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상수필
최 균 선
밤늦도록 신이 들린것처럼 자꾸자꾸 끄적이다가도 갑자기 잠이란놈이 몰려오면 자리를 뜨기 싫어서 고승의 좌화처럼 그냥 고개방아 한번 찧지 않고 말뚝잠을 자는 습관이 있다. 이것은 나의 유일한 특기이다. 그러다가 엉덩이가 마비되고 허리가 쑤셔나서야 잠끄트머리를 붙안은채 침대에 눕는다. 그런데 침대가 서느러워서인지 미구에 잠이란 놈이 언제 안겼냐는듯 홀짝 빠져나가버린다.
그러면 그 자리에 온갖 잡념들이 멋대로 딩굴며 불면증과 숨박꼭질한다. 그러는 밤이면 뇌리속에 제일 지꿎게 뛰여드는것이 침대에 대한 잡념이다. 그런 밤이면 본격 적으로 침대우에 딩구는 잡념들을 줄을 세워본다.
누구나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나의 잠자리의 연변사는 나의 인생변천사였다. 그만큼 나의 잠자리력사는 다양한 내용으로 엮어졌다. 아주 어렸을때는 이가 득실거 리는 헌이불을 덮고 엉덩이를 까래가시에 찔리면서도 잠만 잘잤고 개구쟁이시절엔 눕는곳이 곧 나의 잠자리였다. 지지리도 가난했던 청년시절엔 까래대신 가마니짝을 편 먼지구들에서도 청춘의 꿈이 아롱다롱하기만 하였다.
열일곱살때 삼도만림장에 풀베기를 갔던 그 여름엔 참외막같은 초막안에서 모기 소리를 자장가로 들으며 고달픈 꿈도 많이 꾸었다. 이듬해 여름 고동하목재판에 선발 대로 가서 화집령밑 초지에서 풀을 베던 나날에도 풍막안에서 마른 풀을 담요삼아 깔고누워 별빛을 동무하면서도 잠자리가 불편한줄 몰랐다. 잠은 시몬스침대에만 잘 뛰여오르는것이 아님을 그때는 몰랐지만 아무튼 고달픈 목재군의 차거운 베개가에도 꿈은 기꺼이 깃들었다. 9월, 산판에 들어가서 숙소를 지을때 바깥에 새초를 펴고 새벽 찬서리를 하얗게 들쓰며 자야 했던 그 며칠도 내게는 불면과 인연이 없었다.
후반생에 운이 풀려 도시인 되여서도 나는 오늘같은 괜찮은 침대를 상상해보지도 않았다. 시유치원의 보이라실 물땅크우에 널판지를 깔고 네식구가 꿈지럭거려도 나는 잠만 잘 잤다. 그후 내가 있었던 도문시진수학교의 강당 한구석에 책상들을 이어놓고 살림을 차렸을때도 잠자리때문에 걱정하지 않았다. 발을 펴고 이불을 덮고 누워잘수 있다는 그것만이라도 얼마나 마음이 놓이고 고마운 일인가?
나는 다 늙어빠져서야 아빠트에서 침대생활을 할수 있게 되였다. 그것도 처음 몇해는 두개의 널궤짝으로 이어진 자작침대가 고작이였다. 푹신하지는 않았지만 튼튼 해서 좋았다. 이제 인생도 저물어서 침대같은 침대에《릉라금침》이 오히려 불면증을 가져왔으니 송충은 역시 솔잎을 먹으며 살아야 하는가부다.
내 잡념은 오지랖넓게 멀리도 뻗어간다. 말하자면 침대야말로 인류문명의 결약의 축도가 아니겠는가. 인류는 태초에 생사박투속에서 지치면 나무가지우에서 새우잠을 잤을것이고 나중에 동굴속 마른 풀잎우에 꿈자리를 폈을것이다. 그러다가 보다 편안 한 잠자리를 강구하면서 동굴의 재무지우에서 일어나 나올수 있었고 마침내 집을 짓고 가정이 있게 되였을것이다.
자초에 인류에게서 가장 간단한 잠자리는 멍석이였다. 차차 잠자리가 강구되고 문명개화가 되면서 침대라는것이 창안되였다. 그후 좁다란 침대가 인류를 실었기에 야만인으로부터 개화된 인간이 될수 있었고 원시문명으로부터 현대문명에로 매진 할수 있은것이 아니랴, 침대의 공헌이야말로 수천년 인류사에 길이 빛나리라.
서양에서는 고대애급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전통이 계승되여 민족, 풍토, 생활양식 조건에 의해 여러가지 형태가 있었다. 그리스에서는 간소한 침대가 류행되 였는데 이것은 또 식사나 사교를 위한 쏘파로서도 사용되였다. 로마에서는 상류계급 저택의 식당에 청동이나 대리석으로 만든 호화스런 침대가 놓여있었다. 이것은 그 위에서 식사를 하기 위한것이었다.
전하는데 의하면 중국에서도 가장 이른 가구가 곧 침대라고 한다.《시경》에도 《재침지상(載寢之床》이라는 구절이 있다. 침대의 제작이야말로 인류생활의 거대한 진보의 표지가 아닐수 없다. 자초에 침대의 기본공능은 그저 잠을 잘수 있게 하는것 이였으나 생리적인 향수로부터 차차 심리향수로 승화하게 되였다. 고대의 상나라 주왕의 침대는 옥으로 만든것이였고 한무제의 침대는 산호로 만들었다고 한다. 대신들의 침대는 금,은, 수정, 유리 등 재료로 만들었다 하고…
침대는 혼인의 재체(载体)이고 가정의 정초이다. 부부에게 있어서 침대는 사랑 의 보금자리로서 같은 시각에 제3자가 용납되지 않는다, 인간의 여러가지 자세중 에서 눕는 자세는 은사권에 속한다. 침대우에 결약은 그만큼 어느 결약보다 철저성을 요구한다. 일부일처제의 제도에서 침대에 잘못 오르면 법적징벌을 받을수도 있다. 어떻게 걷고 어디로 가든 별로 구애되지 않지만 어디에 눕는가는 매우 강구되여야 할 문제이다. 오입이란 결과적으로 오와(误臥)인것이다.
나뽈레옹은《침대는 애정의 무대》라는 절창을 내놓았다. 그러기 신방에 다른 가구는 없어도 침대가 없어서는 안된다. 일컬어 애정비극이란 바로 침대의 비극이다. 침대유희에 극본이 따로 없지만 인생극의 근원이 된다. 침대가 없다면 극에 생활 근거가 없게 된다. 인생극에서 가장 정채로운 장면은 침대우에서의 희비극일것이다. 침대우에서 부부가 딴 이불을 덮고 《3.8선》을 그으면 곧 혼인파멸의 징조이고 남는것은 가정비극의 에필로그일뿐이다.
예로부터 동상이몽이란 말이 전해오고 있는데 동상이몽이라해서 다가 애정의 명제를 해석하는것은 아니다. 력대의 제왕들의 침상을 룡상이라고도 하였지만 황제가 무법천지로 수백의 미녀들을 기탄없이 유린한 범죄의 장소이고 도구였다. 하긴 황제 의 침대에서 발설의 그릇으로 되는것을 《행운》으로 여긴 궁녀들도 있었겠지만 말이 다. 소녀로 입궁하여 룡안을 뵈옵긴커녕 한번도 그런《행운》을 누려보지 못하고 늙어죽은 궁녀들이 얼마였는지 모른다. 천백년래 룡상에서의 적라라한“애정” 유희는 그 자체가 미녀들의 인생비극이였다.
수천년 인류력사는 크게 먹거리쟁탈전과 침대쟁탈전으로 엮어졌고 말할수 있다. 침대쟁탈은 먹거리쟁탈처럼 그렇게 빈번히 총칼을 휘두르지는 않았지만 침대우에도 천정이 무너져내리고 어둑시그레한 전등빛의 혼돈세계가 벌어질수 있다. 침대우의 원앙금침에 언제나 꾀꼴새 노래하고 제비가 춤추는 평화로운 기상만 있은것이 아니였 기때문이다. 절반은 천사의 인성과 절반은 야성이 광란하는 침대이다.
별로 넓지도 않은 침대는 대천세계의 인간백태를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침대는 한사람의 인생기점이자 종점이다. 사람은 잠속에서 20여년이 흘러가버린다고 하니 침대야말로 인생일사의 견증자가 아니랴, 침대우에서 습관처럼 자고깨는 동안 세월에 육신이 늙어가다가 마침내 침대에서 낼숨을 거두어버리고…
《침대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이다. 80%사람들이 침대우에서 죽으니까》 라고 한 마크트웬의 명언은 참으로 진언이면서도 유모아이다. 그런줄 알면서도 더 좋은, 지극히 호화로운 침대에서 자고싶어 안달한다면 더구나 공연히 엮어보는 유모 아라 하겠다. 늦깍이 침대의 주인이 된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2007 년 12 월 18 일
첫댓글 침대에 대해서 한번 심중하게 생각해 보는 기회였어요. 침대의 력사도 배웠구요. ㅎㅎㅎ 좋은 글 즐감했어요.
침대로 전개된 좋은글 즐감했어요.
침대에 대한 좋은글에서 많은 느낌을 가지게 되였습니다.좋은글 많이 기대합니다
님이 젊었를때의 잠자리를 읽느라니 저의 동년도 생각 났습니다. 저도 나무까래에 누워서 자랐고 목재판에서 뒹굴기도 하였지요 그때는 그래도 잠잘자고 행복했는데 지금 내가 자고 있는 침대가 《침대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이다. 80%사람들이 침대우에서 죽으니까》 라는 말과 적절하네요 그래도 그날까지 좋은 꿈 꾸며 살아가렵니다. 좋은글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