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7일 일요일
다섯 딸 세 아들 준경묘 나들이
'하루 푹 쉬었으면 좋겠어요.'
토요일 저녁, 미애씨가 건낸 한마디.
두 딸 육아와 남편 섬기기, 도서관과 센터 실무, 마을 아이들 엄마 역할까지 하는 미애씨.
원더우먼 미애씨가 쉬고 싶은 날입니다.
일요일 아침, 설거지와 방청소를 합니다.
교회 다녀와서 제가 민아 현아 데리고 나들이 갈테니,
미애씨는 늘 부족한 잠을 자기로 했습니다.
미애씨가 저를 섬기는 일은 평번한 일상인데,
제가 미애씨 섬기는 일은 특별한 행사 같아서 부끄럽습니다.
일년 동안 가사안식년을 보내고 계신 한미경 선생님께 말하기 민망하지만,
미애씨께 반나절 쉴 시간을 두고, 두 딸과 나들이 다녀왔습니다.
나들이 장소는
길위의학교 고은정 선생, 중학생 안대균, 초등학생 권건모, 농협 청원경찰 박정철 아저씨께서 갔던
삼척시 미로면 준경묘입니다.
준경묘는 태조 이성계 5대조 할아버지의 묘로
백두대간 두타산 자락 깊은 골에 풍수지리로 보면 명당 중에 명당입니다.
키가 100미터 넘는 소나무, 그야 말로 낙락장송이 울창한 준경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 숲으로 뽑혔습니다.
보은 정이품송과 결혼한 소나무와 불탄 숭례문 복원 재목이 여기 있습니다.
준경묘 뒤 숲길 따라 오르면 백두대간 댓재와 두타산에 오를 수 있습니다.
제가 차를 모니, 민아 현아 돌볼 보모가 필요합니다.
5학년 한선희, 6학년 권은정, 한아름에게 부탁했습니다.
세 살 현아는 선희 언니를 참 좋아합니다.
선희 언니 품에 안기면 곧잘 놀다가 잠이 듭니다.
상철암아파트 버스정류장에서 선희, 은정, 아름이를 만났습니다.
차를 타고 철길 옆 쇠바우를 지날 참에 김태관, 장바다, 권건모가
아름, 선희, 해리포터 전화로 거의 동시에 전화를 합니다.
"누나 어디야? 나는?"
"우리도 같이 가요~ 돌아오세요."
그리하여,
다섯 딸, 세 아들과 준경묘에 갔습니다.
가는 길에 마트에 들렀는데,
아이들에게 무얼 사줄까 했는데 저마다 용돈을 털어서
과일과 과자를 사고 커피를 뽑아서 제게 줍니다.
준경묘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건모가 소리칩니다.
"선생님 멈춰요. 저기 우리가 가방 맡겼던 집이에요. 인사하고 가요."
마침 할머니께서 마당에 나오십니다.
건모와 아이들이 모두 차에서 내려 인사 드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전에 저기 창고에 가방 맡기고 갔어요."
건모가 허리숙여 인사드리니 할머니께서 알아보시고 웃으십니다.
저도 인사드렸습니다.
"별일 아닌데 이렇게 찾와서 인사하니 고마워요" 하십니다.
아이들은 이내 텃밭에 노는 닭구경 갑니다.
신나게 뛰다가 준경묘로 갑니다.
주차장 산불감시원 할아버지께 인사드리고,
비탈길을 오릅니다.
준경묘 까지 1.8Km인데,
600미터는 시멘트 비탈이 심한 길입니다.
길위의학교로 다녀간 건모는 태관이랑 저만치 앞장 섭니다.
저는 민아랑 걷고, 바다는 사진을 찍습니다.
맨 뒤에 선희와 은정이가 현아 손을 잡고 걷습니다.
등줄기에 땀이 흐릅니다.
산비탈 한굽이를 도는데, 선희와 은정이 대신 현아를 안은 아름이가 소리칩니다.
"선생님, 이거 봐요. 보라색 이상한게 있어요."
땅에 떨어진 무얼 주워 옵니다.
가만히 보니 어릴 때 먹던 산열매입니다.
손톱만하고 주름진 열매를 입에 넣으니 달콤합니다.
"맛있다. 먹어 봐라."
아름이가 반을 먹었습니다.
아름이도 맛있다고 하니, 민아도 주워달랍니다.
쪼글쪼글 곶감처럼 마른 산열매는 바로 고욤입니다.
하늘을 쳐다보니 나뭇가지에 고욤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우리 돌아올 때 따먹자!"
저와 아름이는 보물을 발견한 듯 신났습니다.
맨 앞에 가는 권건모, 김태관은 숲길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산의 정기를 받는다고 합니다. 배추도사 무도사구나 했습니다.
흙길을 한참 걷던 은정, 아름, 선희, 현아는
돌틈에서 생쥐를 발견하고 예쁘다며 신이 났습니다.
저는 민아, 바다랑 정이품송과 결혼한 소나무 아래 갔습니다.
키가 95미터나 되는 곧은 소나무.
깊은 산 속 낙락장송 사이에 서니,
세상에서 아득하게 떨어진 곳에서 고대의 스승을 만난 듯 합니다.
바다랑 안내문을 읽고,
뒤에 온 아이들과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솔길 너머로 보니 준경묘가 보입니다.
먼저 도착한 건모랑 태관이는 묘지 앞에서 묵념을 하고 절을 합니다.
큰 소나무나 바위, 무슨 뜻이 있을 법한 곳이면
묵념을 하거나 절을 하는 아이들이 몇 있습니다.
저는 그저 대자연과 그 무엇을 경외하는 아이들 마음이 새로워
뒷모습을 한참 바라봅니다.
엄숙함도 잠시
묘지 밑 비탈진 잔디에서 맨바지로 썰매를 탑니다.
먼지가 풀풀 날리고 엉덩이와 등이 흙과 풀로 범벅입니다.
옆으로 데구르르 구르고,
배로 미끄럼을 타기도 합니다.
신나게 놀고,
거북이 모양 샘에서 시원한 물 마시고,
꽁꽁 언 연못에서 뛰어놀다가
날이 어둑해질 때가 되서야 내려갑니다.
점잖은 어르신 한 분이 오셨다가
풍수지리 공부를 하셨는데 준경묘 터가 참 좋다 하십니다.
아이들 노는 모양을 보시고는,
"서울 아이들은 저렇게 아무렇게 뛰어다니며 못 놀아요. 보기 좋아요." 하십니다.
비탈길을 내려가는 길에 잠든 현아를 안아주셨습니다.
"저기다"
아름이가 고욤나무를 일러주니
모두 나무 밑에서 고욤을 줍습니다.
높은 나뭇가지에 고욤이 주렁주렁달렸는데,
나무 둥치를 흔들어봐야 꿈쩍도 안합니다.
바닥에 떨어진 고욤 몇개를 주워서 내려가는데,
먼저 내려가던 선희가
"여기 많아요"
소리칩니다.
키가 조금 작은 나무에 고욤이 잔뜩 달렸습니다.
둥치를 흔드니 우박이 떨어지듯 고욤이 쏟아집니다.
서로 주머니가 불룩하도록 고욤을 주었습니다.
'저거 많이 먹으면 내일 똥 안나오는데...' 싶은데,
집에 가져가서 나눠먹는다니, 맛있게 먹어라 했습니다.
건모랑 바다가 풍수지리 아저씨께 고욤 몇 개를 드렸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도계읍내 분식점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아이들이 용돈을 모으고 보태었습니다.
어디 나들이가면 '사주세요' 하는 일이 잘 없습니다.
당연한 듯이 용돈을 모아서 무얼 사고 제 입에 넣어주는 아이들.
아이들 본성이 나누기 좋아하는 걸까요
도서관 문화가 그래서 그럴까요
광활팀이 무슨 일이건 아이들과 의논하고 역할나누고
필요한 비용이나 재료를 모은 영향이겠지요.
아이들과 역대 광활팀에게 고맙습니다.
저녁 일곱시 반,
남자 셋, 여자 셋 배웅하고,
민아 현아랑 집에 들어갑니다.
그 사이 민아는 잠이 들었습니다.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는 민아와 현아.
참 예쁘고 고맙습니다.
마을 언니 오빠들 덕에
저와 두 딸 나들이 잘 다녀왔습니다.
< 관련 사진 >
첫댓글 고맙습니다. 형언하기 어렵습니다.
왠지.. 보기 너무 좋습니다.
건모, 기특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