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의 이기이원론은 불교 화엄경의 우주론인 4법계 중, 이법계(理 法界;· 본질계)와 사법계(事法界; 현상계)의 이론을 원용한 것이다
질의자 정석준
지난 11월20일(수) 1000~15:30까지 경주 화랑마을 기파랑관에서 경주유도회(회장 백수청) 주체로 호국정신 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회관에 600여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이날 학술대회는 10시부터 12시30분까지는 3분의 교수님(신라사 주보돈 교수, 고려사 장성재 교수, 조선 및 근대사 신상우 교수)의 주제 발표가 있었고, 2시부터 3시30분까지는 사전에 선정된 3분의 토론자와 질의응답이 있었고, 마지막으로 청중의 질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질의자는 저 혼자였습니다. 제가 질의한 내용이 불교와 성리학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도움을 될까하여, 이 글을 올립니다.
저는 지난 20년 동안 경주불교학생회와 경주청년회, 대한불청경북지구 하계수련대회, 대불련 경북지구하계수련대회를 지도해온 정석준 법사입니다.
장성제 교수님께 질문하겠습니다. 장교수님은 “불교는 무아설을 주장하가 때문에 나라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는데, 불교의 무아설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연기설에 기본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인(因)은 직접적인 원인이고, 연(緣)은 간접적인 원인입니다. 그 원인에 의하여 빚어지는 것이 과(果)요 보(報)입니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싹이 난다고 할 때, 씨앗은 인이요 흙과 물기와 햇빛은 연이고, 그것을 밑동으로 하여 올라온 싹은 과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연기설(혹은 인연설)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러한 인연에 의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어떤 것도 홀로 존재할 수는 없고, 서로의 수많은 인연에 의존하는 관계망 속에 있게 됩니다. 수많은 인연이 쌓임에 따라 모든 것은 항상 변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제행무상(諸行無常)입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변하지 않는 고정된 실체는 없습니다. 곧 제법무아(諸法無我)입니다. 이와 같이 불교의 무아설은 내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영구불변의 고정된 실체는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장교수님은 불교는 “현실을 떠난 피안의 세계를 추구하는 종교”라고 말씀 하셨는데, 이 말씀은 불교의 한 단면만 보고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서산대사 휴정스님은 ,선가구감>에서 “스님들이 출가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어서 일체중생을 구제하기 위함이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불교경전 중에 『유마경』이란 경이 있습니다. 이 경의 주인공인 유마는 승려가 아닌 속인입니다. 마침 유마는 며칠째 병으로 누워 있었고, 사건은 그의 병을 중심으로 해서 전개되어 갑니다. 부처님은 그를 문병하기 위해 제자들을 지명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선뜻 응락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유마를 만났다가 되게 당한 일이 있는 까닭입니다.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지명된 문수보살이 문병을 가기로 하였습니다. 문수를 맞은 유마는 자신의 병은 “중생이 않는 까닭에 나도 앓는다.”고 했습니다. 중생이 고통의 바다에서 허위적 대고 있는 이상, 보살인 자는 자기 일신의 안온만을 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야말로 대자대비행(大慈大悲行)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유마경』의 특징 중의 하나는 기존의 정토관(淨土觀)과는 다른 정토관을 표명한 것입니다. 대승(大乘)에서는 많은 정토(淨土)가 이 우주의 어딘가에 있다고 믿고, 내세에 왕생(往生)할 것을 희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마경>에서 부처님은 “중생이라는 국토야말로 보살의 정토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신라불국토사상은 부처님이 머무르고 계시는 곳이 타방이 아니라 빠로 신라땅이라는 사상이며, 불국사는 부처님의 나라를 지상(신라)에 구현하겠다는 신라인의 염원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 장교수님은 조선 건국과 함께 정도전에 의해 주자의 성리학이 국교가 되면서 조선의 유생들은 불교를 충효도 모르는 사문난적 몰았다고만 말씀하시고, 주자의 이기이원론이 불교사상 영향을 받았음에도 이를 말씀하시지 않아, 제가 성리학 성립의 시대적 배경과 성리학의 ‘이기이원론’과 화엄경의 우주관인 ‘4법계’의 관련성에 대해서 몇 말씀 드리겠습니다.
다들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공자님의 유교 사상은 3강(군위신강, 부의자강, 부위부강), 5륜(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 5상(인. 의. 예. 지. 신)을 국가, 사회, 가정의 기본 이념으로 제시한 실천적 윤리였습니다.
공자님은 그의 제자 자로가 “스승님, 사람이 죽으면 다음 생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금생의 일도 다 모르는데 죽은 뒤l의 일을 앍겠느냐?“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로써 볼 때 공지는 아주 현실적입니다. 공자는 오직 이 현실에서 주어진 삶을 사람답게 사는 것이 삶의 의의요 목표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송대(宋代)에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지고 민족의 주체성에 눈을 뜨면서 소위 정통성에 입각한 전통사상의 재정립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종래의 선진유학(先秦儒學)에 대하여 신유학의 기운이 돌아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불교가 이교(異敎)이고 또한 노장이 비정통이었기 때문에 이것으로 유학을 대체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불교의 형이상학적 측면에서 노장의 현학(玄學)을 종합하여 새로운 시대와 사회에 맞는 유학을 건설하였으니 그것이 곧 성리학(性理學)입니다.
성리학의 발생은 이미 그 시대의 인지가 선진의 실천유학인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윤리현상을 인심에 기초한 데서 비롯됨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선진유학에서는 인심이 선이라는 심선설(心善說)에서 성선(性善)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래 심선(心善)인 인심이 어떻게 하여 선ㆍ악으로 나누어지며, 인간이 선을 실천하기 위하여 어떠한 행위의 준칙을 삼아야 하며, 그때 마음을 어떻게 수양하여야 하는 문제는 아직 심화되지 못했습ㄴ니다. 따라서 성리학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주돈이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이어받아 본체론을 건립하고, 그 후 정이의 이(理)의 개념을 도입하여 주희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확립하였습니다.
주희(朱憙, 1130~1200)를 흔히 주자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것은 존칭입니다. 주희는 북송의 여러 유교 사상들을 총합ㆍ정리하여 체계화된 사상 구조를 완성했습니다. 주희의 집대성은 사상의 면에 있어서, 그야말로 대심포니의 형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진유교ㆍ한당유교ㆍ노장ㆍ불교ㆍ도교 등, 이전의 모든 사상체계가 주희의 사상 속에 녹아들어갔습니다.
성리학은 고려 말에 사회개혁사상으로 등장하여 조선의 개국과 함께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확립되었습니다. 조선 중기의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과 함께 성리학을 집대성한 인물입니다. 여러 학문에 능통했던 그는 주자의 성리학을 뛰어넘어 독자적인 해석을 내놓습니다.
먼저 성리학에서는 이(理)와 기(氣)가 모여 우주 만물을 구성한다고 말합니다. 쉽게 이는 본질, 기는 변수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물을 예로 들자면 H2O 자체는 이(理), 물의 모양을 결정하는 그릇은 기(氣)가 되는 것입니다.
이이는 주자의 주장을 한 단계 발전시킨 퇴계 이황과 달리 독자적인 해석을 보여 준다. 성리학에서는 이와 기를 분리해 생각하는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기본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이는 여기에서 벗어나 이와 기는 ‘둘 같이 보이지만 사실 하나’라 주장했습니다. 이를 ‘일이이 이이일(一而二 二而一)’이라고 합니다.
이이는 이는 형체가 없고, 기는 형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체가 없는 이는 통하고, 형체가 있는 기는 국한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이통기국(理通氣局)’이라고 합니다.
이는 형체가 없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고, 기는 형체가 있기 때문에 움직일 수 있다(發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기가 움직일 때, 기에 타서 움직인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l라고 합니다.
유학자인 이이는 놀랍게도 승려가 되어 불교를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신사임당의 오랜 병환과 죽음은 그에게 심적, 정신적 충격을 주었고 시묘살이를 마친 뒤 금강산으로 들어가 승려가 되었지만 출가 후 1년 만에 환속하고 말았습니다.
이이는 “불교는 인간이 태어나고 왜 죽는가?에 대한 해답이 없다.”, “불교는 유교에 미치지 못한다.”고 환속의 이유를 밝혔지만, 이러한 그의 불교 폄하 발언은 입신(立身)을 위한 명분일 개연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불교야말로 처음부터 인간의 생사를 문제 삼는 가르침임을, 이이가 몰랐을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이이의 승려생활은 고작 일년에 지나지 않았지만 불교는 그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것은 화엄사상이 그의 성리학 사상에 짙게 묻어 있는 것을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자의 이기이원론의 이(理)와 기(氣)는 불교 화엄경의 우주론인 4법계 중, 이법계(理法界;· 본질계)와 사법계(事法界; 현상계)의 이론을 원용한 것으로 보이며, 이이의 기발이승일도설은 4법계 중, 이사무애법계(理事无涯法界; 현상계와 본질계가 걸림없이 통하는 세계)의 이론을 원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주자나 이이는 그 근거를 밝히지 않았고, 이를 모르는 유생들은 성리학의 이데올로기에 빠져, 불교를 인륜도 모르는 사교(邪敎)로 폄훼하고, 조선 500년 동안 사찰에 불을 지르는 등 갖은 만행을 서슴지 않았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시간 관계상 이만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