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삼백일흔두 번째
돈의 가치
‘식물이 곧 사건이다.’라는 말은 ‘스탈린 풍자’ 시로 유명했던 만델시탐의 말입니다. 식물은 가장 흔한 생명체입니다. 그러니 모든 생명체는 놀라운 역사를 가졌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위력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돈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돈도 생명력이 있다고 할 수는 있겠지요. 그런데 가장 오래된 ‘돈’ 가운데 하나인 ‘돌돈-스톤머니’가 지금도 유통되고 있는 곳이 있답니다. 북태평양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미크로네시아의 한 섬, 얍 yap에는 아직도 6,000개가 넘는 돌 돈이 있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와는 달리 너무 무겁고 커서 도둑맞을 일이 없는 돈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에는 그 가치가 숫자로 표시돼 있지만, 이 돌 돈에는 그런 표시가 없답니다. 그러면 이 돌 돈은 어떻게 그 가치가 매겨질까요. 얍 섬의 돌 돈은 얍에서 수백 Km 떨어진 팔라우에서 만들어져 운반된 것으로 무게나 크기로 가치를 정하는 게 아니라 운반하면서 얼마나 많은 위험을 극복해 냈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이 힘을 모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정해진답니다. 그냥 돌이 아니고 역사와 사건이 있는, 생명력이 내재된 돌이라는 겁니다. 많은 이의 노력과 정성이 그 가치를 말해 준다는 것이지요. 우리말에 ‘뜬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때에 우연히 생긴 돈입니다. 본디 뜬 돈은 부전浮錢이라 하여 공갈이나 속임수로 번 돈, 노름이나 도둑질 뇌물로 얻은 부실한 돈, 땀 흘리지 않고 생긴 돈이었습니다. 구한말의 유학자 이경근李擎根이 후손에게 삶의 지표로 남긴 <고암가훈顧庵家訓>에 “뜬 돈은 벌어서도 안 되고 받아서도 안 되며 들어와도 바로 버리고 손을 씻을지어다.”라고 가르칩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런 돈이라도 실컷 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