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시산악연맹 창립 19주년 백두산 합동기념산행 -2 백두산 서파西坡
7월 5일 백두산 서파를 가는 날 아침.
커텐을 쳐놓고 자는 바람에, 엄청 이른 새벽부터 밝은 빛에
잠이 깨버렸다. 여행에서의 잠은 사치일 뿐이긴 하지만...
전 날도 못자고 연이어 잠을 못자니 일어나기가 싫어진다.
그런데 알람도 안 울렸는데 몇시나 됐길래 벌써 빛이 들까...
시계를 안 봤지만 5시도 안된 시간이기는 했다.
오늘 일정은 아침 6시 25분 부터 시작이라,
호텔의 조식도 궁금해서 침대에서 좀 더 버티다가 결국 일어나서
일찍 씻기로 한다.
내려가보니 벌써 많은 분들이 식사를 하고 계셨다.
(알고 찍은 건 아닌데 영란형님과 지희형님이 사진에 포착ㅎㅎ)
일찍 일어났는데도 일정을 너무 빨리 시작하니 빠듯하다.
대충 뭐가 있는지 보고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후다닥 먹었다.
로비에서 인원 체크를 한 후, 버스를 탄다.
여행 내내 인원 체크와 줄 서기의 반복.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본 적이 있던가 싶다.
버스를 타니, 가이드님께서 (가이드 분이 사람들이 자꾸 가이드 가이드 하면서
기분 나쁘게 부르니 가이드님 이라고 불러 달라고 한다. 맞는말)
여권과 입장표를 나눠준다. 역시 QR 강국 답게 입장표도 QR이다.
중국인이라면 핸드폰으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약 한시간 반 정도를 이동해서,8시 20분쯤.
백두산 서파 입구에 도착을 한다.
비는 안오지만 새벽에도 비가 오고 하늘이 잔뜩 흐리다.
맑은 하늘은 기대하기 어려운 날씨... '천지는 볼 수 있겠지?'
기대감을 버리지 않는다.
여기 오기 전까지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았던 나는,
우리나라 국립공원 정도로 생각해서 버스로 잠깐 이동하고
어느정도 산행을 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버스를 타고 1시간 10분 정도를 와서 내렸는데.
또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 '??? 뭐 이렇게 갈아 탄담?'
그리고 안개가 심상치 않다.. 안개가 좀 심한대?
셔틀을 타고 올라가는데 앞이 안 보인다. 예전 한라산 백록담 보러
갔을 때와 비슷한 풍경이다.. 올라가도 보이는 거라고는 안개 밖에 없던...
설마... '그래.. 밑에랑 위는 다르다고 했으니까. 높으니까 다를거야'라는 기대감을
놓치 않는다.
처음 가는 곳은 백두산 서파(西坡). 셔틀에서 내리니 안개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주변이 아무것도 안 보인다. 바로 앞에서 찍는 사진도 흐릿하다.
그래도 미련한 기대감은 정상까지 놓치 않을 생각이다.
백두산의 날씨는 시시각각 변한다고 하니, 이러다가도 순식간에
맑아지거나 안개가 걷힐 수도 있으니까!
서파는 하루에 3천명 정도만 예약 입장이 가능 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올라가는 길이 엄청 붐비거나 하진 않다.
올라가는 길에 바람이 불 때마다 잠깐잠깐 안개가 걷힌다.
안 보이던 꽃들도 보이고. 높은 산에서만 자란다는
에델바이스가 있다는 분들도 계시고.
서파의 계단은 총 1442개 란다.
처음엔 누가 세면서 올라가서 알려줬나 했는데,
계단에 표시가 되어 있다.
여기도 앞에는 영란형님과 지희형님이 계시네.
계속 같이 붙어 다녀서 나도 모르게 계속 찍히셨나보다.ㅎㅎ
중간중간 의자와 지붕이 씌어진 휴식터가 나온다.
비가 오면 여기서 잠시 대피할 수도 있겠다.
천개 째 계단. 너무 급하게 올라와서 그런가...
약간 고산 증세가 있다. 머리가 술 먹은 거 같은 어지러움...
전에 속초가서 체험 해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증상이다.
숨 조절을 하며 조금 속도를 줄인다.
안개는 걷힐 생각이 없어보인다.
가슴이 아릿하다. 어렵 게 왔는데...
약 40분여 정도 올라 11시20분쯤. 정상이라 할만한 곳에 도착을 했다.
안개에 뒤덮여서 어디가 천지인지도 분간이 안간다.
안타까움... 실망감... 그래도 걷히지 않을까 하는 실낱 같은 기대감...
아무런 정보 없이 오른터라 천지가 어느정도 크기인지 감도 안와서
천지 비석 옆에서 그냥 이쯤이 천지일까 하고 찍어본다.
나중에 와서 찾아봤는데... 서파가 천지 보기가 북파보다 좋단다.
중국 37호 경계석. 아마 여기를 넘어가면 북한이라는 표시려나.
공안들인지, 군인들인지 지키고 있다. 그런데 저 안개를 뚫고 가서
볼일 보는 사람들이 있다. 중국인들이겠지? 그래도 그렇지...
앞 뒤로 올라간 시간 차가 있었는데 다행히 우리팀을 다 찾았다.
천지의 비석에서 단체 사진을 찍기엔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고
다들 사진을 찍고 내려가신다.
천지 비석. 그래도 정말 어렵게 왔는데 뭔가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천지 비석 줄에 줄을 선다.
한국에서 같이 온 팀들이 자리를 안 비켜줘서
한참이나 줄이 안 줄고 있었다.
줄을 서 있는 동안에도 바람이 제법 불어서 정말 미련하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일말의 희망을 갖고 있었지만, 끝내 천지는 그 희미한
모습마저도 보여주지 않았다. 하 한라산 때랑 똑같아...ㅠㅠ
그렇게 우리 차례.
빨간색을 좋아하는 중국답게 왠만한 글씨들은 다 빨간색 아니면
금색이다.
사진을 찍고나니 내내 같이 있던 막내 성재가 안 보인다.
언제 어디갔지...
'一生一世' '1314'
'일생일세'를 봤을 때 '일생일대'가 먼저 떠올랐다.
비슷한 뜻일 거 같고. 뭔가 기념비 적으로 백두산을 보는 느낌을
표현한 걸텐데. 천지를 못 본 나의 마음은
지금 사는 생, 지금 사는 세상에서는 다시는 못 볼 거 같은 백두산을
각인 시켜주는 거 같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꼭 보러 다시 올테다.
'산아, 니가 나를 찾지 않아도 나는 다시 돌아온다.'
천지 근처에 있던 비석이라 '1314'는 높이가 아니란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고, 보면서 글자를 발음이 비슷한 숫자로 표현하는 걸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숫자 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일생일세(이셩이시) 1314(이산이스)
그렇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놓치 못했던 희망과 기대감을
뒤로 한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때문에 부지런히 내려온다.
내려오면서 위로 치는 바람에 잠깐 잠깐 보이는 백두산의 속살들.
아 백두산은 이렇게 생겼구나. 얼마나 클까? 얼마나 멋있을까?
기껏 해야 30,40m 앞도 안 보이니 장님 코끼리 만지는 수준도
안될 거 같다.
아쉬움을 남기고 하산 완료.
다시금 인원체크를 하고 셔틀을 탄다.
일정상 금강대협곡을 간단다.
버스를 타고 약 30분 여 정도를 이동하여 1시 10분쯤.
금강대협곡 앞에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왔다.
峡谷快餐
의역하면 협곡 패스트푸드 정도 이려나..
비빔밥이 나왔으니 패스트푸드인 거 같기도하고....ㅎㅎ
향신료 싫어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먹는 음식마다 향이 난다던데
난 먹는 거에 별로 개의치 않아 맛있지는 않지만 잘 먹었다.
식도락 여행이 아니니, 시간 맞춰 배만 채울 수 있으면 그만이지 라는 생각.
그래도 배를 채우고 나니 기분 전환이 된다.
점심을 먹고, 금강대협곡을 들어가기 전에 단체 사진 한장.
원래 백두산 천지에서 들고 찍으려고 산악회 기를 챙겨 온건데
여기서나 들어본다.
사진은 고맙게도 같이 온 현구가 계속 찍어준다. 전용 찍사.
금강대협곡에 들어서자마자 또 서로 떨어져 버렸다.
저번 백두대간 때 안 좋았던 무릎이
서파 계단을 내려오면서 또 도져서 걷는 게 힘들다.
에고. 천천히 사진이나 찍으면서 가야겠다.
백두산이 화산이라는 것을 보여주듯이 협곡은 마치 뭐랄까?
시멘트를 칠해 놓은 거 같은 색으로 각종 절벽을 보여준다.
어디서 봤는데 약 70km에 이르는 꽤 긴 ? 엄청 긴 협곡이란다.
여기저기 가로 막혀서 생각만큼 웅장하거나 압도적인 느낌은 없지만,
용암에 의해 만들어졌을 거 같은데 빼곡한 나무들이 원시림을 이루고 있는 것도
자연의 신비다.
금강대협곡을 구경하고나서, 버스를 타야 하는데
우리 줄은 안 태워주고 다른 쪽 줄만 태워줘서 한참을 기다려야했다.
오래 기다리면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처음엔 중국인이라 먼저 보내주나 했지만, 다른 줄의 한국 사람들도 많았어서
조금 다른 체계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어쩌랴?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했으니 싸우기 보다는
기다리는 쪽이 서로에게 불편함이나 한국의 이미지를 좋게 해주는 것을.
약 4,50분의 긴 기다림 끝에 버스를 타고 연길로 돌아왔다.
5시 35분쯤. 금수학 호텔 근처 식당에 저녁 식사를 위해 도착했다.
仙罗烤肉。
오늘 저녁 메뉴는 무제한 삼겹살이다.
무제한인데 시간 제한이 있었나보다.
연맹 한용섭 회장님과 각 자리에 인사를 하고 돌아왔더니
식사가 끝났다.ㅋㅋ
식당 앞에서 중국인이 손수건을 팔고 있었다.
가격을 보니 한국돈보다는 중국돈이 더 싸길래 살짝 흥정해서
조금 싸게 사서 형님들께 하나씩 나눠 드렸는데,
거기에 또 영란형님과 지희형님이 돈을 보태주신다.
다 나눠주고 나니 내거가 없어서, 많이 샀으니까 하나 그냥 달라고 해서
뺏어왔다.ㅋㅋ
7시 30분쯤. 山屿足道 발+전신 마사지.
하루의 피로를 풀고 나왔다.
여기서도 4명이 한방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성재는 또 어디갔니...
덕분에 4명 방에서 3명만 마사지를 받는 한가함...
발 마사지를 다 받고,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면서
봐뒀던 슈퍼로 가서 술과 안주를 사왔다.
계속된 이동으로 뭐 살 일이 없다보니 환전한 돈이 남아서
어차피 쓰지 않으면 또 환전하기 어려워 이것저것 사봤다.
10시 20분.
씻고, 다음날을 위한 정리를 한 뒤 다시 막내 숙소로 모였다.
오늘은 센터에서 온 두 분도 같이 참석.
깊어 가는 밤 다음날을 위해 다들 일찍들 헤어지고,
남은 막내들끼리 조금 더 마시고 헤어졌다.
내일은 백두산 북파를 가는 날이다.
밖에는 비가 계속 오락가락 하는 날씨...
오늘의 안타까움, 허탈함을 내일은 과연 풀 수 있을까...
못보면 진짜 또 와야 하는데???
기도를 하면서 잠들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