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제국의 황궁', '고종의 궁궐'이라는 명확한 장소성을 지니지만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조건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 온 덕수궁. 서울의 어떤 궁보다 접근성이 좋은 곳에 위치한 이곳은 일상의 장소로부터 고립되어 있으면서도 언제라도 그 품으로 뛰어들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사유가 가능한 타임머신 같은 장소이다. 고층 빌딩 숲 안의 새 둥지처럼 아늑한 이곳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의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이 전시되고 있다.
◦ 전시기간: 2021.9.10-11.28
◦ 덕수궁 야외 및 전각 전시
◦ 관람시간: 화~일요일: 오전 9시~오후 9시(입장 마감 오후 8시), 매주 월요일 휴궁
◦ 입장료: 덕수궁 입장료 1000원, 전시는 무료
◦ 주차: 덕수궁 내에 주차장 없음.
◦ 공동주최: 국립현대미술관,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시각장애인 위한 음성해설 지원되는 전시.)
✵ 프로젝트의 제목 '상상의 정원'은 조선 후기 '의원(意園)'문화에서 가지고 왔다고 한다. 18-9세기 조선의 문인들은 경제적 형편에 제한받지 않고 마음껏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의원, 즉 '상상 속 정원'을 경영했다고 하는데, 이번 프로젝트에서 작가들은 정원의 역사, 사상, 실천을 다시 생각하면서 다양한 초점을 지닌 열린 정원을 만들어 낸다. 덕수궁의 가을 정원을 천천히 둘러보며 9개의 작품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가을색 깊은 궁내를 크게 한 바퀴 돌았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1. 권혜원-나무를상상하는 방법 ( 중화전의 행각에 전시)
덕수궁의 정원에는 이곳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덕수궁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나무와 식물들은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목격했고 기억한다. 그 기억에 대한 이야기와, 이 정원을 가꿨을 5명의 정원사(사람, 새, 비인간적 존재)를 상상해 보는 작품이다.
2. 윤석남-눈물이비처럼, 빛처럼: 1930년대 어느 봄 날 (석조전 정원 잔디밭에 설치) 2021. 나무에 아크릴
작가는 폐목을 이용하여 전근대와 근대를 살아온 이름 없는 조선 여성들의 얼굴과 몸을 그려 넣어, 새로운 시대를 마주한 그녀들의 의지와 기대를 담았다.
3. 지니서- 일보일경(一步一驚) (석조전과 중화전 사이 분수대 근처) 2020-2021. 구리, 스테인리스 스틸과 혼합재료)
경험의 정수는 거닒과 멈춤(一步)에 따라 변하는 풍경(風景)과 그것이 만들어 내는 놀라움(驚)에 있다. 이 작품은 그 자체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관람객이 낯선 시간과 만나는 시간의 통로를 지나고, 일시적인 무형의 바람(風)과 태초부터 존재한 빛(景)이 서로 침투하고 스며들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4. 김명범 - 원 (즉조당 앞) 2021. 스테인리스 스틸과 혼합재료)
영원불멸의 상징으로 간주되던 괴석 옆에 불로장생의 또 다른 상징인 십장생 중 가운데 사슴을 두어 선계(仙界)를 연출한다. 식물과 동물, 삶과 죽음, 이상과 현실, 질서와 엔트로피 등 이질적인 것들이 긴장하며 공존하는 이 작품은 초현실적 풍경을 만들어내면서, 일상의 공간 속에서 깊은 시간의 지평을 체험하도록 만든다.
5. 황수로 - 홍도화(紅桃花) (석어당에 전시) 2021. 천연염색한 비단, 모시, 송화가루, 매화가지 등.
조선시대 궁궐에서는 생화를 꺾어 실내 장식을 금했다. 생명을 존중하고 왕의 위엄과 길상, 장수와 영원불멸을 향한 조선왕조의 염원이 들어있다. 대신 인간이 만든 가화를 만들어 사용했는데 이것을 채화라 한다. 무형문화재 황수로는 고종황제의 즉위 40년을 기념하고 대한제국 황제 즉위 6년을 경축하는 임인년 진연을 기록한 의궤를 바탕으로 고종에게 헌화된 채화 가운데 왕의 권위와 위용을 상징한 도화를 전통적 기법으로 제작하되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6. 김아연 - 가든 카펫 (정관헌과 덕흥전 사이 설치) 2021. 식물, 목재 등 복합재료
시기적으로 독자적 근대화와 외세가 씨실과 날실처럼 얽혀 있던 대한 제국의 시기적 상황을 고종 일가 사진 속 카펫을 고증해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7. 이예승 - 그림자 정원: 흐리게 중첩된 경물 (덕흥전 안) 2021. 증강현실, 16채널 영상, 거울, 라이딩 등, 구곡소요(九曲逍遙) 2021. 증강현실, 디지털프린트 등
정원 구석구석에 특이한 형태의 오브제들에 부착된 QR코드를 스마트기기로 태그하면 눈앞에 AR로 구현된 상상의 정원이 펼쳐진다. 18-19세기 조선의 문인들이 글과 그림으로 상상의 정원을 만들었다면, 이예승작가는 최첨단 기술로 가상의 정원을 만들어 낸다.
8. 이용배 x 성종상 - 몽유원림 (夢遊園林) (정관헌에 설치) 2021. 애니메이션
고종의 침전인 함녕전 안에서 애니메이션이 상영된다. 역사적 상황으로 이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고종이 겼었던 현실과 그가 꿈꾸었으나 직접 가보지도 만들지도 못한 이상적인 정원을 애니메이션으로 볼 수 있다. 외로이 생을 마감했을 고종의 침전 앞에 앉아 있으니 그 외로움과 절망이 전해지는 듯했다.
9. 신혜우 - 면면상처 (面面相覷) : 식물학자의 시선 (행각에 전시) 2021. 식물표본, 식물 세밀화 등
작가 신혜우는 식물학자이자 식물 세밀화가이다. 한국의 식물학 연구를 본격적으로 했던 일본의 나카이 교수 이전에 "대한 제국 황실 전속 식물학자가 있었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작품은 출발한다. 2021년 봄부터 덕수궁에서 발견되는 모든 식물들을 대상으로 덕수궁의 파란만장한 역사의 증인들인 식물들을 표본과 그림, 글 등으로 풀어냈다. 식물 표본 사이사이, 고종과 덕혜 옹주의 흑백사진이 처연히 아름다웠다.
✵ 덕수궁 정원과 조선 근대사를 연결한 '상상속의 정원'이라는 프로젝트는 그동안 모른척했던 덕수궁 구석구석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한다. '상상'은 더 큰 상상을 만들고, 현재를 딛고 미래로 나아갈 희망을 갖게 한다. 가을색이 아름다운 덕수궁 정원을 천천히 걸으며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 사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나를 실컷 풀어 놓은 날이었다.
[자료출처 및 참고문헌: <덕수궁 야외전시>(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작성자 Jinny)/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토당 양명숙 교장선생님
오늘 아드님 결혼 축하드려요.
바쁘실텐데 여기를 들리셨어요.
멋진 정원 감상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