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크리스트 백작
이동민
나는 요즘 엉뚱한 생각을 한다.
소설 몬테크리스트 백작을 처음 읽었을 때는 초등학교 5-6학년 쯤이다. ‘암굴왕’이라는 제목이었고, 어린이 용으로 줄여서 만든 책이었다. 이야기의 재미에 빠져서 밤새워 읽은 기억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이 몬테크리스트 백작으로 위장하여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사람을 찾아가서 한 명, 한 명씩 앙갚음을 해가는 내용이 그렇게도 재미가 있었다. 마치 내가 백작이 된 기분이어서 속이 후련하였다. 영화로도 보았다. 소설보다 더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므로 복수가 일어날 때마다 느껴오는 짜릿함은 더 강렬하였다. 당한 만큼 갚아주는 일이라선지 잔인하였지만 죄책감에서도 벗어나서 즐길 수 있었다.
노년이 되어서 은퇴하고 나니 시간이 남아돈다. 아침부터 텔레비전 앞에 멍하니 앉아 있을 때가 많다. 이상하게도 로봇 같은 옷을 입고 번갯불을 토해내는 무기로 싸우는 이야기에는 흥미가 없다. 어릴 때부터 보고 또 보았던 이야기를 방영하는 채널에 맞춘다. 소공녀, 거지왕자, 백설공주------, 그뿐 아니고 벤허, 무기여 잘 있거라, 쿼바디스 등의 옛 영화도 즐겨본다. 이야기의 줄거리를 훤히 아는데도 흥미가 줄어들지 않았다. 흥미를 끄는 이유가 나름대로 있겠지만 몬테크리스트 백작을 보는 이유는 주인공이 복수를 할 때 느껴오는 통쾌함 때문이다.
노년이 된 탓인지 이따금씩은 젊었을 때와 다른 생각도 한다. 젊었을 때의 고생은 편안한 노년을 보내기 위한 담보이다. 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으면서 자랐다. 에드몽 당떼스는 이프 섬에서 14년 세월의 아까운 청춘을 희생제물로 바쳤다. 보상으로 얻은 것은 엄청난 재화였고, 몬테크리스트 백작이라는 신분이었다. 말하자면 젊은 시절을 희생한 댓가로 부자가 된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열사의 땅에서 10년이 넘도록 젊음을 바친 우리의 젊은 시절과 다르지 않다.
엄청난 재화를 얻었을 때 그가 생각한 것이 정말 복수였을까? 궁금하였다. 많은 재산을 가졌을 때는 편안하게 살려는 것이 가장 매혹적인 길이 아니었을까? 복수란 것은 현실에서 결코 쉽지 않다. 그는 많은 돈을 투자하였다. 위험도 무릅썼다. 실패를 하면 다시 나락의 구렁텅이로 떨어져야 하는 위험이 있는 길을 굳이 선택하였을까? 소설이 아니고 현실이라면 성공의 확률도 희박한 복수의 길을 택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 요즘 나의 엉뚱한 생각이다.
이것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행동일 것이다. 어릴 때의 몽상이 아니고 성인이 되었을 때의 현실일 것이다. 첫 사랑의 여인은 환상 속에 묻어두어야 더 아름답다. 현실의 속살을 헤집어 보면 결코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을 훤히 알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만나는 첫 사랑의 여인은 세월에 닳아져서 실망한다는 것이 술자리에서 나누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가슴 속에 보듬어 두는 것이 그녀룰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몬테크리스트 백작도 첫 사랑의 여인을 만났을 때는 틀림없이 실망하였으리라는 것이 우리가 내린 결론이었다.
되돌아보면 성인이 되었을 때는 동화보다는 셀러리맨의 죽음이나, 에덴의 동쪽처럼 냉혹한 현실을 다룬 영화를 더 즐겨 보았다. 그만큼 우리가 삶의 아픔을 겪으면서 살았다는 뜻이리라.
지금은 노년이 되어 텔레비전과 가까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 졌다. 다시 어릴 때처럼 동화 같은 이야기에 빠져드는 일도 많아졌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가늠이 안 된다. 그렇더라도 복수를 계획하고 성공하였을 때에 짜릿하게 느껴오는 쾌감마저 부정한다면 거짓이리라.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나도 이 길을 택하고 싶지 않았다 라면서 억울함을 호소할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많은 재산을 가진 지금 꽃처럼 예쁜 아내를 구하여서 복된 삶을 누리고 싶은 것이 나의 속마음이었다. 그런데도 당신네들의 그 더러운 욕망을 채워주려 안락한 내 삶을 버리고 험난한 복수의 길을 걸었다며, 몬테크리스트 백작이 항의를 할 것 같다.
프로이트는 말했다. ‘살인하지 말라’ 라는 계율은 우리의 핏속에 살인을 하고픈 무의식의 욕망이 녹아서 흐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몬테크리스트 백작은 우리의 무의식적인 욕망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 더러운 짓거리를 선택하였다는 항변도 일리가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아무리 영웅이더라도 독자의 요구 앞에서는 힘없는 존재가 아닌가.
발자크는 ‘고리오 영감’에서 룻소의 말을 인용하였다. ‘북경의 늙은 고관이 죽으면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된다고 가정하자. 당신이 파리를 떠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그 고관을 죽일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프로이트는 언제든지 남을 죽이고 싶다는 은밀한 욕망이 우리 모두에게 존재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몬테크리스트 백작의 복수극을 즐기는가 보다.
그렇다면 미워하는 자를 쥐도 새도 모르게 골탕 먹이는 방법이 있다면 당신은? 나도 복수극을 벌일 것 같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가슴 속에 쌓여 있는 증오가 어디 한, 둘이겠는가.
2014. 4
2015. 의사수필가 동인지 수록
첫댓글 오랜만에 들러 이동민선생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10년이 훌쩍 넘은 작품인데도 여전히 선생님의 주장은 반짝이고 활기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