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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유 게시판 스크랩 코쿠리코 언덕에서
아녜스 김채경 추천 0 조회 199 11.10.02 23:10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줄거리

항구가 보이는 언덕에서 코쿠리코 하숙집을 운영하는 열여섯 소녀 '우미'는 바다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매일 아침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깃발을 올린다. 그 깃발을 매일 바다 위에서 바라보는 열일곱 소년 '?'.
한편, 낡은 것을 모두 부수고 새로운 것으로 바꾸자는 사회적인 움직임과 함께, '우미'의 고등학교에서도 오래된 동아리 건물의 철거를 두고 갈등이 일어난다. '우미'와 '?'은 낡았지만 역사와 추억이 깃든 건물을 지키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보존운동을 시작하고, 두 사람은 이를 계기로 서로에게 서서히 끌리기 시작하는데...

(영화 예고에서)

 

9월 30일 혜인이 학교에선 대입 수시 논술 시험때문에 모든 강의는 휴강이었다.

다음주 화요일은 오후 수업이 있어 넉넉한 휴가를 보내려고 온 딸과 함께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줄거리를 읽은후 토요일 영화를 보기로 하였다.

우리 모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만화영화는 거의 다 보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의 영화에 나오는 음악들도 너무 좋고, 내용들도 좋아하는데 초기 보다는 후기 작품은 좀 별로라고 생각하였지만, 그래도 그의 작품이 나오자 보고싶은 충동이 일었다.

언젠가 '지브리 미술관'에도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알았지만 이 작품은 그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의 작품이었다.

 

조조상영이라서 그런지 영화관엔 우리 둘 뿐이었다. 다른 상영관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우린 마치 전세를 낸것 처럼 관람하였다. 우리만 앉아서 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 처음엔 소근소근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럴 필요가 없음을 한 참 후에야 알았다.

 

영화는 많이 아쉬웠다.

우미가 아버지를 위해 매일 올리는 '깃발'에 대한 메세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미와 ?의 사랑이야기가 탄탄하지도 않았고, 일본의 1960년대 시대상을 보여준 영화라 한다면 그 또한 미흡한 상태였다.

그러나 영화의 OST를 들을수록 잔잔하게 여운이 남는다.

 

영화속 '등사기'를 처음 본 혜인이는 궁금하여 내게 묻곤 하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등사기로 인쇄된 활자들을 보면서 학교를 다녔다.

70년대는 물론이고 80년대 초반까지도 등사기로 인쇄된 각종 활자가 우리 주위엔 늘 있었다.

 

혜인이에게 등사기에 대해 설명하면서 외삼촌 생각이 많이 났다.

외갓집에 가면 외삼촌께선 늘 책상 위에 스텐드를 켜 놓고  등사지에 철필로 쓱쓱 소리를 내면서 글씨를쓰고 계셨다.

외삼촌의 글씨가 쓰여진 수많은 이면지들은 실로 묶여져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나의 좋은 공책이 되었다. 받아쓰기 연습장이 되기도 하고, 산수공부 공책이 되기도 하였다. 엄마의 습작을 위하여  어디서도 팔지않는 400자 원고지를 등사기로 밀어서 가져다 주시기도 하였다.

이면지엔 외삼촌 학교의 문예집 책갈피의 봉황그림이 있기도 하였고, 어느 학생의 동시가 적혀 있기도 하였고, 학교의 알림문구도 있었다.

 

외삼촌께선 녹음기가 귀하던 시절 내 이야기를 녹음해 주셨고, 강아지를 갖고 싶어하던 우리집에 예쁜 스피츠 한 마리도 안고 오셨었다. 처음 글을 터득한 후 읽게 된 책도 외삼촌께서 사주신 책이었고, 초등학교 1학년, 우리반에서 제일 좋은 필통도 외삼촌이 사주신 것이었다. 낮잠자는 나를 깨워 공원에 가서 외할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사진도 찍어주시던 분이 외삼촌이셨다.

 

외삼촌은 지금 생각해보면 틱장애가 있으셨다. 늘 눈을 깜박여서 그것을 숨기고자 옅은 선글라스를 쓰고 계셨는데 추측하길 아마도 6.25 전쟁때 입은 트라우마로 생긴게 아닌가 하였다. 남과 대화도 매끄럽게 잘 하시지 못 하셨고, 남앞에 나서길 싫어하셨고, 대인기피증도 있으셨다.

 

나는 외삼촌과  인삿말 이외의 사적인 대화를 나눈 기억이 거의 없다.

그래서 외삼촌과 나와의 관계는 크게 없는 줄 알고 살았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외삼촌이 내 삶의 기억 한 편에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늘 자전거를 타고 옅은 선글라스를 끼고 혼자서 몰두할 수 있는 오디오와 카메라에 심취하셨던 외삼촌은 우리 엄마의 생채기로 남은 단 하나의 오빠였던 것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지 십 여년이 다 되었지만 6.25전쟁의 또 다른 모습의 희생자였던 외삼촌을 엄마는 늘 안타까워 하면서 살고 계셨음을 어른이 다 되어서야 알았다.

영화 속 우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중 바다에서 사망한 것으로 나온다.

영화의 주제와는 별개로 내 삶의 한 켠이었던 우리 외삼촌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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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10.03 23:13

    첫댓글 참 오랫만에 보는 등사기 입니다.
    초등학교 주산부에서 많이도 접해본 등사지였는데
    등사지 이면지에서 외삼촌의 사랑을 찾으신 소녀시절이 참 아름답겠습니다.

  • 작성자 11.10.04 10:30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들이었습니다.

  • 11.10.06 21:32

    등사기 이야기를 하니 제가 교사를 시작했던 시절 열심히 등사기에 철필로 글을 쓰던 생각이 불현듯 솟아오릅니다.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전 교사가 시험문제를 프린트하느라 등사기가 불이 났던 기억도 납니다. 철필로 하나 하나 써서 하는 프린트가 바로 얼마전 일인데도 아주 아득한 옛날처럼 아련하기만 합니다.

  • 작성자 11.10.07 10:11

    그렇죠? 정말 얼마전 일인데 지금은 구석기 시대 이야기 처럼 들려요. 저도 놀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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