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mooria - 45. 방송국과 공항 가는 길
민서우
- 45
“뭐라고요?”
차릴 거 다 차려입었다. 수경의 주문 아닌 주문에 맞춰 캐주얼로 입었고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도 철저히 가렸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기분 좋게 1층으로 내려왔는데 난데없이 제동을 거는 수경이 아닌가.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 말 없었잖아, 갑자기 왜 이러시나? 우, 왜 이랬다 저랬다야 정말~
엉뚱한 곳에서 물벼락을 맞았다고 여겨지는 케이다.
“왜요, 전 왜 안 되는데요?”
점점 험악해지는 그의 안면에서 흘러나오는 거친 말은 따지는 말투다. 가고 싶다고 말했고 그리 하라는 허락까지 떨어져서 싱글 벙글인데 찬물을 맞은 것이다.
“예? …린이 그러래요.”
수경은 짧고 간단히 대답했다. 그 짧은 대꾸에 케이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무리 그라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린인데 함부로 반항하는 게 어렵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있을 수 없어요, 그게 뭐에요! 가고 싶어요, 가고 싶단 말이에요! 그럼 린은요.”
“2시까지 인천국제공항으로 나가야 해요. 린이랑 인연이 좀 있다 싶은 사람들이 린한테 밥 한 끼 산다고 한국 오는 비행기 안이라고 연락 왔어요.”
“…경비가 더 들겠네.”
수경의 말에 케이가 중얼거린 한 마디였다. 그의 말에 수경을 비롯한 셋이 고개를 살짝 숙이고 피식 웃었다. 동감한다는 뜻이었다. 힐끔 시계를 본 레인이 조금 다급하게 물었다. 한 시가 넘었어요, 지금~ 우리 출발 안 하면 늦는 거 아냐?
“그럼 누님, 어떻게 되는 거예요?”
“안 그래도 라디오 방송과 공항에 대해서 린이 어렵사리 결정을 내렸어요. 방송에 출연하는 건 레인과 유리로 하고, 해성한테 연락해서 지켜봐달라고 요청을 하래요. 케이한테는 미안한데 린이랑 같이 레바이스 회장을 좀 뵈어야겠대요. 정 뭐하면 제작진한테 얘기 한 번 해볼까요? 내일 괜찮을 지 시간 한 번 보게요. 초대 손님이 이미 예약되어 있으면 안 되니깐.”
“방송 나갈 수만 있다면.”
케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가능하다고 하면 내일이라도 방송국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고 싶다.
“알았어요, 출발하죠. 레인과 유리 방송국에 내려주고 공항으로 가는 걸로 해요.”
집을 나서며 수경이 전화를 걸었다.
“예, 해성. 저에요. 지금 어디에요? 용인? 그럼 여의도에 있는 K**방송국 라디오센터 4층으로 바로 오세요. 배고파요? 김밥이라도 하나 사 먹고 오세요. 2시까지니까 서두르셔야 해요, 아셨죠?”
뚝. 예의 없이 자기 할 말만 하고 뚝 끊어버리는 그녀였다. 강의가 모두 끝나서 막 학교를 나오던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PDA를 바라봤다. 그는 주변의 학생들이 보건 말건 혼자 꿍얼거린다.
“하여간 그 탐정에 그 비서라니까. 어떻게 자기 할 말만 다 하고 뚝! 끊을 수가 있어? 나날이 예의를 국에 끓여 드시는 김 비서님, 대단하십니다~ 쳇. 안 그래도 운전면허증 필기 공부까지 하느라 머리가 깨지는구먼.”
면허증만 따면 차 매매료는 직접 대주신다는 아버지의 전언이 있었던 터다. 그는 얼른 버스정류장으로 가기 위해 서둘러 걸었다. 그런 와중에 운전면허증 필기에 대한 책을 꺼내 읽으면서.
“선배-!”
“응?”
정류장에 도착할 때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려보는 해성. 같이 입학한 한 살 어린 동기들이다. 여자경찰을 꿈꾸며 학교에 입학한 여학생들. 얼굴도 예뻐서 동기들이나 선배들에게 인기 만점인 그녀들의 관심은 정작 해성에게만 있는 것 같다. 그럼 뭘 하나, 해성은 같은 탐정단의 조장만 좋아하는데.
“선배. 오늘 같이 점심하기로 한 거 잊었어요?”
“나 지금 약속 잡혀서 여의도 가봐야 하거든? 내일이나 모레 하자, 알았지? 그럼 난 간다!”
정류장 앞에 서는 서울행 버스에 즉각 올라타는 해성, 허나 그녀들도 같은 방향인지라 버스에 오른다.
“선배 정말 이러기에요?”
“선배 어디 가는 지 우리도 따라갈 거예요!”
질린다. 늬들은 배도 안 고프냐? 버스에 오른 해성은 만일에 대비해서 산 빵과 우유 봉지를 뜯었다. 그리고 직후.
“치사해!! 혼자만 먹고!”
먹고 오랬단 말이야~
역시 그들은 여자였다. 딱 4명 모였는데 어쩜 저렇게 접시가 깨지는지. 자신이 이어폰을 끼는 것을 보고도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 그녀들을, 해성은 정말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애써 무시했다. 2시가 되기 10분전에 간신히 도착한 방송국.
“뭐니, 그 병아리들은?”
케이와 같이 공항으로 간 수경을 대신해 프로듀서가 물었다. 기어이 방송국까지 쫓아온 여학생들이었다. 정말이지-.
“우리는 병아리가 아니에요, 어엿한 사람이라고요!”
우렁찬 여학생들의 외침에 프로듀서를 비롯한 제작진들이 미간을 좁히며 귀를 후볐다. 거 참 남자 못지않은 우렁참일세. 여학생들을 애써 무시하며 해성이 라디오 프로그램 스튜디오를 훑었다. 곧 방송 시작하는데 보여야 할 사람들이 안 보이는 것이다.
“근데 레인과 유리는요? 아직 안 왔어요?”
“음. 화장실에 간 지 20분이 넘었는데 아직 안 왔네. 큰 일 보는 것 같지는 않던데.”
“화장실에 간 지 20분이 넘었다고요?”
“응. 도착했을 때 표정이 완전 구토 직전 같더니만. 긴장을 해서 그런지 아침을 잘 못 먹었는지 알 수가 있나.”
프로듀서의 구토라는 말에 해성의 머리에 반짝 뭔가 스쳐갔다. 설마 리니어 모터?
“화장실은 어디죠?”
“어, 나가서 오른쪽 방향.”
프로듀서의 대답에 해성은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레인-! 유리-!”
“우욱! 해, 해성?”
작게 들리는 레인의 목소리에 해성은 짐작 가는 칸막이의 문을 벌컥 열었다.
“괜찮냐?”
“안 괜찮아. 우욱!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럽고 미치겠어.”
“수경 누님, 혹시 공중을 날아왔니?”
해성의 물음에 레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힘겹게 물었다. 변기의 물을 내리면서.
“응. 어떻게 하면 차가 공중을 날아? 나보다는 유리가 걱정이야. 녀석도 많이 안 좋아 보이더라고.”
“원래는 자기부상열차에 달리는 모터인데, 차에 달린 건 린의 차가 최초야. 위험과 그 모든 걸 감수한다는 조건 하에 설치가 된 거지.”
리니어 모터가 설치되면 기름이 들지 않지만, 공중 부양 차량이 많아지니까 그만큼 안전사고도 많을 거라며, 현재 법적으로는 리니어 모터 설치를 금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의 얘기를 들으며 진정이 좀 됐는지 레인은 무릎을 짚으며 일어섰다. 세면대로 나온 그는 물을 받아 입안을 헹궜고 해성은 팔짱을 끼고서 문에 등을 기대고 섰다. 걱정 돼서 가보라니까 왜 말을 안 들어?
“유리한테 가보라니까?”
“여자화장실에? 변태 소리는 사양하련다.”
조금은 차갑게 대꾸하는 해성이었다. 아 참, 그렇지. 레인은 손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눈빛으로 사과했다.
한편.
나이 어린 후배들과 같이 식사를 끝낸 린은 식당 앞으로 찾아온 김 대표, 케이와 합류해 차에 올랐다.
“시간이 얼마 없는데 괜찮겠어?”
“길만 막히지 않으면 어떻게든 될 거예요. 리니어 모터를 쓰려고 했더니 케이가 죽어도 싫다네요.”
“죽어도 가지 그랬어.”
“말이 심해요, 린.”
“미안. 어차피 본인은 기절한 거 아냐?”
다 듣고 있거든? 저 녀석, 농담이 왜 저렇게 살벌해? 눈만 꾹 감고 있지 정신은 멀쩡한 케이는 린의 잔인한 한 마디를 몽땅 듣고야 말았다.
뒷좌석에 거의 널브러져 있는 케이를 힐끔 쳐다본 린은 피식 웃었다. 새삼 갑자기 나타난 그 3명이 떠올랐다. 내색을 안 해서 그렇지 린은 알게 모르게 케이를 비롯한 세 명을 의심하고 있다. 안전띠를 맨 린은 다시 케이를 바라봤다.
케이의 꿈틀거리는 미간을 본 그녀, 샐쭉 웃으며 혀를 살짝 내밀었다.
“미안.”
린의 사과에 수경이 눈을 크게 떴다. 나름대로 추리를 해보니 그녀의 짧은 말은 뒷좌석에 누워 있는 케이를 향한 말인데, 그가 정말로 정신을 잃었다면 린이 직접 사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깨 있어요?”
“응. 그럴 거란 예상은 했지만 정말 정신이 멀쩡할 줄은 몰랐어. 암튼 케이 녀석, 내 말을 다 들은 거야. 네가 기절한 줄 알고 그랬어. 정말 미안해, 기분 풀어.”
린의 사과에 케이는 흥, 콧방귀를 끼었다.
“흥! 몰라. 수경 누나. 나 내려줘요, 방송국 갈래.”
“방송국은 나랑 내일 가자.”
린은 사과의 의미로 합작까지 하며 그를 말린다. 내일?
“나 수업 끝나고 밥 먹고 가자, 응?”
린의 말에 케이는 눈을 몇 번 껌벅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았어.”
수경의 말대로 정말 내일 가게 됐다. 방송국-! 헤헤헤헤.
케이는 의자에 머리를 댄 그 상태로 히죽히죽 웃었다. 오늘 못 가는 건 아무 것도 아는 것처럼.
린의 제안에 기운이 난 케이는 벌떡 일어나 물었다.
“근데 오늘 공항에 나온다는 사람은 누구야?”
“페리오 레바이스 회장. 올해 마흔 넷이고, 18살 딸과 17살 아들이 있지. 아버지가 버라이어즈라는 대기업의 사장이야. 가업을 물려받은 거지. 회장의 여동생이 올해 마흔 하나인 초등학교 영어 선생님이셔. 나 학교 다닐 때의 은사님.”
덤으로 홈페이지 올라왔던 분실사건. 린에게 그녀와 레바이스가와 얽힌 인연에 대해 들은 케이는 휘파람까지 불며 탄성를 지른다.
“휘유~! 레바이스 집안이랑 진짜 무슨 인연이 있나 보다. 선생님과 두 조카라.”
케이의 말에 린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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