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2일 연중 제1주간 목요일
<그는 나병이 가시고 깨끗하게 되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0-45
그때에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무수한 장벽을 만드는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가 어렸을 때에는 나병환자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직후여서 나병은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잠복기간이 길기 때문에 언제 발병할지 알지도 못하였고 영양상태 또한 최악이었기에 더 쉽게 발병한 것 같습니다. 나병은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알았기 때문에 하늘의 마지막 형벌이라고 천형(天刑)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변에 나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사람들이 그를 보는 것 마저 기피하였고, 동네에 돌아다니면 병을 옮긴다고 돌을 던져 멀리 내쫓아 버리고 아무도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화창한 봄 어느 날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부쳐서 할머니께 드린다고 동네 아이들과 꽃을 따러 동네 앞 방죽 둑을 따라서 걷다가 산을 막 올라가려는데 그만 나환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때 누군가 나병환자에게 잡혀서 간을 빼 먹혀 죽은 아이가 있으니 절대 산에 가지 말라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잔뜩 긴장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희끄무리한 옷을 뒤집어쓰고 진달래 꽃 가지를 든 어떤 아저씨가 골짜기에서 나오면서 우리를 부르는 것입니다. 사실 그 곳이 진달래꽃이 가장 많이 피어있는 곳인데 근처에 상여집이 있어서 무섭다고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너희들 진달래꽃 따러 왔구나! 여기 참 많이 있으니 이리 오렴.” 하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꼼짝없이 잡혀서 죽는다는 생각으로 죽을힘을 다해 뛰었습니다. 그런데 언덕배기를 뛰어 내려오면서 가속도가 붙어서 멈춰 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넘어졌다가 일어나고 길도 찾지 못하고 멍게나무 가시에 찔리기도 하면서 방죽 둑까지 겨우 뛰어 내려와서야 아이들하고 산을 올려다보니 그 아저씨가 어이가 없는지 우리가 던지고 내려온 바구니를 챙겨서 산 오솔길에 놓고는 산등성이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겨우 진정하고 집에 돌아와서 할머니께 그 사실을 말씀 드렸더니 웃으시며, “문둥병을 앓는 사람도 사람인데 어떻게 사람을 잡아먹겠느냐? 다 쓸데없는 소문이란다. 아마 그 사람도 먹을 게 없어서 꽃을 따 먹으려고 그곳에 왔던 모양이구나.”하시며 안심시켜 주셨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당시 먹을 양식이 없어서 소나무 껍질이나 진달래꽃 쑥, 봄나물로 끼니를 때우기 위해 다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균은 햇볕을 쬐면 5분이 채 안 되서 죽기 때문에 햇볕에 노출되면 나균이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더 심하게 아프답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렇게 옷을 두껍게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연속극 허준을 보면서 그 때 나의 행동으로 그 아저씨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생각하면서 뉘우치게 되었고 철부지 어릴 때의 그 행동으로 나는 나환자촌을 많이 찾는 사람 중에 한사람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경계하고 싫어하는 그 나병환자가 오늘 주님을 찾아서 나아오게 됩니다. 주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고 주님을 뵙기 를 소원해서 그는 단단히 각오를 하였지만 돌을 맞을지도 또 동네 입구에 못 들어오게 하는 등 수많은 난관을 물리쳤을 것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위를 감싸고 있으니 그들을 뚫고 주님께 갈 수 있을지 모든 것을 각오하고 그는 지금 죽기 살기로 주님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돌에 맞아 죽든지, 병으로 죽든지 선택의 기로에서 주님을 만나기로 작정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많은 물리적 제재를 이기고 주님 앞에 와서 무릎을 꿇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주님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것도 얼마나 큰 은총인지 생각합니다. 온갖 죄로 더렵혀진 우리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으며, 자유롭게 주님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은총입니다. 미사에 참례하여 주님의 강복을 받고 생명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몸과 피를 영하는 그 순간이 풍성한 은총의 신비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 맴돌고 있는 보이지 않는 많은 장벽도 우리들이 직면한 물리적인 장애가 됩니다. 예전에 재미있는 고사성어로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셨던 오일복 요한 신부님(파리외방선교회 소속 신부님으로 대전교구에 52년간 사목하시다가 타계하신 신부님)께서 어느 날 내게 “회장님, 국회의원이 되십시오. 국회에 가서 주일에는 결혼식을 못하게 하는 법을 재정해서 사람들이 예식장보다 미사참례를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한 바탕 웃었지만 웃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미사 참례하는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요즘은 코로나 19 감염병으로 사람들이 미사참례를 못하던 것이 습관이 되어서 미사에 참례하는 비율이 30%대에서 20%대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회적 환경도 하나의 장벽이 됩니다. 사람들의 편견과 이기심도 우리를 무릎 꿇지 못하게 하는 장벽이고 주님께 가까이 가려고 하면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으로 교회 내에도 장벽이 많습니다. 쓸 데 없이 말하고 끌어내리어 험담하고 뒷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나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람을 잡아먹었다느니, 간을 빼 먹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사제와 수도자가 어떻고 형제자매를 뒤에서 흉을 보고 험담하는 도청도설(道聽塗說 : 길에서 들은 뜬소문을 얘기하는 것)이 난무하는 세상이 우리를 주님 앞에 무릎 꿇지 못하게 하는 큰 장벽이 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런 장벽을 빨리 제거하고 극복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입니다. 정말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서로 격려하십시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3,7-14
형제 여러분, 7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입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8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처럼, 반항하던 때처럼.
9 거기에서 너희 조상들은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떠보며 시험하였다.
10 사십 년 동안 그리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세대에게 화가 나 말하였다.
‘언제나 마음이 빗나간 자들, 그들은 내 길을 깨닫지 못하였다.’
11 그리하여 나는 분노하며 맹세하였다. ‘그들은 내 안식처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2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저버리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13 “오늘”이라는 말이 들리는 한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십시오.
14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료가 된 사람들입니다. 처음의 결심을 끝까지 굳건히 지니는 한 그렇습니다.
축일1월 12일 성녀 마르가리타 부르주아 (Margaret Bourgeoys)
신분 : 선교사, 설립자
활동 연도 : 1620-1700년
같은 이름 : 마가렛, 마르가리따, 말가리다, 말가리따, 말가리타, 부르져와
프랑스 샹파뉴(Champagne)의 트루아(Troyes) 출신인 성녀 마르가리타 부르주아(Margarita Bourgeoys)는 신심 깊은 가정에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20세 때에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카르멜회, 클라라 관상 수도회에 차례로 입회를 청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하였다. 1652년에 그녀는 캐나다의 빌르 마리(Ville-Marie, 현 몬트리올)에 정착 중인 프랑스 총독이 자신의 식민지 내의 학교 선생을 원하자 그에 동의하고 1653년 퀘벡의 몬트리올(Montreal)에 도착하였다. 그 후 4년 동안 '비교회법적인 수련기'를 마친 그녀는 1658년에 개교한 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이 학교는 점차 발전을 거듭하였고, 또 그녀는 '마리아회'를 조직하고 적극적으로 활약하였지만 이로쿼이(Iroquois)족 인디언과의 전쟁으로 인하여 잠시 귀국하였다. 프랑스에서 자신과 함께 할 젊은 여성들을 모집하여 캐나다로 돌아온 그녀는 가장 버림받고 가난한 지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1676년 마침내 퀘벡의 주교로부터 노틀담 수도회의 법적 설립을 승인받았다. 그러나 그녀의 사도직 활동이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수녀원에 화재가 발생해 자신의 조카를 포함하여 두 명의 수녀를 잃는 비극이 있었고, 또 담당 주교와의 심각한 견해 차이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노틀담 수도회는 괄목할만한 발전을 거듭하였다. 73세가 된 성녀 마르가리타는 건강과 기력이 점차 쇠하자 수도원 총원장직에서 은퇴하여 여생을 지내다가 1700년 1월 12일에 선종하였다. 그녀는 1950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2년 10월 31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오늘 축일을 맞은 마르가리타 부르주아 (Margaret Bourgeoys)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