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텔 게오동의 윤석원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Heroes of Might and Magic 세계의 이해
* 서문.
필자는 오래 전부터 게임의 세계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관심의 척도는 사람에
따라 항상 차이가 있는 법인데, 게임을 보는 여러 가지 관점 중에서 필자의 관심은
주로 게임의 기본틀로, 즉 장르적인 관점을 주로 부각시켜 바라본다. 물론 훌륭한
게임은 기본틀을 비롯해 각종 부수적인 요소(시나리오, 난이도, 그래픽, 사운드
등등)들이 복합적으로 잘 조화 있게 구성되어야 하지만, 여기서 소개하고 그 특성을
조명할 게임에 있어서는 다른 부가적인 요소보다도 특히 '기본틀'에 대해서
강조하고 싶은 필자의 소견때문에 미리 이런 따분한 이야길 해두는 것이다.
* HOMM 시리즈의 발전사.
HOMM 시리즈를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분이나 접하고 있더라도 그 발전 사에 대해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초기 시리즈부터 현 시리즈까지의 발전 사를 잠시
언급해보자. 아마도 자연스럽게 HOMM 시리즈란 게임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듯 싶다. HOMM 시리즈를 같은 회사의 게임인 마이트 앤 매직(Might and
Magic)이라는 롤플레잉 게임의 외전이라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비록 HOMM 시리즈가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의 배경을
활용하고 있으나 단지 그것은 스토리적 요소를 위한 배경에 불과하다.
XT/AT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게임이 있다. 바로 왕의
하사품(King's Bounty)이 그것이다. 왕의 하사품 역시 HOMM시리즈를 만든
뉴월드컴퓨팅(New World Computing)사의 제품으로 당시 상당한 히트를 친 바 있다.
왕의 하사품 게임 디자이너와 HOMM 시리즈의 게임 디자이너는 동일한 사람으로
현재의 탄탄한 기본틀을 가진 HOMM 시리즈가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게 아니란 걸
알아두었으면 한다. 단순히 마이트 앤 매직의 인기에 편승해 탄생한 단순한 외전격
게임이 아닌 것이다. 가장 초기 작품인 왕의 하사품에서 HOMM 시리즈로의 기본틀에
대한 발전 과정을 간략히 알아보자. 왕의 하사품은 그야 말로 혼자 하는 말판놀이
라고 볼 수 있다. 한명의 영웅으로 시작해서 중간중간 군대 및 몬스터를 고용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여러 가지 사건들을 해결하며 정해진 궁극의 보물을 찾는 것이다.
경쟁자는 존재하지 않고 단지 방해자들만이 존재한다. 특별한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말판상에서는 실시간으로 시간이 흐르며 커서 조작에 따라 영웅을 이리저리로
이동하는 방식을 가졌었다. 하지만 전투 장면에서는 지금의 HOMM 시리즈와 거의
동일한 시스템인 체스 형식(?)의 턴 방식 전투가 이루어졌다.
그 후 HOMM1이 탄생했을 때 가장 변화된 점은 획일화 된 목적을 가진
왕의 하사품의 롤플레잉 스타일에서 벗어나 판타지 배경의 전략 시뮬레이션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이었다. 즉 경쟁자가 생겼으며 환경적인 상황이 다양하게
제공되었다. 특히, 특정 영웅의 모험에서 벗어나 한 부족 혹은 종족 단위의
전쟁으로 개념이 확대되어 플레이어는 성이나 마을을 개발하기도 하며 영웅도
한명이 아닌 여러 명 단위로 고용하고 성장시킬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것이 큰
지각변동에 해당하는 변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 발전 요소에 대해서는
굳이 자세히 언급할 필요는 없으리라 본다. 상상해 보자. 16 칼라의 왕의
하사품에서 65000칼라의 HOMM3 에 이르기까지 변화된 부수적인 요소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 턴 방식 전략 시뮬레이션.
항간의 사람들은 HOMM의 장르를 설명하면서 '턴 방식 전략 시뮬레이션'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영어로 하면 'Turn-based Strategy Simulation'이 되는데 이 '턴
방식'이란 걸 잠시 언급하고 넘어갈까 한다. 보통은 단순히 장기처럼 상대방과 내가
한번씩 교대로 차례가 오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그것은 좁게
바라본 것이다. 물론 대전상대가 사람이든 컴퓨터든 비실시간의 대전이라면 서로
차례를 부여 받는 방식으로 대전을 치르는 게 일반적인 방법이라 하겠다. 그러나 좀
더 포괄적으로 턴 방식에 대해서 이해해보자.
그러나 좀 더 포괄적으로 턴 방식에 대해서 이해해보자. 턴 방식 게임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사고할 수 있는 시간과 함께 지정 턴 동안 수행할 수 있는 목록(예를 들자면
할 수 있는 명령어 일람)을 제공하는 것으로 지정 턴의 완료와 동시에 게임상의
시간이나 사건 및 기타 연결고리가 진행되는 게임의 한가지 기본틀(장르)이다. 즉
대전상대가 있거나 없거나 그게 중요한건 아니다. 현실상에서의 대표적인 턴 방식
게임으로 우리가 잘 아는 바둑이나 장기가 있다. 하지만 게임에 있어 턴 방식에
굳이 대전할 상대방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게임이든 사용자가 어떤 명령을
실행할 때까지 사건의 진행이 일시적으로 멈추어져 있는 종류의 게임이라면
그 기본틀은 턴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스템 사양이 높아진
요즘 실시간 방식의 네트워크 게임이 많은 사용자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음에도
(아마도 고리타분한 ^^;) 필자는 아직도 이러한 플레이어의 판단을 느긋하게
기다리는 턴 방식 게임을 매우 선호하고 있는데, 여기서 아마 게임에 있어
신세대와 구세대가 나누어지는 하나의 갈림길이 아닌가 잠시 머뭇거려본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HOMM 게임의 기본틀에 대해서 알아보자.
* 말판게임과 동족관계인 HOMM 시리즈.
필자가 어렸던 시절엔 말판놀이란게 참 유행했었다. 부루마블 같은 유명한
말판놀이도 있었지만 필자가 좋아했던 말판놀이는 용이나 마왕따위를 처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주사위 말판게임 이었다. 중간에 무기를 얻거나 사고 팔 수도 있으며
여러 가지 갈래 길로 보물도 찾으러 다니고, 나타난 적과 주사위로 승부를 가리는
그런 류의 스타일은 HOMM 시리즈의 기본틀과 아주 흡사하다 하겠다.
* HOMM 시리즈의 주요 구성 요소.
영웅 - 이것은 실제로 플레이어에 의해 지도상에서 움직일 수 있는 말판게임의 주된
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영웅들은 한 턴마다 일정한 행동을 할 수 있는 행동력이
정해져 있으며 이동 및 전쟁, 기타 행위 등을 수행한다. 영웅은 자신의 특성에 대한
여러 수치들을 가지고 있으며 플레이어들은 그러한 특성치에 대해 주의해서
관리해주어야한다. 영웅들의 특성치에는 경험레벨, 공격/방어 능력, 마법시전 능력
등을 바탕으로 기타 부가 기술들 및 습득한 마법들도 포함된다. 영웅들을
성장시킨다는 것, 그것은 훌륭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유닛 - 영웅이 보유할 수 있는 일종의 군대 구성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아군의 상대가 될 적군이나 중립 몬스터들도 이러한 유닛이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HOMM3에서는 아주 다양한 종류의 유닛을 제공하고 있다. 모든
유닛들은 판타지를 배경으로 하며 불을 뿜는 용에서부터 용감한 농부까지
각양각색의 특징을 가진 다채로운 생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역시나 이들 유닛들도
자체적인 여러 가지 수치들 및 특성을 가지고 있어 플레이어들은 그것들을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마치 장기에서 각 기물들의 행마법을 모르면서 장기를 두는
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유닛들의 특성을 암기할 필요는 없다. HOMM
시스템은 친절하게 유닛들의 특성을 항시 플레이어가 원할 때 표시를 해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 약간의 주의만 기울이면 유닛을 아무렇게나 다루는 착오를 벗어날 수
있다. 이런 유닛들은 전투의 기본 요소가 되는데 게임상의 메인 화면, 즉
말판상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전투화면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때 이 전투란 건 장기를
상상하면 된다. 전투에 대해서는 이후 다시 언급하게 될 것이다. 아무튼 상상 속의
다양한 판타지 생물들을 모아서 다루어 볼 수 있다는 것, 그것 역시 훌륭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성 및 도시 - 영웅 및 유닛을 고용하거나 생산할 수 있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경제력의 기반 요소이며 승패의 열쇠가 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보편적인
HOMM시리즈의 기본 승패 룰은 이 성이나 도시에 있다. 즉 상대방의 성이나 도시를
모두 함락하면 승리하는 것이요, 자신의 성이나 도시를 모두 잃는다면 패배하는
것이다. (물론 승패 룰은 시리즈가 거듭될 수록 다양하게 세분화 되었다.)
성이나 도시에서는 한 턴에 한번 새로운 건물을 지을 수 있으며 지을 수 있는
건물은 일반적으로 인구증가를 위한 건물(세금 확충)과 유닛 생성을 위한 건물,
그리고 기타 도시 방어를 위한 건물의 세가지로 나누어진다. 물론 건물을 짓는데 는
자금 및 자원이 필요하며 이러한 자금이나 자원을 확충하기 위한 영웅의 자원 채취
행위가 요구된다. 이러한 자원 확보 및 각종 보물을 찾기 위해 탐험을 한다는 것,
그것 역시 훌륭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세계 - 이제 이러한 영웅이나 성 그리고 각각의 여러 생명체들이 존재할 세계를
이야기해보자. 즉 말판게임의 게임 판에 대응하는 것이다. HOMM의 세계를 나타내는
지형지물은 매우 다양해서 좀처럼 질리지 않을 판타지 세계가 펼쳐지게 된다.
보편적으로 단순히 떠올릴 수 있는 기본 지형들을 비롯해서 판타지 세계에서나
있을법한 다양한 마법의 지형과 마법의 건축물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각종 괴물들과
보물들도 지형 사이에서 세계를 이루는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한 것들이 여러 가지 사이즈로 조합되어서 하나의 시나리오를 형성하고 그러한
세계에서 플레이어들은 또 한편의 모험을 시작하는 것이다. HOMM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중의 하나를 여기서 또 발견할 수 있다. 즉 게임을 여러 번 하더라도 항상 다른
환경과 과정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같은 지형의 시나리오라 할지라도 그
지형 위에 조합되는 성이나 건축물 유닛, 광물, 보물 등등의 요소들이 항상 게임 할
때마다 다르기 때문에 매번 같은 스타일의 게임을 진행하지 않게 된다. 단 여기서
한가지 언급해둘 것이 있다. 완전한 랜덤(무작위식) 시나리오 생성은 궁극적으로는
게임진행이 획일화 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시나리오가 아무런 의도나 틀 없이
컴퓨터에 의해 무작위로 생성되었다면 결국 외면당한다는 뜻이다. HOMM2 이상의
시리즈에서도 역시나 랜덤 시나리오 생성 툴은 제공한다. 그러나 그런 것을
사용하지않고도 플레이어들은 방대한 시나리오들을 접해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시나리오들만 해도 100여가지가 족히 넘을 것이고,
인터넷에서도 아마추어 시나리오 제작자들이 만든 수백 개 이상의 새로운
시나리오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본 바로는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시나리오보다 인터넷의 HOMM 사이트에 올려진 아마추어 맵디자이너의 시나리오가
더욱 흥미진진하지 않을까 한다.
* 전투 시스템
HOMM 에서의 전투는 복잡하고 다양한 스타일로 업그레이드된 체스라고 보면 된다.
HOMM 의 전투 스테이지는 육각형의 타일로 이루어지는데 각 진영은 좌측과 우측으로
나누어 지며 장기나 체스처럼 각 유닛들은 차례차례로 이동을 하거나 공격을 할 수
있다. 이동하는 방식은 오히려 장기나 체스보다 쉽다. 왜냐하면 이동력 수치에
따라서 원하는 만큼만 어떤 방향으로든 이동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격 및
방어방식은 체스나 장기보다 복잡하다. 그것은 컴퓨터라는 멋진 환경에서 즐기는
게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즉 각 유닛들은 복잡한 특성치를 가질 수 있으며
또 그 수량이 존재 한다. 따라서 수량에 따른 부대가 형성이 되므로 장기나
체스에서처럼 공격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공격에 이어 부대가 전멸하지 않을 경우
반격이란 것도 있고 그 공격과 반격이 컴퓨터에 의한 복잡한 계산으로 다양하게
연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투 스테이지 자체로 각종 지형이 있어서 공성전
같은 수비에 유리한 지형따위도 존재할 수 있다. 역시나 마법에 의한 화려한 부가
연출도 빼놓을 수 없겠다. 여기서 분명히 말해두고 싶은 점이 있다. 이런 전투
스타일은 결코 실시간으로는 만끽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바둑 같은 게임을 서로
차례가 없이 손놀림이 빠른 사람이 막 두는 형식으로 한다고 상상해보라. 절로
웃음이 나지 않는가? 즉, HOMM 이라는 게임의 기본틀은 이러한 정적인 틀 속에서
플레이어의 사고를 중요시 하는 게임임을 유념해야 한다. HOMM이 스타크래프트처럼
실시간으로 박진감 있게 대전할 수는 없지만 그걸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게이머들이
없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