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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슴 대길이-고은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 상머슴으로
누룩도야지 한 마리 번쩍 들어
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
그야말로 도야지 멱 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
밥 때 늦어도 투덜댈 줄 통 모르고
이른 아침 동네 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리마 났지요.
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
머슴 방 등잔불 아래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 오듯 읽었지요.
어린 아이 세상에 눈 떴지요.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1연 - 힘세고 근면한 대길이가 나에게 한글을 가르쳐 준 일
대길이 아저씨더러는
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요.
살구꽃 핀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
홑적삼 큰아기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 하고
지게 작대기 뉘어 놓고 먼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나도 따라보았지요.
우르르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소리 들었지요. ▶2연 - 인격적이고 생각이 깊은 대길
찬 겨울 눈더미 가운데서도
덜렁 겨드랑이에 바람 잘도 드나들었지요.
그가 말했지요.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 ▶3연 - 가난하지만 남과 함께 사는 대길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커져서 밤 새우는 불빛이었지요.
▶4연 - 나의 영원한 스승 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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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머슴 : 일을 잘하는 장정 머슴
*먹눈 : 검은 눈. '먹-'은 일부 명사 앞에 붙어 '검은 빛'을 띰을 나타냄.
*어둠에 빛나는 먹눈 /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새우는 불빛 : 더불어 사는 삶을 산 사람 '머슴 대길이'의 인물됨을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선명한 인상을 준다. '불빛'은 대상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어둠을 몰아내고 참된 삶의 길을 제시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 핵심정리
▶갈래 : 자유시, 이야기시
▶성격: 민중적, 존재론적, 토속적
▶어조: 소박하고 친근한 이야기투
▶구성:
1연 - 힘세고 근면한 대길이가 나에게 한글을 가르쳐 준 일
2연 - 인격적이고 생각이 깊은 대길
3연 - 가난하지만 남과 함께 사는 대길
4연 - 나의 영원한 스승 대길
▶제재 : 머슴 대길이 진솔한 민중의 삶
▶주제 : 함께 사는 삶의 아름다움
▶표현상의 특징
①이야기체 표현('-지요')으로 친근한 분위기를 형성함
②토속적인 시어의 사용으로 향토적, 민중적 정서를 전달함
③'대길이'의 말을 직접 인용하여 주제 의식을 분명하게 드러냄.
● 이해와 감상
'만인보'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분류해 보면 삶의 세 가지 층위가 있다.
시인이 개인적으로 만난 실존적 인물층, 사회 속으로 뛰어들어 만난 사회적, 역사적 인물군으로서의 사회적, 역사적 층과 불교적 체험에서 만난 초월적 층이 그것이다. 이 시의 주인공은 실존적 인물층에 해당한다.
'만인보'는 시인의 말대로 자신이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노래의 집결'이면서 '사람에 대한 끝없는 시적 탐구이자 이름없는 역사 행위'라 할 수 있다. '만인보'는 특정 인물을 시적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람 사는 이야기'로 실명시(實名詩 )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시 가운데 이채를 띄는 것은, 시인에게 삶의 올바른 지향을 감동적으로 일깨워 준 사람들에 관한 몇 편의 '성장시'다. 가장 강렬하게 각인된 인물은 '꿈'과 '모험'의 이미지로 각각 대표되는 아버지와 외삼촌이며, '세상에 대한 전율적 개안(開眼)'을 가능케 한 또 하나의 인물로 '이 머슴 대길이' 를 들 수 있다.
그는 단순히 한글을 깨우쳐 주어 '장화홍련전 비오듯' 읽게 해 준 인물에 머물지 않고,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 새우는 불빛'과도 같은 존재이며 '어둠에 빛나는 먹눈'으로 시각적인 이미지로 형상화 되어 있다. 또한 화자의 직접적인 상대자는 '가지고 있으면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며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라는 인용은 시적 현실의 실감과 진실성을 강화한다. 여기서 대길이는 '함께 사는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몸소 가르쳐 준 인생의 큰 스승으로 아로 새겨져 있다. 그러나 이 '함께 사는 삶'은 단지 인간 사이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터전인 대지에 모여 사는 모든 사물에까지 속속들이 적용되는 매우 폭 넓은 개념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온전한 의미의 이 같은 인간주의야말로 '만인보'를 힘차게 관통하는 시인 정신의 저류이다.
'대길이'와 같은 머슴은 소외받고 박해받는 인물군에 속한다. 이들은 크게 보아 역사 과정에서 고달픈 삶을 살아 가는 소외당한 인물들이지만, 삶을 긍정하고 이겨 나가려는 민족적인 삶, 민중적인 삶의 원초적인 모습으로서 전형성을 지닌다. 천대받는 머슴살이 속에서도 꿋꿋하게 일하며, 남을 위해 넉넉한 마음을 갖고 사람을 사랑하는 인간상이야말로 이 땅, 수난의 역사를 이겨온 원동력이 아닐 수 없다.
● 더 알아보기
▲대길이의 인물형
-가난하고 고달픈 삶을 사는 인물
-삶을 긍정하며 이겨 나가려는 인물
-더불어 사는 소중함을 아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