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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전시실은 은은한 조명 아래 고요가 가득하다. 천오백 년을 묵묵히 견디며 살아남은 토기들은 흔들림 없이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금령총에서 출토된 기마인물형 토기 두 점을 보고 있다. 말 위에 사람을 올린 형태로, 하나는 주인이고, 다른 하나는 시종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모습이 유리장 속에서 한 컷의 서사처럼 고요히 멈추어 있다.
1924년 경주 노동리 고분군에서 훼손이 심한 무덤을 파헤쳐지던 순간, 금빛 장신구들이 햇살을 받아 번쩍였다. 무덤의 주인공은 왕의 아들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어린 왕자가 누린 삶은 고작 다섯 해에 불과했다. 짧은 생을 감당하지 못한 그의 신체는 머리에서 발목까지 90cm 남짓했다.
아이의 머리맡에서 발견된 기마인물형 토기는 작디작은 아이의 영혼을 떠나보내기 아쉬웠던 부모가 만들어 넣어준 영혼의 동반자였다. 윗옷을 벗어 등에 지고, 손에는 방울을 들고 있다. 앞쪽의 토기에는 고깔 모양의 관모를 쓰고 갑옷 바지를 걸친 위엄을 지닌 완벽한 주인의 모습이다. 그 둘의 얼굴에는 신분의 차이보다 더 깊은 감정이 새겨져 있다.
그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고깔모자 아래 굳게 다문 입술 방울을 든 손의 앞장선 긴장감, 짧은 다리를 가진 말의 불안한 걸음, 모든 것이 한 아이를 배웅하기 위한 작은 연극판처럼 보인다. 죽음이 끝이 아닌 다른 여행이라 생각한 신라인의 믿음이 토기 위에서 되살아나 있다.
방울을 든 아이가 육지의 길을 인도 하고, 배 모양의 토기는 물길을 건너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아이가 혼자서 건널 수 없는 세상을 흙으로 빚은 토기가 함께 건너면서 아이가 느낄 두려움을 덜어주었다. 깜깜한 어둠은 방울 소리로 따라올 수 있도록 하였다. 혼자서 건너갈 다른 세계를 부모가 할 수 없었기에 그 염원을 담아서 무덤 속에 넣어두었다. 토기가 말을 걸어온다. 부모님 덕분에 잘 찾아간다고.
학자들은 이 토기가 주전자인지 등잔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CT 촬영 결과는 주전자라 하고, 실험 결과는 등잔에 가깝다고 한다. 나는 그 어느 한쪽도 선택하고 싶지 않다. 주전자라면 아이가 건너갈 알 수 없는 길에 따뜻한 한 모금의 물이 담겼을 거고, 등잔이라면 그 깜깜한 길을 비추는 한 줄기 빛이었을 테니까.
천오백 년 전 부모가 아이의 마지막 길을 걱정하며 토기를 넣어준 마음을 바라보니 부모님을 떠나보내던 시간이 떠오른다. 친정어머니가 먼 길 떠나셨을 때 우리 형제들은 먼저 가신 아버지를 호국원으로 모셨다. 40년 전 5월 아카시아가 춤추는 어느 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불행으로 아버지는 생활 능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어머니와 우리 6남매를 남겨두고 먼 길을 먼저 떠나셨다.
그 후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 산소를 영천 호국원으로 모셨다. 두 분의 장례 절차를 진행하면서, 사진을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나이 든 사진 속 어머니가 아버지를 찾아갈 수 있을까? 젊은 아버지와 나이 든 어머니는 서로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았다. 어머니의 젊은 시절 두 분이 나란히 찍은 사진을 함께 넣어드리면서 우리 형제들은 영혼이 서로 알아보시기를 마음으로 빌었다.
기마인물형 토기는 한 아이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가는 길을 품고 있다. 두 인물은 여전히 천오백 년의 세월을 넘어 그 길 위에 서 있다. 우리 어머니가 아버지를 잘 찾아갈 수 있도록 넣어둔 사진처럼 부디 길 잃지 않으시고 사진을 보면서 이승에서의 인연을 잘 찾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살아간다는 것은 길 위에 서 있는 것이다. 때로는 가파르고, 어둡고,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 길을 우리도 걸어가고 있다. 누군가의 사랑은 길을 잃지 않도록 옆에서 작은 소리를 내며 함께 걸어주고, 손을 잡고 빛을 되어주는 이들도 있다. 한 아이의 짧은 생에는 또 한 아이가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의 배웅이 있었다.
나도 마무리를 준비해야 할 나이에 접어들었다. 언젠가부터 달력의 숫자보다, 내 안에서 하나둘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젊었던 시절은 앞만 보고 붙잡아야 할 것들만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놓아야 할 것이 더 많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저 길을 가야만 한다면 화려한 안내자는 필요치 않을 것 같다. 앞에서 길을 재촉하는 이도 뒤에서 등을 떠미는 이도 말고, 나와 보폭을 맞추고 묵묵히 걸어줄 존재면 좋겠다. 내가 살아오며 놓지 않았던 선한 마음 누군가에게 건넸던 작은 친절들이 아닐까. 버텨온 날들의 무게가 하나로 빚어져 기마인물형 토기처럼 내 곁에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나를 가장 잘 아는 존재로.
전시실을 나서면서 흙빛의 두 인물은 여전히 말위에 앉아 아이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 그들의 존재가 금관보다 화려하지 않지만 마음은 금보다 오래간다. 작은 왕자의 마지막 밤을 밝혀주고 소리로 일깨워지던 순간 두 아이는 서로에게 길을 잃지 않은 영혼의 동반자가 되어 함께 그 길을 걸어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