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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로 여행을 떠난다.
설레임반, 기대반으로.
인도에 가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느끼고 돌아올 것인가?
지금부터 일기 형식으로 8일간의 인도 여행기를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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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금요일--1일차--맑음.
아내와 함께 마석에서 아침 8시 40분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11시다. 3층 M 카운터에 가서 항공 예약 티켓과 여행 스케줄표를
건너 받은 뒤 인디아 항공에서 발권을 했다. 수속을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13시 50분 AI317편에 탑승을 했다. 기내에 들어가니 인도풍의 좌석시트가
한눈에 들어온다. 카레냄새가 나는 것도 같고..^^
홍콩까지 2500km--3시간 30분이 소요되었고, 홍공에서 1시간 30분 대기 후
다시 인도를 향해 출발을 했다. 홍콩에서 인도 델리까지는 4100km--5시간
30분이 걸렸다. 가는 도중에 기내식을 두번 했는데, 기내식의 종류는
치킨식사와 야채식사였다.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야채식사를 선택했다.
나는 치킨식사를 선택했는데, 푸석푸석한 안남미에 카레와 치킨을 버무린
밥이였는데, 첫번째는 입에 맞지 않아 반밖에 먹지 않았으나 두번째는 조금
익숙해서인지 다 먹을 수 있었다.
인도 델리 인디아 간디 공항에 도착하니 현지시각 10시 20분(한국시간-1시 50분,
시차 3시간 30분.)이다. 먼저 비자 발급을 해야 하기에 비자 발급센터로 갔다.
먼저 도착한 한국인 10명 정도가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30여명 정도가 더 왔다.
창구가 2군데 있었는데 줄을 서지 않아 어수선했다. 다들 먼저 비자를 받기 위해
분주했다.
델리 공항앞 전경
역시 한국의 아줌마들의 파워는 여기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영어가 되지 않자
손짓발짓으로 잽싸게 비자를 발급받는 걸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자를 받는데는 5X5 사진 한장과 60달러가 필요했다.
일처리는 더디기만 했다. 정말 세월아 네월아 하는 것만 같았다.
앞으로의 인도여행이 순탄하지 않음을 암시하는 것 같기고 하고~~^^
비자를 받고나니 12시가 다 되어 간다. 무려 1시간 30분 정도를 기다린 것 같다.
짐을 찾아 공항 로비로 가니 우리팀의 현지 여행가이드 Mr, Handeep이
기디리고 있었다.
샌딥은 29살이고, 얼굴은 까만색이고 키는 170cm 정도, 그리고 머리는 곱슬이다.
한국에 유학하지도 않았다는데, 한국어 실력은 유창했다. 간혹 조사를 잘못 사용하거나
받침말이 정확하지 않았지만, 외국인 치고는 대단한 한국어 실력이라고 생각되었다.
샌딥의 안내로 우리 여행팀은 공항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전용버스 대기 장소로 갔다.
함께한 여행팀은 모두 22명. 남자 7명, 여자 15명, 20대 여성 1명, 40대 여성 1명,
그리고 모두 50--60대 연령이다. 지역은 서울 경기와 대구 경북이 대부분이었다.
공항 밖으로 나가서 맞이한 인도의 첫 느낌은 생각했던 것보다 깨끗하고 쇼킹한
그 무엇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고 공항 주변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잠시후 전용버스가 도착하고 케리어를 트렁크에 실으려고 밀고 가는데 나와 아내의
케리어를 자신이 실어주겠다고 해서 기사인줄 알았는데, 1분도 안되어 나에게 와서
1달를 달라고 했다. 5m--케리어 끌고 가는데 1달러? 웃음이 나왔지만 그래도
1달러를 줄수밖에~~^^
버스는 공항을 벗어나 델리 시내로 접어 들었다. 자정을 넘어서인지 시내는 조용했다.
안개가 끼어 있었지만 농후하지는 않아 바깥풍경을 조망하는데는 무리가 없었다.
40분 정도 지난 뒤 차는 골목길로 들어가 호텔에 도착했다.
아발론 호텔---건물이 타원형으로, 돔 모양으로 되어있어 아늑해 보였다.
5층건물인데 수영장과 헬스장도 구비되어 있었다. 객실은 팬션처럼
주방도 있었고 원룸처럼 개방되어 있어 대단히 넓어보였다.
포근한 느낌이 호텔이 아니라 가정집 같은 느낌이었다.
새벽 2시가 다 되어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한국은 지금 새벽 5시 30분이다. 몸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5시다. 3시간 정도 잠을 잔 것 같다. 7시에 모닝콜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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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 토요일--맑음--2일차.
인도에서의 첫날이 밝았다.
아침 7시에 모닝콜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이미 5시에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모닝커피를 한잔 마신 다음 7시쯤 호텔 레스토랑으로 가서 아침 식사를 했다.
아침식사는 빵류와 과일, 음료 등으로 간단하게 마쳤다.
8시 30분에 전용버스를 타고 델리 시내 관광에 나섰다.
이제 드디어 인도에 온 느낌이 난다. 쾌쾌한 냄새와 무질서한 거리풍경.
코끼리와 소가 대로를 걸어다니고 지나는 차들도 익숙해서인지
동물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지나간다.
인도의 수도인 델리에서도 이러한데, 지방도시나 시골은 어떠할까
상생이 되지 않는다.
시내 도로질주 코끼리의 모습
시내의 모습
골목길 모습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동양 최대의 이슬람 사원이라는 자마마스지드 사원이다.
1만명이 동시에 예배를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방문해 보니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두번째는 시크교 사원--온통 흰색 대리석으로 장식된 사원이 인상적이었다.
인도의 종교분포는 힌두교--82%, 이슬람교--11%, 시크교--5%,
그리고 기독교, 불교, 자이나교, 유대교 순이라고 한다.
마침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어서 홀에 앉아서 예배를 지켜보았다.
노래와 함께 진행되는 예배는 경건하면서 최면에 빠지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았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라지가트--1948년 1월 30일 극우파 힌두청년에게
암살당한 마하트마 간디의 화장터가 있는 곳이다. 화장터에는 검은
대리석에 간디가 마지막 남긴--"헤이람("오 신이시여") 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다.
또 북쪽에 네루(인도초대총리--간디보좌역--마틸랄 네루의 아들),
산자이 간디(네루의 외손), 인디라 간디(네루의 외동딸--최초의 여성총리)의
화장터도 있어 인도인들이 무척 신성시 하는 곳이다. 이 곳은 대공원처럼 잘
꾸며져 있었으며, 많은 학생들이 소풍을 나온 것처럼 즐겁게 노닐고 있었다.
점심식사는 무굴식으로 구운 닭고기에 화덕에 구운 란을 곁들여 먹은 식사다.
카레를 섞은 감자 소스도 먹을만 했다.
오후 관광은 쿠트브 미나르부터 시작되었다.
쿠트브는--무슬림이 델리를 정복하고 나서 1193년에 승전 기념으로
세운 75미터 높이의 5층 기념 석탑이다. 가까이서 보니 엄청나게
웅장하고 건축기술도 정말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층마다 모양이 다르고 돌출부분 하나 하나도 각기 다른 모양으로
되어 있어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힌두인들로 보면 600년 식민 치욕의
싱징이기도 한데 지금까지 잘 보전되어 온것이 그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이후, 이슬람교 신흥종교인 바하이(연꽃) 사원, 제 2차 세계대전 희생자 위령비인
인도문, 그리고 대통령관저, 정부 종합청사, 국회의사당, 정부빌딩을 관람했다.
인도문
자마 마스지드 사원
라지가트
라지가트
시크교 사원
시크교사원
구투브 미나리
저녁식사를 마친후 호텔 근처 야시장을 들렀다. 일행들 모두 치안불안과
낯설음으로 밖에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나는 주저하지 않고 외출을 했다.
참으로 익숙하지 않다. 가계들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여행을 많이 했지만
이렇게 내 스스로가 이방인 처럼 느껴지긴 처음이다. 그래도 적응해야 하는법.
가계에 들어가서 물건도 사보고 살며시 말도 붙여본다.
그러다보니 조금씩 거리감이 좁혀지고 낯설은 느낌도 줄어들었다.
한참을 시장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그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호텔로 들어왔다.
오늘 하루 델리를 관광하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한사람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안경을 낀 사람도 보지 못했다. 물론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안경을 쓴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하드라도 정말 극소수의 사람들만 담배를 피우고 안경을
쓰는 걸까.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인도인들은 대부분 담배껌인 쿠르카를 씹는다고 한다.
쿠르카는 담배의 주성분인 니코친에다 파라핀, 견과류등도 포함되어 있어 중독이
심하고 발암물질이 포합되어 있어 매년 100만명이 죽는다고 하니 담배의 심각성은
온 인류의 문제인것 같다.
그러나 인도인들이 안경을 쓰지 않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 안경을
쓰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니 안경쓰는 친구가
거의 없는걸 보니 우리나라 사람만큼 눈이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은 환경과 습관에 기인하는 것으로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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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3일 일요일--3일차--맑음.
아침 5시 30분에 기상을 했다.
아침식사를 한 뒤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7시 30분에 전용버스에 올랐다.
델리 공항에 도착하여 발권을 한뒤, 10시 30분 A1406편으로 바라나시로
향했다. 델리에서 바라나시까지는 약 800km.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됐다.
바라나시에 도착해서 일단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점심식사를 했다.
바라나시 시티인(City Inn)호텔은 바라나시 기차역과 바라나시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었다.
바라나시는 BC2000년 전부터 도시의 형태를 갖춘 고도이다. 인구는 110만명.
힌두교의 성지이기에 많은 힌두교 순례자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첫 느낌은 몇 백년 동안 사람들이 빠져나간 후 패허로 남아있다가 다시 사람이
돌아와서 수리를 하지 않고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황페한 도시 상상 그 이상이다.
첫 관광은 사르나트(녹야원)부터 시작됐다. 사르나트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설법을 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녹야원은 포근하게 느껴졌으며 공원으로 잘 조성되어 있었다.
이어서 방문한 곳은 사르나트 박물관이다.
이곳에는 석가모니의 초기 불상과 귀중한 아쇼카 석주, 마우리아, 쿠샨 및
굽타시대의 그림과 조각이 소장되어 있었다. 잠시나마 불교와 힌두교의
역사와 철학에 대해 공부할수 있어 좋았다.
사르나트--부처님이 처음으로 설법한곳
인도의 릭샤는 자전거 릭샤와 오토릭샤 두종류가 있는데, 운송수단으로
택시의 역할을 한다. 우리도 릭샤 탑승 체험을 했다. 한마디로 바라나시
힌두교 의식이 거행되는 갠지스강으로 가는 길은 인산인해였다.
그 엄청난 인파를 뚫고 질주하는 릭샤는 아슬아슬한 곡예같다.
쾌쾌한 냄새에다 수많은 인파. 가이드가 마스크를 착용하는게 좋겠다고
했지만 나는 착용하지 않았다. 그 편이 인도인의 생활에 다가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갠지스강의 저녁 힌두교 의식(뿌자)은 한편의 뮤지컬처럼 장엄하게 진행되었다.
현지인들은 강가 주변 계단에 앉아 의식을 참배하였고, 관광객들은 배를 타고
강으로 들어가 의식을 지켜보았다. 장엄하게 울려퍼지는 음악과 노랫소리에
7개의 횃불은 쉼없이 돌아가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관광객들은 숨소리마저
참고 잠시 힌두인이 된듯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힌두교의식 "뿌자"를 갠지스강에서 배를 타고 지켜보는 모습
갠지스강 주변 밤풍경
꽃을 파는 소녀
1시간여 의식을 마치고 다시 릭샤를 타고 호텔에 도착하니 8시가 넘었다.
식사를 마치고 외출을 했다. 오늘은 아내와 동행을 했다. 아내가 쇼핑에
관심을 갖어서 필요한 물건을 현지 시장에서 사면 조금 저렴하게 많은량을
살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그러나 몇군데 샵을 들른 후 쇼핑을 포기했다. 살만한 물건도 없었지만
상품의 질이 현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대신 맥주를 사서 호텔에서
먹기로 하고 술을 살려고 하니 살수가 없었다. 알고보니 인도에서는
허가를 받은 곳에서만 술을 팔수 있다고 했다.
시장을 두바퀴를 돌고서야 겨우 술을 파는 곳--와인샵에서 맥주를 살수
있었다. 인도 맥주--킹피셔(King PIsher)~~그런대로 맛이 괜찮았다.
아내와 호텔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니
이것도 여행의 또다른 즐거움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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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4일 월요일 맑음---4일차.
아침 4시 30분에 기상을 했다.
준비를 하여 5시 30분에 전용버스를 타고 일출보팅을 하기 위해
갠지스강으로 갔다. 버스에서 내려 짜이(인도 전통차)를 한잔 마시는데
구걸하는 사람들 한무리가 몰려왔다. 그것도 갓난 아이를 업은 애엄마들 무리까지.
구걸을 하기 위해 새벽일찍 일어났거나, 아니면 잠을 자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거지의 삶도 치열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에는 참으로 거지가 많다. 인구가 13억이나 되니 별별 사람이 없지 않겠냐마는
빈곤한 생활, 낙후된 환경, 열악한 복지시설 등도 이유가 되리라 여겨진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갠지스강, 새벽녘의 음악과 노랫소리가 갠지스강의
적막을 두두린다. 어제와 같이 오늘도 배를타고 갠지스강을 유람하면서
갠지스강 주변의 갖가지 모습들을 보면서 보팅을 했다.
여명이 밝아오니 주변의 모습들이 하나둘 얼굴을 드러낸다. 동녘에서 붉은 빛이
올라오고 잠시후 태양이 살며시 얼굴을 내민다. 붉은 빛갈이 갠지스강에 비추어
강이 더욱더 성스럽게 보인다. 그 강물위로 수많은 사연과 염원, 기도를 담은
작은 촛불들이 너울대며 강물을 따라 흘러간다.
갠지스강에서 꽃으 들고
바라나시 시내 풍경
갠지스강 일출 보팅
호텔에 돌아와 아침식사를 하고 8시에 전용버스에 탑승을 했다.
오늘은 장거리 이동이 기다리고 있다. 바라나시에서 카주라호까지
장장 500km의 머나먼길. 도로가 한국처럼 쭉쭉빵빵으로 뚫여있으면야
대략 5-6시간이면 갈수 있겠지만 이곳의 도로사정이야 생각만큼
그렇게 좋지는 않을 것이다.
가이드가 말한다. 카주라호까지 가는길은 세가지 조건의 길이 있는데
좋지 않은길, 아주 좋지 않은길, 매우매우 좋지 않은길이 있다고....
이 말을 듣고 여행객 모두 웃었지만, 나중에서야 이 말이 얼마나 진지한
말인지 알수 있었다. 실제로 카주로호에는 저녁 9시에 도착했다.
중간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도 꼬박 12시간이 걸린 셈이다.
중앙선도 없는 찻길에, 트럭, 버스, 릭샤, 오토바이, 사람, 동물
등등이 얽히여 치킨게임처럼 마주보고 질주하는 위험 천만한
곡예운행이 계속되었다.
포장된 도로도 있었지만, 비포장된 도로가 더 많아 보였고, 차가
지나갈때마다 먼지가 풀풀날려 최악의 도로여건에서 차는 질주하고 있었다.
바깥 풍경은 똑같은 화면이 몇 시간째 반복되고 있었고, 날씨는 더워
에어컨을 틀었으나 잠시후 너무 추어 다시 에어컨을 끄면 너무 덥고
그래서 같은 일행끼리도 에어컨을 틀자는 사람과 끄자는 사람들로
나뉘어지기도 했다.
휴게소가 없어 노상화장실 이용중
인도 농촌 풍경
12시간 가는 동안 휴게실이 한군데도 없어서 화장실 이용을 못해 노상방료를
했는데, 알게된지 얼마 안되는 남녀 여행객들이 서로의 노상방료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 민망해하기보다는 시원하게 빨리 해결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오후 6시가 가까워오니 가이드가 차를 세우드니 여자분들 소변볼 분들은
지급 보시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깜깜해지면 앉아있는 사람을 코브라가 공격을
할지 모른다나 어쩐다나. ㅎㅎ
인도의 트럭
이렇게 개고생을 하며 카주라호에 도착을 했다. 도대체 카주라호에는 무슨
볼것이 있기에 이렇게 생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카주라호의 클락스 호텔은 시설이 너무 좋았다. 주변환경도 너무 좋고
도시 전체가 쾌적한 느낌이 들었다.
카주라호 클락스 호텔
호텔 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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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갑자기 인도로 훌쩍 떠나고 싶어집니다.메모를 철저히 하셔야 이런 여행기를 쓰실수 있을 것인데..아무 노력없이 인도를 갔다 온 듯합니다.사모님의 환한 웃음이 넘 좋아보입니다. 나도 저곳에 서서 웃고 싶어지네요. 수고하셨습니다.
가기전 아내가 몸이 좀 안좋아서 걱정을 좀 했었는데, 그대로 빽빽한 일정 잘 다녀올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여행하면서도 무사이님, 전설님 생각 많이 나더라구요. ㅎ
저보다 감성도 풍부하시고 사진도 잘찍으셔서 더 좋은 글과 사진을 남길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요. ^^
화장실이 참 마음에 드네요...ㅎㅎ
화장실은 역시 자연 화장실이 최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