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글쓰기의 주체와 객체의 관계
1. 작자와 소재의 대조적관계
그 어떤 저급적인 생명형태든지 모두 철학적인 의미에서는 주체로 될수 없다. 식물은 비록 생명을 가지고있으나 그것은 의연히 자연의 조성부분으로 된다. 동물은 식물에 비해 활동범위가 크고 능력이 강하나 본질적으로 볼 때 의연히 자연과 구별할수 없다. 말하자면 식물이나 동물은 자연의 일부분으로서 자연 도는 기타 사물과 대조(對照)의 관계를 이룰수 없다. 아직 의식이 없는 유아나 의식을 상실한 식물인도 주체의 자격을 구비하지 못하고있다. 그것은 독립적인 분명한 자아의식이 없기에 대상세계와 더불어 인식―반영이라는 관조의 관계를 발생할수 없기 때문이다. 1) “인식―반영”활동
글쓰기는 인식―반영활동이 문자정보의 전파로 구현된것이다. 그 어떤 글쓰기이나를 막론하고 반드시 글쓰기의 주체와 객체가 있어야 한다. 글쓰기에서 주체와 객체는 하고 대상성관조의 관계를 이룬다. 글쓰기의 주체는 독립적인 의식을 가져야 할뿐만 아니라 일정한 문화수양과 문자표현능력을 구비해야 한다. 즉 글쓰기의 능력을 구비한 사람만이 습작주체로 될수 있다. 컴퓨터에 의한 글쓰기가 점차 보급되고 있지만 컴퓨터는 결코 글쓰기의 주체로 될수 없다. 컴퓨터는 지능성(知能성)을 갖고있고 계산과 조합을 빨리 할수 있다. 하지만 컴퓨터는 여전히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지능화된 도구는 독립적인 의식이 없고 생명형태를 구비하지 못했기에 대상세계와 더불어 인식―반영이라는 의미에서 관조(觀照)를 형성할수 없다. 컴퓨터는 다만 인간의 지시와 명령을 집행하고 인간의 요구에 따라 그 어떤 내용을 문자부호로 나타내고 있을뿐이다. 2) 필자의 이중배역
무릇 글쓰기의 주체와 대상적인 관조의 관계를 이루는 사물은 전자에게 감지되고 사료되고 표현된다. 말하자면 글쓰기의 주체에 의해 묘사된 대상은 모두 글쓰기의 객체로 된다. 누구인가 자서전을 쓴다고 할 때 그 사람은 글쓰기의 주체로 될뿐만 아니라 글쓰기의 객체로 된다. 서정시와 산문의 경우에 필자는 동시에 글쓰기의 주체와 객체라는 이중배역을 놀게 된다. 이는 마치 우리가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볼 때 관찰자도 되고 피관찰자도 되는것과 흡사하다. 관찰자라고 할 때는 관찰의 주체로 되고 관찰의 대상으로 될 때는 관찰의 객체로 된다. 이때 인식의 두 극으로서는 하나로 합치되고 두 극의 관계를 인식하려 할 때는 분명히 구별된다. 3) 문체와 시각 문체가 다름에 따라 글쓰기의 주체가 객체를 “반영”하는 의도도 다르게 된다. 기사를 쓰는 기자는 전파가치가 있는 대상을 찾게 되고 과학기술분야의 론문을 쓰는 학자는 인지, 연구, 발견의 각도에서 대상을 찾게 되며 응용문을 쓰는 사람은 실용적인 각도에서 문제를 반영하고 문학작품을 쓰는 작가는 미학적인 각도에서 사물을 묘사한다.
1. 가. 달의 표면은 울퉁불퉁하다. 조금 어두워 보이는 곳은 자그마한 기복이 있는 평원인데 달 표면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그외의 부분은 높은 산봉우리가 아니면 산맥이다. 그중에 환형(環形)으로 된 산들이 바둑판처럼 널려있는데 지구에서 마주볼수 있는 달 표면에만 직경이 1km 남짓한 산들이 30여개 있다. 가장 큰 산은 그리마티 환형산(環形山)인데 그 직경은 235km로서 우리나라의 해남도보다 크다. ―《달―적막하면서도 풍부하고 다채로운 세계》에서
나. 달님의 자태도 사랑스럽지만 달님의 품격은 더욱더 존경이 간다. …달님은 얼마나 듬 직한가. 달님은 출렁이는 바다에서 와서 환한 미소를 던지며 구름속으로 사라진다. 달님은 얼마 나 정다운가. 달님은 그리운 친구에게 소식을 전해주고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의 절절한 향수 도 전해준다. 시인의 환상에는 날개를 달아주고 련인들의 사랑에는 따뜻한 봄바람을 보내준다. ―손리(孫莉), 《월부(月賦)》에서
(1가)와 (1나)는 모두 달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달이라는 대상을 보는 시선은 다르다. (1가)는 과학적인 시선으로 달을 설명하고 있고 (1나)는 미학적인 시각으로 달을 묘사하고 있으며 달에 인격과 정감을 부여하고있다.
2. 글쓰기의 주체와 객체의 동일성관계 1) “심물동형”과 “천인감응”
인간은 자연의 산물로서 그 생리적인 리듬과 법칙은 자연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질뿐만 아니라 그 심리적인 정서도 자연과 밀접한 대응관계를 가지고있다. 중국의 고대문론에서는물상과 경치(物景)는 인정(人情)의 대응물이라고 했다. “천인감응(天人感應)”이라는 명제는 좀 애매하고 몽롱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일정한 측면에서 인간의 감정과 외계의 사물 사이에 미묘한 대응관계가 있음을 말해주고있다. 옛사람들은 음과 양이라는 “두 기(氣)는 감응으로 서로 만난다”고 했고 “하늘과 사람은 서로 통하는바가 있다”고 했다. 장재(張載)는 만물은 그 본성에 있어서 서로 감응하고 통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고 왕정(王廷)은 자석이 철을 끌어 붙이는 도리를 가지고 사물과 사물 또는 인간과 사물 간의 감응을 설명한바 있다. 기실 인간의 마음과 사물간의 가장 신기한 대응관계는 심미적 차원의 련결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케스탈(格式塔)학파는 “심물동형(心物同型)”의 리론을 내놓았는데 이 리론에 따르면 사물의 의미는 오직 “심리-물리”의 동일성 관계속에서만 드러날수 있다. “심물동형”의 리론은 “심물감응”의 명제에 대하여 현대적인 해석을 가한것과 다름없다. 2) “주객혼합”과 “물아융합”
심미활동에 있어서 주체는 흔히 상상을 통해 자신을 실현하고 주체와 객체 사이의 계선을 무너뜨림으로써 주체와 객체의 혼연일체를 이루려고 한다. 장자(庄子)는 자아의 내적모순에서 벗어나 절대적인 자유를 누리기 위해 다른 사물의 영향과 유혹을 떨쳐버리고 주체와 객체의 계선을 무너뜨림으로써 주체의 의식을 대상화하거나 외계의 사물을 정신화하려고 했다. 하여 그는 “천지는 나와 더불어 존재하고 만물은 나와 더불어 일체를 이루었다”고 하면서 그야말로 고묘한 경지를 이루었다. 심리학의 시각에서 본다면 그것은 일종의 심미적인 체험이며 감수이다. 적지 않은 작가들은 바로 이런 미묘한 심리상태에 있으면서 창작에 종사한다. “작중 인물과 혼연일체가 된다”는 말은 바로 그러한 경우를 두고 말한다. 말하자면글쓰기의 주체는 자신의 정감을 대상속에 완전히 융합시키는것이다. 문학창작의 대상은 대체로 가공과 상상으로 만들어낸 대상세계이다. 하기에 프랑스작가 죠르지 쌍도(1804-1876)는 창작에 들어가면 그 자신은 저도 모르게 작은 풀이나 날아다니는 새, 나무가지나 구름, 또는 흐르는 물처럼 되여버린다고 하였다. 이러한 미묘한 심리상태는 필자의 사상이나 감점을 대상물에 합치시켜 자연물을 “감정화”, “인간화”되게 하고 필자 자신을 “대상화”, “자연화”되게 한다. 중국 고대의 시인들은 자신의 신비로운 심령과 다채로운 자연을 서로 융합시킴으로써 형태와 정신이 일체(形神一體)를 이룬 예술의 의경을 창조해냈다. 이를테면 “기러기는 내 근심을 물어 가고/ 산마루는 밝은 달 머금었네(雁引愁心去, 山銜好月來”, “산마루에 울창한 숲은 내 눈을 가리고/ 굽이굽이 흐르는 강줄기는 내 구곡간장 태우네(嶺樹重遮千里目, 江流曲似九回腸)”과 같은 시구는 바로 주체와 객체가 혼연일체를 이루어 한결 읽는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3. 글쓰기의 주체와 객체의 상호 침투 1) 주체와 객체의 상호 침투의 내함
주체와 객체의 상호 침투(双向建構)에 관한 리론은 스위스의 심리학자이며 철학가인 피아제(1896-??)가 내놓은것이다. 그는《인식론발생원리》란 저서의 영문판 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식과 지각의 구조는 객체속에서 미리 형성된것이 아니다. 객체는 언제나 객체를 초월하는 론리적인 수자의 틀속에 동화되여 들어가기때문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재조직해야 하는 주체속 에서 미리 형성된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인식과 지각은 반드시 구조주의 또는 창설주의(建構主 義)와 긴밀히 련결된 하나의 리론으로 설명되여야 한다. 말하자면 매 하나의 구조는 모두 심리적 작용의 결과이고 심리적작용은 또 초급적인 구조로부터 그다지 초급적이지 아니 한(혹은 비교적 복잡한)구조로 과도하는것이다. 피아제, 《발생인식론원리》, 상무인서관, 1996년, 제15쪽.
상호 침투의 리론에 따르면 글쓰기의 행위는 언제나 하나의 주객체의 구조속에서 진행된다. 글쓰기라는 의미에서의 주체가 아니라면 글쓰기의 주체라고 말할수 없고 글쓰기의 의라는 의미에서의 객체가 아니라면 역시 글쓰기의 객체라고 말할수 없다. 오직 글쓰기라는 의미에서 글쓰기의 주체와 객체가 서로 련결되여야만 그것들을 글쓰기의 주체와 객체라고 말할수 있다. 글쓰기의 주체와 객체의 상호 작용은 상호 선택, 상호 침투, 상호 전환의 과정에서 나타난다. 2) 쌍향구조의 자아조절
글쓰기의 주체는 글쓰기의 객체를 흡수하고 자아를 조절하는 이중기능을 가지고있다. 말하자면 한 방면으로는 동화하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조절하는것이다. 외계의 정보가 주체를 자극하여 글쓰기의 욕망이 생기든지, 아니면 주체가 예정한 의도에 따라 그러한 의도에 부합되는 재료를 찾든지를 막론하고 그것들은 모두 상호 침투를 의미한다. 주체는 기존의 인식과 지각의 도식(圖式)을 자기의 두뇌에 저장할수 있기때문에 글을 쓸 때 기억의 창고에서 재료를 찾을수 있고 지어는 환각과 몽경을 통해 재료를 얻기도 한다. 녀성작가 심용(諶容)은 “필을 들었을 때 평소에 생각했던 모든것들, 내가 잘 아는 사람과 사실, 내가 느꼈던 희로애락 모두가 필촉에 모여든다. 과거의 모든것, 쓸모 있거나 말거나를 막론하고 그 모두가 문학창작의 자양분으로 변한다.” 심용, 《고통의 선택》,(《문예신문》 1981년 제1기) 라고 말한바 있다. 습작의 과정은 기존의 재료를 선택, 려과하고 외계의 정보를 종합하고 가공하는 과정이다. 말하자면 글쓰기에 있어서 주체와 객체의 상호 침투는 단순한 접속이 아니라 기존의 인식과 지각의 구조, 가치관과 심미적취미를 심화시키는것을 말한다. 물론 기존의 구조는 새로운 정보가 수입됨에 따라 부단히 개변되지만 동화와 적응을 통해 새로운 균형을 찾게 되며 이를 바탕으로 인식과 지각 도식의 전환과 승급을 실현한다. 조절이란 글쓰기 주체가 외계의 자극이나 환경의 영향을 받아 그 기존의 도식이 변화를 일으키는 그러한 적응성운동을 말한다. 주체는 조절을 거쳐 자발적으로 자아돌파를 할수 있다. 상호 침투의 리론이 증명하다싶이 글쓰기의 주체와 객체는 서로 영향을 주고 서로 침투를 함으로서 유기적으로 융합된다.
4. 글쓰기의 주체와 객체 사이의 매개물
1) 매개물의 함의
피아제는 인식의 매개물을 아주 중요시하였다. 그는 “만약 애초에 인식론적인 의미에서의 주체도 존재하지 않고 객체로서의 객체도 존재하지 않고 또한 고정불변의 매개물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식의 첫번째 문제는 바로 이러한 매개물을 설정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매개물은 우리의 몸자체와 외계의 사물사이의 접촉점으로서 그것들은 그들 내부와 외부가 서로 보충하는 두개의 방향을 따라 발전한다. 주체와 객체를 타당하고 상세하게 설명하자면매개물의 이런 이중적 침투에 의존할수밖에 없다.” 피아제, 《발생인식론원리》, 상무인서관, 1996년, 제21~22쪽.
2) 매개의 세가지 형식
글쓰기의 주체와 객체의 련결이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매개물은 감각, 표상, 언어문자 등 세가지 형식을 갖고있다.
① 감각 감각기관은 글쓰기의 주체와 객체를 이어놓는 최초의 매개물이다. 외계의 정보는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고 필자의 의식을 자극하며 대뇌피질을 흥분시킨다. 인간의 감각능력은 강하고 약함의 구별이 있다. 감각의 생리적기초는 선천적인 자질에서 주어지지만 환경과 직업에 대한 감각의 적응은 후천적인 훈련에 의존한다. 과학자, 철학가, 정치가, 예술가들은 자기의 직업적인 환경과 자기가 추구하는 목표에 근거하여 부동한 대상을 감지하고 부동한 정보를 포착한다. 과학연구는 진실한 정보를 수요하고 철학연구는 사변적인 재료를 수요하며 정치활동은 사회의 동향에 대한 정보를 수요한다. 예술창작은 형상에 대한 감각과 지각으로부터 착안해 오관의 감각적인 회합을 이룬다. 아래의 글을 보자.
천지간에 안개가 자욱하다. 희끄무레하고 축축한 안개다. 한 줌을 쥐면 촉촉한 느낌이 들고 한 모금 마셔보면 달착지근하다. 한번 밟아보자. 둥둥 뜬 기분이 들지 않는가. 희끗 눈앞을 비 껴가니 눈썹에 진주같은 이슬이 맺히고 희끗 귀전을 스쳐가니 마치 어머니의 자장가소리가 들 리는듯 싶다. 내 몸을 칭칭 휘감는 안개, 마치 구중천에 둥실둥실 날아오를것만 같다. ―왕소응(王小鷹), 《자옥한 안개(霧重重)》
이 작품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과 환각 등 여러가지 감각을 통하여 안개를 생동하게 묘사하고있으며 독자들에게 립체적인 형상을 펼쳐보이고있다.
② 표상 표상은 지각의 기초우에 이루어진 감성적인 형상으로써 외계의 자극이 기억신경에 남겨놓은 흔적이다. 인간의 두뇌는 주위의 세계를 반영할 때 시각적인 정보를 도형으로 바꾸어저장한다. 이 도형이 바로 표상이다. 표상은 객체가 남긴 흔적일뿐만 아니라 구상의 매개물로서 글쓰기의 주체와 객체를 소통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표상은 필자의 리성과 결합될수도 있고 필자의 정감과 결합될수도 있다. 과학적인 사유에서의 표상은 리성화된것이고 문학적인 사유에서의 표상은 정감화된것이다. 필자는 표상과 개념으로 작품을 구상한다. 리론적인 글은 개념에 치중하고 문학적인 글은 표상에 치중한다. 이른바의경(이미저리),의상(이미지)라고 하는것은 모두 표상을 충분히 표현하고 그것들을 서로 조합, 련접시킴으로써 주어진다. 로신의 소설 《고향》에서 주인공 윤토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있다.
검푸른 하늘에 황금의 쟁반 같은 달이 두둥실 떠있다. 교교한 달빛을 머금은 백사장, 그것은 끝없이 펼쳐진 수박밭이다. 열 한두살 먹어 보이는 소년이 서있는데 목에는 번쩍이는 은목걸이를 걸었고 두 손에는 길쭉한 작살을 비껴들었다. 그 애는 삵을 향해 작살을 힘껏 내질렀다. ―로신《고향》에서 여기서 보다싶이 기억의 표상은 작가가 작품을 구상하게 된 매개물로 되였고 그것은 또 상상의 조합을 거쳐 하나의 예술적화폭으로 승화되였다. 아무튼 이 장면은 소설《고향》에서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역할을 놀고있다.
③ 언어 글쓰기는 일정한 정보를 전달하는 활동으로서 언어문자는 중요한 매개물로 작용한다. 감각과 지각은 주체와 객체사이를 서로 인식하고 지각하는 의미에서 소통시키는 매개물이라고 한다면 표상은 사유활동과정에서 주체와 객체의 관계를 형상적으로 처리하는 매개물이다. 그렇다면 언어문자는 사유의 결과를 전달하는 매개물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사유는 언어개념을 떠나지 못한다. 사상을 텍스트로 전환시키려면 문자부호를 도구로 삼아야 한다. 텍스트는 필자와 독자를 이어놓는다. 장구한 문화행위과정에서 인간들은 언어를 기록하는 문자부호계통을 만들었다. 이 계통은 모든 사람들이 공인하는 규범적 기능을 발휘하고있다. 모든 글쓰기는 언어문자라는 매개물을 빌려야만 정보를 부호화해서 전달할수 있다.
글쓰기 주체와 객체 사이의 매개물을 료해하는것은 우리들이 글쓰기를 배우는데 비상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주체의식을 강화하고 객체의 정보원천을 확대해야 할뿐만 아니라 또한 자기의 감각을 훈련하고 표상기억을 풍부히 하며 언어문자의 표현력을 높여야 한다.
련습문제
1. 글쓰기 주체의 수양에는 어떤 요소가 포함되는가? 필자의 수양을 어떻게 제고할것인가? 2. 문학창작에서 “감정과 경물의 교차와 융합(情景交融)”, “허와 실의 상생(虛實相生)”이란 어떠한 상황을 말하는가? 3. 다음의 시를 읽고 글쓰기의 주체와 객체와의 관계를 분석하라.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회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非情)의 함묵(緘黙)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 류치환, 《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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