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한국 도깨비에는 뿔이 없다
생활 속의 도깨비
그림 1) 고구려 고부 장천 1호분의 천장 그림에서 보이는 도깨비의 형상. 우리나라 도깨비에 머리에는 본디 뿔이 없음을 입증하는 그림이다.
요즘도 어린이들에게 가장 재미있었던 옛이야기를 꼽으라고 하면 으뜸으로 도깨비 이야기를 든다. 하긴 나만해도 어린 시절부터 외할머니한테서 자주 듣던 이야기의 주인공은 도깨비인 경우가 많았다. 이 녀석들은 어리벙벙하고 놀기 좋아하고 잘 속아 넘어가는 성격으로 걸핏 사특한 사람들에게 당하던 쪽인지라 나는 도깨비를 응원하며 못된 사람들이 당하는 결말에 고소해 했었다. 한편 도깨비 박사 김종대는 전국을 다니며 3백여 편의 도깨비 민담을 채록하고 한국의 도깨비 연구에서 도깨비 방망이 얻기, 도깨비를 이용해 부자 되기, 도깨비와 대결하기, 도깨비에게 홀리기, 도깨비를 보기, 도깨비 은인되기, 도깨비가 암시하기, 기타 유형의 여덟 가지로 분류해 정리하였다. 물론 실제로는 더 많은 도깨비 이야기가 존재할 테지만, 그가 모은 3백여 편의 도깨비 이야기만으로도 일 년 열두 달 동안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번 다른 도깨비를 불러들이고 아이들과 놀기에는 충분하다. 이름만도 도채비, 돛가비, 독갑이, 도각귀, 귀것, 망량, 영감, 물참봉, 허체, 허주, 김서방 등으로 다양하고 방언에 따라서는 또개비, 토째비 등으로도 불리는 도깨비에 이토록 많은 이름이 있는 것만 봐도 전국 어디에나 사람들이 도깨비 이야기를 하는 것을 즐겼다는 증거가 된다. 그런데 도깨비는 언제부터 우리 선조들 삶에 있어 왔을까? 김종대 박사는 <월인석보>에서 ‘망량은 돗가비’라 고 표기한 경우를 들며 도깨비 문화가 조선 전기의 소산이라고 보았지만, 고구려 시대의 고분인 ‘장천 1호분’의 천장 그림에 도깨비 형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는 삼국 시대에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림 2) 일제 강점기 소학교 독본에 실린 <혹부리영감>의 도깨비에 머리뿔이 달리면서 우리 도깨비도 일본의 오니처럼 뿔을 갖게 되었지만, 본래 우리 도깨비들은 머리에 뿔이 달리지 않았다.
그런데 요즈음 나오는 재화되는 옛이야기를 보면 꼬마 도깨비와 여자 도깨비까지 보인다. 즉 도깨비에게도 가족이 있는 형태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는 21세기의 가족 해체의 반대급부적인 소망이 담긴 것이라면 몰라도, 전래의 도깨비 이야기에서는 없었던 것이다. 도깨비란 ‘돗+아비’의 합성어이다. 돗은 불이나 씨앗의 의미로 풍요를 상징하는 단어이고, 아비는 ‘장물애비’, ‘처용아비’ 등에서 보듯이 아버지 즉 성인 남자를 뜻한다. 그러니 여자나 아이는 도깨비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 선조들이 중국이나 일본처럼 도깨비의 형상을 그림으로 남겨놓은 것이 거의 없어서 도상학적으로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몇몇 후대의 학자들이 문헌을 통해 연구한 바로는 우리 도깨비는 키가 팔대장 같이 크나 외다리이고, 머리에는 뿔이 없다고 한다. 머리에 뿔 달린 모습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자신의 나라의 오니처럼 형상이 없던 우리 도깨비 머리에도 못된 뿔을 박아놓은 것이다. 그 예로 일제강점기 교과서에 실린 ‘혹부리 영감’ 삽화에는 일본의 오니를 그대로 도깨비로 옮겨놓은 듯 뿔이 떡하니 머리에 달려있다. 또한 월드컵 ‘붉은 악마’의 열풍과 함께 널리 알려지게 된 치우 역시 중국에서 유입된 것으로 본디부터 있던 우리나라의 도깨비와는 그 모습이 다르다. 도깨비가 벽사의 상징물인 점에서는 치우와 같지만, 치우가 구리 머리에다 쇠 이마에 소의 발굽을 하고, 눈 네 개와 여섯 개의 손을 가진 괴수 같은 이미지인데 반해 우리 도깨비들은 얼핏 보기에는 무섭지만 계속 보고 있으면 꺼벙해 보이기까지 해서 꽤나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가끔 귀면와와 문고리 등에 새겨진 모양을 보고, 치우를 연상하는 연구자들도 있지만, 귀면화는 도깨비가 아니라는 설을 주장하는 연구자들이 있어 아직은 도깨비에 대해 어떤 도상적 기준치를 갖고 있지는 않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도깨비의 성정을 묘사하는 대목들을 종합해 볼 때, 우리 도깨비는 어디지 귀엽다. 어른이라기보다는 아이의 천진한 성품을 갖고 있는 장난꾸러기이다. 도깨비 이야기를 보면 이 녀석들은 대체로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자신에게 먼저 해를 끼치지 않으면 결코 해치지 않는 성격으로, 가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도 즐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이라 사람들 사는 동네를 기웃거리는 것을 즐기고 어른 남자라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게다가 신통력까지 가지고 있어서 이 녀석들에게 잘 만 해주면 부자가 되거나 소원을 성취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이 녀석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메밀묵과 수수팥떡, 막걸리 상을 차려주고 가끔 씨름에서 져주면 된다. 그런데 이 녀석들에게는 엄격한 규율이 있다. 즉 음기 강한 밤에만 돌아다녀야 한다. 때 아닐 때 불쑥 나타나는 사람을 두고 ‘낮도깨비 같다’고 하는 말도 여기에서 연유된다. 속담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도깨비와 관련된 속담은 어찌나 많은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아쉬우니 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멋없이 거드럭거리는 꼬락서니를 보면 ‘도깨비 달밤에 춤추듯 한다’ 고 하고, 까닭 모르게 재산이 불어나면 ‘도깨비를 사귀냐’고 묻고, 하는 짓이 의뭉스럽고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는 ‘도깨비장난 같다’고 한다. 도대체 우리 민족은 도깨비랑 얼마나 친하게 지내왔기에 일상생활의 여기저기에서 이 녀석들이 불쑥불쑥 등장하는 것일까?
그림 3) 신라시대의 귀면와로, 우리 조상들은 집을 세우고 지붕을 덮을 때, 끝 쪽의 망와에 도깨비문양을 그려 넣었다. 집안에 들어오려던 악귀가 이 무서운 도깨비를 보고 도망가리라는 축귀의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나의 외할머니는 도깨비들이 변신에 능하다고 하셨다. 특히 빗자루나 부지깽이, 절구공이 같은 부엌물건들이 밤에는 도깨비로 변해 부엌을 어슬렁거린다며 나를 놀래주곤 하셨다. 그래서 나는 시골 부엌에는 밤에 가는 것이 아직도 싫다. 어린 시절 들은 어른들의 말의 위엄은 바로 이런 데 있는 것임을 나이 들어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할머니는 엄마가 해 묵은 오래된 물건들을 버리려고 하면,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며 태워버리라고 하셨다. 그러면 엄마는 공연한 미신 따위를 믿는다고 역성을 냈는데, 아버지가 길거리에 버려진 헌 물건을 집에 들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도깨비 박사로 잘 알려진 김종대의 도깨비를 둘러싸 민간신앙과 설화(인디북)을 보면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진도에는 도깨비굿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서해안에서는 물참봉(도깨비의 다른 이름)에게 고사를 지내고, 띠뱃놀이가 끝난 뒤에는 도깨비 여럿을 선원으로 태워 바다로 보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도 마찬가지로 갈치와 멸치를 몰아다 주는 도깨비영감에게 한 상 차려 맛나게 먹게 했다는 민간의식이 전해져 내려왔다고 한다.
대체로 도깨비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긍정적 의미로, 혹은 해학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 이유 때문에 아이들을 위한 옛이야기 재화에 단골로 등장하리라 생각해 본다. 일상 속에 깊숙하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점 역시 동무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친근한 성격이 그네들한테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나저나 도깨비한테 홀려도 좋으니, 내게도 도깨비감투나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도깨비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말라고?
도깨비가 좋아하는 것 하나 더 - 호박범벅
“고모, 이 책은 잘못되었어. 책이 거꾸로 붙어있어.” 조카가 도깨비와 범벅 장수를 들고 달려와 씩씩거렸다. “어디 보자.” 표지가 예전의 서첩들처럼 뒤쪽에 붙어있어 나도 잠깐 파본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책장을 펼치고 이내 그 해답을 찾아냈다. “어, 이건 잘못된 것이 아니야. 예전에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들었을 때는 세로쓰기를 바탕으로 했단다.” 그런데 평소 워낙 진지하게 말하지 않는 터라, 조카는 친절한 내 설명은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앞뒤를 살피다 다행히 책 표지 뒤쪽의 설명이 붙어 있기에 펼쳐 보였 주었다. ‘세로쓰기의 일반 원칙에 따라 이 책의 글은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 순서로 정렬하였습니다. 따라서 책은 왼편에서부터 열어 보는 모양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자아, 어때? 고모 말이 맞지?” 그제야 이번만큼은 고모가 허투루 말한 것이 아니란 걸 확인한 조카는 갖가지 목소리로 그림책을 읽어주는 나한테 살살거리며 읽어 달라 부탁한다.
그림 4. 옛 서책에서처럼 세로쓰기로 되어 있어 ‘우리 것’ 분위기를 강하게 전해준다. 서체 또한 손 글씨처럼 궁서체와 해서체로 되어 있어 정겹다.
그림 6 호박범벅 장사를 기다리다 마을로 내려온 도깨비들이 담장 안쪽을 들여다보며, 어떻게 골려줄까 궁리하고 있다. 전면의 호랑이의 표정이 우리네 민화에서처럼 귀엽다.
호박범벅을 이고 숲길을 가던 장사꾼 앞으로 하나 둘 모여드는 도깨비의 모습과 표정들, 하다못해 눈동자조차도 제각각이여서 도깨비만 쳐다보는 것으로도 기분 좋아진다. 그런데 호박범벅을 먹은 값으로 범벅 장수에게 빈 항아리 가득 금돈, 은돈을 내 준 도깨비 녀석들은 왜 이리 미련하고 멍청하기만 할까? 몇 번 내준 돈으로 장사꾼이 부자가 된 줄도 모르고 호박범벅이 먹고 싶어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니 말이다. 순진한 도깨비들은 결국 장사꾼 집으로 찾아가 논밭에 돌멩이를 잔뜩 깔아놓고 앙갚음을 하려 하지만 어리석게도 장사꾼의 기지에 속아 넘어가 돌멩이를 깔다말고 개똥을 깔아놓고 돌아간다. 농사가 망치면 다시 호박범벅을 머리에 이고 장사를 나올 줄 알았던 게다. 이런 식으로 이후로도 번번이 속는 도깨비를 보고 있자니 가능하다면 내가 그림책 속으로 들어가서라도 도깨비를 도와주고 싶어진다. ‘이런 멍청한 것들. 차라리. 너희들 방망이로, ’호박범벅 나와라, 뚝딱!‘하고 외치란 말야. 쯧쯧.’
그림 4) 아무리 기다려도 호박범벅 장사가 나타나지 않자, 장사의 논밭을 아예 밧줄로 떠메어 가려 애를 썼다. 애 쓴다고 될 일이 있지, 밧줄만 똑똑 끊어지고 기운만 빠져버린 도깨비들의 저 허탈한 표정에서도 웃음이 나게 하는 한병호의 기막힌 해학적 표현력이 감탄스럽다.
그림책을 시작한 이후 거의 해마다 도깨비 그림책을 낸다는 한병호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출판 미술 협회 전시회에 전공인 동양화의 특징을 살린 도깨비 일러스트를 제출한 것을 계기로 1992년에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림책인 도깨비와 범벅 장수를 출판하게 되었다. 그 후 그의 작품을 본 여러 출판사에서 그를 찾아와 도깨비 그림책을 그려달라고 부탁하게 된 게 그를 오늘날의 도깨비 그림책 전문가로 만들었다고 한다. 한강을 거슬러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살고 있는 현리란 동네가 나오는데, 새벽 두 세 시까지도 불을 밝힌 작업실의 창 안 쪽을 들여다보면 자신이 만든 도깨비상들에 둘러싸여 열심히 그림에 몰두 중인 마흔 중반의 멋진 작가를 만날 수 있다. 옛 생활 도구들인 부지깽이, 솔, 국자, 너까래, 인두, 풀무 등등이 한 쪽 벽면을 온통 차지하고 있고 공간에서 작가는 낮보다는 밤에 작업을 한다고 한다. 한병호가 생각하는 도깨비는 험악하지도 무섭지도 않다. 그런데 그가 표현한 도깨비의 얼굴 위로 뿔이 있다. 우리 도깨비 머리에는 뿔이 없어야 정상인데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도로 작가가 밝힌 자신의 미학적 입장에 대한 설명이 없으니, 일단 의문 부호 상태로 남겨둬야 할 듯싶다. 하지만 뿔이 달린 도깨비라 해도 성격에 대해서는 그도 옛사람들의 생각과 같은 입장을 취한다. “과거 문헌 등을 살펴보면 한국의 도깨비는 형상은 명확하지 않지만 성격은 거의 비슷해요. 생긴 건 무시무시하고 우락부락하지만 장난기와 호기심이 많을 뿐 절대 사람을 죽이거나 해치진 않죠. 늘 조금 부족해서 영악한 사람들에게 당하고 오히려 베풀거든요. 도깨비는 뭐랄까요, 평범한 사람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가난하고 힘든 민초들의 억눌린 부분을 풀어주는, 그런 것을 염두 해두고 저는 캐릭터를 상상하죠.” <프레시안>지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3) 도깨비불 이야기
그림 5) 에릭 사티가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이 그린 사티의 모습, 발라동의 아들이 위트릴로다.
어릴 적 살던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이 하나 있었는데, 그 중턱에는 묘지들도 있었다. 비가 오는 밤이면 할머니가 도깨비불이 춤춘다며 산을 가리키며 나를 겁주셨다. 나는 할머니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비오는 밤에는 도깨비들이 춤을 추는데, 멀리서 보면 발광체처럼 파란 불빛이 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용재총화를 쓴 성현익의 익숙인 안부윤도 젊었을 대, 말을 타고 서원 별장으로 가는데 10리 쯤 가자 캄캄한 밤이 되었다고 한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라곤 없고, 동쪽 현성 쪽에서 횃불이 비치고 떠들썩하더니 그 기세가 가까워지면서 좌우를 삥 두른 것이 5 리나 되는데 빈틈없이 모두 도깨비불이었다고 한다. 하늘은 흐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아니 갈수도 없고 해서 겁먹은 말을 채찍질하여 앞으로 7,8리를 나아가니 도깨비불이 모두 흩어졌다고 졌다 한다. 공포심을 진정시키고 또 한 고개를 넘어 가니 앞서 보았던 도깨비들이 겹겹이 앞길을 막아, 칼을 뽑아 크게 소리치며 돌입하니 불이 다시 모두 흩어져 무사히 갈 길을 갔다는 내용이 시려있다. 16세기 초반의 이야기이지만, 산길에서 휘황하게 빛나는 푸른 불빛을 도깨비불로 여겼던 선조들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그런데 도깨비불의 실체는 인(P) 화합물이 공기 중에서 자연 발화될 때 발하는 빛이다. 사람의 시체가 썩었을 때도 인화수소가 생기는데, 이것이 무덤 주변에 가물거릴 때는, 하도 기이해서 옛사람들은 도깨비불이 나타난다고 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만 도깨비불에 대해 이야기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은 에릭 사티의 음악들이 줄곧 흘렀던 프랑스 영화 <도깨비불, le feu follet>을 통해서도 입증되었다. 에릭 사티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활동한 프랑스의 작곡가다. 사실 사티는 음악사적 의의를 떠나 기이한 행동한 특이한 작품 활동으로 더 알려져 있다. 평생 딱 한 번 사랑을 하고 59세로 세상을 떠나기 까지 독신을 고수해 왔을 뿐 아니라, 자신의 방에는 동생조차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무척 고독했을 것 같은 삶이지만 작곡가 드뷔시와 라벨, 스트라빈스키, 시인 장 콕도, 화가 피카소와 마티스, 그리고 러시아 발레단의 디아길레프 등과 교류하였다고 하니, 면면을 살펴보았을 때 대단한 예술계 마당발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람들은 사티를 기인으로 취급했는데, 실제로 사티 자신은 애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를 읽은 뒤 그것을 흉내 내어 검은 중절모와 검은 벨벳 윗도리와 바지 차림으로 검은 고양이 손잡이가 달린 우산을 지팡이 삼아 자주 산책을 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 그는 몽마르트의 카페에서 피아니스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지냈으나, 해고 된 경험도 많다고 한다. 해고 사유는 그의 피아노 솜씨가 시원찮은데도 공짜 술은 잘 퍼마신다는 것이었다.
사티는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 이후로 공산주의 신봉자가 되어 작품을 돈을 받고 판다는 것을 자본주의의 악습이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곡을 출판하려고 할 때마다 계약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사티는 풍자와 해학을 즐기는 사람으로 곡의 제목을 봐도 대반에 알 수 있다. <관료적인 소나티네>, <엉뚱한 진짜 변주곡 - 개를 위하여>, <말의 옷차림으로>, <바싹 마른 태아>, <배 모양을 한 세 개의 곡> 등등. 이처럼 기이하 제목을 갖고 있는 곡은 도대체 어떤 곡일지 궁금함을 유발한다. 제목만 특이한 것이 아니라, 그는 작곡에 있어서도 별난 시도를 많이 한 작곡가였다. 1917년 상연된 극음악 <파라드>는 대본을 장 콕토가 무대 미술을 피카소가 담당했는데, 그가 작곡한 음악에는 타자기, 사이렌, 피스톨 소리까지 들어간 그야말로 시대를 한참 앞선 곡이라 당시의 비평가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한다. 사티는 생전 명예욕이 없던 탓에 죽을 때까지 가난하게 살고 죽은 후에도 사람들로부터 잊혔었다. 그런 그를 다시 부활시킨 것은, 프랑스 누벨 바그 영화계의 거장 루이 말 감독이다. 1963년 루이 말 감독은 자신의 영화 <도깨비 불,le feu follet>에 사티의 음악을 사용했다. 영화가 개봉되자 전 세계인은 영화 음악의 아름다움에 반해 작곡가가 누구인지 궁금해 했다. 그리고 그의 <짐노페디>, <그노시엔>,<벡사시옹> 등이 차츰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티는 평생 딱 한 번 연애를 했다. 그 대상은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준 적도 있는 여류 화가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이다. 사티가 죽은 뒤 그의 방에서는 부치지 않은 편지 한 묶음이 발견되었는데, 수신인은 모두 수잔 발라동이었다. 사티는 수잔과 헤어진 뒤, <벡사시옹>을 작곡한다. 그런데 이 음악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긴 곡일 것이다. 악보는 한 장 짜리 오선지가 전부지만, 우리말로 ‘짜증’이라는 뜻인 <벡사시옹>은 같은 멜로디를 무려 840번이 반복해야 한다는 지시문이 달려있다. 제대로 연주한다면 14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이 제목 역시 수수께끼 같은 구석이 있다. 자신의 애인이었던 화가 발라동(Valadon)의 성에 질이란 뜻인 ‘vagin'이란 글자를 얹고, 다시 자신의 이름 Erik Satie를 끼워 넣은 것이다. 즉 질을 매개로 발라동과 사티가 연결된 것이니 무척이나 에로틱하다.
알도 치콜리니(Aldo Ciccolini)는 사티 전문 피아니스트로 유명하다. 이탈리아 출신의 프랑스 피아니스트로서, 1949년에 롱-티보 국제 콩쿠르 우승을 계기로 파리에 거주하며, 그곳을 거점으로 연주활동을 전개하였다. 1971년부터는 파리 음악원 교수로서 많은 신예 피아
니스트를 키우는 동시에 자신의 연주 활동에도 의욕을 보이는데, 그는 세계 최초로 사티의 피아노곡 전집 녹음을 완성했고, 사티 전문가로 널리 알려있는 노장이다. 그의 연주로 다채로운 빛깔의 기기묘묘한 제목을 갖고 있는 에릭 사티의 음악을 들어보도록 하자. 도깨비불이란 이름을 가진 음악은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집>의 다섯 번째 곡으로 있지만, 구태여 에릭 사티를 ‘도깨비불’과 연결 지어 추천하는 이유는 사티야 말로 도깨비처럼 알다가도 모르겠는 구석이 있는 예술가였기 때문이다.
첫댓글 허거덕 놀랐어요.ㅎㅎ 독각귀 이야기 읽다가 카페 들어왔거든요..잘 읽었습니다.
흐흐,,,,도깨비 짓인가봐요
아유 재밌어라~ 도깨비와 범벅장수 우리 아이들한테도 읽혀주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