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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B 인라인 베어링 - 진짜 국산의 고급 세라믹 베어링
오늘은 새롭게 등장한 SBB 베어링에 대해 소개하면서, 그 소개에 앞서 비교적 긴 뒷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오히려 뒷 얘기가 아니고, 그 반대인 foreword가 되겠네요?^^;) SBB 베어링에 대해서만 알고 싶은 분들은 앞의 긴 얘기를 무시하시고, 저 아래로 내려가 "SBB 베어링은 어떤 베어링인가?"라는 섹션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요즘 좋은 인라인 베어링이 많습니다. 인라인을 타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소위 공업용 베어링은 물론, 전용 베어링들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인라인 전용 베어링들 중에는 고가의 세라믹 베어링들도 있는데, 예전 같으면 이런 고급 베어링은 엘리트 선수들만 썼는데 이제는 일반 스케이터들도 이런 베어링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이런 베어링의 성능이 많이 홍보되기도 했고, 또 가격이 저렴해 졌기 때문입니다.
베어링은 참 말이 많은 장비 중의 하나이지요. 이런 저런 속설도 많고, 의외로 미신도 많은 것이 베어링입니다. "ABEC 지수가 높은 베어링이 좋다." 맞는 말입니다. 아벡 지수가 더 높을수록 더 빠른 것으로 착각되지만 않는다면 그냥 베어링이라는 측면에서는 아벡 지수가 높은 게 비싸고, 질도 좋은 것이지요.
하지만 인라인용 베어링이라고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아벡 5 정도의 정밀도를 가지고 있는 베어링이나 개당 20만 원이 넘어가는 것도 있는 아벡 7 베어링은 정말 좋은 베어링이기는 하지만, 이걸 인라인용으로 사용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아주 평평한 지면을 가진 경사면에서 센터/뉴트럴 에지로 내리달린다고 하면, 이런 베어링이 다른 어떤 베어링들보다도 더 잘 달릴 것입니다. 이런 고정축 방향의 구름에 있어서는 정밀도가 높은 것일수록 원활히, 빠르게, 구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근데, 면이 거친 곳에서 한발은 지탱하는 축발로 한발은 미는 발로 작용하게 되면 상황이 달라지지요. 미는 발은 안쪽 날을 사용하게 되고, 다른 쪽의 축발은 몸을 지탱하고, 체중이 걸리면서 바깥 날로 미끄러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때는 일반 공업용 베어링들이 수평의 고정축에서 도는 것과는 달리 비스듬히 기울어진 각도로 돌게 됩니다. 이런 걸 경축(傾軸)의 경 방향으로 돈다고 하는데... 인라인 베어링은 안쪽날, 바깥날로 바퀴가 기울어지기 때문에 경축에서도 잘 도는 베어링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라인 전용 베어링이라는 것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지요. 정밀도가 높은 아벡 5 정도의 베어링은 볼과 그 볼이 구르는 길인 레이스웨이(raceway) 사이에 극히 미세한 틈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경축으로 돌게 되면, 그 틈이 더 줄어들어서 베어링이 잘 돌지 않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인라인 스피드용 베어링이라도 아벡 3 이상의 베어링은 필요치 않다고 합니다.
베어링 회사 중 이런 경축을 사용하는 베어링을 만들어야겠다는 회사는 없었습니다. 그런 용도로 베어링이 쓰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스위스의 보네스(Bones) 사는 이런 점에 착안하여 비로소 인라인용 베어링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실은 스캡(스케이트보드)용의 베어링으로 이런 류의 베어링을 만든 것인데, 실제로 스캡은 이런 베어링이 아니라고 해도, 두 바퀴의 가운데 바퀴를 기울게 하는 축이 달려있기 때문에 베어링 자체가 경축으로 움직일 필요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이런 베어링은 역시 축이 달린 롤러(쿼드) 스케이트에서도 굳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바퀴가 일렬로 놓인 인라인 스케이트에서는 이런 베어링의 필요성은 더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그런 경축용의 베어링이 인라인에서는 필수적인 것이었으니까요. 결국 보네스는 이런 시장을 개척한 회사로서 인라인 베어링의 위치를 확고히 했습니다. 일본 NTN 사의 자회사로서 인라인 전용 베어링을 외치며 나타난 캐나다 NTN 사의 포뮬러 베어링도 보네스와 마찬가지로 볼과 레이스웨이의 틈새를 넓힌 베어링을 만들어 비교적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NTN 베어링은 그 특유의 소리가 있어서 그것에 매력을 느끼는 사용자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들 베어링들이 정말 좋은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것이 인라인 전용이라는 타이틀로 미신을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까탈스러우면서도 합리적인 인라인 사용자가 많은 우리 나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인라인 베어링의 존재는 인정하되, 보네스와 NTN이 시장 표준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보여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좋은 베어링을 테스트하는 기준 중의 하나는 소음이 없고, 정확히 원형을 유지하면서 돌아가는지의 여부입니다. 내륜의 진원도를 그래프로 나타내 보면 이를 알 수 있지요.그런데 이들 베어링은 이 두 가지 면에서 다 미달입니다. 큰 소음이 나고, 구르는 걸 테스터로 보면 원형이 아닌 타원형의 연속인 것이 나타납니다. 볼과 레이스웨이의 틈새(유격)가 큰 것들은 착각을 유발하기 쉽습니다. 윤활유를 안 칠한 상태에서 다른 힘이 걸리지 않은 가운데, 프리 스핀(free spin)을 시키면 상당히 잘 구르기 때문입니다. 프리 스핀과 실제 스케이팅 시의 구름성이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프리 스핀을 시도할 때 잘 구르지 않는 것들은 심리적으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기 마련입니다.
어쨌건 유격이 큰 인라인 베어링을 사용하던 분들 중에서 그 특유의 소리를 즐기려고 윤활유조차 잘 안 치던 분들은 뒤늦게 그게 베어링의 마모를 촉진하는 것임을 깨닫고 윤활유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제 주변에서 들리던 그 심한 베어링 망가지는 소리는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최소한 제가 스케이팅을 하는 올팍에서는 상황이 그렇게 변했습니다. 소리나는 베어링을 보면 "기름쳐야겠다." 혹은 "정비도 안 하고 타냐?"는 소리들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결국 이제는 "인라인 베어링이라는 게 존재하느냐?"는 질문을 하는 분들은 사라졌습니다. 인라인 전용이 있을 필요가 있고, 그렇게 만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베어링을 만들며 고민을 해야한다고 하면, 유격은 필요한데 그게 어느 정도가 가장 적절한 유격이냐하는 것에 관한 것이겠지요. 실제로 유격이 너무 많게 만들어진 제품들은 유격이 작으면서도 경축에서의 움직임이 원활한 적정치(optimum value)를 가진 것들에 비해서 잘 안 도는 것이 분명합니다.
"베어링은 많이탈수록 길이 잘 든다."고 생각하던 미신도 이제는 없어진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은 사포로 정밀(에조 베어링을 만드는 회사)의 연구원들이 확인시켜 준 것입니다만, 제대로 윤활제를 칠하고 사용한다면 길이 든다는 의미, 즉 적당한 마찰로 볼과 레이스웨이가 잘 닦여서(polished) 더 잘 구르는 현상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지요. 만약 그 사이에서 마모가 일어나면 베어링의 노후화가 촉진된 것이지, 그게 길이 들어 잘 구르게 된다는 표현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포로 정밀 연구원들의 의견에 의하면 억지로 길이 든다는 표현을 해보고자 한다면, 경도가 대단히 큰 세라믹 볼 베어링의 경우에서는 그렇게 표현해도 좋을만한 현상이 있는 것도 같다는 정도... 결국 베어링은 제작 단계에서 곡면의 마찰이 없을 정도로 세정을 잘 한 가운데, 상처나 기포가 없는 레이스웨이에 정밀한 폴리슁(polishing)을 하여 표면 상태를 매끄럽게 하고, 정교한 곡면의 구(球)를 사용하면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 제품은 좋은 윤활유를 발라 쓰면 좋은 성능을 발휘하는 것이고요.
인라인 초창기에는 무조건 아벡 지수가 높은 것이 좋다는 믿음이 있었고, 그런 사용자들의 착각을 이용해서 실제 기준에는 미치지도 못 하는 중국제 베어링들이 아벡 5니 7이니 하는 숫자를 달고 나타나기도 했습니다.(이젠 그 숫자가 SKF나 EZO, IJK 등의 베어링에 쓰여있지 않은 한 아무도 그걸 안 믿지만...) 그리고 그런 아벡 지수와는 관계 없이 시판되는 고급 세라믹 베어링들 때문에 그 미신이 많이 타파되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688 미니 베어링이 좋으냐, 608의 일반 베어링이 좋으냐, 무게가 가벼운 게 좋으냐, 무거운 게 좋으냐는 등의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의 논의에 이르면 그건 미신과는 다른 개인의 취향에 의존하는 것이니 위에서 한 얘기들과는 별개의 일이라 할 것입니다.
초창기에 60만 원 이상을 호가하던 인라인용 세라믹 베어링들은 분명 거품이 많았었던 것입니다. 거품이 가라앉고 보니 그와 비슷한 품질의 제품이 20만 원 대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인라인 전용의 스틸 베어링은 10만 원 중반에 포진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것도 거품이 꺼지니 10만 원 이하로 내려왔습니다.
이런 배경에는 에조나 쉥켈 베어링처럼 인라인 전용을 표방하고 나온 제품들이 있고, 또 그 제품들이 사용자들을 만족시켜 주었다는 사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들 제품은 최고는 아니나 가격 대 성능비가 대단히 좋은 제품으로 포지셔닝하여 성공한 것이기도 합니다. 특히 에조의 제품들은 최고의 제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석권했습니다. 이건 참 희한한 일인데, 알고 보면 그들은 80만 원 정도의 초고가, 초고급 베어링을 만들 수 있는 기술 수준이 있음을 보여주면서도 실제로 판매하는 것은 일반 사용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어링 강국인 일본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마케팅 전략입니다. 그에 비하여 쉥켈은 중국산의 베어링을 저렴한 가격에 엄격한 품질 관리를 통해서 생산하고, 이를 역시 사용자들의 저항감이 없는 가격대에서 판매하는 마케팅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베어링에도 시장이 있을 수 있음을 이들 업체가 보여준 것이지요.
인라인 초창기에는 쓰기에 적당한 베어링을 찾기가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런 걱정이 없이 원하는 베어링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좋은 베어링이 어떤 것인가를 가늠하는 식별안(識別眼)을 우리가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일은 부츠며, 프레임이며, 바퀴 등은 우리 국산 제품을 찾을 수 있는데, 그리고 그 제품의 수준이 상당히 높은데, 베어링에는 국산 제품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브랜드로 판매되기는 하지만 원산지를 보면 일본이나 중국이니까요. 우리 나라에 유일한 대규모의 베어링 회사인 한국베어링(KBC/전 한화베어링)도 이제는 우리 나라 회사가 아니고, 독일의 FAG 사에 합병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생산이 되지만, 진짜 국산은 아닌 셈입니다. 이런 게 참 가슴이 아프더군요.
그런데 최근에 선보인 한 베어링과 그 베어링을 만든 회사에 대해서 알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나라의 베어링 회사가 있고, 또 그 회사가 대단히 훌륭한 세라믹 베어링을 만들고 있으며, 그것도 인라인 전용 베어링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SBB 베어링은 어떤 베어링인가?"
우선 SBB는 어디서 튀어나온(?) 회사인가를 알아야할 것 같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인라인계에는 이름이 없던 회사인데... 이 회사의 베어링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염호섭 선생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SRS에서부터입니다. 그 모임에 나와 한강 로드를 하다가 한 번 대차게 얼굴을 갈아서 여러 사람의 간담을 서늘케 한 이소현이라는 예쁜 아가씨가 "제가 좋은 베어링 함 만들어 볼까요?"라고 엉뚱한 발언을 한 것으로부터 이 전설이 시작됩니다.
알고 보니 (주)SBB는 세라믹 볼 전문회사라고 합니다. 이 방면에 관심이 많은 저만해도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인라인 베어링 등에 사용되는 세라믹 볼은 일본의 교세라(Kyosera)를 비롯한 한두 개 회사밖에는 없는 줄로 알았는데, SBB가 이 방면에 20년 이상의 노하우를 가진 전문회사였다는군요. 알고 보니, 이 회사는 요즘 중국제 인라인 베어링에서 많이 사용되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지르콘(지르코니아/ZrO2) 세라믹 볼은 물론 우리가 진짜 세라믹 볼이라 부르고 있는 값비싼 질화규소(Si3N4) 볼까지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소현 선생은 원래 SBB 사가 세라믹 볼만 만들고 있었는데, 자신의 취미인 인라인과 관련짓는 제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인라인 베어링 사업을 제안했고, 회사에서 그게 받아들여져 인라인사업부 팀장을 맡게 되었다고 합니다.
SBB 사의 제품 카달로그를 보니 역시 세라믹 볼 전문회사가 맞고, 이 관련 원천 기술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볼과 함께 다양한 베어링은 물론 정밀 기계 부품을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이 회사의 제품들은 모두 첨단의 고부가가치를 가진 것들이 대부분이더군요.
그런데 카달로그를 보다가 놀라운 걸 발견했습니다. 30쪽의 이 카달로그 중 5쪽은 "인라인 베어링"이란 제목을 붙여 놨고, 아래 사진과 설명이 그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아래와 같이...
이 회사가 인라인 베어링을 적당히 생각하고 취급하려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 보면 내외륜이 스테인리스 강이어서 습기에 강하고, 기존 베어링의 무게에 비해 1/4에 지나지 않는 질화규소 세라믹 볼을 사용하고 있으며, 20,000RPM의 빠른 회전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아벡 7의 높은 정밀도가 유지되고 있다는 내용이 있는데, 다른 건 그대로 믿어도 좋겠고, 아벡 7의 정밀도라는 표현은 좀 문제가 있지만, 그 정도의 정밀성있는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환경에서 제작되었다는 표현이겠지요.(왜냐하면 세라믹 베어링은 대개 아벡 지수로 정밀도를 표현하지도 않거니와 인라인 베어링을 아벡 7 규격을 지켜서 만들면 오히려 경 방향의 유격이 없어서 구름성이 안 좋아지는 등의 문제가 있으니까요.)
카달로그의 14쪽과 15쪽을 보니, 반가운 사진과 설명이 나옵니다. 바로 질화규소 볼과 지르콘 볼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인라인 베어링에 사용할 수 있는 바로 그 볼인 것이지요.
- 14쪽.
- 15쪽.
SBB는 이 두 가지의 세라믹 볼 이외에 탄화규소(SiC) 볼과 알루미나(Al2O3) 볼도 생산하는데, 이 두 가지는 특성 상 인라인 베어링에서는 사용될 수 없는 것이지요. 특히 알루미나 볼 같은 것은 베어링에 넣으면 구름길(레이스웨이)을 마모시키는 일을 할 테니까요.
이 회사에서 만든 인라인 전용 베어링을 보니 외관만 봐도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필통을 닮은 케이스도 멋진데, 그 안에 들어있는 반짝이는 외륜을 가진 베어링이 어찌나 고급스러워 보이던지요.
사진에서 잘 표현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 베어링들은 외륜의 표면에서 광이 많이 납니다. 아주 연마(polishing)를 잘한 때문이지요. 외륜의 표면을 잘 연마한다고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게 기능에 큰, 유리한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닌 걸 생각하면, 이건 이 베어링을 만든 분들의 자존심의 표현인 것 같습니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은 거 아니냐는 정도의 자신감.
SBB 베어링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난 보급형(일반형)으로 지르콘 세라믹 볼을 사용하고 있고, 또하난 고급의 질화규소 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로는 SBB에서는 608 베어링만 생산하고 있으며, 제가 시험해 본 두 가지의 제품은 고급형이었습니다.
이 고급형 베어링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차이는 아주 단순합니다. 하난 개방형, 즉 한쪽에만 뚜껑(shield)이 있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양쪽에 뚜껑이 있는 것입니다. 양쪽에 뚜껑이 있는 것은 2RS라 불립니다. SBB 베어링은 대개의 세라믹 베어링들처럼 내부에 스틸 케이지/리테이너(steel cage/retainer)가 아닌, 왕관(crown) 모양의 폴리아미드제(우리가 흔히 나일론 케이지라고 부르는...) 케이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속칭 나일론 케이지를 사용하는 경우, 대개 볼이 드러나는 한쪽은 뚜껑을 닫지만, 볼이 감춰진 케이지의 뒷면은 굳이 뚜껑을 안 닫아도 되기에 뒤 뚜껑은 없지요. 스틸 케이지를 사용하는 제품의 경우에조차 한쪽만 뚜껑을 닫고 만 제품들도 있는데...
알고 보니 2RS라는 기호는 두 개의 고무 뚜껑(rubber shields)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말이 고무 뚜껑이기는 하지만, 실은 이게 고무처럼 보이는 플라스틱이 씌워진 놋쇠 뚜껑이지요. 그 플라스틱은 니트릴 러버(nitrile rubber)라는 일종의 인조고무이고요.(Nitrile rubber is a cold polimerized acronitrile-butadiene copolymers.) 베어링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한쪽의 뚜껑이 없는 경우, 정밀하게 보면 대류가 촉진되기 마련이므로 먼지의 유입 가능성이 많아서 두쪽을 다 막았다는 것이지요. 연구실에서 시험해 보면 꽤 큰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대단한 성의 아닙니까? 물론 제 경험에 의하면, 이렇게 두 개의 뚜껑이 사용되는 것이 먼지 유입을 막는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원래 이 뚜껑이라는 것이 비접촉이라고 해도 접촉이 되어 있으니 떨어져 나가지 않고 있는 것이고, 그 때문에 뚜껑이 없는 것보다는 덜 구르게 마련입니다. 그런 이유로 예전에 스틸 케이지의 경기용 베어링조차도 바퀴 안으로 들어가는 쪽의 뚜껑은 제거해 버린 것이거든요. 그거야 어찌되었든 간에 스틸도 아닌 나일론 케이지의 뒷면에까지 먼지 유입을 막기 위해서 굳이 뚜껑을 씌운 성의는 대단합니다. 쓰는 사람은 그걸 고맙게 생각하고 그냥 쓰던지, 아니면 제거하고 쓰면 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현재 SBB에서 시판하고 있는 베어링은 지르콘 볼의 보급형과 여기서 논의되고 있는 고급형의 두 가지입니다만, 2RS는 시판이 되지 않고 있고, 현재 베타 상태에서 테스트만 되고 있는 것이라 합니다.
아래는 케이스 위에 붙은 레이블입니다. 급히 케이스를 만드는 바람에 좀 실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 hybrid라고 해야 할 곳에 e가 하나 덧붙었고, SBB balls and bearings, inline bearings라고 쓰여야 할 것에 오류가 있군요. 고칠 것이니 이런 건 시비 걸지 맙시다.^^
아래 사진의 왼쪽이 개방형, 오른쪽이 2RS입니다.
아래 사진을 보십시오. 언뜻 보면 구별이 안 갑니다.(자세히 보면 다릅니다. 밖으로 보이는 내륜의 모양을 보면 가늘고 굵은 차이가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서는 왼쪽이 2RS입니다.
위의 베어링을 그대로 뒤집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왼편 것은 뚜껑이 있는데, 오른편 것은 내부의 나일론 케이지가 보이지요? 눈이 좋은 분은 투시력을 이용하여 보시면 세라믹 볼 7개가 보일 것입니다.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이, 이게 6볼 짜리 세라믹 베어링보다는 좋은 것이지요.(질화규소 볼이 무지 비싸니 7볼이 더 비싸기도 하지만, 볼이 더 많을 때 무게가 분산되는 효과가 있고, 가벼운 볼의 적은 관성으로 레이스웨이에 가해지는 저항이 적어서 더 잘 구르게 됩니다.)
심심해서(?) 뚜껑도 함께 찍어 봅니다.
역시 심심해서(^^;) 뚜껑을 뒤집어 놓고도 한 번 찍어보고요.
손으로 잡고 프리 스핀을 시켜 보니 참 잘 돕니다. 질화규소 볼을 사용한 좋은 세라믹 베어링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게 되어서 그런지 꽤 좋아 보입니다. 게다가 이런 베어링이 국산이라니??? 제가 국산 제품에 대해서는 스스로 국수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이니 이처럼 훌륭한 베어링이 국산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근데 이 베어링이 과연 겉모양만 번쩍대도록 연마하여 좋은 베어링인 척하는 그런 제품일까요? 아닙니다. 이 베어링은 볼이 구르는 레이스웨이까지 정교하게 잘 연마된 것입니다. 이렇게 잘 연마된 레이스웨이는 NMB의 김광호 사장님께 들으니 well polished라고 표현하지 않고, super finished라고 표현한다는군요.
SBB 베어링의 내외륜 레이스웨이가 얼마나 "기막히게 끝마무리된(super finished)" 제품인지 아래 사진을 보십시오.
- 레이스웨이가 번쩍번쩍 광이 나지요?
아래는 수퍼 피니쉬드 레이스웨이의 현미경적인 사진입니다.
위의 사진을 보고, 이게 어느 정도 정교하게 가공된 베어링인지 감이 안 잡히면 아래 다른 회사의 베어링 사진을 보십시오.(이게 어느 회사 제품인지 밝혀드리고 싶은데...^^;)
SBB냐 비SBB냐가 구분되십니까? 뭐, 아래 타사 제품의 사진은 SBB 사의 홍보 사진에서 사용된 것이니, 평균적인 제품이라기보다는 상태가 안 좋은 것을 선택하여 찍은 것이라고 백보천보 양보해서 생각해도 좋습니다.^^; SBB 제품의 마무리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위쪽의 사진에 주목하시면 됩니다.
레이스웨이의 가공이 불충분하여 흠이 있으면 베어링이 덜 구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아래 타사 베어링의 예에서와 같이 가공이 되다 만 것 같은 사례가 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입니다.
SBB 베어링의 내외륜은 SUS440C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는 경도(HRc)가 56-59에 이르는 크롬을 포함한 7가지 성분으로 만들어진 스테인리스 스틸입니다. 위에서도 언급되었듯이 거의 대부분의 베어링 회사들이 이 소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SBB의 내외륜 소재가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특별하다면, 역시 위에서 지적된 대로 레이스웨이의 가공이 아주 잘 되었다는 것이겠지요.
이 SUS440C는 녹이 잘 안 스는 소재입니다.(잘 안 슨다는 것이지, 절대 안 슨다는 것은 아닙니다.) 스케이팅을 하다 비가 왔을 때 계속 스케이팅을 하고, 집에 돌아와 바로 정비하면 계속 사용하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는 되지요. 하지만 이를 방치하면 약간 녹이 슬어 버리고, 겉은 멀쩡한 듯 해도 현미경적인 녹은 슬어 버리므로 구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레이스웨이에 생긴 작은 녹은 구름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므로 아주 조심해야죠. 물론 세라믹 볼을 사용하는 베어링은 스틸 볼을 사용한 것보다는 조금 낫습니다. 볼 자체가 녹이 슬어 버리는 일은 없으니까요. 하긴 SBB의 베어링은 레이스웨이의 수퍼 피니쉬 가공 때문에 덜 가공된 제품보다는 산소와 결합하는 면이 적으니 그에 비해서는 좀 낫겠지요.^^ 특히 윤활유가 칠해져 있거나 불소오일 등의 사용으로 미세한 테프론(Teflon) 입자가 볼과 레이스웨이와 표면에 코팅되어 있다면 녹스는 것에 대한 걱정은 덜어지겠지요.
아래에서 몇 개의 접사 사진을 찍어 봤습니다. 해가 넘어가는 시점에서 창가에 놓고 찍어서 약간 발그레한 빛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 안에 있는 세라믹 볼이 참 멋지지요? 더 자세히 보시고 싶으면, 클릭해 보십시오.
- 2RS입니다. 볼의 자리가 중앙에서 벗어나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 보이시지요? 뚜껑을 둘다 씌우기 위해서 이런 수고를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안에 있는 왕관 모양의 나일론 케이지를 보호하는 역할도 합니다.
- 두 개를 양옆에 놓고 찍어 봤습니다. 오른쪽이 2RS인데, 두 가지의 모양을 비교해 보시도록...
모양이 좋고, 소재가 좋으면 뭐하겠습니까? 잘 아시다시피 인라인 제품의 평가에서 중요한 것은 이의 성능입니다. 과연 이 제품을 실제 사용하면 어떨까요? 제가 원래 608 베어링은 사용을 않는 사람입니다만, 이 베어링은 아직 608 제품만 있기 때문에 이를 시험해 보느라 지난 2주간 계속 SBB 608 베어링만 사용했었습니다.ㅜ.ㅜ
결과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는 것입니다. 이 베어링을 저보다 먼저 써 본 분들은 안양의 동안고 선수들과 SRS 참가자들인데, 후자의 얘기는 "좋더라." 정도의 얘기말고 더 자세하게 들어본 바가 없고, 동안고 엘리트 선수들은 "사용해 본 608 베어링 중에서 독일제 LTM 베어링이 꽤 괜찮았는데, 이에 버금가게 좋더라."라는 얘기를 했다고, 안양의 한 스케이터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LTM 베어링은 제가 알기로는 스피드용 베어링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제가 아는 한 이 베어링은 모두 인라인 하키용 베어링으로 포지셔닝하는 제품만 있고, 저는 제가 사용하던 인라인 하키인 미션(Mission) 제품이 한 때 LTM 베어링을 썼었기 때문에 그걸 많이 써 봤습니다. 좋은 베어링으로 알려지는 것이지만 제가 인라인 하키에 빠져있던 당시에는 부품으로서의 베어링에는 관심조차 없었기 때문에(^^;) 이게 얼마나 좋은 것이었는지 파악을 못 했습니다. 하여간 동안고 선수들의 말은 LTM이 괜찮았는데, 거의 그에 필적하더라라는 얘기이지요.(원래 1등은 으뜸이고, 2등은 버금으로 표현되는 것이니까요.)
이 베어링은 감각으로 테스트해 보면 내외륜의 유격이 제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조금 큽니다. 실제로 인라인 베어링의 유격은 위에서 지적했듯이 경 방향에 적당하게 주어져야 잘 구릅니다. 보네스나 NTN은 지나치게 많이 준 것이 문제인데, SBB 베어링도 이에 버금가게 유격을 주었더군요.("버금"의 의미 아시죠?) 그들 베어링보다는 조금 적게라는 의미입니다.^^; 지나치지는 않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많이 준 것이라는 의미죠. SBB 측에 의하면, 이미 그런 지적, 유격이 좀 크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이의 유격을 조금 줄이면 글라이딩 시에 더 잘 구를 것입니다.(이런 의견을 SBB 측에서 수긍하신다면 그건 고쳐질 수 있겠지요.) 어쨌건 SBB 베어링의 프리 스핀은 대단히 좋습니다.
SBB에서는 이 제품이 잘 가공된 것이므로 윤활유를 안 넣고 타도 될 정도이고, 실제로 주행 시에 윤활유를 넣지 말고도 타 봐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만, 저는 그 부탁을 듣지 않았습니다. 베어링에 윤활유를 안 넣고 탄다는 것은 처음부터 베어링을 망치겠다고 작정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이는 저의 베어링에 대한 상식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세라믹 베어링이라면 강한 볼에 의해서 레이스웨이가 마모되는 건 뻔한 일인데...
그래서 처음부터 와코스의 불소 오일을 주유하고 시험했습니다. 주유를 하고 프리 스핀을 시켜 보면 아무래도 그 회전력이 상당히 감해 지지요. 하지만 실제 타 보니 나무랄 데 없이 잘 구릅니다. 처음에 이 베어링을 테스트할 때 바퀴를 오크라(Ocra)의 100mm 바퀴를 썼었는데, 구름은 흠을 잡을 수 없이 좋았지만, 이 베어링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를 알아볼 수가 없더군요.(소리 테스트도 중요한데...) 이유는 오크라 바퀴가 달리면 바깥쪽을 향해 움직이는 무게 추가 있고, 또 작은 스프링이 있어서 발을 지면에서 떼었다 붙였다 할 때 소리가 나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나중에는 다른 휠들로 바꿔서 시험해 봤습니다. 그 이상한 어떤 베어링들(^^; 어떤 것인지 아시지요?)처럼 요란한 소리가 나지도 않더군요. 이 부분도 만족할만 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많은 분들이 608 베어링은 속도 유지력이란(?) 것이 좋은 것 같다는 말씀들을 하셨기에 열심히 그걸 느껴 보려고 했으나 제겐 역시 608로부터 받는 그런 느낌은 없더군요.^^; 그래서 두 가지의 타 회사 608도 시험해 봤는데, 역시 결과는 같았고, 가속력에 있어서는 확실히 608 베어링이 688에 비해서 뒤진다는 걸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이건 사포로 정밀과 같은 베어링 회사의 실험에서도 이미 드러난 것이고, 에조 김승동 이사님의 한국인라인학원 강연에서도 알려진 것이고...) 어쨌건 이 얘기는 잠시 옆길로 벗어난 것인데, SBB의 608이 가진 문제가 아니고, 608 타입의 태생적인 특성이지요.
현재 판매되고 있는 SBB의 두 가지 제품 중 지르콘 볼을 사용한 제품을 시험해 보지 못 한 것이 유감입니다만, 사실을 말씀드리면 저는 SBB가 더 저렴한 지르콘 볼 제품을 이미 생산했다는 사실을 조금전 오후 9시 반경까지 모르고 있었습니다.ㅜ.ㅜ 글을 마무리하면서 의문사항이 있어서 이소현 선생에게 전화를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그게 이미 시판 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SBB 사에서는 보급형, 고급형의 제품 평가에는 관심이 없이, 고급형 제품에서 2RS의 필요성 만을 제게 테스트해 보고 싶었는가 봅니다.
제가 타 본 바로는 굳이 2RS형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됩니다. 더 많은 수고를 해서 만드는 제품이기는 하지만 개방형이 충분한 실용성을 가지고 있고, 한쪽이 개방되었다고 하여 나일론 케이지가 상하는 일도 별로 없으니 말입니다. 또 아무리 비접촉 쉴드라고 해도 그게 구름을 방해하는 것은 분명한 일이기도 하지요. 또한 정비를 할 때 뚜껑 하나를 더 분리해야 되는 것도 귀찮은 일입니다. 기왕 만든 제품이고, 다양한 사용자층이 있으니 나중에 이 2RS 형의 베어링이 판매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진짜 국산 제품의 출현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던 베어링, 그것도 일반 스틸 베어링이 아닌 세라믹 베어링을 우리 나라의 토종 회사가 이렇게 훌륭하게 만들어 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었습니다. 그래서 대단히 기쁩니다. 아직 우리가 알지 못 하는 또다른 회사들이 이런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기대까지 하게 됩니다.
하긴 그런 가능성을 가진 회사들이 있다고 해도, 그 회사에 사명감을 가진 인라이너가 있지 않으면 이런 일은 불가능하겠지요. 우리의 인라인 관련 제품들의 세계 시장 진출이 기대되는 가운데, SBB 사도 더욱 훌륭한 제품 개발로 나중에 프레임, 휠, 부츠 등에 이어, 세계 인라인 베어링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회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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