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성령과 함께
독일 뒤셀도르프교회의 강단은 성령강림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재현한 교회로 유명합니다. 큰 벽 가득히 덮은 그물망 틈새로 붉은 밧줄을 사이사이 ‘V'자 모양으로 엮었습니다. 마치 하늘에서 비둘기처럼 하강하는 수많은 불꽃의 모습이 장엄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모습을 비둘기(마 3:16) 또는 불의 혀(행 2:3)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령강림은 하나님의 임재를 알리는 사건입니다. 성경에서 영(靈)을 나타내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는 ‘입김, 호흡, 바람, 폭풍’ 등입니다. 그 신비한 모습은 구체적으로 표현하기가 어려워 단지 상징적 언어로 언급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를 들었다든지, “불의 혀”처럼 불꽃 형태로 나타났다든지 하는 것이 좋은 보기입니다. 화가들은 첫 성령강림의 모습을 각 제자들의 머리 위에 내려앉은 불꽃처럼 그렸습니다.
성령의 상징적 표현은 긴박함, 뜨거움이지만, 교회력으로 성령강림절기는 생명의 풍성함을 돕는 기간입니다. 비록 오순절 다락방의 성령강림은 유일회적 사건이지만, 개인의 성령체험은 일상적이고 반복되는 산 체험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성령강림절은 영적인 성장과 내면적 성숙을 꾀하는 푸른 절기입니다. 성령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현재진행형으로 일하시며, 그 현상은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갈 5:22-23)의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도서관에 있는 ‘성령강림절’(das Pfingstfest)이란 제목의 그림은 12세기 작품인데, 다른 성령강림을 다룬 주제와 그 표현방식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맨 위 비둘기의 입에서 구름을 뚫고 성령이 내리고 있으며, 성령을 나타내는 불꽃의 각 가닥이 모든 제자들 위에 내려앉고 있습니다. 그러나 뜻밖의 사건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11명의 제자들은 실망과 의심에 찬 눈초리이며, 그 입술 모양이 비죽하게 아래로 처져 있습니다. 그들은 그 와중에도 열심히 토론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불안은 서로 갈 길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당시 시대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12세기는 그리스도교가 유럽에서 한창 번성했던 중세기였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황금으로 자신을 치장할 만큼 부유해졌으나, 그 화려한 교회 안에는 성령의 감동이 없었습니다. 이 그림은 바로 성령부재의 시대를 비판한 것입니다. 성령이 없는 교회는 곧 죽은 교회와 같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강림은 겨우 1년에 한번 기념하는 연중행사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매순간 성령의 역사와 은총을 우리의 삶 한복판에서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배를 마치면서 회중을 향해 베푸는 축복문은 날마다 성령과 함께 하심을 빌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즉 성령의 교통하심(Communion of Holy Spirit)은 날마다 우리와 함께 해야 할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성령의 선물은 ‘일용할 양식’처럼 일상의 체험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영이신 하나님과 날마다 동행하는 진실한 삶의 모습입니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갈 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