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총리가 제기한 라면값 논쟁
‘밀 가격이 떨어졌는데, 라면 가격은 왜 계속 오르는 것인가?’ 정부가 쏘아 올린 ‘질문’에 19일 업계와 시장이 요동쳤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꺼낸 이른바 ‘라면플레이션(라면+인플레이션)’ 논쟁이다.
추 부총리는 지난 18일 한 방송에 출연해 “6~7월 중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로 내려설 수 있을 것”이라면서 “지난해 9~10월 (라면 업체들이 제품 가격을)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 내렸다. 기업들이 밀 가격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의 발언은 지난 5월 소비자 물가 상승폭이 1년 전보다 3.3% 오르는 데 그쳤음에도 불구하고, 라면·김밥 같은 주요 먹거리의 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높아 체감도가 떨어진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부총리까지 직접 나서 이례적으로 라면 가격을 비판하자 업계와 시장에선 논란이 벌어졌다. 한상린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개별 제품 가격에 개입하는 것을 무조건 옹호할 수는 없다”면서도 “하지만 라면은 대체재를 찾기 힘든 ‘국민 음식’인 데다 일부 업체가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어 서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품목이란 특수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쏘아올린 ‘라면플레이션’ 논쟁
라면은 불황이거나 식재료비가 오르고 외식 물가가 치솟을수록 상대적으로 매출이 뛰게 된다. 그만큼 서민 중심 소비가 이뤄진다는 얘기다. 작년 농심의 (연결기준) 매출은 3조1290억원으로 전년보다 17.5%, 오뚜기는 2조7598억원으로 14.3% 올랐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각각 5.7%, 17.8% 올랐다.
세계라면협회(WINA)에 따르면 작년 우리나라의 연간 라면 소비량은 39억5000만개다. 국내 라면 소매시장은 농심·오뚜기·삼양·팔도 4강 체재로 운영되고 있다. 2022년 기준 4사가 전체 시장의 95%(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닐슨)를 차지하고 있다.
라면 가격은 또 한 번 오르면 내려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실제 제품 인상률은 통계청이 조사하는 라면 소비자물가지수보다도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라면 소비자 물가지수는 124.04였다. 작년 5월 지수는 109.72였다. 지난 1년 동안 13% 정도 올랐다고 본 것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그러나 서울 광진구 이마트 자양점에서 판매한 삼양라면(5개입)의 가격은 1년 전 2980원에서 지난 2일 3840원으로 28.9% 올랐다. 오뚜기 진라면 순한맛(5개입)은 이마트 가든파이브 지점에서 전년보다 15.5% 올랐다.
◇라면·제분업체, “우리도 억울”
라면·제분 업체도 할 말은 있다는 입장이다. 라면 업계는 “정부의 요청이 있는 만큼 다각도로 고려해보고 있다”면서도 “라면 가격을 올려 이득을 취한 것처럼 지목당한 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당장 국제 밀 수입가가 실제 제품에 반영되려면 6개월가량의 시차가 걸리기 때문이다. 라면 업체들은 생산 원가의 40~50%를 차지하는 인건비와 물류비, 전기·수도 요금이 오른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기·가스·수도 요금은 전년 대비 23.2%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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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분업체에 원인을 떠넘기기도 했다. 추경호 부총리가 가격 인하의 이유로 설명한 국제 밀 가격은 말 그대로 ‘원재료’ 가격일 뿐 라면 업체가 밀가루를 매입하는 금액에는 반영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한제분·삼양사·CJ제일제당 같은 제분 업체들은 작년 밀가루 공급가를 10% 이상 올렸다. 한 라면 업체는 “제분 업체들이 작년 공급가를 두 번이나 인상해 라면 업체들이 9월부터 가격을 인상한 것”이라며 “우리가 사는 밀가루 가격은 지금도 그대로”라고 말했다.
제분 업체들은 밀 가격이 코로나 이전보단 비싸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 밀 가격이 최고점이었던 작년에 비해 하락한 것은 맞지만 평년 기준으로는 여전히 높다는 것이다. 시카고거래소 기준 밀 가격은 이달 1T당 234.38달러로 전년 동기에 비해 36.9% 하락했지만 코로나 이전인 2019년 6월 가격보단 21.3%가량 높다.
이날 라면업체 주가는 일제히 하락했다. 19일 농심은 전 거래일 대비 2만65000원(6.05%) 떨어진 41만1500원으로 장을 마감했고, 같은 시간 삼양식품도 전 거래일보다 8900원(7.79%) 떨어진 10만5400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