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함에도 친구를 불러냈다.
여름내내 쉬지 못해서인지 괜히 억울하고 서글퍼져서 나 자신을 위로하고 싶었다.
토요일저녁시간이라 영화관에는 가족단위의 관람객이 많았다.
특별히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저녁시간의 외출에 더 무게를 두었던 터라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바로 상영이 시작되는 영화는 '천하장사 마돈나' 였던지라 별다른 고민없이 입장권을 구입해서
극장으로 들어갔다.
'천하장사'와 '마돈나'는 전혀 이질적인 소재라 연결이 도무지 되지 않았다.
마돈나가 되고싶어 천하장사를 선택한 한 남학생의 이야기였다.
한 때 유망한 권투 선수였으나 지금은 몰락한 중장비기사 아버지,
형제를 버리고 집을 나와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어머니,
술과 폭력에 젖은 아버지와 가출한 어머니때문에 점점 거칠고 엇나가는 동생,
성전환수술 비용 마련을 위해 부두 하역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아버지의 폭행 합의금으로
전부 써 버려 날마다 살기위해 안간힘을 쓰는 고등학교 남학생 오동구.
가족이라 칭하기에 그들은 공통분모가 너무 없었다.
오동구.
자신의 성정체성을 수용하고 고교생 천하장사 씨름대회 우승상금으로 성전환수술을
하려고 씨름을 시작한다.
미래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삼류고등학교 씨름부에서 라이벌에게 대학 스카웃기회를
빼앗겨 황폐해지고 거칠어진 주장과 씨름지도에 관심조차 없어 보이는 씨름부감독과
끈기도 배짱도 없이 나약한 덩치만 큰 씨름부원들 틈에서 오동구는 천하장사가 되고싶어서가
아니라 타고난 성을 버리고 자신의 성정체성에 맞는 몸을 갖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날마다 피범벅이 되는 고된 훈련을 감당한다.
아들의 고민과 정체성에 당황하는 건 오히려 오동구의 아버지이다.
타협을 모르고 독선적인 아버지는 선 굵은 마초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정작 아들 동구의 고민앞에서는 나약하고 당황해서 표정관리조차 되지 않을 정도이다.
같은 학교 씨름부 선배이자 주장과의 결승전에서 주장이 동구의 코밑 점을 보고 피식
웃어버려 어이없게 힘이 빠져 얼떨결에 우승을 하게 된 동구는
여자로 태어날 수 있었다.
여자로 태어난 동구가 클럽에서 씨름부 선배와 그의 어머니가 참석한 가운데 마돈나 변장을 하고 'like a virgin'을 열창하는 마지막 모습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발레리나로 성공한 주인공 빌리엘리어트가 가족을 초대한 공연에서
한 마리 새처럼 힘차게 도약하는 마지막 모습이 연상되었다.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한 남자고등학생의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인데
이 영화에서는 트렌스젠더가 되려는 동구의 고민과 이야기를 아주 가볍게
유쾌하게 전개하고 있엇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내가 갖고 있던 많은 편견을 깨 버렸다.
트렌스젠더가 되려는 남학생, 아니 남자는 이쁘장할 것이라는 편견,
그들의 성적 경향은 선택일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편견,
가족은 무조건 함께 해야 행복할 것이라는 편견 등이 여지없이 깨져 버렸다.
'천하장사 마돈나' 속에는 트렌스젠더를 비롯한 몰락한 유명운동선수, 비정규직 종사원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독의 배려와 고민 등이 2시간 동안 유쾌하게 가볍게 그려지고 있었다.
무겁고 심각한 주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촉구, 환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영화 한 편으로도 가슴 벅차도록 행복해지는 토요일 저녁이었다
첫댓글 지난 해 여름 보았던 영화에 대한 단상을 올려 봅니다. 여기는 바람불고 눈발까지 날립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겨울의 매서운 시샘이 위세를 펼치는군요.이 바람에 예년보다 일찍 핀 목련도 매화도 맥없이 스러지고 말아 안타깝습니다..
우리집에도 바람이 불 텐데 --옥상의 매화나무도 꽃망울이 맺혔을 텐데--작년에는 20개인가를 땄었으니 올해는 많이 딸 수 있을 텐데 --점점 자라 뿌리가 거실로 내리 ?으면 어쩌지--영화 감상 아주 잘 했어요. 전 극장에서는 잘 안 보고 비디오로 봐요, 아직도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지 않았는데 소개가 너무 멋있더군요. 글도 좋았고 저도 기쁘게 읽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보니 중의성의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