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막내딸의 초산(初産) 일기
1960~70년대 국가 인구 정책은 산아제한(産兒制限)이 국가 시책이었다.
그래서 두 자녀 이상은 특히 산부인과 의료보험에 불이익을 주었고, 예비군 동원 훈련 때 불임 정관수술을 신청하면 훈련 동원 및 면제 혜택을 주었던 격세지감의 인구 정책을 회상해 본다.
그 당시 나는 아들딸 남매를 둔 가장이었다. 그런데 시골의 부모님을 뵈러 갈 때마다 부모님은 손자 하나 더 원하시는 말씀을 늘 하셔서 귀염둥이 딸을 더 낳았다.
그 막내딸은 우리 부부에게 효도하는 의미인지 어버이날은 편히 쉬고 다음 날인 5월 9일에 출생하여 여러 가지 의미도 많은 귀염둥이 막내딸이다. 이름도 효도 효(孝) 어질 인(仁) “효인”이다. 새끼들 중에서 유독 온화하고 매사에 긍정적인 성격으로 언제나 웃는 낯꽃이다.
생전 나의 아버지는 손녀딸을 일곱을 두시었는데 그중 효인이가 커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시면서 손녀딸 중에서 가장 참하고 예쁘다는 칭찬을 볼 때마다 자주 하시고 남들한테도 자랑하셨던 할아버지한테도 귀염 받던 손녀딸이었다.
저희들 형제간에도 나이 터울이 많이 있어 하나같이 막내에게 양보하고 보살펴 주었으며, 위 언니 오빠가 먹을 것을 주면 도로 듬뿍 잘라서 떼어 나누어주는 우애 있고 사랑스럽게 자라준 새끼들이다.
우리 부부는 새끼 둘을 이미 키워 놓고 얻은 늦둥이 딸내미라 애지중지하는 새끼였다. 그래서 안식구의 막내딸 애칭은 언제나 “아~가”이고, 별칭은 “복덩어리”이다. 그 어린것 애기가 작년에 서울로 시집을 가서 이 가을에 애기를 낳았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애기가 애기를 낳은 샘이다. 출산 예정일은 음력 팔월 추석날이어서 안식구와 나는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내가 집안의 장남이어서 팔월 추석에 안식구는 차례 음식을 준비하고 나는 차례를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힘으로 할 것 같으면 팔월 추석을 마치고 출산하기를 바랐다. 그 소원을 삼신할머니가 들어주셔서 추석 다음 그다음 날 오전에 산기(産氣)의 여러 징후가 있다는 딸과 사위의 전화가 빗발친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어서 고속도로는 정체가 되어서 자동차는 안 되고 기차로 상경하기로 정하고 전주역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 열차표 판매소에서 가장 빠른 서울행 열차를 물으니 다른 열차들은 이미 예약되어 표가 없고 상경할 수 있는 열차는 12시 58분 무궁화 완행 급 열차로 그것도 입석표만 남아 있단다. 그래도 감지덕지하여 표를 구입하고 대합실에서 대기하는데 출발시간이 1시간이 훨씬 더 남았다. 추석 연휴 끝이라 대합실내 사람들은 추석 대목 시골 장터처럼 붐빈다.
대합실 내 간이식당에서 김밥과 우동으로 점심을 안식구와 때우고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추석 끝이라 여기저기 지인들로부터 전화, 카톡, 문자메시지 등이 오늘따라 귀찮게도 많이 와서 순간마다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는다. 행여 그 어린것이 혼자서 출산하는가? 이어서이다. 그때 조금 멀리서 아는 남자 한 분이 지나간다.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하니 막내딸 전주 시댁 시아버지인 사장어른이시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달려가 추석 인사는 대충 얼버무리고 며느리 출산 이야기로 대화가 이어지면서 그쪽 사돈댁도 열차표 예매 때문에 오셨단다. 표가 없어서 금요일 날 왕복표를 구매하셔서 그때나 올라가신단다. 그런 내용으로 인사를 나누고 가셨다.
그렇게 마음이 조이면서 애가 타는데 드디어 서울행 열차가 도착했다. 빨리 탄다고 빨리 가는 것도 아닌데 급한 마음에 잽싸게 올라타고 마음속으로 재촉해본다. 3시간 30여 분을 서울까지 안식구와 서서 가는데 처음 1시간 정도는 버틸 만하던데 시간이 경과될수록 힘이 들어 자세가 흐트러지고 피곤함을 견디기가 힘들다. 결국 안식구는 신문지를 통로 바닥에 깔고 앉는다. 나보고 옆에 앉으란다. 나는 그냥 서서 가겠다고 얼굴을 좌우로 흔들었다. 이보다 더 힘들고 아픔을 참고 있을 막내딸을 생각하니 이것도 호강스러운 불평 고생으로 생각되고 삼신할머니한테 오히려 속죄해야 할 것 같다.
이를 악물고 3시간 반을 버티면서 드디어 영등포역에 내리니, 역 구역을 빠져나가는데 왜 그렇게도 걸리적거리는 것은 많고 길고 멀며 다리는 왜 빨리 떨어지지 않는가? 모든 것이 불평 투정이다.
어기적거리는 굼벵이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니 아직 출산은 안 해서 다행이다. 면회 신청을 하니 막내딸이 너무 복통이 심하여 아랫도리가 풀려서 걸음을 걸을 수 없다 하여 나올 수가 없단다. 그때 큰 딸내미 식구들도 도착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진통제를 맞고 우선하여 막내딸이 사위의 부축을 받으며 그 와중에 친정 식구 얼굴들이 보고 싶은지 복도에 나온다. 얼굴은 해쓱하고, 기진맥진하여 몰골이 말이 아니다. 나와 안식구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막내딸 손을 잡고 “~이렇게 엄마가 되기가 힘든 거란다. 모든 인류의 어머니들이 이런 고통을 감수했기에 인류가 생성되고 인류문화가 보존되었다. 얼마나 어머니가 인류에 위대한 존재냐?”라고 어머니의 위대함을 역설하고 등을 다독거려 다시 출생아 출산 준비실로 보냈다.
그때 시각이 오후 6시 경이다. 조금 있으니 담당 간호사가 와서 의사 선생님의 진찰과 여러 가지 산후 징후들을 종합해 보면 출산 예정시간은 늦은 밤이나 내일 새벽쯤이 출산 예정 시간이란다. 인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며 삼신할머니의 점지 계획으로 받아들이고 그저 순산(順産)하기만 기도할 뿐이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사위가 헐레벌떡 뛰어온다. 방금 출산 임박 기미가 보여 의료진들이 급히 출산 준비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다. 모든 것이 갑자기 숨 가쁘게 돌아간다. 우리 식구들은 긴장과 순산의 기다림 속에 목은 타고 가슴은 떨린다.
그렇게 긴장의 시간이 째깍째깍 돌아가더니(오후 6시 50분) 산실(産室) 안에서 “ 으~앙”하는 외손자 놈의 힘찬 울음소리가 흘러나온다. 그 순간 이제 외손자는 안심이고 막내딸 건강이 염려된다. 나오는 의료진들에게 물으니 “자연분만 순산입니다. 그리고 옥동자를 낳았습니다. 축하합니다!”이다. 나는 “산모는요?”라고 물으니 “예 건강합니다. 염려 마세요?”라고 안심시킨다. 그래도 내 눈으로 막내딸을 봐야지 안심할 수 없다. 외손자는 유리 벽 밖에서 보니 간호사가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가라 입히고 간단한 건강검진 후에 손발 지문을 찍고 카드를 정리한 후 유리 벽 안에서 식구들에게 보여준다.
참으로 귀중한 생명의 탄생이다. 참으로 위대한 자연의 질서 속에 태어난 최고의 보배요 선물이다. 다시 한 번 하늘에게 감사드린다. 웃고 찡그리고 우는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보니 고맙고 외할아버지로서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가다듬는 무거운 책무도 느껴진다. 막내딸은 출산 후 2시간 정도 지나야 회복하여 입원실로 올라간단다. 그렇게 계산하면 밤 9시 정도쯤에서 막내딸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급해서 그때까지는 기다릴 수 없다. 미리 위층으로 올라가서 막내딸 입원실 복도 앞에서 서성거리며 앉았다가 섰다가 기다린다. 그런데 1시간도 안 되었는데 막내딸이 휠체어를 타고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올라온다. 나는 얼른 막내딸의 손을 잡으려 하니 담당 간호사가 조금 있다가 접촉하라 한다. 할 수 없이 뒤로 물러나서 다시 복도에서 기다리면서 현재 상황을 아무도 모를 아래층 대기실의 식구들에게 전화로 알려주니 식구들이 우르르 몰려 올라온다.
간호사가 접촉해도 좋다 하기에 재빨리 입원실로 들어가서 막내딸의 얼굴을 보니 창백하여 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아가 수고했다. 장하다?”라고 반복하며 위로 말만 할 뿐이다. 손을 잡아 보니 손도 차가운 얼음장이다. 그런데 입원실 창문이 열려있어서 내가 닫으려니 막내딸이 속에서 열이 계속 나서 잠시 열러 놓으란다. 산모 식사는 산후 처리 주사 후에 속이 안정되면 산모 식사를 준단다.
그 옛날에는 산모가 아기를 낳으면 시어머니는 오뉴월에도 군불을 지피어 방은 쩔쩔 끓게 하여 출산 중에 늘어지고 버러진 뼈마디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라고 찜질 요법으로 바람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여 방문도 꼭꼭 닫고 버선도 신기고 옷도 두툼히 입혔다. 미역국도 흥덩하고 넉넉히 끓이고 햅쌀로 밥을 지어 삼신할머니에게도 올려드리고 산모에게도 세 끼 식사 관계없이 틈만 있으면 식사하도록 권장하여 산후조리에 바빴다.
시아버지는 새끼를 꼬아서 고추, 숯, 솔가지를 꽂아서 삼 줄을 만들어 사람들 눈에 쉽게 띄고 출입이 많은 대문에 나지막이 걸어 부정한 사람들의 출입을 막아서 셋 이레까지 산모와 아기의 건강 유지에 최선을 다했다. 수유(授乳)와 산후 회복에 좋은 보양식을 달여서 산모의 원기 회복에도 온 식구들이 뒷바라지했던 우리들의 아름다운 옛날 산후조리의 풍경이었다.
현대 의학 아래 이루어지는 일련의 출산 시스템이나 전통사회의 출산 과정은 수단의 차이일 뿐 개념과 목표는 같다고 본다.
옥시토신(oxytocin)은 포유동물에서 분만을 돕거나 분만 과정의 지속, 분만 후의 출혈 조절, 모유 분비 촉진 등을 위해 자극 분비되는 일종의 호르몬이란다.
옥시토신은 포유동물뿐만 아니라 새끼(알)를 임신하고 기르는 과정에서 인간 못지않게 모성애가 생물 세계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단다.
이렇게 옥시토신은 산모가 수유하는 동안 유방에서 젖을 나오게 하는 등 신(神)이 산모에게 부여한 초능력의 컨트롤 타워 에너지다. 신(神)이 만든 모성애 옥시토신(oxytocin)의 영감(靈感)에 인간의 땀과 노력을 합성하여 완성한 「합성 옥시토신」은 산과수술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어 산모들의 출산에 획기적인 도움을 주어 1953년 “뱅상 뒤 비뇨(Du Vigneaud, Vincent-미국)”가 처음으로 합성에 성공한 공로로 1955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현대 의학의 덕분으로 산모들이 순산할 수 있어 참으로 고마운 자연과 인간들이다.
허둥지둥 시간이 밤 9시가 다 되었다. 긴장이 풀려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큰 딸내미 손자들이 그때까지 저녁 식사를 못 해서 배가 고프단다. 할 수 없이 산모는 막냇사위가 지키고 모든 식구들은 병원 아래 건너편 식당에서 곰탕을 공동 주문하여 어른 애 할 것 없이 허기진 배 채우기에 여념이 없다.
식사를 일찍 마친 사람이 산모 옆에서 시중을 들던 사위와 교대하여 모든 식구들이 산모를 제외하고 저녁 식사를 마쳤다. 그런데 사위들이 아버님 병원에서는 보호자 한 사람만 허락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입실이 안 된다고 하며 산모는 저희들이 알아서 돌볼 테니 염려 말고 다시 전주로 내려가시란다. 시간을 보니 9시 30분쯤 됐다. 열차 시간을 알아보니 광명역에서 22시 4분에 출발하는 “KTX 산천”이 막차란다. 할 수 없이 부랴부랴 큰사위 자동차로 광명역에 도착하니 출발 15분 전이다. 다행히 하행선이고 늦은 밤 막차이어서 그런지 좌석은 널널하게 여유가 있었다.
1시간 10분 (23시 10분)만에 중간 익산역 하나 정차하고 전주까지 논-스톱으로 전주에 도착했다. 올라갈 때는 3시간 30분 정도가 그렇게도 참으로 길고 징역살이 같은 시간이었는데 내려가는 이런 기차는 하루 종일 승차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아마도 내려갈 때는 좌석도 있고 모든 것이 홀가분한 상태이어서 그런가 보다. 돈도 좋고 세상도 좋아졌다. 사람은 자기 기분에 따라서 세상을 평가하고, 상대방과 인간관계가 바꾸어지는 변덕스러운 근성인 것 같다. 미리 마중 나온 아들 승용차로 집에 도착하여 그대로 곯아떨어졌는데 눈을 뜨니 아침이다.
인류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많은 종교가, 사상가 그리고 석학(碩學)들이 무던히도 고민하고 연구했던 흔적들이 사상이나 문헌 속에 함축되어 전하고 있으나, 공통점은 결국 자연에 순응하면서 순리대로의 삶이 보편적 정답인 것 같다.
초개(草芥) 같은 내가 여기에 무슨 토를 달고 억지를 부려본들 자연의 섭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간다.
「고통은 순간이고, 행복은 영원함」을 출산을 지켜본 깨달음이다.
(무술년 음력 팔월 열여드레 아침에)
첫댓글 푸념거리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