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학년도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합격자 수기 – 한영과 서지연
[제 소개] 앞서 간 선배님들의 소중한 합격 수기를 읽으면서, 늘 멋진 합격 수기 하나쯤 써보고 싶었는데.. 막상 이렇게 글을 시작하는 것이 막막하고, 이렇게 너무 대책 없이(!) 합격해서, 입학해서는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우선 특별한 공부 비법 등이 궁금해서 이 수기를 읽으려고 하신다면, 읽지 말아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나와 같은 어려움 속에 공부를 하고, 또 하찮은 수기라도 읽고 용기를 내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이 글을 시작합니다 ^-^
저는 소위 국내파입니다. 학부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그것이 한 사람의 영어 실력을 보증해주지 않는다는 것쯤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요. 대학교 3학년 때 필리핀으로 봉사활동을 가서 나보다 영어를 잘 하는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당황스런 경험을 했습니다. 그때 느꼈던 좌절감 하나로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영어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그 때 그 수준이라는 것은 그 당시 유명했던 ‘**** 절대로 하지 마라’ 시리즈를 받아쓰기 하는 정도로, 극히 하찮은 것이었습니다. 남들 다 한다는 TOEIC 900점 조차 넘어보지 못한, 그야말로 ‘스펙’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한 가지 운이 좋았던 것은, 영어를 좋아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실력이야 형편없었지만, 그때 그 시절은 정말 순수하게 앉아서 영어 공부한 시간이 하루
[동기 부여의 계기들]
1) 대학교 4학년 때, 막연한 기대와 꿈을 안고, 김수연 선생님의 수업에 첫 발을 디뎠습니다. 당시에는 청취 시간에 CNN을 사용했는데, 뉴스 한 토막을 듣고, 나름 자랑스럽게 발표했던 저는, “본인이 80%정도 이해한다고 생각한다면, ‘0’ 하나를 지우면 그게 바로 본인 실력일 겁니다.”라고 말씀하신 선생님의 첫 마디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번은 누가 봐도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 한 분이 발표를 하셨는데, 선생님께서 “러시아어 공부 더 열심히 하셔야겠네요.”라고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그 분은 한영도 아닌 한영노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영어 하나라면 누구보다 애정이 있고, 국내파치곤 실력도 괜찮다고 자신했던 저로서는, 너무도 절망적이었습니다. 2007년에 본격적으로 대학원 입학에 목표를 두고 공부하려고 다시 찾아갔을 때는, 마음가짐부터 달라져 있었습니다. 이제는 소리 없이 사라질 수도, 어렵고 힘들다고 뒷걸음 칠 수도 없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2) 2007년 처음으로 미국에 여행을 갔습니다. 우연찮게 친구의 권유로 UN에서 하는
[평상시 공부 습관] 처음 이 공부에 관심을 갖고 시작하시는 분들에게는 김수연 선생님의 강의를 꼭.꼭.꼭 추천합니다. 선생님은 ‘얼마(3달, 6개월) 만에 영어 완성하기’ 식의 사기성(!) 강좌는 절대 개설하지 않으시고, 늘 정도(正道)로 가시는 분입니다. 처음에는 약간 템포가 더디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시험에 나오는 것을 족집게처럼 찍어 주시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하게 생각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어차피 통대 입시에 정형화 된 예상 문제라는 것은 없습니다. 뉴스나 신문, 인터넷에서 보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모두가 입시 예상 문제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은 누가 밥처럼 떠먹여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의지와 내 노력만으로 정복해 낼 수 있는 것이지요. 특히 선생님 강의는 혼자 복습해오는 시간에 투자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들으실 수 없습니다. 반면 그만한 애정과 관심, 노력을 하면 선생님이 제시해주시는 방향에 따라 순풍에 돛대 달 듯 순항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통역도 모자라긴 마찬가지이지만 번역이야말로, 딱히 남들에게 내세울 만한 공부법이 없습니다. 그저 선생님께서 개인적으로 critique을 주신대로, 매일매일 쉬운 그날의 주요 신문 기사를 한-영으로 옮기고, 영-한으로 다시 옮겨 보면서, 한-영 때 연습했던 것이 확실히 내 것이 되었는지를 체크하는 정도였습니다. 길이는 절대 길지 않은 것으로, 길이에 위축되어 포기하면 안되니까요. 저의 번역 실력이라는 것은 너무도 하찮은 것이어서 – 지금도 입학 후 제일 걱정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 남들이 Newsweek나 Economist 등을 무리 없이 읽어 내려갈 때, 저는 한 두 문장 가지고도 몇 시간을 끙끙댑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한 문장을 읽어도 꼼꼼하게 읽는 습관이 길러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학원에서 Reading material을 받으면, 영-한으로 직접 써보거나 컴퓨터 워드 작업을 해서, 대충 읽었을 때 무심코 지나쳤던 부분, 내가 당연히 안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을, 마치 소설을 쓰듯이 초벌로 번역하고, 모르는 부분을 완성하기 위해 두 번, 세 번 번역했습니다. 통역은 매일 fiancé – 이하 A군 - 가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이렇다 할 스터디 파트너도 없던 제게, 세련되고 표준화된 정식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A군은 그야말로 천군만마였습니다. 방법은 이렇습니다. 매일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게’ 중요했던 공부 습관은, 단연 마인드 컨트롤이었습니다. 2007년 여름, 조금은 길지만 의미 있는 여정을 시작하면서, 여건상 실전반 수업을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줄곧 직장과 공부를 병행해서, 저녁에 기초반을 듣거나, 1주일에 3번 하는 오전 실전반 수업을 1/3밖에 듣지 못했기 때문에, 스터디 파트너는 커녕, 주변에서 공부하면서 서로 정보를 공유한다거나, 내 실력이 어디쯤 와 있나 가늠해 볼 수 있는 주변의 무리(!)가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혼자 공부해야 했기에 갈팡질팡했던 적도 있었지만, 실력의 한계를 느끼면 더 열심히 하고, 기초반 수업에서 가끔 쉬운 것이 나오더라도 자만하지 않고, 배운 내용을 200% 소화하려고 애썼습니다. 공부하는 이도 나 하나였고, 경쟁자도 항상 나 자신이었습니다.
[1차 시험] 시험 장소에 너무 일찍 도착한데다가, 부근에 편의점 하나 없어서 사당역까지 혼자 걸어갔다가, 커피 한잔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그 먼(!) 길을 걸어서 학교로 들어갔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한국어 시험 문제는 1) 신 재생 에너지 생산에 대한 우리 정부의 문제점 세 가지, 2) 미디어법에 대한 여•야•헌법재판소의 반응, 그에 비해 소외된 국민, 3) 우리 나라의 ‘신 아시아 정책’이 나아갈 길 등을 각각 3분 여 동안 듣고, 나머지 7분 동안 정리해서 원고지 형식에 쓰는 것이 출제되었습니다. 번역 같은 것은 처음 읽을 때는 평상시에 시간을 정해두고 하는 연습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들은 내용을 짧은 시간 안에, 더 짧게 요약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통역 연습할 때 디테일한 내용보다는 이야기의 큰 흐름을 잡는 것을 본능적으로, 또 집중적으로 연습한 덕분에, 기억나지 않는 디테일한 내용에 대한 후회 없이 주제만 거침없이 써 내려갔습니다. 원고지에 쓰는데, 사용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시험 전 한번의 점검으로 쉽게 적응할 수 있는 형식입니다. 초등학교 수준이지만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게 좋으니, 시험 전 한번 훑어보세요.
영어 듣기와 Reading 문제는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특히 듣기 문제는 큰 흐름을 파악하고 있어야 답을 쓸 수 있는 문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서울외대는 시사에 많은 관심과 초점을 둔다고 들었는데, 문제들 대부분이 역시 에너지문제, G20 등 외교 무대에 자주 등장하는 기관과 사안에 관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시험이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공부해야 할지를 몰라 2007년에 아무런 준비 없이 타 대학원에 시험 보러 갔다가 정말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 분의 말씀처럼 ‘도저히 사람이 풀라고 낸 문제는 아니다’의 느낌? 이번에는 우선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풀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고, 예감도 좋았습니다. 무조건 어려운 문제만으로 응시생의 변별력을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므로, 평이한 문제로 진정한 실력을 가리는 학교라는 생각을 하면서, 건방지게도 혼자서 학교를 평가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무지 쑥스럽네요 ^-^
[2차 시험 - 번역] 워낙 서두르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집에서 바로 가는 버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지하철로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이번에도 커피 한잔과 함께 걸어가는 길. 시험 때 다들 긴장을 많이 하셔서 우황청심환 등을 챙겨서 먹는다고 하는데, 저는 평상시에 안 하던 짓(!)을 하는 건, 안 하느니 못하단 생각에, 늘 하던 데로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서울외대는 교통편이 버스나 지하철 모두 매우 편리해서 좋았습니다. 학교에 들어섰을 때는, 아담하지만 건물 전체에 따뜻하게 난방 가동을 하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번역 시험을 지하 세미나실에서 봤는데, 1차 때 딱딱했던 교실 분위기와 책상, 의자 등을 생각하면 훨씬 좋은 첫 인상이었습니다. 번역 시험지를 받아 들기 직전까지, 교수님 세 분이 들어오셔서 자상하게 설명해주시는 것 까지.. 모든 것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는데.. 시험지를 받아 든 순간,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졌습니다. 한-영 2문제, 영-한 2문제가 출제되었는데, 첫 번째 문제부터 제가 늘 어렵게 여겼던 경제 관련 뉴스였습니다. 게다가 리먼 브라더스 철자까지 기억이 안 나는 지경.. 통역 시험 때도 모르는 것을 괜히 지어내서 말하는 것이 큰 감점 요인이라는 것을 들어온 터라, 처음부터 내가 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것들은 과감히 접자 다짐했습니다. 1번 문제를 포기하고 2번부터 써 내려가면서, 다행히 나머지 셋은 문제가 평이했기에 꼼꼼히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한-영 두 문제는, 유명인의 일화를 바탕으로 행복이라는 것이 물질적 풍요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내용 하나, 또한 누구나, 어디서나 살 수 있는 향수를 만들어 여성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다는 또 다른 유명한 사람의 일화 하나. 선생님께서 늘상 제게, 통역하는 기분으로 번역을 하되, 개별 단어 하나하나에 집착하지 말고 큰 문맥을 잡아가며 번역을 하라 일러주신 말씀.. 계속해서 나 자신에게 세뇌시키며 써내려 갔습니다.
[2차 시험 - 통역] 올해는 같은 날 번역과 통역을 전 응시생 모두 마치게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아침 조의 제일 마지막이었습니다. 제일 마지막이라고 해도, 통역 시험을 치르는 방이 여러 개가 있어, 제 앞의 인원은 열세 명 남짓. 오후에 통역 시험을 보려면 점심 시간을 넘기고 저녁 늦게까지 계시는 분들이 있다고 하더군요. 기다리는 내내 초조하고, 때론 지루했지만, 오후반이 아닌 것이 무척 감사하게 여겨졌습니다. 제가 면접을 볼 면접실에서는 대략 10~13명 정도가 제 앞에서 면접을 봤습니다.
기다리는 내내 떨어졌다 생각하고 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손에 잡히질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발표 1주일을 남기고 제겐 아버지 이상이셨던 외할아버지께서 운명하셨습니다. 장례식 내내 바쁘게 일을 돕다가 합격 소식을 들었습니다. 같은 날 사촌 동생도 기다리던 KAIST 합격 소식을 접했습니다. 당신 장례식장에서 2009년 최고의 선물을 주신 할아버지 덕분에, 정말 온 가족과 함께 합격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마치며] 12월은 정말 아무 생각하지 않고 공부를 놓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임종령 교수님 글을 읽었더니, 합격하고 놀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다시 공부하고 싶어지는 시기가 저절로 찾아오고, 또 그 시기가 매우 빨리 찾아오니, 합격 후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 하는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1월이 되어 흐트러진 공부 습관을 다 잡으려고 다시 학원을 찾았습니다. 연초이고, 겨울 방학이고 해서 이제 막 열심히 하려고 하는 학생들을 보면 귀엽기도 하고, 예전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감회도 새롭고..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기초반에서조차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매 순간순간 놀라고, 감사해한다는 것입니다. 배움은 정말 끝이 없는 인생의 여정인 듯 싶습니다. 이 배움의 길을, 통대와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아직까지 실감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늘에 계신 가장 소중한 두 분께 먼저 감사를 드려야겠죠. 제 갈 길이 통역이라 하시며 꿈을 꾸게 해주신 엄마, 제가 무엇을 하든 저를 지원해주시고 늘 믿어주신 외할아버지, 합격 통지서를 영전에 바칩니다. 감사합니다! 진로에 대한 확신으로 고민할 때마다 나를 응원해주고 내가 최고라 치켜 세워준 측근들 – 조앤, 라라 언니 그리고 비아 – 너무 고마워요. 그대들 덕에 지금껏 바닥나지 않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어요^-^ 지금껏, 그리고 앞으로도 공부를 포함해 모든 것을 조력해 줄 내 인생의 동반자 A, 학교 공부로 제일 바쁠 시기에 결혼하게 되어 미안하고, 공부 열심히 해서 내가 받은 무한사랑을 갚도록 할게요. 은사이시며 은인이신 김수연 선생님. 지난 2년 동안 끝이 보이지 않았던 여정을 이끌어주시고, 지도해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나 자신에게. 지금까지 해왔던 것 보다 더 열심히 해서 지금까지보다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길 바래. 2010년을 서지연의 해로 만들기!
첫댓글 왕~! 다시한번, 축하해요~!! 앞으로 멋진 통역사 되시길~ :)
앙~! 고마워요 ^-^ 앞으로 멋진 통역사 되려면 멀었지만 죽을똥살똥 할께요 ㅎㅎ ssong85님과도 곧 선의의 경쟁자로 다시 만나길 ;)
ㅎㅎ 지연씬 잘할 거에요~!! ㅎㅎ 넵, 저도 정말 목숨걸고 열심히 할게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수기 안에 금비님 찾으셨어요? ^-^ 좌절이라뇨, 너무 잘하고 계신데! 제가 처음 이 수업을 들었던 대학 4학년 때는 금비님의 반의 반도 못 따라갔는걸요. 어제 선생님 말씀 중에, 늘 '나는 모른다' 생각하고 겸손하게 공부하라고 했던 말 기억하시죠? 그것만 있음 다 될 거 같아요. 좌절일랑 접어두고 지금처럼 열심히!!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