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당선작은 어떻게 뽑나
1.머리글
가장 흔한 말로 시인은 외로운 사람이다. 사실을 말하는 사람들 속에서 홀로 진실을 말하려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흔히 스치고 지나가기 쉬운 일상에서 범상치 않은 진실을 발견하고, 사상의 내면을 탐구하고, 왜곡된 삶 속에서 스스로를 세워가는 고독한 작업을 해나가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시인이 된다는 것은 외로울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 된다.
한 사람의 시인이 되기 위해 외로운 작업을 평가받기 위해 밤을 새우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크게 4가지 형태로 나뉘어진다. 첫째, 각 일간지를 통해 한두 편의 작품으로 자신의 전 역량을 평가받는 길. 둘째, 각 문예지 추천을 통해 시인이 되는 길. 세째, 80년대 이후 활성화된 동인지를 통해 동인으로 활동하는 길. 네째, 드문 경우지만 단행본 시집출간을 통해 기성 문단에서 평가받는 길이 있다. 이 중 각종 문예지나 동인지를 통해 시를 평가받는 일은 인간적 관계나 시적 경향의 제한성으로 말미암아 폐쇄적인 경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각 일간지를 통해(신춘문예) 자신의 작업을 평가받는 일은 공개적이고 또 작품 위주이기에 공정성과 함께 가장 권위있는 길로 생각되고 있다. 또 수천 편의 시 속에서 보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평가 받는 일과 함께 그 권위로 말미암아 화려한 등단을 보장받고 있다. 물론, 여기에도 위험성은 있다. 한 두 편의 시로 시인으로서의 역량을 평가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문단을 이끌어 가는 문인들의 다수가 신춘문예를 통한 사람들이고 보면, 이런 위험성은 한낱 기우에 그칠 수도 있다. 따라서 신춘문예를 통한 길은 시 한편에 대한 평가에 그치지 않고 한 사람의 새로운 시인을 만든다는 이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글은 전후 1955년부터 1986년까지 신춘문예를 통한 데뷔작을 대상으로 하여 그 경향의 변모와 각 시대별 시의 특성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각 데뷔작품이 데뷔 당시의 시의 경향과 특성을 말해주는 하나의 전형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또 이러한 경향은 우리 시단 전체의 경향으로 연결되며 우리 시의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준에 의해 작품을 선정, 분석한다.
1. 대상작품은 55∼86년까지 중앙의 각 일간지를 통해 게재된 당선작으로 한다.
2. 당선작은 1인 1편을 기준으로 하며, 당선작이 없을 경우 가작을 포함한다.
이렇게 선정된 작품은 모두 178편에 이르고 있다.
2. 주제의 변모
주제의 변모를 알아보기 위해 이 글에서는 사회성, 사상성, 역사성, 서정성으로 분류하였다. 서정성과 사회성을 구별하는데 있어서 그 기준을 첫째, 서정적 자아의 돌출 정도와 감정의 절제 정도에 따라 구분하였다. 서정적 자아가 작품 전면에 걸쳐 모습을 드러내고, 감정의 절제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사회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서정성에 포함시켰다. 또한, 사회성과 역사성의 경우 관심의 폭에 따라 구분했다. 즉 둘다 시대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분단현실이나 조국의 비극적 상황이 주제가 되어 있는 경우에는 역사성에 포함시켰다. 따라서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왜곡된 삶, 소외의 문제 등은 현실적 관심이라는 점에서 사회성으로 포함시켰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각자의 시를 보는 입장에 따라 어느 정도 유동적일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적인 문제는 5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40여 년에 이르는 동안 형성되어온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데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선 신춘문예 당선작의 주제별 경향을 보면 다음의 도표와 같이 나타난다.
위 「표Ⅰ」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1950년대 우리 시에서 특징적인 한 경향은 역사성을 주제로 한 시가 많다는 점이다.
50년대 시에 있어서 이러한 경향은 역사적 현실과 사고의 일반적 경향과의 관계를 말해준다. 50년대는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과 국토의 양분화라고 하는 역사적 사실 앞에 삶의 좌표를 설정하지 못하고, 비극의 의미만을 질문했던 시대였다. 1945년 광복으로 인한 흥분과 감격이 사라지기 전에 터졌던 동족상잔의 비극은 우리의 삶을 철저히 파괴시켰던 것이다. 특히 새로운 질서의 확립과 구시대의 봉건적 사고를 말끔히 탈피하지 못한 상황에서 빚어진 역사적 비극은 분단이라는 유산과 약소국가라는 패배의식을 남겨놓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현실이 1950년대 우리시에서 패배의식과 삶의 피폐성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대의 대부분의 시는 역사적 삶을 보여주고 있으나, 그 극복에의 의지보다 개인적 슬픔의 차원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김윤의 「우리는 사리라」, 윤삼하의 「응시자」, 권일송의 「불면의 흉장」 등의 시가 보여주듯 비극적 현실과 현실에 대한 슬픔의 정서가 그것이다. 이러한 개인적 슬픔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로서의 비극임과 더불어 오늘만이 아닌 미래로 이어질 역사라는 의식을 보여주는 박봉우의 「휴전선」을 만나게 됨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2). 60년대 이후 역사성이 퇴조하고 사회적 공리성과 사회적 삶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까지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60년대에 걸쳐 강세를 띠고 있는 사회성은 4.19라는 역사적 사건의 영향으로 나타난다. 즉 부정부패한 자유당 정권에 대한 범국민적인 거부와 그 정권의 몰락으로 확인된 시민의식의 고양과 자유에 대한 신념을 보게된다. 이러한 사회적 삶에 대한 관심은 5·16에 의해 4·19정신이 퇴색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박태문의 「대리석원주를」, 박이도의 「황제와 나」, 김종해의 「내란」, 조태일의 「아침 선박」 등은 사회적 삶 속에서 빚어지는 모순과 자아에 대한 반성적 자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70년대를 거쳐 80년대 후반에까지 계속되는데 시의 주제가 60년대에 보여주었던 것보다는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대구의 「나의 친구 우철동씨」, 원구식의 「탑」에서 보이는 정치적 억압과 왜곡된 삶 그리고 국효문의 「기공」 등에서 보이는 가난과 노동문제를 통한 인간적 삶의 문제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시인의 사회적 관심은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대적인 삶의 왜곡된 모습과 역사를 대비시키면서 역사적 삶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시에 있어서의 사회적인 관심은 우리사회의 특수한 정치·경제적 여건의 변화에 개별적 삶의 질적 신장 사이에서 오는 괴리를 말해준다. 따라서 이러한 괴리가 좁혀지지 않는 한 사회적 삶에 대한 관심의 폭은 점점 확대될 전망이다.
3). 60년대 전반에 움츠러들었던 서정성은 60년대 후반부터 사회성과 함께 오늘날까지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서정성은 60년대 이후 4·19의 실패로 인한 패배의식, 사회적인 변화로 인한 일상에서의 소외와 고독으로 인한 삶의 비극적 인식, 한국적 서정주의의 도도한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적 서정주의의 흐름은 자연 그 자체에 대한, 원초성과 신비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의 자세를 보여준다. 배미순의 「묵시」, 나태주의 「대숲 아래서」, 김용해의 「산조」 등의 시가 전통적 서정의 세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반면 도시 일상생활에서의 서정은 기계적 삶 속에서 느끼는 절망, 비인간화된 도시에서의 인간성 회복에의 희망, 상실의 슬픔 등이 나타난다. 김창근의 「단추를 달면서」, 김문호의 「봄 뜰」, 김광만의 「화양리의 끝」, 임영조의 「목수의 노래」 등의 시가 그것이다.
자연에서 도시적 삶에서의 서정으로 변해가고 있는 서정성은 우리시의 건강성을 지탱하고 있는 축이라 할 수 있다. 비극적인 삶,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항시 자신을 되돌아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서정성은 내면적 갈등이 심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아의 주관적인 패배가 짙게 깔릴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를 요한다.
4).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전반에 걸쳐 현저하게 드러난 사상성의 시는 한 시대의 시의 경향과 비례해서 나아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 이유는 60년대부터 일기 시작했던 자연에 대한 개성적 인식, 사고의 명징성, 관념을 시의 대상으로 한 경향에서 찾아진다. 또한 이들 시의 특징이 정련된 언어에 대한 관심으로 기울어져 있음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불멸의 인간가치를 표현하는 이탄의 「바람 불다」나 존재의 실체와 의미를 밝히려는 이진흥의 「은유의 꽃」 등이 좋은 예이다. 이러한 경향은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전반에 걸쳐 대다수 신인들이 시작에 있어 형식적이고 기교적인 면에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사상성을 지닌 시들은 70년대 후반 이후 급격히 퇴조하고 있다. 그 이유로는 첫째, 하나의 관념이 시의 대상이 되고 있음으로 해서, 경험적인 언어보다는 비경험적인 언어가 사용됨으로 생겨나는 시의 공허성에 대한 자각이라 할 수 있다. 둘째로, 1970년대 후반 이후 우리 사회의 갑작스런 정치적 변화나 생활의 변화가 사고의 폭과 깊이에 대한 관심보다는 현실적인 삶의 문제에 집착하게 하고 있었던 때문이 아닌가 한다. 여하튼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전반에 걸친 관념의 감각화를 위한 기교적이고 형식주의적인 노력은 우리시의 다양성과 폭을 넓혀주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시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서정성임을 알 수 있다. 이 서정성은 70년대 이후 자연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 슬픔과 비애 그리고 한(恨)이라고 하는 편협된 사고에서 벗어나 사회성과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슬픔이나 감상에 빠져들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변모는 60, 70년대의 역사적·사회적 현실앞에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가치추구라든가, 왜곡된 삶 속에 단순히 절망하지 않는 건강한 도덕성을 지니게 하고 있다.
따라서 60년대 이후 사회성을 지닌 시들도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비판적 인식에로 나아가는 정도에 따라 구분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서정의 변화는 사회성을 강조하는 시들이 도덕적 의무감과 현실비판적 사고로 인해 빠져들 수 있는 메마르고 직설적인 산문성향을 보완해 주는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3.소재의 다양화
시에 있어서 소재의 선택은 시인의 의도에 전적으로 기인한다. 과거의 시에 있어서는 시적인 것과 비시적인 것을 구별하여 시의 소재로 선택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에 있어서는 소재선택 이전에 주제를 설정하고 그 내용에 적합한 소재를 수용하고 있다. 이는 시적인 것과 비시적인 것의 구별때문에 나타난 내용의 편협성과 감상적 오류를 극복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소재의 선택이란 시의 주제와 내용에 어울리는 경험적 요소에 의해 수용되고 있음을 의미하게 된다.
뒤의 「표Ⅱ」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은 다음과 같다.
1). 50년대와 60년대 전반에 걸쳐 시의 소재는 역사적 상황과 깊은 연관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때 드러난 소재들은 구체적으로 병영, 휴전선, 조국, 모국어들로 나타난다. 이러한 소재들은 거의 역사성을 주제로 하고 있는 시에서 두드러진다. 즉 주제와의 관련성으로 볼 때 이 시기의 소재들은 거의 주제를 암시하고 있는 경향이 짙다.
2). 60년대 후반 이후의 시에 있어서 소재는 생활과 관련된 다양성을 띠고 있다. 구체적으로 편지, 아내, 작업복, 재봉일, 가난, 노동 등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일반적 경향은 시어가 일정한 틀 안에서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과 그 주변에서 얻어진다는 소재개발의 측면을 갖는다. 따라서 과거의 서정시가 지녔던 풍경이나 기후, 식물 등등의 제한된 범주를 벗어나 자연에서 구체적 일상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소재의 다양성과 일상생활과의 관련은 60년대 후반이후 큰 흐름을 형성해 온 사회성의 주제를 지닌 시와의 관련성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는 60년대 이후 경제개발로 인해 와해되는 농촌의 생활, 근대화라는 절대성 앞에 도시적 삶이 시작되었던 시대적 흐름과 70년대 이후 드러나는 노동현실과 왜소해진 일상이 체험적 요소로서 시의 소재로 확대되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사회성을 주제로 하고 있는 대부분의 시에서 나타난 소재의 다양성을 보게된다.
목에 흰 수건을 두른 저 거리의 일꾼들
담배를 피워물고 뿔뿔이 헤어지는
저 떨리는 民主의 一部, 市民의 一部.
우리들은 모두 저렇게 어디론가 멀어져간다.
─이성부 「우리들의 양식」 (1967」
이러한 구체적 일상에서 얻어진 소재가 역사적 상황에서 얻어지는 소재보다 더 많아진 이유로는 역사적·사회적 상황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50~60년대 전반의 시속에 나타나는 6·25의 충격과 삶의 피폐성이 주요 관심사였던 데 비해 60년대 후반에는 4·19, 5·16, 그리고 70년대의 구체적인 사회적 상황 자체가 삶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음을 말해준다. 때문에 역사적 비극인 6·25에만 집착할 수 없는 새로운 상황변화에 따른 일상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인식은 시의 소재를 일상생활과 관련된 것으로 확대시키는 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내면세계가 시의 소재로 드러나는 것 역시 흥미로운 일이다. 이러한 사실 역시 사상성의 주제를 가진 시와의 관련성으로 생각된다. 이는 첫째, 사상성을 지향하는 시들이 관념의 세계를 시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떠한 사상이나 이념, 사상의 의미와 존재의 실체를 밝혀가는 시에 있어서 서정성보다는 사색을 통한 인식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가 지닌 성격상 외적 사물보다는 자신의 내면세계가 시의 소재로 더 적합할 수 있다. 둘째로, 60년대 이후의 이미지즘과 초현실주의적인 제 경향은 시에 있어서의 내용보다는 형식적인 실험에 더 정력을 기울였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즉 내면세계의 묘사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사물에 관련된 시어보다 비경험적 시어를 더 선호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세째로는 구체적인 삶 속에서 느끼는 절망과 회의에 대한 반발로서 내면세계에 침잠하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4). 80년대 이후 구체적인 역사적 인물이 시의 소재로 나타나고 있다. 구체적으로 역사적 실존인물인 전봉준·정약용·최익현 등 혼란한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이 시의 소재로 수용되고 있다. 이러한 실명시의 등장은 시에서 과거의 역사를 수용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다. 시에서의 역사수용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시적 대상으로서의 역사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적 사건과 현재의 삶과의 관련성이다. 80년대 시는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역사적 인물이 살았던 시대와 현재의 사회적 삶과의 대비를 통한 사회성과 전달의 효과를 얻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시에 있어서의 역사수용은 현실적 삶을 해석하기 위한 반성적 자각 위에서만 가능해진다. 만일 역사적 인물을 감상적 차원에서 다룬다면 그것은 현실성을 획득할 수 없다. 이러한 현상은 역사적 시간과 현재와의 관련성이 희박할 때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역사와 함께 사회적 삶에 대한 보다 진지한 사색과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따르게 된다.
학년아 나이가 들수록 그리움이며 한이라는 것도 속절없이 첫해에는 산이라도 날려 보낼 것 같은 그리움이 강물이라고 싹둑싹둑 베어 버릴 것같은 한이 폭설에 갇혀 서울로 가는 길이란 길은 모두 하얗게 지워지는 밤,……
─정일근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중 일부 (1985)
위의 시행에서 보이듯 유배된 삶은 사회적 삶 속에서 느끼는 소외, 그리움은 원초적 인간성이 상실된 상황, 한은 소외되고 인간성조차 거부당한 현실속에서의 절망적 심성으로 대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5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우리 시는 끊임없는 소재개발과 다양성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 왔음을 볼 수 있다. 소재의 다양함과 풍부함은 곧 시인에 있어서 시에 대한 진지성과 세계관의 확대로 이어진다. 그것은 시와 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오히려 생활과 밀착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즉 삶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와 함께 체험적 제 요소를 시와 삶 속에 수용하려는 진지하고도 분석적인 사고활동의 일환인 셈이다.
4. 시간적 배경
시에 있어서 시간적 배경은 단순히 분위기 조성 및 정서의 환기에 그치지 않고 시인의 현실인식과 시의 내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각 시대별로 시간적 배경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다음 「표Ⅲ」에서 드러나는 특징적인 현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위의 시들은 대부분 가을과 겨울이란 계절적 배경으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시에 나타나 있는 계절적 배경은 시의 내용과 관련해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내용으로 볼 때, 이는 보다 큰 범주인 문학전반에 걸쳐 설명될 수 있는 것으로 여기에는 N. 프라이의 문학 내용에 따른 유형분류가 많은 시사를 해준다. 이는 사계절의 순환논리와 그에 대응되는 삶의 원리와 문학과의 분석적 통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에 따르면
봄: 불만족한 상태에서 만족한 상태로의 변화를 말해주는 내용
여름: 이상세계에 대한 꿈과 그로 인한 탐색의 내용
가을: 만족한 상태에서 불만족한 상태로 전락하는 내용
겨울: 현실세계에서 겪는 좌절과 시련에 관계되는 내용
의 관련성이다. 이러한 계절적 배경과 통계에 나타난 일반적 경향과의 관련성으로 볼 때, 우리 시의 대부분은 비극적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유추해 낼 수 있다. 특히 겨울과의 관련성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해석된다.
첫째, 겨울이란 계절이 지닌 상징성을 생각할 때, 우리 시의 모습은 상실과 그로인한 불안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겨울은 추위와 혹독한 시련을 의미한다는 것과 함께 해체의 계절·죽음의 계절이란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겨울이 지닌 서정성은 극단의 자기상실과 불안의식을 배경으로 드러난다. 이는 임홍재의 「바느질」에서 드러나는 가난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어머니의 따스한 사랑, 이성애의 「겨울나무」에서 보여지는 삶의 궁극적인 모습 등에서 잘 나타난다. 죽음과 해체의 계절에 느끼는 삶의 본질적 요소와 사물의 실체를 통해 얻어지는 새로운 인식을 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겨울을 배경으로 하는 시는 현실의 불만족에서 오는 슬픔 속에 드러나는 비관적인 현실인식의 단면을 보여준다.
둘째, 주제와의 관련성으로 볼 때, 사회성을 지닌 시와 겨울과의 관련성을 들 수 있다. 이는 개인과 개인, 사회와 개인의 단절과 그로 인한 갈등구조로 나타난다. 이런 경우는 사회성과 서정성을 효과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시에서도 잘 드러난다. 우선, 겨울을 배경으로 한 시에서 사회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시는 60년대에 유성규의 「TUNDRA」, 박태문의 「대리석원주를」, 이성부의 「우리들의 양식」, 70년대에 국효문의 「기공」, 김명인의 「출항제」 80년대 기형도의 「안개」, 정일근의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오태환의 「최익현」 등을 들 수 있다. 이상의 시들은 겨울이란 시간적 배경이 단순한 시의 배경이 아니라 주제와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즉 겨울을 시대적 상황으로 환치시키고 있으며 암울한 삶 속에서 냉철한 자각과 그를 통한 삶의 지향을 내포하고 있다.
사회성과 서정성의 효과적인 결합을 나타내는 시에 있어서도 겨울이 지닌 상징성은 주제와 밀접한 관련성을 띠고 있다. 70년대의 많은 시들이 상실의 슬픔과 회복에의 열망을 담고 있다. 임영조의 「목수의 노래」, 권석창의 「벌판에서」, 곽재구의 「사평역」, 김종목의 「겨울바다」 등의 시에서 보여지는 상실의 슬픔과 사회적 삶의 올바른 정립 그리고 고향상실에 대한 인간적 고뇌 등 나타난다.
셋째, 극히 피상적인 관찰이긴 하지만 겨울을 배경으로 한 시는 신춘문예의 특수한 성격과 관련된다. 이는 신춘문예가 늦가을과 겨울에 걸쳐 작품을 모집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신춘문예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쓴다는 점과, 신년의 첫장을 장식하는 발표시기를 생각하며 계절적 공감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생각할 수도 있다.
2). 계절적 배경이 가을과 겨울에 치중되어 있다는 점과 ‘밤’의 시간과가을이란 계절의 특성이 상실이라는 현상과 함께 겨울로 이어진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점은 좁은 범위에서의 시간 즉 밤과도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밤이란 시간 역시 고독과 죽음 그리고 새벽을 위한 기간임을 생각할 때, 가을·겨울 그리고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나타난다. 서정적으로는 슬픔의 극복, 상실된 시간과 공간에의 간절한 염원, 절망적 삶 속에 끈끈이 이어지는 정으로 나타난다. 또한 사회적 관심에서는 왜곡되고 절망적인 삶, 시대적 불안 그리고 새로운 삶을 향한 의욕으로 나타난다고 하겠다. 우리 시에서 이러한 시간적 배경과 내용과의 관계는 시간적 요소가 단순한 정서의 환기에만 작용하지 않고 시의 내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5. 시의 길이(양)
시대적 변화에 따른 시의 길이는 다음의 도표와 같다. 여기서는 연을 무시하고 행으로 시의 길이를 파악했고, 산문시는 한 행의 길이가 무제한으로 길어진 것으로 인해 기타에 포함시켰음을 말해둔다.
「표Ⅳ」에서 보이는 현상은 크게 두 가지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1). 50년대 주류를 이루고 있던 짧은 시행이 점차 퇴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한국적 서정 ─ 자연에 대한 신비나 정감의 세계를 노래하는 시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과 연관된다. 자연에 대한 직정적인 세계를 나타낸 시가 70년대 이후 급격히 줄어드는데 이는 당선작의 면면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60년도 당선작인 이수익의 「고별」 「편지」, 77년도 김명수의 「월식」 「세우(細雨)」 「무지개」, 78년도 신석진의 「새벽두시」 「밤·사물」이 모두 20행 이하이고, 2~3편이 동시에 당선된 작품임을 생각하면 짧은 시행을 지닌 시가 한편으로 당선되기에는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외적인 경우로 김영석의 「단식」이 눈에 띌 뿐이다.
2). 60년대 이후 시가 길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6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추세로 서정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시 역시 길어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30행~60행 이하의 시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70년대에는 90행 이상의 시도 여러 편 발견되고 있다.
이렇듯 시가 길어지고 있는 것은 첫째, 신춘문예의 특수한 성격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신춘문예는 한 사람에게 2편~5편의 시를 요구하여 그 중 1~2편으로 당선작을 결정한다. 1~2편의 시로 당락이 결정되는 만큼 응모자들은 그들이 제출한 시에 자신이 지닌 사고의 깊이와 언어에 대한 감각, 주제를 처리하는 능력 등 자신의 전부를 펼쳐 보여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요구가 짧은 분량의 시로써 충족될 리 만무하다.
둘째, 시행이 길어지는 것은 사색의 깊이와 삶의 복잡성으로 설명된다. 이는 오늘날의 삶이 점점 복잡하고 다양하게 세분됨에 따라 생겨나는 필연적 결과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단일한 주제, 단순한 시상으로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전부 펼쳐보일 수 없게 된다. 즉 복잡하고 세분화된 현대적 삶 속에 보다 다양하고 진지한 삶의 이해와 그에 따른 긴 호흡의 시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시대적 상황과 개인과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는 시에서 더욱 뚜렷하다.
셋째, 오늘날의 시가 관념적이거나 사색적인 경향보다는 시대적 상황과 그에 대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점이다. 안으로 응축된 사상과 내적 깊이 역시 긴 호흡의 시를 요구하지만, 다변화된 삶 속에 자기의 주의·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보다 긴 시행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전반적인 시적 풍토 역시 긴 호흡의 시를 양산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3). 산문시의 양이 별로 많이 않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이는 산문으로 쓴 시들이 당선권 안에 들지 못했다는 점과 함께 산문시가 우리의 정서적 내용을 전달하기에는 아직 체질화되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기타에 해당하는 작품들 중 산문시가 몇 편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 당선된 시들도 엄격히 시행을 나누지 않았을 뿐, 산문시가 갖는 빈틈없고 치밀한 사고의 내용 그리고 내적 운율이 깊숙이 숨겨진다는 특징을 잘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하겠다.
6.기타
55년 이후 86년까지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은 178명에 이르고 있다. 이 중 당선작을 낸 시인이 149명, 가작이 30명으로 나타난다. 여기서는 가작을 중심으로 당선작이 되지 못했던 이유를 심사평을 통해 알아본다.
「표Ⅴ」에서 보면 당선작이 되지 못했던 이유가 다섯 가지로 집약됨을 알 수 있다.
첫째, 구성의 산만함을 지적하고 있다. 시에 있어서 신선한 감각과 독창적인 image 등이 부분적인 것에 머물고 한 작품으로서의 통일성과 전체적인 조화에 이르지 못함을 말해준다. 이는 시의 기교적인 면에 집착하면 하나의 유기체로서의 조직성을 살릴 수 없음을 의미한다.
둘째, 시의 내용이 빈약함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시를 쓰기에 앞서 폭넓은 체험과 진지한 사색이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경험적 제요소와 나타내고자 하는 사상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지 못했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따라서 이러한 전제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난 후에 숙련되고 밀도있는 시를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제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관념적이고 기교적인 시를 쓸 수밖에 없다.
셋째, 표현에 있어서 적절치 못함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구성 즉 짜임새의 문제와 연관되는 것으로서 평범한 진술에 의존하거나 부적절한 표현, 감상적이고 애매한 표현의 남발 등을 말해준다. 따라서 표현이 시적 감흥을 유발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설명하는 듯한 점이 문제되고 있는 것이다.
넷째, 생경한 시어와 개성의 부족을 지적하고 있다. 생경한 시어를 남발한다는 것은 구성의 허술함과 사상적 미숙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적 감흥보다는 무리한 관념에 매달리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이는 시인으로서의 성실성과 진지함과도 연관된다. 정서적 내용이나 체험적 요소를 단순화시키고 오히려 관념적이고 비경험적인 요소들을 부각시키려는 의도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경한 시어를 구체적이고 일상적 언어로 바꿀 수 있음은 곧 그만큼의 정신적 성숙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시에 있어서 개성의 부족은 아직까지 자신의 시를 가질 수 없음을 의미한다. 자기 선호하는 특정 경향의 시를 추종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이것은 한 독립된 세계를 가진 시인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게 된다. 여러 경향의 시 속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기자신만의 시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말해준다.
7.결론
지금까지 논의된 것을 다시 요약·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집약된다.
주제의 변모를 살펴본 결과 첫째, 우리 시의 바탕이 되고 있는 것은 서정성이라는 점이다. 둘째, 50년대의 역사의식이 두드러진 관심인 반면 60년대 이후에는 사회적 삶에 관한 관심으로 변모되고 있다. 셋째,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에 걸쳐 관념적인 사상성을 추구하는 시가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이는 시작에 있어 형식적이며 기교적인 관심과 연관된다. 넷째, 서정성은 자연에 관한 일방적인 관심과 과거지향이란 편협된 위치에서 벗어나 사회성과의 결합을 통해 사회성의 시들이 빠질지 모르는 산문적인 경향을 보완해 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소재의 변모에 있어서는 첫째, 50년대와 60년대에 있어 시의 소재가 대부분 역사적 상황에서 취해졌다. 둘째, 60년대 후반이후 생활주변의 소재들이 등장하고 있다. 셋째, 소재의 많은 부분이 내면의식과 관련된 것은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전반에 걸친 사상성 추구의 시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넷째, 80년대에 들어서, 역사적 실재인물이 시의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사실은 우리 시에 있어서 끊임없는 소재개발과 함께 사회생활의 복잡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시간적 배경의 경우는 가을과 겨울을 배경으로 하여 상상력이 펼쳐지고 있다. 이는 밤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시대현실과 개인적 삶에 나타내는 불안의식 그리고 이에 대한 극복의 자세를 진지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시간적 배경이 단순히 분위기나 정서의 환기에 그치지 않고 시의 내용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시의 길이는 50년대 이후 꾸준히 양적인 팽창을 해 왔음을 알 수 있다. 20~29행 사이의 시가 주류를 이루었던 50년대와는 달리 60년대 이후 30~60행 사이에 고루 분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신춘문예의 특수성과 함께 짧은 호흡의 시로는 복잡·다변화된 시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수용할 수 없음을 뜻한다.
이와같은 당선작의 변모문제는 각 시대별 우리 시의 전반적 경향을 말해주는 것으로 매우 시사적이다. 이는 새로운 시인에게서 발견되는 참신함, 시인의 등단 연령이 대부분 20대 초반과 중반에 걸쳐 있다는 점, 그리고 강렬한 탐구정신으로 충만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곧 한국시단의 새로운 지향과 도약에의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1986/신덕룡/원제는 「데뷔작품의 경향과 변모양상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