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사가 끝나면 남편과 함께 집 근방의 숭실대 운동장으로 향한다. 숭실대까지 속보로 10분, 운동장을 다섯 바퀴정도 돌면 30분, 다시 집으로 오는데 10분, 대체적으로 하루에 50분정도 내가 걷는 시간이다.
처음 세 바퀴는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속보로 걷는다. 나머지 두 바퀴는 남편은 뛰고 나는 걷는다. 마지막엔 벤치에 앉아 내가 쉬는 동안 남편은 윗몸 일으키기와 마무리 동작을 하고 같이 집으로 돌아온다.
처음엔 싫었다. 소파에 그냥 앉아 있고 싶고 또 누워있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러는 내게 아프다 소리를 하지 말라느니 빨리 죽어도 할 수 없다느니 하면서 극기엔 댄디야! 아무래도 너가 엄마 상주해야겠다. 너거 엄마 죽으면 너거 엄마가 싫어하는 시댁 산소 옆에 뿌려줘야겠다는 등의 짜증나는 소리로 내 심사를 뒤틀어 놓는다.
그래서 어느 날 부터 따라 나서기 시작했다. 한 두어 달 째 걷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제 점점 재미가 붙는다. 걷는 것보다 더 재미난 것은 오고가고 걷는 동안의 사람들의 모습에서 재미난 일들을 많이 보기 때문이다.
운동장 주변의 스탠드에선 가야금과 단소소리 장고소리도 들리고 때로는 트럼펫 연주소리도 들린다. 어제는 운동장을 돌고 있는데 요상한 소리가 들렸다. 개소리 같기도 하고 맹꽁이 소리 같기도 했다.
축구 골대 옆에서 검은 청년이 공을 차면서 내는 소리였다. 도대체 무슨 소린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저리도 지껄일까?? 청년의 곁을 지날 땐 천천히 걸었다. 그가 지르는 소리가 무슨 소린지 알고 싶었다. 천천히 걷는 내게 남편은 남의 일에 왜 그리 호기심이 많냐며 핀잔을 주었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빗물도 없는 운동장에서 맹꽁이 소리가 나는데 그게 궁금하지 않은 게 더 이상하지 않냐고..... 아무리 들어도 내 귀엔 왈왈왈하는 소리와 맹꽁이 울음 소리 비슷한 소리만 들렸다. 둘째의 미군 부대에서 재식훈련을 구경할 기회가 있을 때도 한 시간 정도 있었지만 나는 왈왈왈 소리만 듣고 왔었다.
궁금해하며 계속 도는데 나는 분명히 내가 아는 단어를 들었다. 잠깐만! 하는 우리말 소리다. 그것도 여러 번 들었다. 모든 의문이 풀렸다 그 청년은 어느 축구단에 돈을 받고 온 선수로써 한국말을 어쨌든 배워야했고 그것도 생존을 위해서 큰 소리로 연습해야 했던 것이다. 자! 내가 볼을 찰테니 잠깐만! 하는 뜻 인가보다.
검은 청년의 모습에서 먼 이국의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그 나라 말을 외우고 있을 우리 선수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저녁운동은 이런 여러 사람의 재미난 모습들이 있어서 이제는 저녁 운동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2008년 9월 17일
첫댓글 금슬 좋아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둘 모두 군대 보내놧으니 심심하잖아요.
저도 부럽네요. 찬웅님댁만 그런줄 알았더니... ㅋㅋㅋ 물고 들어가기!
봄비님! 안뇽! 오랫만이에요.
같이 사는 분도, 같이 살아 주시는 분도 다 심심치 않게 사시는 특별한 재주가 부럽습니다.
산하정님! 해보니 항개도 어려운거 아니던디.......ㅎㅎㅎㅎㅎ
보폭에 맞추어 사뿐 사뿐 두분이 나란히 저녁 운동하는 모습 참 보기도 좋아라.
선생님! 따라하고 싶으시죠? 따라하세요. 자꾸 나이가 들다보니 저도 그러면서도 남들이 그런는게 보기가 좋더라구요. 저희야 초등 중등 동기 동창이니 날마다 집에서 동창회 여는 친구이지요.
한 동네 살았으면 따라나 다니면서 흉내라도 내면 얼마나 즐거울까?
근방에 숭실대가 있어서 정말 좋아요. 시 차원에서 학교 담벼락을 다 허물고 조경사업을 멋있게 해준 뒤 대신 주민들에게 개방 하도록 했답니다. 집 뒤에 제법 큰 산이 있고 집 앞쪽엔 예전에 김영삼 대통령이 아침마다 뛰던 산이 잇어서 휴일에도 운동하긴 좋답니다. .
저도 저녁 밥 먹고 동네 레포츠 공원을 속보로 걷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데, 꼭 시계방향으로 돌아서 거슬럭거리는 독불장군은 무슨 이유에서 인지 항상 궁금합니다.
왼발잡이??? 왼손잡이??? 아니면 방향감각에 좀 문제 있는 사람?? ...... 별스럽게 툭 튀는 자신이 대견스러워 보이는 사람???
걷기 운동을 하면서도 주변을 놓침 없이 관찰하시는 아쿠아님, 글의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궁금했는데 이제야 알겠습니다. "왈왈왈"하던 친구. 머지 않아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하겠지요?
영어를 못하는 선수들도 외국에서 지내다보면 본국 사람처럼 잘합디다. 바로 자신의 생존문제이기에 어제 그 청년처럼 운동장을 걷는 모든 사람이 들을 정도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배우겠지요? 너무나 절실하면 절로 느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