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SAKA한일친선 수안보마라톤대회 - 수안보 마라닉]
*가자, 수안보로...(2007년 5월 26일/토)
나에게는 틀림없이 이른 아침이었다. 그러나 수안보로의 마라닉을 위해서 중금달의 뒷풀이 식당인
행운정으로 이동해서 써니,assa,아2와 합류해서...
첫번째 여행지인 탄금대로의 이동...
[지금에 와서 공원으로 말끔히 단장된 탄금대는 많은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신라의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켜면서 망국의 한을 달랜 곳이자 임진왜란 당시 신립장군이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한 순국의 현장이며, 현대로 넘어와서는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숨져간
넋들을 기리는 충혼탑이 세워져 있는 곳이다.
장중한 남한강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칠금동 대문산 기슭의 탄금대.
1,400년 전인 신라 진흥왕 때 가야국의 우륵이라는 악사는 조국의 멸망 후에 이 곳에 강제
로 이주당한 수 많은 가야인들 중 한사람이었다. 당시 우륵은 탄금대 절벽바위를 주거지로
삼고 풍광을 감상하면서 가야금을 타는 것으로 소일했다. 그 오묘한 음률에 젖어 들어 사
람들이 하나둘 모여 부락을 이루고 그곳을 탄금대라 명명했다.
조선조로 넘어와서 임진왜란을 맞아 탄금대는 감상의 장소가 아니라 치열한 격전지로 변모
한다. 신립장군의 가슴아픈 패전이 이곳에서 기록된다. 선조 25년(1592) 4월 14일 가토 기
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15만명의 왜군이 거침없이 서울을 향해 쳐들어가자 신
립장군은 도순변사가 되어 충주 방면을 지키게 된다. 신립장군은 지형을 정찰한 뒤 조령에
진지를 확보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고 우리 군사들의 훈련이 부족해 사지에 몰아넣지 않으
면 투지를 드높일수 없다 라고 판단, 28일 새벽 8천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탄금대에 배수
진을 친다.
그러나 신립 장군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천추의 한을 품고 남한강에 투신자살, 패장의 불명
예를 쓰고 만다. 탄금정 정자에서 북쪽으로 층계를 따라 내려가면 열두대라는 층암절벽이
기다린다. 왜군과의 격전 당시 장군이 열두번이나 오르내리면서 활줄을 강물에 식히고 병
사들을 독려했다 해서 열두대라는 것이다. -한국관광공사에서 마구잡이로 퍼 옴]
각설하고,,,하여간 탄금공원에서 나는 이렇게 놀았다..(음, 또 변태소리 듣겠군...)
충장공신립장군과 팔천고혼 위령탑
막내 아2 정진수
sunny 백승우
assa 이태화
그리고 뜀도령 최윤성
assa가 찍었음...
열두대에서 바라본 남한강...
첫댓글 태화 사진 잘나왔네....살이 쫌 빠지니까...보기좋네....그리고 영감님...말못하는 동상앞에서 무슨 추태 십니까....장가나 가야 고쳐지겠는데요..
원판이 이뻐서 사진이 잘 나오는 겁니다..ㅋㅋ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또하나의 방법인게지..추태는 무슨...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