는 안토니오와 아리아에게 시선을 떼고는 무도회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말하였다. 위엄 있는 그의 모습은 시끌벅적했던 분위기를 한 번에 압도해버렸다.
“여러분! 제 초대에 이렇게 이 자리에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제 생일을 맞아 이렇게 무도회를 열어 여러분들을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후후… 그리고 이 기회를 빌려 제 아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그의 말과 함께 조용했던 연회장이 웅성웅성 복잡한 여러 소리들로 북적였다. 갑자기 그가 자신의 아들을 소개한다니… 그는 아직 미혼(未婚)이 아니었던가!
“여러분 부디 환영으로 맞이해주십시오.”
모든 사람들의 이목(耳目)이 그의 옆에 서있는 장신의 검은 머리칼을 가진 남성에게로 돌아갔다. 온통 검은 복장에 검은 머리칼, 검은 가면으로 둘러진 신비한 그의 모습에 모두 넋을 잃었다. 이곳에서 검은 머리칼은 그리 흔한 머리색이 아니었다. 그를 보자마자 그제 서야 사람들은 저 남자가 친아들이 아닌 양자(養子)인 걸 알게 되었다. 아돌프는 노란머리칼이기 때문이다.
짝짝짝
여러 곳에서 박수소리가 터져 나오고 아리아도 덩달아 박수를 쳤다. 아리아는 한눈에 저 남자가 저번에 자신을 구해준 남자라는 걸 느꼈다. 그때도 그의 신비함에 매료되어 눈을 땔 수 없었듯이 지금도 그에게 빨려들어 갈 것 같이 눈을 뗄 수 없었다. 아돌프는 연주가들에게 음악을 연주할 것을 부탁하였고 곧이어 아름다운 선율이 또 한 번 귓가에 들려왔다. 잠시 소란스러웠던 홀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모른 채 남성들은 아름다운 레이디(lady)들에게 춤을 신청하고 여성들은 호감이 가는 남성에게 춤 신청을 받길 마음속으로 바라며 그렇게 본격적인 연회가 열렸다. 아리아는 처음 오는 무도회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만 있자니 좀 그렇고… 그렇다고 여기에 딱히 아는 사람도 없고…
아리아가 갖갖이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손에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져다. 아마도 안토니오의 손에 힘이 들어가 그랬던 모양이다. 그녀는 의아함에 안토니오를 바라보자 안토니오의 표정이 홀에 들어오기 전과는 사뭇 다르게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안토니오가 계속 시선을 두고 있는 곳을 바라보자 아돌프와 그의 아들이라 소개하던 남자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안토니오의 표정이 더욱 굳어진 걸 본 아리아는 이제야 안토니오가 아돌프와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안토니오 백작! 이제야 진정으로 인사를 할 수 있게 되었군요. 후후…”
“…”
“아아… 자네에게 정식으로 소개하지. 내 아들일세”
“카인 드 크리스핀, 안토니오 백작님께 인사드립니다.”
그는 안토니오에게 인사하였고 안토니오는 그를 보며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카인…
아리아는 그의 이름을 속으로 여러 번 읊어보고 그를 쳐다보았다. 당장에 그의 얼굴을 덮은 검은 가면을 벗기고 그, 카인의 얼굴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의 눈동자를…….
아리아는 자신이 이런 낯부끄러운 상상을 저도 모르게 했다는 사실에 얼굴이 붉어졌다. 안토니오는 아리아의 손을 잡아 자신의 뒤에 슬며시 가리고는 아돌프를 향해 굳은 얼굴과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돌프 자네에게 할 말이 있소. 단 둘이서 말 일세…….”
“저쪽으로 가지.”
안토니오는 아리아에게 여기서 잠시 기다리라 일러두고는 아돌프가 이끄는 곳으로 걸어갔다. 아리아는 안토니오의 모습에 약간 걱정이 들었지만 이내 현악기의 아름다운 소리에 아리아는 불안한 생각들을 떨쳐냈다. 테이블에 올려있는 와인 잔을 들고 한 모금 목을 축이자 알싸한 알코올의 향과 달콤한 포도의 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그러다 문득 아리아는 자신의 옆에서 홀 기둥에 기댄 채 서있는 남자에게 시선이 가버렸다. 카인… 이라 소개하던 그의 목소리는 또 한 번 듣고 싶을 만큼 너무나도 매력적인 음성이었다.
아리아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카인이 느꼈던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가면속의 둘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아리아는 자신이 줄곧 쳐다보았다는 사실을 그가 알았을까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곧이어 그가 기대고 있던 몸을 떼고는 아리아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갑자기 다가오는 그가 당황스러워 아리아가 한걸음 뒤로 물러가자 그가 한걸음 더 다가왔다.
아름다운 음악소리에 여기저기 남녀 짝을 이루어 춤을 추고,
유혹하는 눈빛과, 사랑의 말을 속삭이는 이곳에
달을 닮은 그녀와
어둠을 닮은 그…….
가슴이 시킨 일입니다.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깊이가 얼마 만큼인지.
그 시간이 얼마나 더 지체될지.
저는 가늠 할 수 없습니다.
가슴이
그대를 보고 반응했고,
그대의 손을 잡으라 시켰습니다.
그대의 입술에 나의입술을 맞대길 원했고,
그대로 시간이 멈추길 바란 것도 가슴이 시킨 일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알지 못 합니다.
그대를 사랑함에
내 머리는 아무것도 한일이 없기에…….
에고 ㅜㅜ 집에 오자마자 5편 올립니다....
1~4편 잠시 수정하고 6편을 썼는데...
원래 이편에서 둘의 이런이런씬(?)을 쓸까 했는데...
되도록 자제하면서 ...(으음?)
...다다다음화를 거듭할수록
점점 아리아한테 미안해져가네요(왜?)...
그럼 .. 일요일 즐겁게 보내세요^^
*눈팅은 미워요 ㅜㅜ
첫댓글 캬아 갈수록 재밌어진다 ㅋㅋ
음핫...감사드려요 ㅜㅜ 제 글이 재미있다는 말 전 진짜진짜 좋아하거든요. 잠깐 들렀는데 로체스틴님의 댓글보고 힘이 솟네요 ~~
우왓 /ㅁ/ 처음부터 봐야겠네요!! 건필하세요! :)
하하.. 스토리상으론 별문제없어요 뭐 다시읽어주신다면 전 한없이 기쁘답니다 ㅜㅜ!! 답글 정말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