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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해동청 보라매여
휴일 아침이다.
마른기침을 두어 번하고, 책상 위에 놓인 냉수 잔을 들어 벌컥 들이킨다. 뱃속까지 써늘하게 느껴지는 차가움은, 곧이어 등골을 타고 몽롱한 뒷골까지 흔들고 있다. 창문을 열어젖힌다. 사월의 푸른 아침하늘이 거기에 있었다. 두리번거리며 창공을 휘둘러본다. 청량함이 폐부가 시리도록 가득 차온다.
푸드득! 잿빛 비둘기 한 마리가 창 밖으로 내민 얼굴 가까이 날아간다. 머리는 지끈거리며 숙취에 의한 두통을 알리고 있고, 벌린 입에서 풍겨 나오는 역한 구취는 지난 밤 폭음의 증거물임을 알리고 있다. 비둘기의 출현에 놀란 가슴은 창공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차게한다. 녀석의 느닷없는 도약에 오히려 심사는 차분해진다. 깃털 하나가 빙글빙글 돌면서 창문으로 날아들어 오고 있다.
아! 해동청 보라매는 아직 보이지 않는구나….
이 땅의 어느 구중심처에서 그 거대한 날개를 드리우고 있단 말이냐? 비상하라! 보라매여! 이 몸의 텅 빈 심사를 일깨워주고, 창 밖의 도처에 깔려있는 회색의 절망과 한숨들을 날려버려라. 웅비하라! 해동청 보라매여…. 입술을 다문 채 눈두덩이 부풀도록 창공을 향해 무언의 함성을 내지른다. 지난 밤 술자리에서 내내 작아 보이던 친구 모습이 허공에서 투영되다가, 심연으로 빠져들 듯이 점차 형상이 작아지더니 작은 한 점으로 화하면서 사라졌다.
한줄기 햇빛이 방안으로 뻗어올 즈음, 넋 없이 서 있던 몸은 창문을 닫는다. 좌정(坐定)이란 무엇인가? 내 속의 나를 추적해 가는 경건하고 진지한 자세일 것이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허공으로 피어오르는 담배연기를 물끄러미 지켜본다. 푸른 연기는 엽초였던 자신의 전생에 대한 의미를 알까? 말없이 친구에게 펜을 들었다.
지난 밤 주점에서 만난 친구는 상기된 얼굴로 이민을 결심했다고 했다. 자못 당당하기까지 한 그의 열변은 나로 하여금, 쓰디쓴 소주만 들이키게 했다. 꽤 지명도가 있는 사설학원의 강사로 있던 친구는, 그간 제법 돈도 알뜰하게 모은 모양이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민사유에 대하여 심드렁히 묻는 나에게, 그의 응답은 이러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세계에서 제일 비싼 자식들 교육비 때문일세! 한 달에 사교육비로 이백 만원을 써야하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이 땅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것 같으이. 온통 주저앉는 소리만 들리네. 관료, 정치권력의 부정부패는 또 어떤가? 끝없는 비리의 폭로와 노출,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졸속정책들…. 그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민초들의 암담한 현실. 다수의 대중은 분노할 줄도 잊은 채, 맥 빠져 있네. 보게! 자네와 나의 주변까지도 모두가 다 썩어있네. 작은 집 한 채를 지어도 온갖 비리가 관행처럼 만연하고, 부실시공에 의문을 가지면 '내 배 째보라!' 일세. 물을 마음대로 마시겠나, 공기를 걱정 없이 들이킬 수 있나? 사회현상은 또 어떤가? 강성노조에다 집단 이기주의, 나만 아는 무질서, 눈만 뜨면 보도되는 희대의 흉악 범죄소식. 엽기(獵奇)에 몰두하는 말세현상은 또 뭔가? 숨이 다 막히네. 또 있네! 아니, 그만둠세. 목만 아프이… ! "
탁자를 치고, 술을 들이키면서 뜨거운 숨을 몰아쉬는 친구의 모습에서 어느 부분 공감도 느꼈지만, 왠지 씁쓰레한 심사에 젖어들기만 했다. 말없이 술만 들이키는 나에게 그의 현실비판은 끝이 없을 듯이 쏟아져 왔다. 그러나 온갖 영욕을 겪으면서, 끈질기게 반만년을 이어 온 이 땅의 자손으로서, 일순간에 둥지를 훌훌 털고 떠나겠다는 그의 결단 사유에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벌겋게 취기가 오른 얼굴로 마주한 그와의 술좌석은, 요즈음 흔치않게 열기에 찬 토론의 장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보게! 자네 해동청 보라매를 아는가? 저 백두대간 대동맥에서 힘차게 날아올라 웅비를 시작하면, 땅위의 온갖 짐승들이 머리를 박고 전전긍긍하며, 세상의 날짐승들은 혼비백산하여 제 둥지마저 잊어버리네. 서쪽으로는 황하(黃河)를 집어삼킬 듯이 부리짓하며, 한번 날개 짓으로 동북의 어지러운 기운을 쓸어버리고, 갈고리 같은 발톱은 간헐적인 신경통처럼 이 땅을 피곤하게 하는, 동해남쪽의 열도를 찍어 누르네! 이 해동청 보라매가 누군가? 우리 이 땅의 거대한 정기일세. 은인자중 하면서도 쉽사리 나서지 않는 우리의 끈끈한 자존심일세. 얼마나 은근하냐하면, 이천 년 동안 몇 차례 날개 짓만 하고 둥지에서 눈알만 부라리고 있네. 혹자는 이 자세를 은자(隱者)의 지(志)니, 군자의 나라니 한다더군. 그러나 이제 해동청 보라매는 기지개를 켰네! 찬란한 여명을 받으며 창공으로 비상할 워밍-업에 들어갔단 말일세. 그 민족의 영물인 보라매의 몸뚱아리에 솟은 깃털 중 하나가 자네일세. 어딜 가겠는가? 이 웅비의 순간에 말일세…. 자네는 현실에 낙담하고, 이 땅의 어두운 면에 절망하고 있는 건가? 우리의 현실은 둥지를 떠나기 전 투덕대는, 보라매의 비상에 앞선 소란함 일 뿐이네. 모모하는 인사들이 뇌물을 수 억대로 주고받은 작금의 부패는, 어찌보면 우리의 몸체와 살림살이가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네. 못 살던 시절, 빈 창고에 도둑이 든들 훔쳐 갈 것이나 있었겠나? 나는 현재 우리가 전체적으로는 상승국면으로 보네. 가끔씩 멈칫거리고 뒷걸음 칠 때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차츰차츰 앞으로 전진해 가고 있네. 자네의 절망적인 한숨은 우리의 의식이 그만큼 깨어있다는 증거도 되네. 우리는 가까운 지난날까지 너무 숨차게 뛰어왔네. 초가집에서 양옥집으로 입주하고, 한동안 쓸만한 살림살이를 장만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가, 어느 때인가부터 가까운 언덕 위에 있는 멋진 별장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네. 별장에서 고급스레 행동하는 선진국의 모습을 보고는, 부풀려진 갈증에 안타까워하고 엉뚱하게도 현실을 탓하는 싯점이네. 그러나 지구촌의 닫혀있는 '초가집'들을 보게나! 지금도 '우린 행복합네다' 일세. 우리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피부에 닿는 기대치가 너무 많이 올라가서 느끼는, 일종의 자괴감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네. 자네 같은 보통사람이 이민을 운운한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놀라운 우리의 역량을 실증하는 바가 있네. 떠날만한 실력과 그만한 재력, 여유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자네는 이 땅이 자네를 그만큼 길러준 은혜를 알아야하네! 비록 자네가 바라는 만큼, 이 땅이 흡족히 해주지는 못했지만 말일세…."
알량한 우국충정의 발로는 아니었지만, 나의 열변에 친구는 뜨악한 눈초리에서 자세를 바꿔 연거푸 술만 들이켰다. 2차를 제의한 것은 나였다. 근처 호프집에서 마주앉았다. 무거운 얘기는 집어치우고, 유쾌한 쪽으로 화제를 돌리기로 하였다. 얼큰한 취기 속에서 친구는 불쑥 여행을 제의했다. 이민에 앞서 사전 답사 차 캐나다로 떠나기 전, 점차 절정에 이르고 있는 남쪽의 벚꽃 축제에 다녀오자는 제의였다. 하지만 공직에 종사하는 나로서는 선약키가 애매하여, 친구의 청을 정중히 거절하고 말았다.
주점에서 나와 헤어지기 전, 그는 재차 간곡히 벚꽃여행 동반을 청하였는데, 오히려 안타까운 것은 나였다. 시원한 카타르시스가 없는 요즈음의 인생사…. 벗과 같이 남도 벚꽃여행이라! 뉘라서 마다하겠는가? 친구의 안녕을 빌면서 굳게 악수하고는 돌아섰다. 자정이 넘은 별밤 하늘에 푸른 담배연기를 뱉으니, 은하수가 머리 위에 쏟아지는 듯 정신이 아득하다.
잠시 동안 취기인지 몽롱함인지 현기증을 느끼며, 벽에 붙어 서있는 내 귓가에 거대한 굉음이 들려오는 듯하여 하늘을 보았다. 전설 속의 붕새가 구만리 창천을 치고 날듯이, 거대한 해동청 보라매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선연(鮮然)한 환각이었다.
좌정한 상태로 밥상만한 책상에서, 지난 밤 만난 친구에게 보낼 편지를 쓴다. 그 친구의 집 주소도 모르고, 요즈음 정보화 시대에 걸 맞는 이-메일 주소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것만은 녀석에게 꼭 전해 주어야지!' 뇌까린다. 이 땅에 남아있는 친구로서 보내는 설익은 교훈적 이야기 같아서, 그가 오해할 수도 있겠고, 그도 알고 있을 내용이겠지만, 왠지 모르게 결단을 주저하고 있는 듯한 친구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진솔한 마음 하나로 펜을 들었다.
(이하 자유서간문 형식)
친구여!
남도 벚꽃축제 여행에는 자네 가족만을 동반하여 오붓이 다녀오게나.
기왕이면 힘들더라도, 자네 승용차로 지방도를 타고 국토를 천천히
종단하면서 다녀오게나!
길가에 펼쳐진 우리의 땅 정겨운 산야를 보듬으며 가보게.
구절양장 골짜기에 흩뿌려진 따뜻한 신화와 전설을 아우르면서
우리의 강토를 새롭게 만끽하면서
여행은 느릿느릿 육박칠일 일정으로 다녀오게나.
곳곳에서 마주치는 바윗돌 하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정겹게 느껴질 걸세.
쉴 틈에는 반드시 토담집 뒤뜰이나, 남새 밭 이랑 가에서
숨어 있듯이 애처롭게 서있는, 한 무더기 정숙한 꽃나무를
하염없이 바라보게나.
그 나무가 유월 말부터 시월까지 백일 넘게 활짝 피는
꽃 중의 꽃 우리의 꽃! 무궁화 꽃일세.
일찍이 중국의 사서 산해경(山海經)과 해외동경(海外東經).구당서
(舊唐書)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땅은 고귀한 무궁화 꽃의 나라(槿花之國)로 불려 왔다네.
유럽에 가보면 이름난 공원이나, 저택에는 어김없이 무궁화동산
('A Rose of sharon')이 있는데, 그만큼 숭고한 꽃의 대명사일세.
그러나 근대에 와서 일본제국주의의 교묘한 말살정책으로,
우리는 무궁화의 진정한 의미를 망각하고 있는 개탄스러운 현실이네.
일제 강점기에 자행된 무궁화 배척 이야기는
지금도 울분을 일으키게 하고, 눈시울을 붉히게 하네.
그들은 소학교 교육과정에서 무궁화를 '눈에 피(血)꽃' 이라고
가르쳤네. 무궁화를 똑바로 쳐다보면, 무궁화 한가운데 부분의
빨간 꽃잎처럼 눈동자가 변한다는 황당무계한 얘기를 늘어놓았네.
또한 무궁화에 거름을 주면 안된다고 하였네.
100여일 동안 계속 피고 지는 꽃이라, 거름을 듬뿍 주어야 하는데,
못난 모습으로 시들게 하려는 졸렬한 술책이었네 그려.
그러기에 약해진 줄기와 꽃에 항상 진딧물과 해충이 들끓어
병충이 번성하는 배척당하는 꽃으로 만들려했네.
일제는 그것도 모자라 무궁화를 심을 때는 햇볕도 안들고
통풍도 잘 안되는 집 뒤켠이나, 냄새나는 뒷간(화장실) 옆에
심도록 하였다네.
큰길가나 관공서, 유원지에는 당연히 그들의 꽃 벚꽃을
심게 하였지.
오늘 날 벚꽃축제는 그 당시 심어놓은 '사꾸라 꽃'의 향연일세.
자네가 가는 진해 군항제(鎭海 軍港祭)에는 해마다
벚꽃열차가 운행되고 있네. 국내 각 관광회사의 판촉행사는
또 얼마나 대단한가?
올해에도 수백 만의 상춘객이 벚꽃을 노래할 걸세.
과연 우리의 무궁화동산, 무궁화 축제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참으로 개탄을 금치 못하는 바이네.
내가 너무 국수주의적 얘기를 자네에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우리는 포용력이 있는 민족이네.
기왕의 화려한 벚꽃놀이를 우리 식으로 음미하면서 즐겨보는 것도
트인 마음일세.
과거 어둠의 바다 저편에서 우리를 억압했던 비열한 작태에 대한
추상같은 질책은 유보해 놓고 있네.
그래서 나는 항상 마음 한켠이 아리네.
친구여!
그러나 해동청 보라매의 웅혼한 비상이 시작되면 홍익(弘益)과 대승
(大乘)의 광명정대로서, 질곡과 오류를 준렬히 다듬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저들과 공존하는 희망찬 미래가 열릴 것이네.
벚꽃은 활짝 피었다가 순간에 지지만, 무궁화는 무궁한 세월을
포옹하며 항상 그 자리에 있네.
친구여!
내가 얘기하는 장황한 사설은 나 자신의 알량한 애국론이거나
민족주의적인 우익의 논리는 아닐세!
이제 세상은 지구촌이라는 한마을로 좁혀진 세계화 시대일세.
자네처럼 어디든 가야하는 세상이네.
그렇지만 자네를 키워준 이 땅에 등을 돌리고 떠나지는 말게.
이국의 하늘 밑에서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고 눈시울을 붉힐 때나,
문득 이 땅의 옛 친구들과 정겨운 고향의 오솔길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
자네가 설레는 가슴으로 돌아올 수 있는 고국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갈 곳이 아무리 좋다지만, 아무렴, 자네의 탯줄을 묻고 울고 웃던
이 땅만이야 하겠는가!
친구여! 여행 잘 다녀오게.
귀가하면 전화 한 통 주게.
그 술집에서 만나세.
-서기 2001년 4월 5일 淸明 미욱한 친구가-
추신 : 해동청 보라매가 둥지를 떠나려, 부산하게 날개 짓을 하는
징조가 오늘도 사방에서 감지되고 있네. 참으로 뿌듯하질
않나?
<끝>
1 [구암] 옹졸한 사람이라고 나무라셔도 좋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이라고 했지만 벚꽃쯤 본다고 그들(倭사람)의 속내를 알리도 없고... 벚꽃이 필 때면 여의도 윤중제에도 안 가는게 저 라는 인간입니다. 물론 자금도 없지만 금강산 관광도 저는 안갈겁니다. 진정한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모를까? 앞뒤가 꽉 막혔지요.^^ <2003.12.12>
2 [한비] 위 졸고는 저의 절친했던 친구가 재작년에 이민가기 전, 저와의 일잔 좌석에서 느꼈던 소회를 장황히 적어본 것 입니다. 그때의 취중 울분에 대한 저의 주절거림이라 할까요... 시대정황이 2년 전이라 지금과는 약간의 괴리도 있습니다만...암튼 떠난 친구를 생각하면 지금도 콧등이 시려옵니다. 일본에 대한 탄식과 우국지정.... 그러나 지금은 점차 제자신이 회색인이 되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오늘도 깊이 새기면서 망연히 창밖을 바라봅니다. <2003.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