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럼
미국발 금융불안 앞에서 차기정부는
무엇을 먼저 고려해야 하나?
요즘은 누구나다 어떤 펀드니, 주식이니 금융시장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일반화된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 여럿이 이름 모를 펀드에 돈을 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여파로 증권가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
펀드나 기타 금융상품에 돈을 투자한 사람들은 지금 가시방석인 것 같다. 중국관련 투자펀드를 포함해 많은 펀드들이 원금을 까먹는 손실을 내고 있다는 기사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렇게 일반화되어 가고 있는 펀드, 증권투자 등의 본질은 무엇이고 우리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까? 다만 2008년을 살고 있는 우리가 복음적 시각으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 보자
요사이 석유 값이 끝을 모르고 올라가고 있다. 그 밖에 철강이나, 밀 등 식량 및 원자재 값이 오르면서 서민들은 높은 물가에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이렇게 올라가는 물가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자신이 가진 경제, 군사력을 앞세워 세계통화를 자국화폐 달러화로 삼았다. 이런 미국의 경제, 군사적 영향력은 돈을 가진 투자자들로부터 미국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투자라는 신뢰를 쌓아 왔다. 이런 미국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세계 각국은 자국이 벌어들인 달러화 투자처로써 미국을 선택해 왔다.
미국이 가장 안전한 투자처?
미국은 2002년이후 본격적인 쌍둥이 적자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에서 들어오는 투자금을 발판삼아 계속적인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계속되는 재정적자에도 세계 도처에서 물밀듯 들어오는 미국증시 투자금으로 미국인들은 올라가는 주식 값을 밑천삼아 흥청망청 소비해 왔다.
그러나 미국이 가장 안전한 투자처라는 믿음이 이제 깨어지고 있다.
미국금융회사들이 상환능력을 무시하고 능력이 부족한 고객에까지 주택담보대출을 확대한 것이 화근이 되어 파산하는 금융회사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편 미국의 부실채권은 여러 파생금융상품으로 탈바꿈되어 다양하게 판매되었기 때문에 세계 금융불안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미국이라는 안전한 투자처를 잃은 세계 각국 금융자본은 석유, 식량, 철광석 등에도 펀드라는 이름을 붙여 사재기 하고 있다. 여기에다 금 투자펀드, 에너지펀드, 원자재 펀드, 한발 더 나아가 커피, 한우, 미술품, 쓰레기, 고철 펀드까지 생기고 있는 것이 오늘의 금융상품 현실이다.
석유를 사들이는 전체 구매자 가운데 석유업계가 아닌 금융자본이 시세차익을 노리고 석유에 투자하는 금액이 전체의 18.3%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각종 원자재를 사재기해 벌어들이는 돈이 최종 소비자인 힘없는 대다수 서민, 노동자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각종 첨단 기법이라고 이름 붙여진 파생 금융상품들이 결과적으로는 악성 고리대금업자로 변신해 사회 공공성을 무너뜨리고 있다.
끝을 모르고 치솟는 석유 값에 서민들만 추운겨울을 어떻게 지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더구나 파생 금융상품으로 얼키고설킨 갖가지 부실채권들이 폭발해 금융불안으로 언제 우리나라를 뒤흔들지 모른다.
추락하는 사회공공성
지난 12월 당선된 이명박 당선인은 현재 많은 공약들을 내걸고 있다. 대기업 규제완화(금산분리 완화 및 출자총액제 폐지), 기업법인세 인하, 기업 행정규제 완화, 부동산 규제 완화, 공기업매각(민영화) 및 통폐합, 대운하등 주로 대기업 재벌에 입맛에 맞춘 규제철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회공공성 강화는 그야말로 없애야할 인습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국내 모든 언론이 경제성장 7%(이명박차기정부 공약)등 쓸데없는 수치에 열을 올리는 동안 서민들의 고통은 더 커질 수 있다. 이명박 차기 정부는 과신에 찬 경제수치 광고보다 사회공공성 강화에 더 많은 고민을 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지난 대선 국밥집 광고가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는 길이다.
더불어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대희년의 정신이 사회에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교회의 이름으로 서민들의 아픔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이 약자를 먼저 선택하는 교회의 정신이다. 교회는 언제나 사회교리를 통하여 이 세상 모든 재화는 본질적으로 만인의 소유라고 선포해 왔다. 그렇다면 정부의 정책이 기업의 이윤 늘리기보다는 결과적으로 서민대중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지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하여 수치로 나타나는 경제성장율이 반드시 국민들의 복지에 기여하는 게 아님을 알고 있다. 경제성장율보다는 그 러한 경제성장 아래서도 여전히 고통받는, 하루의 밥과 자녀들의 교육을 걱정하는 서민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지금여기 http://cafe.daum.net/cchereandnow 두현진 2008-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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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 입니다
미국에서 사업하며 사는 가족과 지인들 이구동성~ 이제 여기도 열심히 일한만큼의 보람..이라든가 성탄대목이라든가 하는 말이 사라진 것 같다...구요..MB 전야행사에 불안해하는 한반도 한구석... 사회공공성이라는 또 하나의 낯익은 지구촌 질서가 다른 궤도로 수정하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미국은넓디넓은 땅 파먹고라도 살겠는데... .빈익빈 부익부로의 선택을 미친듯이 강요하는 사회정책들은 중산층이 주는 완충효과를 무시하는 커다란 어둠에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