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전대수
향토문화는 왜 계승 보전되어야 하는가?
문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한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땀, 그리고 기쁨과 슬픔이 켜켜이 쌓여 하나의 문화가 된다. 그 문화는 세월의 강을 건너 오늘의 우리에게 이르렀고, 우리는 그것을 향토문화라 부른다.
향토문화는 과거의 흔적이 아니다. 선조들이 후손에게 남겨준 가장 값진 유산이며,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다시 물려주어야 할 시대적 책임이다. 만약, 한 지역의 향토문화가 사라진다면 그 지역의 역사도, 정체성도, 공동체 정신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뿌리가 잘린 나무가 결국 말라가듯 향토문화를 잃은 지역은 미래를 향한 생명력을 잃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놀라운 발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이 세상을 바꾸고, 세계는 하나의 생활권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될수록 지역 고유의 문화는 점차 획일화되고 있다. 어디를 가도 비슷한 거리와 건물, 같은 프랜차이즈와 소비문화가 자리를 대신한다. 그 속에서 지역만의 얼굴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향토문화의 계승과 보전은 더욱 절실하다. 세계화 시대일수록 가장 경쟁력 있는 것은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문화이기 때문이다. 향토문화는 지역의 개성을 살리고, 사람들의 자긍심을 키우며, 세계인에게는 새로운 감동을 선사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우리 조상들은 문화재만 남긴 것이 아니다. 효와 예절, 이웃을 아끼는 공동체 정신, 세시풍속, 전통놀이, 민요와 농악, 향토음식과 장인의 기술까지 삶의 지혜를 함께 남겨주었다. 이러한 무형문화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유형 문화보다 더 오래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는 정신적 유산이다.
그러나 현실은 안타깝다. 도시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오래된 건물과 전통마을이 사라지고 있다. 어르신들이 평생 간직해온 향토 이야기는 기록되지 못한 채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으며, 지역의 전설과 민속도 잊혀져 가고 있다. 문화는 한순간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 속에 서서히 사라진다.
우리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일본은 작은 마을의 전통 축제를 수백 년 동안 이어오고 있으며, 프랑스는 지역의 역사와 음식문화를 국가 경쟁력으로 키워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영국과 이탈리아 역시, 오래된 거리와 건축물을 철저히 보전하면서 문화와 관광을 함께 발전시키고 있다. 그들의 문화를 과거가 아닌 미래 산업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희망은 있다. 안동의 전통문화와 전주의 한옥과 한식, 그리고 강릉의 단오문화와 제주의 해녀문화를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모습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현재까지도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순천의 낙안읍성처럼 지역의 고유문화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산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향토문화를 발 보전하면서 지역 경제는 물론, 국가의 품격까지 높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향토문화의 계승은 정부만의 몫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는 체계적인 조사와 기록, 교육과 축제를 통해 문화유산을 보전해야 하며, 학교는 학생들에게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가르쳐야 한다. 지역 언론은 숨겨진 문화유산과 향토 인물을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널리 알려야 한다. 그리고 시민은 문화의 소비자가 아니라 문화의 주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 이제는 향토문화운동이 필요하다. 단순히 문화재를 지키는 운동을 넘어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배우고, 기록하고, 알리며, 후손에게 전하는 시민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 한 사람이 관심이 한 마을을 살리고, 한 마을의 문화가 한 도시를 살리며, 한 도시의 문화가 대한민국의 품격을 높이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문화는 돈으로 살 수 없다. 수백 년의 시간과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만들어낸 선물이다. 오늘 우리가 외면하면 내일의 후손들은 더 이상 그것을 만날 수 없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보전하고 계승한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조상의 숨결과 삶의 지혜를 이어받으며, 더 큰 자긍심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향토문화를 지키는 일은 과거를 붙잡는 일이 아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며, 후손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유산을 물려주는 일이다. 문화는 지역의 혼(魂)이고, 향토문화는 그 혼을 지켜주는 뿌리이다. 그 뿌리가 깊고 튼튼할수록 그 지역은 더욱 빛나고, 대한민국의 미래 또한 더욱 찬란하게 꽃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