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이야기
강원도 태백에 있는 예수원을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원 십자가도 익숙하실 것입니다.
태백산에서 자라는 다릅나무로 만든 십자가입니다.
나뭇결을 그대로 살리고 원래의 약간 구부러진 형태를 그대로 두어,
억지로 만든 자연스러움이 아닌 본래대로의 모습을 살렸습니다.
십자가 가운데로 다섯 개의 원이 점처럼 찍혀 있는데요,
흔히 우리가 오상(五傷) 즉 다섯 개의 상처라고 부릅니다.
주님의 거룩한 상처의 흔적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토마는 주님의 상처를 보지 않고서는 결코 그 분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를 위해 주님은 손과 발의 상처를 보여 주십니다.
뼛속 깊이 부활을 체험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당신이 당하신 상처를 표시해 두시고, 두 팔을 벌려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예수원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떠올린 고백과 단상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수 많은 상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장식, 색깔, 구조, 배치, 예배에서의 모든 물품, 동작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유다교에서 유래하여 지중해, 대서양 문화와 접목하며 수 많은 세월 동안 그 의미가 해석되고 정착 된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드리는 성찬례와 이를 준비하기 위한 성찬상등에도 각각의 상징과 의미가 가득합니다. 절기마다 바뀌는 색깔, 성찬예배에서 사용되는 성물과 용어들도 각각 뜻 하는 바가 있는 상징물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상을 보며 그 내면의 의미를 깊이 깨닫는다면 더할 바가 없겠죠.
그리스도교 상징의 정점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두 직선이 교차하는 단순한 형태에 수 백가지의 상징들이 존재합니다. 종교와 예술의 교차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십자가는 예배와 신앙 생활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과 고난과 아픔과 번민의 한 가운데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오래 전 선배 신부님 댁에 방문해서 세 개의 못으로 만든 십자가를 보았습니다.
가운데 큰 못이 위에서 아래로, 두 개의 작은 못이 서로 날카롭게 겨누며
횡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2차 서계대전 중 독일의 폭격으로 영국 코벤트리대성당이 완전히 파괴됩니다.
그 곳에 교우들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소서(Vater Vergib)"라는 구절을 새깁니다. ‘코벤트리의 속죄 기도’로 알려진 이 기도는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독일 그리스도인들의 헌금으로 재건된 대성당 제단에 세 개의 못 십자가를
놓았습니다. 이 세 개의 못 십자가는 평화와 화해의 상징이며 속죄의 상징입니다.
주님이 겪으셨던 고난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고백이고
행동인 것입니다.
전쟁으로 서로 미워하고 죽이기까지 했지만,
승자나 패자 역시 모두 고통 속에 힘겹게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서로 죽이고 원수가 되어버린 현실 앞에서 가장 먼저 할 것은 회개와 속죄입니다.
고통을 겪은 후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속죄함으로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진다는 상징의 세 개의 못 십자가의 의미를 묵상합니다.
결국 다른 이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이미 그와 화해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혐오와 파별, 극단적 분노와 저주....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평화의 길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